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63화
“약품 검출 결과는 나왔어요. 아무 문제 없다고 해요.”
“당연하죠! 달걀도 저희 농장에서 아침에 낳은 신선한 달걀을 바로바로 받아서 쓰는데요. 우리 사장 형이 재료에 얼마나 신경 쓰는 사람인데, 문제가 있을 리가 없죠.”
“저희 과장님이 나중에 찾아오실 거긴 한데, 시에서 하는 다른 경기에도 정식으로 스틱 카스텔라를 후원할 수 있는지 제안하실 거예요.”
“……!”
“저희에게 돈을 받고 파는 방법과 돈을 받지 않고 주시는 방법이 있는데, 세금 혜택이 있으니 후자가 더 나으실 수도 있어요.”
일봉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주방에서 나온 진혁이 거기에 서 있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하도록 하지요.”
“저는 서미란이에요.”
“임진혁입니다.”
명함을 교환하고 악수를 한 다음, 서미란은 다시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문이 닫힌 다음 일봉이 중얼거렸다.
“미인이네요…….”
“음? 저 정도가?”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루에서 정보를 관장하던 소요란 홍희라면 모를까, 저 정도 외모는 그저 평범한 정도가 아닐까?
“……사장 형은 눈이 너무 높아서 결혼하기 힘들겠어요. 음, 하긴 형님 옆에 서려면 저 정도로도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소리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새로 만드신다던 건 잘 되세요? 큰 사장님 오시기 전에 끝나나요?”
“이미 끝나서 나왔어.”
“보여 주세요!”
반사작용으로 일봉의 입안에 침이 고였다. 분명히 맛있는 것이리란 기대가 뭉글뭉글 솟아올랐다. 진혁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3단 케이크를 보여 주었다.
“굉장히 작은데요? 이거 제가 맛봐도 되나요?”
진혁은 이제까지 비교적 미각에 예민한 편인 일봉에게 다양한 시식을 부탁했다. 특히 아버지가 향인대 실습 교수로 간간이 특강을 맡게 된 이번 학기에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야.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라고요? 그럼 설마?”
“단호박과 닭고기를 부드럽게 구워서 만든 생일 케이크야. 반려동물 용이지.”
“헐.”
일봉이 입을 조금 벌렸다.
“이제 반려동물 음식까지 시장을 넓히시는 거예요? 역시 사장 형은 시야가 달라.”
“동물병원 갔을 때 단골손님이 부탁한 거야.”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아쉬워하며 말하는 일봉을 보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소금하고 설탕은 전혀 안 들어가. 베이컨하고 올리브유, 홈메이드 요거트와 크림치즈, 단호박과 너희 농장의 닭고기가 들어가지.”
“오오! 우리 농장! 닭고기 신메뉴!”
일봉이 기뻐하며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거 정식 메뉴로 올리실 생각도 있어요?”
진혁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너랑 아버지가 배우는 방법 익히면.”
“아!”
“레시피 붙여 놓을 테니까 보고 만들어 봐. 이상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감싸합니다, 사장 형!!”
나름 가르칠 맛이 난다.
‘아버지가 이런 점을 보고 얘를 귀여워했구나.’
진혁이 피식피식 웃으며 오븐 트레이를 꺼냈다.
“인간용 음식도 따로 추가해 봤어. 스틱 카스텔라에 초콜릿 맛, 검은깨, 파인애플 맛 세 종류를 해 봤는데. 시식 좀 해 봐라.”
“저야 영광이죠!”
일봉이 환하게 웃으며 트레이를 받아들었다.
“닭고기 스틱 카스텔라도 만드실 계획이 있으세요?”
“왜, 닭이 잘 안 팔려?”
“그건 아니고요, 치킨 파이가 너무 환상적이어서. 저희 어머니가 한번 물어봐 달라고 하셨어요. 닭고기 좋아하거든요. 농담 삼아 하시는 말씀이 옛날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꿈이 양계장 하는 신랑한테 시집가는 것이었대요.”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일단 운동선수용이니까 완전히 갈아 넣어야 해서. 너희 집 닭의 포인트는 그 씹힘맛이라서, 괜히 그 장점을 없애는 꼴이 되지 않나 싶다.”
일봉의 시선은 이미 카스텔라에 가 있었다. 눈앞에 놓인 카스텔라는 갓 구워진 빵 특유의 향긋한 단내가 솔솔 풍겼다. 일봉이 침을 꿀꺽 삼켰다.
“검은깨는 색깔이 좀 쿠앤크 같네요. 흰색에 검은색이 듬성듬성 섞여 있으니까요.”
“보기에 제일 이뻐 보이는 건 역시 파인애플이지?”
“덩어리로 파인애플이 들어있으니까 좀 더 고급스러워 보여요. 그런데 그럼 이건 경기용은 아니겠네요.”
“응, 경기용은 그냥 카스텔라와 초콜릿 카스텔라만. 한입에 집어넣었을 때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 음식이 좋다고 하더라고. 달리다가 혀라도 씹으면 안 되니까.”
“그렇겠네요.”
일봉이 제일 먼저 손에 집은 것은 검은깨 카스텔라였다. 작은 깨알들이 비단결처럼 보드라운 카스텔라와 함께 이 사이에 씹혀 특이한 식감을 냈다.
“이거 괜찮은데요?”
엄지손톱만 한 카스텔라를 씹어 먹은 일봉에게 진혁이 우유를 한 잔 내밀었다.
“이거 먹고 다음 거 먹어봐라.”
“넵.”
두 번째는 파인애플 카스텔라다.
“흡.”
일봉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새끼손톱만 한 파인애플들이 덩어리로 씹히며, 카스텔라의 스폰지 시트와 함께 목구멍까지 스르르 넘어간다. 입안에 남는 진한 단맛에 일봉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이건 그냥 파인애플이 아니고, 설탕에 졸인 파인애플이군요?”
“맞아. 단맛이 조금 더 있으면 어떨까 해서 바꿔 봤지.”
“그럼 초콜릿은…….”
“아예 반죽 단계에서부터 초콜릿을 섞었어. 참고로 그냥 초콜릿이 아니고, 카카오 함유 85%의 다크초콜릿이다.”
“우와…….”
일봉은 다시 우유를 한 잔 더 마셨다.
“이 단맛하고 우유하고 잘 어울려요. 두 개를 같이 내놓으면 딱 좋겠는데.”
“그것도 고려해 보지. 우리도 목장 우유를 받고 있으니까, 아예 유리병에 담아서 함께 팔면 어떨까?”
“그것도 괜찮겠어요.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저희 둘에 큰 사장님으로도 주문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일을 새로 늘리기가 어렵지 않아요?”
“새벽에 조금 더 일찍 나와서 내가 하면 되지.”
“안돼요, 안돼요. 지금도 형이 일을 너무 많이 해요.”
“별로 안 많은데?”
“그러다 진짜 죽어요. 과로사한다고요.”
“알았다, 알았어.”
마지막으로 남은, 카카오 카스텔라 스틱!
진하고 다디단 향기를 풍기는 스틱을 반으로 잘라, 일봉이 입안에 넣었다.
“우와……!”
마치 초콜릿 브라우니처럼 짙은 초콜릿 맛이 나지만 푹신한 빵의 질감 탓에 그 단맛은 무겁지 않고 폭신폭신하다. 잇몸과 이 사이까지 침투하는 듯한 달콤한 단맛 뒤에는 커피처럼 산뜻한 씁쓸함이 잠시 감돌고, 그리고 다시 단맛이 풍긴다.
“이거, 이건…….”
“그게 제일 괜찮지?”
“네! 이게 너무 맛있어요.”
“그럼 카카오하고 오리지널만 만들까?”
“형, 그건 아니죠.”
일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검은깨랑 파인애플도 팔릴 거예요. 다 만듭시다. 제가 오늘 남아서 같이 만들고 갈게요.”
진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 그냥 가라니까.”
일봉이 조리대를 정리하며 외쳤다.
“야근 수당 안 주셔도 되니까 돕게 해주세요! 저도 같이 만들겠습니다!”
진혁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라, 그래.”
일봉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도와주겠다는데도 나를 생각해서 먼저 돌아가라고 하다니……. 역시 작은 사장 형은 대인배야. 오늘은 꼭 형 일을 돕고 말겠어.’
“노동법을 어길 생각은 없으니까, 야근 일지는 따로 적어 두고.”
“옙!”
‘나도 형처럼 노력해서 멋진 파티셰가 되어야지.’
일봉은 굳게 결심했다. 진혁의 마음속 생각을 알았더라면 달라질지도 모르는 결심을.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 도와주고 싶어 하니 거절하기가 어렵군. 차라리 광안마처럼 계산하고 덤비는 녀석이면 한 대 때려주고 집에 가라고 할 텐데 말이지.’
◈ ◈ ◈
화웅 베이커리 앤 카페의 사장, 백진영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날씨도 좋고 손님도 많고, 빵도 다 팔렸는데도 그렇다.
“수준이 안 맞아.”
근방의 빵 가게에서 사 온 샌드위치 서른여섯 종을 한 입씩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직 적당한 샌드위치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도, 이것도. 지금 우리 카페에서 나오는 정도의 빵이 아니야.”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밀고 밀며 김가영이 활기차게 말했다.
“그 비밀스러운 쉐프님은 샌드위치는 안 만드시나요?”
“갑자기 이렇게 촉박한 일정에 부탁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더라고.”
“그건 그렇네요. 좀 미리 부탁했으면 모를까.”
“3단 오븐 케이크같이 화려한 것도 부탁했으면서, 그때 같이 얘기하셨으면 될걸.”
“꼭 그 수준의 샌드위치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김가영이 바닥을 박박 닦으며 물었다.
“그 수준의 빵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저 그렇게 살살 녹는 빵은 먹어보지를 못했거든요.”
“사실은, 삼촌이 그 비밀스러운 쉐프님을 놀라게 할만한 샌드위치를 찾고 있다고.”
백진영이 이마를 짚었다.
“아니, 그럼 삼촌 본인이 직접 찾든가.”
“지금 저한테 정흠 사장님 욕하시는 건가요?”
가영이 킥킥 웃었다.
“사장님! 그린 워터 샌드위치라고 아세요?”
“이름은 들어 봤는데.”
“요즘 거기가 평이 아주 좋아요. 온라인으로 파는 유기농 샌드위치인데 맛도 좋고 냉동 같지 않대요.”
“회갑연 손님들에게 냉동 샌드위치를 대접할 수는 없는데?”
“다른 냉동 음식하고는 맛의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그리고 대량 주문을 해서 신선한 걸 받아와서 내놓으면 되잖아요.”
“그걸 알아봐야겠군. 임 쉐프님 입맛에 맞을 만큼 괜찮은 샌드위치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진짜 맛있어요. 아마 만족하실 거예요.”
17장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의 사장, 백정흠의 회갑연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화제에 오른 것은 무대 한가운데에 있는 3단 데코레이션 케이크였다.
“저 케이크는 주문 제작한 거라고요?”
향인 대학 제과제빵학과 교수 김만석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래. 조카하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 파티셰가 만들었어. 정말 엄청난 재능이야. 송곳이 주머니에 있으면 뚫고 나오듯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발견했을 원석이지.”
스위트 바게트의 강남점, 여사장 최셀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 화웅 베이커리의 빵 판매가 놀랄 정도로 급상승한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사장님?”
“어허, 어디서 영업 비밀을 알려고 드나.”
“저희도 좀 소개받고 싶은데요.”
“안 돼, 안 돼. 케이크 주문만은 받아주지. 진영이 통해서 주문하면 돼.”
인근 베이커리 경영자들이 하나둘씩 질문을 시작했다. 제빵사에 대한 질문을 계속 받았지만 백진영도, 백정흠 사장도 대답을 회피했다.
“어떻게 좀…….”
“어허, 직접 만들어!”
“우리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진영이가 소개해 주나?”
수염을 멋지게 기른 70대 노인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베이커리 협회의 회장, 안득선이다.
“안 회장님.”
“모양은 잘 만들었는데, 어째 조금 무기물적인 느낌이 나.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젊은 청년이 만든 거라며? 어떤 사람인가? 나한테는 소개를 못 해주나?”
눈웃음을 치며 다가온 제과업계의 거물을 바라보며 백정흠 사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회장님하고 어중이떠중이하고 같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