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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68화 (68/656)

제 068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백진영이 응급실 침대로 찾아왔다. 전화 통화 중이던 진혁이 눈인사를 했다. 스피커폰도 아닌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병원이 어디야?”

“오시기 전에 퇴원할 건데요.”

“니 맘대로 퇴원이니 뭐니 하지 말고 가만히 잘 있어!”

전화 저편의 아버지 목소리가 워낙 커서 백진영에게도 잘 들렸다. 진영이 대답했다.

“여기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입니다.”

“세 시간 내로 도착하마.”

전화가 끊어지고 임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백정흠 사장님 먼저 찾아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들렀다 왔습니다. 지금 숙모와 사촌들이 가 있어요.”

아들처럼 아껴 준다고 하지만 진짜 아들은 아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백진영이 받고 있는 미묘한 차별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던 진혁이 입을 다물었다. 백진영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저희 삼촌을 구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나가면서 그냥 같이 나간 거죠.”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딱 보기에도 멀쩡하지 않나요.”

진혁이 양팔을 들어 보였다. 환자복도 입고 있지 않고, 팔에는 어댑터를 하나 꽂고 있을 뿐이다. 놀라고 창백한 표정에 다리를 저는 백진영과 멀쩡하고 생기있는 얼굴에, 옷에 먼지가 조금 앉았을 뿐인 진혁이다. 오히려 백진영이 더 환자 같아 보였다.

“그래도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조금 기다려 보지요. 그리고 이런 거는,”

백진영이 말을 이었다.

“의사가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남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삼촌도 많이 놀라신 것 같습니다. 원래 마음 약하신 분이 아닌데 말이죠.”

“괜찮습니다.”

눈앞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것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면, 일월신교의 첫 번째 훈련생 훈련조차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밤중에 불타는 초가집에서 맨몸으로 뛰쳐나온 경험이 있어, 불길 한 자락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지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확실히 현대인이 나약하긴 해.’

“삼촌이 이따 와서 직접 감사의 말을 하실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건물 공사는 최대한 빨리 다시 마무리 짓는다고 하시고.”

백진영이 전한 말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 시간 후, 부모님이 도착했다.

“아이고, 이놈아! 거기가 어디라고 거길 뛰어들어가서 사람들을 구해!”

“그런 거 아닌데요.”

진혁은 자신이 뛰어들어가서 사람을 구한 것이 아니고, 무너지기 전에 미리 나왔다는 사실을 어필하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기다려 주지 않고 바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역에서부터 달음박질쳐 온 어머니는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로 진혁을 노려보았다.

“니 목숨이 몇 갠 줄 알고 거기를, 거기를 들어가! 그리고 잘했다고 지금 그러고 앉아 있니!”

진혁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양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호신강기가 어머니의 손을 튕겨내지 않도록 강기를 해제한 진혁은 원래대로 자리에 앉았다.

‘일어서라는 게 아닌가.’

어머니의 말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가끔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번 사고 같은 경우는 진혁에게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이만큼 호들갑을 떠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어색했다.

“네가 우리 가게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하는데, 괜히 서울로 보냈나 싶다.”

아버지가 무겁게 말을 꺼냈다.

“이번 일로 너를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경솔하게 판단을 했나 싶구나.”

진혁이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별일 아닙니다. 낌새가 이상해서 나가자고 해서, 다른 분들이 따라 나온 것뿐이에요.”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 들어가서 백정흠이를 구출해 온 게 아니고?”

아버지가 물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는 그냥 같은 자리에 있었어요.”

“그런 거라면, 흠흠. 잘했다.”

“여봇!”

눈물을 글썽거리던 어머니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런 위험한 데는 애초에 들어가면 안 되지. 가긴 왜 간 건데?”

“그렇게 위험할 줄 모르고…… 아니, 그보다 별로 위험하지가 않았다니까요.”

어머니가 진혁의 어깨에 한 손을 얹으며 환자 침대에 걸터앉았다.

“2층까지 폭삭 무너져 내렸는데 그게 위험하지 않으면, 뭐가 위험한데?”

진혁은 극마의 무인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요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핵폭탄이요……?”

“핵폭탄 같은 소리!”

어머니는 기가 막혀 자기 배를 쳤다.

“진혁아. 네가 군대 갔다 오고 나서 많이 바뀐 건 안다.”

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성실하게 일해줘서 고맙다. 노력하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부모에게 제일 우선인 건,”

아버지는 양미간을 찡그리고 이야기했다.

“네가 건강하게 살아 있는 거다. 살아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런데 이번 같은 사고는…….”

“……..”

진혁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너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서 가볍게 넘겼는데, 부모님이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 몰랐다. 그리고 옛날 생각이 났다.

백수십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전신마비로 누워 있었던 때의 일이다. 그는 누워 있었지만 청각은 살아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진혁의 몸을 닦아 주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진혁 역시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통각이 무뎌지면 감각 역시 둔해진다. 감각이 둔해지면 느끼는 감정의 진폭도 적어진다. 이미 수천 번, 수만 번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던 때다. 깊고 깊은 우울의 늪 속에 잠겨 있어 그렇지 않던 때를 상상할 수 없었던 적의 일이다.

그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분노해서 울부짖었다.

“감히 그딴 소리를 해!“

어머니는 간호사를 때릴 것처럼 손을 치켜들었고 그대로 울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놀라 황급히 방을 뛰쳐나갔고 어머니는 따라가지 않았다. 진혁의 옆에 머물러 진혁의 손에 얼굴을 댔다. 따뜻한 눈물이 흘러 진혁의 손을 적셨지만 그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만 있어라, 진혁아.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너 고쳐 줄 테니까. 살아만 있어.”

그런 가족이었기에, 무림에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어도 돌아오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잠깐 회상에 잠겼던 진혁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크게 다친 데는 없어 보여서 다행이다, 진혁아.”

어머니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닦이지 못한 눈물방울이 떨어져 붉은색 양가죽 구두 위에 떨어졌다. 그 구두에 시선이 간 어머니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네가 선물해준 이 구두도 아주 잘 신고 있고…….”

난감하고 당혹스럽다. 어머니의 눈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혁은 시선으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 역시 어쩔 줄 몰라 하며 옆에서 멀뚱하니 서 있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진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것은 오답이었다.

“큰일 날 뻔했네,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가 훌쩍훌쩍 우는데 의사가 왔다.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정상이겠지.’

“대단히 건강하십니다. 바로 퇴원 수속 밟으시면 되겠습니다. 보호자분은……”

의사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응급실 전용 창구가 저쪽에 있으니까 저쪽에서 수속 밟으시면 됩니다.”

퇴원 절차를 밟고 있는데 백진영이 왔다.

“삼촌은 10023호실로 입원하셨습니다. 가시기 전에 잠깐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진혁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좀 보고 가지.”

10023호실은 VIP 병동으로, 입실이 통제되어 있었다. 백진영을 동반해서 세 가족이 들어갔다.

‘내가 있었던 병실하고 많이 다르군.’

방이 두 개 딸려있고 응접실과 소파가 따로 있다. 중소기업의 사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 땅값 비싼 강남에 건물을 갖고 있는 걸 보면 돈이 없는 건 아니야.’

“오! 내 생명의 은인, 왔는가.”

“…….”

진혁은 침묵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얘는 그냥 낌새가 이상해서 같이 나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백정흠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무너지기 직전에 사람들을 모두 탈출시켰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 인명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지.”

‘아버지와 백정흠 사장이 말을 놓기 시작했었구나.’

진혁은 잠시 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백정흠 사장은 작업복을 입고 기세 좋게 돌아다니던 것과는 다르게 작고 초라해 보였다. 특급 병실이라고는 하지만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오늘 놀란 탓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고 주름이 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사 일정은 어떻게 될까요?”

진혁이 물었다. 백정흠 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이전에 공사한 업체에 손해 배상 청구를 하려고 해. 도대체 지지대를 어떻게 해 놨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경찰에서도 조사가 나온다고 하더라고. 골치가 아파.“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좀 괜찮은가?“

“괜찮지는 않지만, 괜찮아지겠지. 살아 있으니까.“

“인명 피해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야.”

“형, 진혁 군이 없었으면 다 죽었을 거야.”

“그 정도인가?“

“내가 이 은혜는 갚겠네.”

백정흠이 진중하게 말했다.

“아예 건물 자체를 허물어버리고 새로 지을 거야. 지금 상태로는 위험해.”

“그럼…….”

“일단 원래 하려던 빵집은, 어차피 확장하려고 했으니까, 옆 건물 1층을 개조하려고 생각 중이야.”

진혁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옆 건물도 동생 거였나?”

아버지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일부러 밝히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렇죠.”

“어허, 말 놓으래도. 부자였구만.”

“옛날에 공장 세웠던 터가 땅값이 올라서, 그게 건물이 된 거니까. 운이 좋았지.”

“흠.”

“옆에 원래 햄버거집 하던 데라서 오븐 들여놓고 몇 가지만 바꾸면 될 것 같더라. 흰색으로 원래 되어 있는 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영업할 수 있게 화이트톤으로 맞추려고 한다.”

“원래 화이트톤으로 하려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냥 타일 까는 하얀 톤이고, 이건 대리석과 크리스털을 쓰는 하얀 톤이지.”

인테리어 견본을 보여 주며 백정흠 사장이 말했다. 새하얀 천장은 눈에 띄게 높고, 투명한 수정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조명을 비춘다. 넓게 트인 전면 유리창은 건물 안쪽이 환히 드러나 보이게 하면서 넓게 하는 효과가 있고, 안쪽의 벽은 절반은 하얀 기둥, 나머지 절반은 거울이다. 앤티크 스타일의 대리석 탁자와 투명한 의자까지 더하자 공주님의 응접실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어머니가 관심을 보였다.

“진짜 공주님들 가는 카페 같네요.”

“요즘에는 카페가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있는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형수님.”

“우리 집은 그냥 동네 빵집인데…… 우리도 이런 식으로 테마를 하나 정해서 특화하는 게 나으려나.”

어머니의 눈빛이 번득였다.

“지금은 너무 아무것도 없지, 우리 가게가.”

“이제까지 잘 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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