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6화 (66/656)

제 066화

아까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아버지 곁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진혁은 대답을 주저했다.

“화웅 베이커리 앤 카페의 사장은 알지? 저번에 봤던 백진영이, 내 조카야. 지금은 빵을 받아서 팔고 있으니 바리스타인 그 녀석하고 아르바이트 한 명이 하고 있지. 하지만 오븐을 추가하고 1층의 사무실을 터서 카페를 더 넓게 개조할 계획이네. 원래는 그린 워터 샌드위치도 들여서 메뉴를 추가할까 했는데, 자네가 할 수 있다니 더 바랄 게 없지. 그쪽하고도 이야기를 해서 메뉴를 같이 다루었으면 좋겠어.”

백정흠이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주게. 공사는 다음 달에는 끝나니까 그때쯤에는 와 줬으면 좋겠구만.”

그는 이미 진혁이 승낙할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고 답변드리겠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래! 소영아, 이리 와서 인사 좀 해라.”

“안녕하십니까. 인사부에서 과장을 맡고 있는 백소영입니다.”

“전부터 말했던 의조카야. 아주 착실한 청년이지.”

“아버지께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백정흠 사장을 별로 닮지 않은 딸은 꽤 미인이었다. 스튜어디스처럼 방긋 웃으며 진혁에게 물었다.

“아주 유능하시다고 들었어요. 빨리 한 식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충분히 생각해 보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결정이니까요.”

“오?”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부르는 연봉 1억!

5성급 호텔의 20년 차 헤드 쉐프가 받을 금액이다. 인사부에서는 일개 쉐프에게 너무 큰 금액을 준다고 깎으려고 했으나, 백정흠 사장이 고집을 부려 그 금액으로 정했다. 당연히 바로 받아들일 줄 알았던 백소영 과장이 눈썹을 약간 치켜들었다.

‘보통 신입은 아니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얕보이지는 않고.’

백소영은 임진혁에 대한 평가를 약간 조정했다.

“언제까지 대답을 줄 텐가?”

“일주일 안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백정흠 사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꼭 연락 달라고!”

18장

6일은 금방 지나갔다.

‘내일은 백정흠 사장에게 대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진혁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가게 문을 닫기 전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들을 수 없는 주방 안쪽에서 아버지가 넌지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봉아. 진혁이가 다른 데로 가면 일하는 건 어떻겠냐.”

“사장 형이 다른 데로 간다고요?”

“우리 매출의 70% 이상이 화웅으로 가는 빵에서 나오는 건 알지?”

“그렇죠. 솔직히 형이 다 만들지만.”

“지금 매일같이 빵을 실어 나르는 비용보다, 진혁이를 아예 데리고 오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더라고. 웬만한 특급 호텔보다 더한 대우야.”

아버지가 자기 일처럼 신이 나서 말했다. 그는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놈들 중에서 쟤 나이에 저만한 대우를 받는 애는 아무도 없어. 내 아들이지만 큰 사람이 될 놈이야.”

“형은 진짜 천재예요.”

일봉이 맞장구쳤다.

“진짜 대단한 건 그러면서도 성실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거예요. 제가 미리 와서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새벽같이 와서 준비 다 해놓고 그래요.”

“아직도 그러냐?”

아버지가 조금 놀란 것처럼 말했다. 일봉이 심각하게 말했다.

“그런데 형이 준비한 빵하고 제가 준비한 빵하고 맛이 달라요.”

“……그건 나도 고민이다.”

아버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반죽한 것과 진혁이 녀석이 반죽한 것도 맛이 달라. 맛 자체는 비슷한데 진혁이 것이 훨씬 맛있지.”

“큰 사장님!”

알고는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사실을 임운정이 담담하게 입에 올렸다.

“사실인데 어쩌냐. 진혁이 빵은 맛있을 뿐만 아니라 기운도 나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계신데도 진혁이 형을 강남으로 보내시려는 거예요?”

“그래. 명색이 아빈데, 내가 그놈 발목을 잡을 수는 없지 않겠냐?”

“……큰 사장님, 제가 형 몫만큼 열심히 할게요.”

“그놈 몫을 하려면 네가 열 명이 있어도 모자라겠다.”

“큰 사장님!!”

“하하하하!”

진혁은 쓰레기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저런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아버지는 당연히 진혁이 제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작 진혁이 하고 있던 고민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떠나면 우리 가게의 빵 맛 자체가 바뀌어 버려. 아버지와 일봉은 눈치채지 못한 줄 아니었는데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보내 주시려고 하셨다. 진혁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떠나버릴 수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가 빵을 반죽하고 구울 때와 아버지, 일봉이 빵을 만들 때 다른 점은…….’

진혁의 몸에는 항상 진기가 흐르고 있다. 암천심법에 따라서 전신을 순환하는 진기는 손끝을 통해 미세하게 빵 반죽에도 흘러들어 간다.

‘아버지가 만드는 빵의 완성도 자체는 이제 내가 만드는 빵을 거의 따라잡았어. 진기를 제외하면…….’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무공을 가르칠 수도 없다.

‘빵 만드는 비법입니다, 하고 알려드린다면 좋겠지만.’

장법을 응용하여 손바닥에서 진기를 흘리는 방법 따위를 가르칠 수도 없을뿐더러, 가르친다고 해도 아버지가 그 장법을 응용해서 빵을 반죽하기는커녕 조리대를 부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진혁은 엄지손가락을 딱 튕겼다. 좋은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람을 바꿀 수 없으면 환경을 바꿔야지.’

딸그랑, 딸그랑!

진혁이 도로 들어오자 일봉과 아버지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

“음?”

“오늘은 제가 남아서 생각도 정리할 겸, 두 분이 먼저 들어가시죠.”

“정리는 돕고 갈게요!”

일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일봉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니다, 우리는 먼저 돌아가자꾸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걸 가지고, 뭘.”

일봉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아, 형! 또 반죽이랑 다 혼자 하려고.”

“원래 생각 정리는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게 제일 좋아.”

“그럼 잘 부탁한다, 진혁아!”

두 사람을 배웅하고 진혁은 주방으로 돌아왔다. 일봉이 집으로 돌아가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이 사장답게 좀 거만해지기도 해야지, 맨날 일을 다 하니까 내가 너무 미안한데…….”

뒷말이라고 하면 뒷말이다. 진혁은 피식 웃으며 조리대 위를 닦아냈다. 반들거리는 스테인리스 조리대에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추었다.

“조리대와 냉장고, 그리고 오븐. 모든 빵들이 반드시 닿아야만 하는 곳이 또…….”

이전에 어머니의 붉은 양가죽 구두에 담았던 것과는 다른 술법이다. 이곳에는 피를 담을 가죽이 없으므로, 주문(呪文)의 문자 자체에 힘을 실어 새길 계획이다.

그는 조리대의 안쪽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을 곳, 그리고 냉장고의 뒤편, 오븐 두 개의 안쪽에 손가락을 튕겼다. 순식간에 세밀하고 정교한 한문이, 시력 2.0인 자가 들여다봐도 읽을 수 없을 만치 깨알만 한 크기로 그려졌다.

‘주문은 이 정도로 됐고.’

천장과 바닥에 다시 주문을 새겼다. 금수화목토의 성질을 이용한 오행진이기 때문에 다섯 개의 진이 필요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만들지 않아도 돼. 여기서 만들어지는 빵 전체에 대자연의 기운을 미세하게나마 담게 되지.’

원래 이 오행진은 천마신교의 교주가 될 소교주가 내공을 이른 시일 내에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진혁 역시도 교주가 되면서 전대 교주에게 이 진법을 그리는 기술을 배웠다. 일월신교만이 갖고 있는 내공수련을 획기적으로 돕는 놀라운 기술 중 하나다.

‘이걸 제빵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진혁은 일부러 양손에서 계속 흐르고 있는 진기를 억누르고서 빵을 반죽하기 시작했다.

‘내일 빵 맛을 테스트해보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겠어.’

만일 이 진법이 그가 생각했던 대로의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는 미련없이 화웅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금은보화 따위는 충분히 가져 봤으니까.’

◈          ◈          ◈

“오늘 모닝빵은 유난히 더 부드럽고 좋은데?”

반죽부터 아버지가 직접 해서 구워낸 빵이다. 일봉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발효도 아주 잘 됐고, 뭔가 다른 것 같아요.”

“뭐가 다른데?”

“빵이 더 살아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진짜 맛있어요. 이거 안쪽에 폭신하게 부풀어 오른 것 좀 봐요. 기포도 더 많고, 부풀어 오른 것도 모양 예쁘고.”

일봉이 얼굴에 화색을 띠고 말했다.

“이번에 제가 구운 소보루빵도 잘 됐어요. 맛 좀 봐 주세요.”

“어디 보자.”

아버지가 일봉이 구운 소보루빵을 살폈다.

“위에 올라와 있는 소보루도 적당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것도 좋고, 어디 반 잘라 보자.”

“자르지 말고 먼저 드셔 보시기부터 하세요! 제가 먹어봤다니까요.”

“오, 맛있는데?”

“그쵸? 진혁이 형이 만든 것하고 비슷하죠?”

“그래, 많이 좋아졌다. 네가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전에 형이 데코레이션 페어 갔을 때, 혼자서 이틀 동안 내내 구우니까 확실히 감이 좀 잡히더라고요. 혼자 하면서 머릿속으로 정리도 되고 좋았어요.”

아버지가 부드러운 눈으로 일봉을 바라보았다.

“그래, 잘한다.”

‘오행진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군.’

진혁 역시 흐뭇한 눈으로 일봉을 보았다. 그가 어제 새겨둔 진에 따라서 자연지기가 주방 전체에 흐르고 있다. 오늘 구워낸 빵도, 내일 구워낼 빵도 모두 최상의 맛을 발휘할 것이다.

‘내가 직접 구운 것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훨씬 나아졌어.’

“오늘 오후에 의동생 녀석이 온다던데.”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너하고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던데 결정은 내렸냐?”

“예.”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집 앞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 그럼!”

백정흠 사장이 큰소리를 탕탕 쳤다.

“직원 기숙사를 따로 제공하십니까? 아시다시피 새벽 일찍부터 빵을 구워야 하는데요.”

백정흠 사장이 멈칫했다.

“음…….”

백진영이 손뼉을 쳤다.

“이번에 강남역에 제가 투자한 오피스텔이 있는데 마침 임대하려고 내놓은 참입니다. 거기서 사시면 어떨까요?”

백정흠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이 네가 사는 그 건물 말이지? 혼자 사는 게 신경 쓰였는데, 괜찮겠구나. 그럼 보증금과 월세는 내가 내주지.”

“인센티브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게 돌아오는 인센티브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20%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건 곤란합니다.”

“이 녀석 봐라?! 연봉 1억에 20% 인센티브를 거절한다고?”

“예.”

동요 없이 간단하게 대답하는 진혁을 보며 백정흠 사장이 생각에 잠겼다.

“50%로 해주시죠.”

“인사부하고 의논해 보지.”

진혁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회갑연에서 그린 워터 농장에서 샌드위치 주문하셨죠?”

“그래, 거기 빵이 괜찮다고 추천받아서 내놨지. 자네가 만들었다며?”

백정흠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도 아주 좋았어.”

“국산 우리꼬맹이밀로 만든 통밀빵으로, 달걀과 우유 없이 만들어 건강에도 좋지요. 건강에 제일 좋고 맛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그린워터 농장과 협업해 개발과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했습니다.”

“메뉴 개발 능력까지 그렇게 뛰어났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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