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67화
백 사장과 조카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 바뀌었다.
“그린 워터 농장에 납품하는 빵 모두 제가 개발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
백정흠 사장과 백진영이 흥분해서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통밀빵이 맛있기 어려운데 어쩐지 맛있는 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진영이 감탄하며 말했다.
“냉동 샌드위치인데도 일반 샌드위치만큼 맛있는데 한정된 양밖에 팔지 않지. 화웅 베이커리에서 정식으로 주문받으려고 했는데 거절하더라.”
“온라인 판매를 하는 수익만으로도 지금 말씀하시는 기본급은 벌고 있어요.”
진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아버지 가게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가게 지분을 50% 가지고, 수익 분배 50%를 받고 있습니다.”
“!”
“그린 워터 농장과 이미 협의는 했습니다.”
진혁이 느긋하게 의자 등에 몸을 기댔다.
“화웅 카페 앤 베이커리에서 정식으로 그린 워터의 샌드위치도 런칭하게 되면, 최초의 오프라인 그린 워터 샌드위치 판매점을 겸하게 될 겁니다.”
“그건…….”
백정흠이 한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아주 짧은 시간 스쳐 간 욕심 나는 얼굴에 진혁이 마음속으로 피식 웃었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되겠군.’
“그리고 가게 이름에 대한 제안도 있습니다.”
◈ ◈ ◈
성공적으로 협상을 마친 지 삼 주가 지났다.
“전기선도 새로 묻고, 천장도 아예 깔끔하게 다시 컨셉을 잡았지.”
백정흠 사장이 쾌활하게 말했다.
“리모델링만 조금 하신다더니 생각보다 대공사군요.”
화웅의 강남 베이커리 카페 공사 현장을 보러 온 임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 타일을 완전히 벗겨내 철근 골조가 드러나 있다. 사다리 위에 올라간 인부가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전동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였다. 위이잉- 하는 불쾌한 기계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진혁이 자네가 못하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뿌듯해.”
“예?”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인테리어를 하자고 했잖나.“
“…….”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오랜 시간 흑적의를 입어와 그 색깔이 익숙했다. 가게의 컨셉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가 별생각 없이 검은색과 붉은색이 좋겠다고 대답한 이래, 백 사장은 틈틈이 언급하며 진혁을 놀렸다.
“할로윈 테마로 잠깐 꾸밀 때는 주황색과 검은색, 붉은색을 마음껏 써도 좋아.”
“특별히 그 색깔로 가게를 장식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원하는 대로 하면 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
놀리는 게 맞다. 진혁은 공사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라.’
현대 세계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드러나 있는 환풍용 도관과 전기 배선, 그리고 삐죽삐죽 솟은 철근과 콘크리트. 이전에 살던 거처는 십만대산의 봉우리 속에 지어진 목재 교주전이었다.
‘여름에는 벌레가 많고 겨울에는 춥지.’
수백 명의 인부가 달려들어 끊임없이 보수하고 옻칠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계절마다 기와도 새로 얹어 주어야 하는 둥 손이 많이 간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가게 역시 철근 골조에 콘크리트를 사용한 현대식 건물이지만, 이렇게 타일을 벗겨내고 그 안쪽까지 들여다볼 일은 없었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사다리에서 내려온 인부는, 다시 오른쪽으로 사다리를 옮겼다. 무거운 에어컨 부품을 들고서 낑낑거리며 사다리를 올라갔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육체적 능력은 퇴보한 느낌이야.’
진혁은 짧게 평가했다. 교주전을 지을 때 많은 수의 무인들이 동원되었다. 일월신교의 모든 교도는 종교인이자 무인이다. 삼류 무인이라도 사다리 따위는 필요 없이 경공과 신법을 이용해 한 번에 뛰어올라 기왓장을 갈 수 있고, 천 개의 벽돌을 지게질 한 번으로 옮겨 나를 수 있다.
‘하지만 환경은 오히려 나아졌지.’
당장 저 인부가 설치하고 있는 에어컨만 봐도 그렇다. 음한지기를 일으킨다고 해도 그때뿐, 냉기공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교주전 전체를 시원하게 할 방도는 없었다. 잘못해서 얼려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개개인의 무공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 환경이 나아졌다. 에어컨을 사고 전기세를 낼 수 있다면 누구나 여름철 내내 시원함을 누릴 수 있다. 왕이나 황제라고 해도 시녀가 옆에서 커다란 부채를 부쳐 주게 하는 정도가 고작인 것과 비교하면 놀랄 정도의 발전이다.
-위이이이이이잉.
저 인부가 손에 들고 있는 전동 드라이버도 그렇다. 무학을 전혀 익히지 않은 노인이라도 저 드라이버를 손에 잡으면 얼마든지 깊은 구멍을 팔 수 있다.
‘이곳과 그곳은 정말로 달라.’
진혁의 귀에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있던 인부 위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죠?”
“저 전동 드라이버 돌아가는 소리?”
일반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진혁의 시선이 인부 위에 있는 천장을 향했다. 천안투마공을 발동할 것도 없이, 전체적으로 천장에 실금이 가 있는 것이 보였다. 인부가 전동 드라이버를 돌릴 때마다 저쪽 너머에서 우르릉, 우르릉 소리가 났다. 실금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우르릉 소리가 빠각, 하는 소리로 바뀌었다. 진혁은 주변에 있는 인간의 위치를 살폈다.
문 옆에서 이제 막 자재를 내려놓고 다시 문밖으로 나가려는 인부가 셋.
옆에 서 있는 백정흠 사장.
사다리 위의 한 명.
“……!”
그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소리 내 경고할 필요도 없다. 그는 백정흠 사장을 껴안듯이 가까이로 끌어당겼다가 문밖으로 밀어냈다. 문 근처에 있던 인부 세 명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사다리 위에서 전동 드라이버를 계속해서 돌리고 있는 인부 한 명뿐이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1초가 채 되지 않는다.
진혁은 뛰어올라 인부의 등 뒤에 서서 전동 드라이버를 뺏어 내던졌다. 인간의 손에서 놓여난 드라이버는 전동을 멈추었고, 진혁은 비호같이 문밖으로 몸을 뺐다.
백정흠 사장은 순간적으로 누군가 강하게 잡아 끌어당겼다가 내던지는 느낌에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사다리 위에 서 있던 인부는 순간적으로 손에 잡고 있었던 무게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빨리 모든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문가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백정흠 사장이 뭐라고 욕설을 내뱉기 전에 그 일이 먼저 일어났다.
-쿠콰콰쾅!
조금 전까지 그들이 서 있던 곳 위의 천장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콘크리트가 부서지며 추락해 바닥에 있던 자재들을 찢어발긴다.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라 눈 앞을 가렸다. 뒤늦게 작은 콘크리트 조각이 후두두 떨어졌다.
“켁, 켁켁!”
인부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치며 현장에서 멀어지려 했다. 진혁은 백정흠 사장을 부축해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으으…… 으, 바, 방금. 자네였나?”
“뭐가요?”
백정흠 사장이 입술을 떨었다.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히고 콧물과 눈물이 흐른다. 그는 소매로 코를 닦고서 눈을 깜빡거렸다. 다리가 파들파들 떨리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진혁이 다시 한 번 붙잡아 주고서야 무사히 일어날 수 있었다.
“안에서 나를 밀쳐낸 사람 말일세.”
진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예.”
백정흠 사장은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만일 그가 여기서 천장에 깔려 죽었다면 회사는 이대로 공중 분해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남편을, 소중한 딸과 아들을 아버지를 잃었으리라. 그리고 신경 쓰이는 조카 진영이도 갈 데 없이 나앉게 되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회사도 키울 만큼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남겨둔 미련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고맙네, 고마워!”
백정흠 사장이 두 손을 모아 진혁의 양손을 움켜쥐었다. 아직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조금 전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이 은혜는 내가 어떻게든 갚겠네.”
진혁은 담담하게 백정흠 사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감사하기에는 너무 쉬운 일인데.’
전쟁터 한복판에서 날아오는 화살보다도 느리다. 화경의 고수가 뿜어내는 검강과 멀리서 날아오는, 강기를 실은 표창과는 비교할 수 없이 느리다. 삼각 김밥의 비닐을 벗기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저기 건물이 무너졌어!”
“119 불러, 119!”
“안에 사람 없습니까?!”
뒤늦게 사이렌을 울리며 119가 나타났다. 백정흠 사장과 인부들 모두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을 향했다. 진혁은 거절했지만, 백정흠 사장이 강권해서 구급차에 탔다.
“자네도 무슨 후유증이 있을지 몰라. 생명의 은인인데 두고 볼 수는 없지. 자네도 같이 가는 거야.”
인근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흉부 방사선 검사와 소변검사 등 일상적인 검사와 문진이 진행되었다. 혈액검사를 위해 진혁에게서 채혈을 하려고 하면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왜 바늘이 안 들어가지?”
18게이지 바늘을 삽입하려고 하던 간호사가 곤란해 했다.
“기분 탓이시겠죠. 다시 하시면 됩니다.”
진혁이 호신강기를 거두었다. 간호사는 다시 지혈대로 진혁의 팔을 누르고, 바늘을 가져다 댔다.
‘진희 생각이 나네.’
아직 앳되어 보이는 간호사는 꽤 미인이었다. 그녀가 링거 줄을 연결하려 하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링거는 사양하겠습니다.”
“만일의 경우에 수혈을 하거나 할 수도 있어서요.”
간호사가 곤란해 했다. 진혁이 다시 말했다.
‘외부 물질을 몸 안에 들이고 싶지는 않아.’
“그럼 그때 맞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쓰리웨이만 달아놓고 갈게요.”
‘쓰리웨이가 뭐지?’
링거를 언제든지 연결할 수 있는 조그만 플라스틱 어댑터다. 바늘과 어댑터가 팔뚝에 박혀 있으니 이물감이 신경 쓰였다. 간호사가 혈액검체를 가지고 사라졌다.
-우우우우우웅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전화부터 받고요.”
“공사 현장에 사고가 났다고 들었다. 괜찮은 거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화 너머로 도착을 알리는 기차역의 발신음도 들렸다.
“예. 그런데 지금 어디세요?”
“나하고 니 어미가 지금 올라가고 있다.“
“안 오셔도 괜찮은데요.”
“괜찮기는 퍽이 괜찮아! 당장 갈 테니까 거기서 가만히 기다려.”
“임진혁 쉐프님! 괜찮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