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0화 (60/656)

제 060화

“정말 마약보다 더 마약 같은 반응인데요?”

기자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하나 먹어봐도 되겠습니까?”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선수분들 드리기에도 개수가 모자라서…….”

여직원이 곤란해 했다. 그때 양복을 입은 시청 직원이 한 명, 더 나타났다.

“과장님!”

여직원이 반갑게 말했다.

“여기 기자분이 빵 때문에 물어보시는데, 하나 드려도 되나요?”

곤란한 상황을 상급자에게 넘겨서 기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과장이라 불린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쪽에서 논란이 생겨서, 이 빵 중 무작위로 1개는 우리가 검사를 위해서 따로 가져가야 해.”

“예, 과장님이 골라가세요.”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사람들이 다 이 빵 얘기밖에 안 해? 대회가 아니라 빵 얘기만 한다고. 소아암 환자를 위한 기부 마라톤인데, 빵 광고 마라톤이 되어 버렸어.”

짜증이 섞인 그 말에 진혁이 반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덜 맛있게 만들 걸 그랬군요.”

“아, 그 빵집 주인이십니까?”

과장이 머쓱해 하며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사실 소망시에 이렇게 맛있는 빵집이 있다는 사실을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 노이즈 마케팅이랄까, 오히려 인터넷상에 화제가 되고 있어요.”

과장이 핸드폰으로 SNS 화면을 보여 주었다. 트위터였다.

marathon_newbie88 : 지금 소망시 마라톤에 마성의 빵이 나타났다.

┗1somarathon1 : 마성의 빵?

┗marathon_newbie88 : 선수들이 보급소에서 빵을 먹으면 미미(美味)! 외치며 굳어버려. 최종병기빵 같은 모습.

┗socar77 : 약 탄 거 아냐?

┗allygater : 농담이지? 대회 나가려고 준비를 얼마나 한 사람들인데 빵을 먹는다고 멈추냐.

┗marathon_newbie88 :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marathon_newbie88 이라는 사용자가 동영상을 첨부했고, 그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빠르게 트윗을 복사해서 여기저기에 퍼 날랐다.

빵의 맛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대다수는 빵집이 어디냐고 묻는 글이었다.

‘본의 아니게 빵집 홍보를 실컷 했군.’

“사실 소망시 마라톤이 기수에 비해 홍보가 덜된 편이긴 했습니다. 빵집 덕분에 이 정도로 널리 알려진 것도 감사할 따름이죠.”

과장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과장이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저희가 다음 해에도 빵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좀 덜 맛있게요.”

“하하! 노력해 보겠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당연하게도 약품 검사에서는 아무 문제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기자는 만족스러워하며 결과를 가지고 떠났다. 다섯 시간이 지나서 이제 보급소도 철수하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감호철 노인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직원과 과장은 짐을 챙겨서 떠났고, 진혁은 빵 한 개와 함께 자리에 남았다.

‘감호철 어르신 분 드리게, 이거는 진혁 씨가 갖고 계세요.’

여직원이 따로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내일 오면 카스텔라를 하나 더 덤으로 챙겨줘야겠어.’

그러고 보니 선입금을 받았으니 내일 카스텔라를 따로 더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숙성하고 있는 3단 오븐 케이크도 내일 넘겨야 하고. 할 일을 생각하면서 진혁은 팔짱을 꼈다.

“어디 볼까.”

감호철 노인은 이 근처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금방 오겠군.’

이미 대회의 우승자는 결정 났고, 시상식도 끝났다. 하지만 감호철은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그는 대회가 끝났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고, 5km마다 있었던 보급소가 없어진 것도 몰랐다.

“나는…… 가야…… 해.”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이 길의 끝에 그녀의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다.

헐떡거리면서 달리고 있는 길은 매일같이 오가던 길이다. 소망시 마라톤에서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달렸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날이 더웠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그는 저무는 해 아래에서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어르신, 이 빵을 좀 드세요.”

“으으…….”

“여기 물도 있습니다.”

낯익은 젊은이가 나타나 먹을 것과 물을 내밀었다. 노인은 빵을 씹으며 물을 들이켰다. 섬세하면서도 달콤한 맛은 혀를 감싸며 입안에 퍼졌고, 설탕처럼 녹아내리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후, 후…….”

그녀처럼 달콤하다. 평생동안 꿈처럼 그려왔지만,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그녀의 입술이 이런 느낌일까. 빵을 씹으면서도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 맛있는 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어.”

“어르신, 이제 한계인 것 같은데.”

비척거리면서도 감호철은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오른발과 왼팔, 그리고 왼발과 오른손을 번갈아 움직인다. 시청의 트레이닝 코치가 가르쳐준 대로다. 이미 무아지경에 달해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계속해서 걸을 뿐이다.

“이 미친 노인네야, 대회 끝났어! 다 끝났으니까 이제 집에 들어가서 쳐 자!”

짜랑짜랑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그녀의 것과 매우 닮았다. 감호철의 입이 살며시 벌어지며 이 없는 잇몸이 드러나, 작은 미소를 그려냈다.

“금 씨가…… 기다리고…… 있어.”

이미 교통 통제는 끝났다. 하지만 반환점에서 돌아가는 길은 인도를 끼고 있어, 시청까지 22km 내내 안전한 길이다. 혼자서 비틀거리며 계속 달리고 있는 노인 뒤에는 작은 인파가 따르고 있었다. 햇살노인정의 금천복과 이을순, 그리고 열한 명의 다른 노파들. 거기에 잔뜩 찡그린 표정의 홍 씨 노인과 진혁이 끼어 있었다.

“저, 저, 저놈의 미친 노인네. 금 씨 이상형이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라는 헛소리를 하더니, 이제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만.”

홍씨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서 진혁은 노인이 왜 달리고 싶어 했는지를 알았다. 정확히는 어째서 포기하지 못하는지를 알았다.

“흠, 어쩔 수 없죠.”

진혁이 중얼거렸다. 그는 안력을 담아 감호철 노인을 살폈다. 심장은 건강하게 뛰고 있고 손발 역시 순환이 잘 되고 있다.

“괜찮으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강제로 멈출까요?”

진혁이 묻자 금천복이 벌컥 화를 냈다.

“아무렴 저 미친 노인네를 병원에 실어가기라도 해야지, 저대로 쓰러지문 어떡하누!”

“하지만 괜찮으실 겁니다. 지금 걸으시는 걸 보면 멀쩡해요.”

“…….”

금천복은 입을 다물었다. 대쪽처럼 굳건한 의지가 감호철 노인을 일으켜 세워 걷게 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알 수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달이 뜰 시간이 되기 전에 햇살노인정의 노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욕설을 퍼붓는 홍 씨 노인과 금천복, 그리고 진혁만이 남아있었다. 아직 감호철 노인이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사 이 나이에 저놈의 미친 노인네 때문에 한밤을 새다니!”

홍 노인은 투덜투덜거리면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감호철 노인을 따랐다.

“어르신께서는 집에 아니 가십니까?”

“내 지금 가믄, 저눔의 시끼가 금 씨하고 야밤에 단둘이 남을 거 아닌가! 내 두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꼴은 못 봐!”

“저도 있습니다만…….”

“태어난 지 육십 년도 안 된 애새끼는 취급 안 혀!”

“…….”

진혁은 자신의 정신적 나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체력이 좋은 금천복도 지쳤는지 천천히 걷고 있었다. 새까맣던 하늘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비쳐 들어와 구석부터 찢어지기 시작했다. 동이 트고 있다. 소망시청 건물이 보였다.

“도착했군요.”

“도착했다.”

“허억……헉……헉.”

소망시청 앞에 도착한 감호철이 밝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깨를 움츠리고 걷고 있던 금천복은 그를 보지 못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감호철이 다시, 뒤로 달렸다.

“금천복이!”

“?!”

저어 뒤쪽, 뒤처져 있던 뚱뚱이 홍 노인이 무언가 낌새를 느낀 듯, 격렬하게 무어라 외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호철 노인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땀에 젖어 있는 작은 분홍빛 벨벳 상자에 담긴 것은, 진주가 올라간 금반지였다.

“나랑, 결혼해 주겠소?!”

“이 정신 나간 늙은이!”

마스카라는 번졌고 머리카락은 구부러져 뺨에 달라붙어 있다. 금천복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검은색 눈물을 흘리며 금천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되잖아요, 하면!”

두 남녀가 서로를 껴안는 동안, 뒤에서 멀리 홍 노인의 비명이 들렸다.

“아안-돼에에-!”

진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두 분 웨딩 케이크는 제가 만들어 드리죠.”

◈          ◈          ◈

“아버지.”

“그래, 이야기는 들었다.”

“……언제 어떻게요?”

“감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지. 오늘이 결전의 날이라고, 죽기를 무릅쓰고 달리신다고 하셨어.”

“죽지는 않으셨어요.”

“네 표정을 보니까 알겠다. 결혼식은 언제라고 하더냐?”

“다음 달에 햇살노인정에서 올리신대요.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더 시간 낭비하기 싫다고.”

“금 씨 어르신이 화통하셔. 불도저처럼 한 번에 밀어붙이는 성격이 있어.”

삑, 삑삑, 삑.

“아버지!”

퇴근해서 들어온 진희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두꺼운 서류봉투를 들고서 말했다.

“건강검진 결과 나왔어요. 제가 보면서 설명해 드릴게요.”

“응?”

진희가 가지고 온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면서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리가. 누구 거랑 섞인 거 아녀? 신체 나이가 20대라니.”

“여기 주민등록번호하고 보면 다 맞는데……. 혈액검사 결과도 놀랄 만큼 좋아지셨는데요?”

“진혁이 네가 알려 준 기체조가 정말로 영험하구나.”

아버지의 건강검진 결과표를 본 진희가 놀라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외쳤다.

“엄마! 엄마도 이리 와 봐요.”

“응?”

어머니의 건강검진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신체 나이가 26세로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당뇨병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나타내는 당화혈색소부터, 콜레스테롤 수치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엄마 언제 다이어트를 이렇게 빡세게 했어요? 지방이 다 빠지고 근육이 엄청 늘었네요. 혈액검사하고 소변검사 수치도 좋고, 만성 위염도 사라지시고.”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는데? 그냥 진혁이 시키는 대로 운동을 열심히 했지.”

“하루에 한 다섯 시간씩 한 거예요?”

“한 15분?”

“이럴 리가 없는데……. 그래도 너무 잘 됐어요.”

진희가 오른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지난번 검사 결과가 잘못됐었나 봐요. 여태까지 고생만 한 우리 엄마 너무 몸이 안 좋아져서 걱정했는데.”

“어머, 어머. 얘야, 울지 말아라. 이렇게 착실한 아들이랑 딸이 있는데 내가 무슨 고생만 했다고 그래.”

어머니가 진희를 다독여 주는 동안 진혁은 옆에 있는 다른 봉투를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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