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64화
안득선 회장이 오븐 모양의 3단 케이크를 보면서 말했다.
“다시 봐도 훌륭해. 섬세한 디테일 하며…… 맛은 안 보여줄 텐가?”
백정흠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한테는 말씀드려야겠네요. 진짜는 디테일이 더 살아 있습니다.”
“뭐야, 그럼 저건?”
“3D 프린터로 만든 모형이요. 제가 가게에 갖다 놓으려고 만들어 뒀죠.”
“뭐? 진짜 케이크가 아니었어? 엥이, 그럼 소용없어. 실물은 이보다 못하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안 회장에게 백정흠 사장이 찡긋, 눈짓을 했다.
“지금 나올 겁니다.”
잠시 조명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휘황찬란한 조명이 반짝이면서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사회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자, 여태까지 여러분이 오늘 먹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케이크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실물 케이크 공개가 있겠습니다-!”
백진영과 김가영이 함께 케이크를 밀면서 들어왔다.
“백정흠 사장님의 환갑을 축하드리며, 다 같이 노래를 불러볼까요?”
멀리서부터 향긋한 단내가 풍겨온다. 데빌스 푸드 케이크에서 풍겨 나오는 초콜릿의 짙은 내음을 맡고서 안득선 회장이 코를 벌름거렸다.
“그래, 이거야. 이게 바로 진짜 케이크지.”
“여러분! 백정흠 사장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아드님인 백지환 부장님과 따님 백소영 팀장님이 함께 듀엣송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안 회장이 중얼거렸다.
“노래 꼭 불러야 하나? 바로 케이크부터 먹으면 안 되나?”
그 이야기를 들은 김가영이 백진영에게 속삭였다.
“저도 사실 이 케이크를 먹는 게 너무 설레서 잠이 안 오더라구요. 하지만 사장님, 저는 제가 여기 손님으로 초대된 줄 알았어요…….”
“음, 나도 그런 줄 알았어. 알바비에 인센티브 따로 챙겨줄게.”
백진영이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에요. 제가 이런 데 손님으로 와서 뭘 해요.”
김가영이 킥킥 웃었다.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은 대개 기업가나 제과제빵계의 인사, 빵집 경영자, 페이스트리 쉐프들이었다. 조금 허름하게 입었다 싶으면 제과제빵 관련 학과의 교수다. 나이 든 사람들이 부부 동반으로 참여하는 소규모 파티다.
“그야 그렇지. 나도 네가 와서 기뻐.”
“네?”
“작년에는 나 혼자 일했거든. 올해는 좀 낫다.”
“가족들이잖아요. 농담하시기는.”
백진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삼촌이 귀여워해 주시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다른 모든 사람이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김가영도 알 것이다.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가 박수를 쳤다. 활짝 웃으며 사회자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리고 오늘의 깜짝 손님! 지난 데코레이션 대회 수상자인 임진혁 씨입니다!”
와아아아아-!!
김가영이 넋을 잃고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 환갑연의 주인공처럼 등장한 임진혁의 옆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고, 백정흠 사장이 성큼 올라갔다.
“이번에 데코레이션 대회에서 수상해서 오븐을 선물 받은 임진혁입니다. 저에게는 의형님의 아들로, 의조카가 되죠.”
백정흠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 케이크는 임진혁 파티셰가 특별히 만들어 준 겁니다.”
아래쪽 테이블에서 백진영이 이마를 짚었다.
‘삼촌……. 비밀로 하신다더니. 자랑하고 싶으셨구나.’
“심지어 돈도 안 받았어요!”
진혁은 눈을 깜빡이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군중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례비 봉투를 따로 주셨으니까 안 받은 건 아니지만……. 정말로 알기 쉬운 사람들이군.’
고작 데코레이션 대회 수상자 따위가 여기서 뭘 하는 거야? 하는 의문.
그리고 경악.
“저 젊은 나이에 이 사람이 저 케이크를 만들었다고?”
“저 임진혁이라는 사람이, 케이크를 만든 사람이라고?”
‘비밀로 한다더니, 깜짝 발표를 할 생각이었나 보군.’
어쨌거나 의뢰는 화웅 베이커리를 통해서만 받기로 했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까 받은 봉투는 아직 금액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으나 꽤나 두툼했다. 곧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의 역사에 대해서 백정흠 사장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진혁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구려 호텔의 황 쉐프가 진혁에게 아는 척을 했다.
“네가 그 소문이 자자한 내 친구 아들이구나.”
“예?”
“빵 잘 만들고, 성실하고, 잘생겼고, 거기에 효심까지. 부러울 게 없다는 아들 말이다. 하하하!”
‘내 친구 아들……, 농담이라고 하신 건가.’
진혁이 어설프게 웃었다.
“군대 가기 전에는 고구려 호텔 인턴십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없다면서?”
“아버지 가게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아서요. 들어오는 빵 주문도 아버지와 어머니, 직원 셋이서 하기에는 벅차고요.”
“봐, 이렇게 나부터 먼저 생각한다니까.”
아버지가 하하 웃었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아버지에게 인사를 해 왔다.
“운정이 왔어?”
“만석이!”
이전에 데코레이션 페어에 나갈 때 진혁을 잠시 가르쳐 주기도 했던 꺽다리, 김만석 교수다.
‘그때 그 키 크고 빼빼 마른 아저씨.’
“황 쉐프, 진혁이는 우리 학교에 복학부터 해야 돼. 조금만 더 하면 학위가 나오는데 아깝잖아.”
“우리 분야에서 학위가 뭐 그리 중요해? 실제 경험과 실력, 그리고 센스가 중요하지! 하루라도 빨리 경력부터 쌓는 게 나아.”
“입사하면 고졸과 전문대졸, 대졸 급여 차이가 한 호봉이 나는데도 어디서 경력부터 쌓으라고 해? 그놈의 경력 쌓는 동안에 얘가 받는 손해는? 앞날이 창창한 애를 앞길부터 막으려고 하지 말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을 먼저 마시고 있군.’
진혁은 흥미롭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물었다.
“어떠냐?”
“예?”
“내 친구들이 다들 네가 욕심이 나는 모양이야.”
아버지가 테이블로 향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가 테이블에 앉았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연어 샐러드는 맛이 괜찮았다.
집과 가게만 오가고 있노라니 연어를 먹을 일은 없다. 진혁은 생각했다.
‘냉동 샌드위치에 연어를 추가해도 괜찮으려나?’
나중에 돌아가면 그린 워터 농장주 민병철에게 연어를 양식하는 곳도 가맹되어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진혁은 머릿속 메모장에 체크해두고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일봉이에게만 가게를 맡겨 놓고 오니까 걱정이 되는구나.”
말은 걱정된다고 하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진혁이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맛있는 걸 드시니까 좋으시죠?”
양파와 찌그러진 완두콩을 올려서, 주황색 부드러운 살결을 잘라 입안에 넣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좋긴 좋구나. 맛있어서 좋은 게 아니고, 네가 잘 돼서 좋아.”
곧이어 나온 메뉴는 미디움 웰던으로 구워진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였다. 진혁은 나이프를 사용해 바비큐 소스가 올려진 고기를 가볍게 썰어 아버지 접시 위에 놓아드렸다. 보이지도 않는 손짓에 아버지가 눈을 휘며 웃었다.
“이거, 내가 잘라주려고 했는데. 칼솜씨가 좋구나. 네 덕분에 아비가 호강하네.”
“제가 뭘 했나요. 삼십 년간 한 오븐을 써오신 아버지 덕분이죠.”
여기에 초대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초대하면서 진혁이 덤으로 따라온 것이라고 진혁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야, 생각해 봐.”
아버지가 연회장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지금 실습 교수 직함을 달고 있긴 하지만, 지금 여기 와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하고 비슷한 사람은 없어. 여기 와 있는 빵집 주인은 어디 제과제빵 가게의 주인 정도가 아니라, 프랜차이즈를 경영하는 사람들이지. 황철우 놈은 고구려 호텔의 페이스트리 키친 헤드 쉐프고, 저기 있는 김만석이, 저놈도 제과제빵 학과의 교수가 아니고 학과장이야.”
“…….”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번에 여기 베이커리 매출 규모를 얼핏 들었는데, 이전보다 열 배 이상 늘었다고 하더구나. 전부 네 덕분이라고 아주 고마워하고 있어.”
“예.”
스테이크 다음에 나온 메뉴는 미니 치킨 샌드위치였다. 너무나 낯익은 모양을 보고 진혁과 아버지, 둘 다 깜짝 놀랐다.
“이건 오늘 아침에 만들어 그린 워터 농장에 넘긴 샌드위치 아니냐? 병철이가 특별 주문받아왔다던 그 샌드위치 아니냐?”
“예. 여기 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여기서 하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싸게 넘길 걸 그랬네.”
“하하.”
아버지가 진혁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는 이런 데서 가게를 하고 싶지는 않냐.”
진혁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는요?”
“나는 조용한 곳에서 더불어 사는 게 좋다. 그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으니까. 하지만 너는 아니지.”
“그거는 차차 같이 생각해 보죠.”
“너도 20대 중반이야. 지금처럼 성실하게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지. 하지만…….”
아버지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해. 네가 평생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아버지를 도와서 빵을 만드는…….”
“야이, 이놈아!”
아버지가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 이 이야기 나오면 자꾸 내 얘기만 하는데. 그럼 내가 없으면?”
“아버지!”
진혁이 정색했다.
“아직 오십 대인데 벌써 그런 소리를 하세요.”
“내가 당장 죽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니.”
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나를 중심으로 네 세계를 설계하지 말아라.”
“……!”
진혁이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너는 지금 꼭 소년 소녀 가장같이 굴고 있어. 뭐든지 책임지려고 하고, 혼자 하려고 하지.”
웨이터가 서빙한 연어 필렛을 나이프로 썰면서 아버지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네 가족은 네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니야. 네 엄마도 건강하고, 진희도 멀쩡히 일 잘하고 있고, 나도 실습 교수 일을 시작해서 이제 궤도에 올라갔지.”
“전부터 실습 교수 제안은 있어 왔지만 내가 충분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몇 번인가 개발했던 신종 빵이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도 한몫했지.”
아버지는 썰어놓은 연어 필렛을 조심스레 진혁의 접시에 챙겨주셨다.
“가족은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네 장래를 생각해 봐라.”
아버지가 저쪽에서 아직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황철우 쉐프와 김만석 교수를 턱으로 가리켰다.
“학교에 복학하는 것도 가능하고.”
“지금 너무 바쁜데요.”
“너희 어머니 와서 일하면 좀 나아질 거야. 너도 학교 갔다 와서 일을 도우면 되고.”
진혁은 침묵했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이다. 그저 아버지의 곁에서 계속해서 일을 도우리라 생각했다.
“저 멍청이들은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버지가 킥킥 웃었다.
“향인대 마지막 학기는 취업계를 내서 실습을 할 수 있으니까.”
“아……!”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 다니면서 가게를 도울 수도 있겠군요.”
“학교에 다니면서 고구려 호텔에 인턴십을 갈 수도 있지.”
학교도 호텔 인턴십도 전부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네가 평생을 다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