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59화
진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초콜릿 모델링을 시작했다.
손끝에 담긴 강기는 슥삭슥삭 초콜릿을 잘도 썰어냈고, 얇게 썰린 조각들은 엉기어 뭉치고 형태를 이루어 사람의 얼굴을 빚어냈다.
“주름살은 조금 줄여줄까…….”
얼굴이 너무 닮아서 오히려 그로테스크할 정도다. 만화적으로 코믹하게, 약간은 둥글게 해줄 필요도 있다. 진혁은 흥겹게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이 몇 번 움직이자 곧 조금 둥글고 우스꽝스러운 얼굴의 백정흠 사장이 초콜릿 반죽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오븐.”
본래 크래커 벽은 혼자 서 있을 만큼 힘이 없다. 하지만 진혁은 천안투마공으로 꿰뚫어보아 네모난 비스킷이 어떻게 서면 버터크림 벽도 지탱하며 혼자 서 있을 수 있는지 파악하였다. 촘촘히 세워진 비스킷 위에는 버터크림이 두텁게 발라졌고 그 위에 은빛 스테인리스처럼 보이는 퐁당이 씌워졌다.
“좋아.”
세워진 오븐 안에는 미니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가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빌딩을 올릴 차례다.
“빌딩이 오븐보다 조금 더 작고 키는 크게.”
원래 빌딩은 직육면체처럼 재미없게 생겼지만, 진혁은 케이크 빌딩에 약간 변화를 주었다.
“비스킷 벽이 무게를 감당하려면 케이크는 훨씬 더 가벼워야 해.”
화이트 레이어 케이크의 무게를 덜기 위해서 진혁이 사용한 방법은, 일반 파티셰라면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죽에 공기를 아~주 많이 넣어야지.”
기포가 많이 들어가면 그만큼 부드럽고 촉촉한 케이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진혁은 임의로 대량의 기포를 투입해, 마치 구멍 뚫린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 난 케이크를 만들 심산이었다.
‘퐁당은 아주 얇게, 설탕의 양을 줄여서 지나치게 달지 않게 덮어씌우고.’
케이크를 만드는 내내 진혁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즐겁다. 아주 신나.’
혼자서 케이크를 만드는 이 과정 자체를 즐겼다.
‘파괴적이고 강대한 힘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조그맣게 집약하면 이렇게 반죽에 공기를 넣는 일도 할 수 있고 편리하단 말이지.’
케이크의 초안을 잡는 창조적인 작업은,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무공 실력이 있어서 가능하다.
‘평생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군.’
그는 마음속으로 소박한 희망을 중얼거렸다.
‘가족들과 함께, 내키는 대로 빵을 굽고, 가끔은 주문 케이크도 굽고 말이지.’
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에는 그가 지나치게 커 버렸다는 사실은,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 ◈ ◈
전날부터 부디 비가 와서 대회가 취소되기를 소망하던 금천복의 바람과는 달리 무정하게 날은 맑았다. 드높은 하늘은 바다처럼 푸르렀으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소망시청 앞.
운집한 군중이 웅성거렸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인사말을 마치고 나서,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네-제7회 소망 마라톤 대회, 시작하겠습니다-!”
삼백여 명의 참가자가 움직이는 발걸음소리는, 훈련되지 않은 군대가 움직이는 것처럼 통일성이 없고 우왕좌왕했다. 페이스를 지키며 걷는 것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화려한 셔츠에 러닝 팬츠, 명품 운동화를 신고 날 듯이 달리는 젊은이도 있다.
그 와중에 맨 뒤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이 한 명 있었다.
감 노인이었다.
“저, 저, 저눔의 미친 영감탱이.”
시청 옆, 빨간 지붕 이층집의 창문에서 쌍안경으로 내려다보던 금천복이 욕설을 뱉으며 쌍안경을 내팽개쳤다. 이을순이 황급히 쌍안경을 집어 들었다.
“언니, 화가 나믄 침이라두 뱉을 것이지 왜 물건에 화풀일 하쇼?! 감호철 슨상님이 그리 좋으믄 가서 좋다고 말을 하든가!”
“내가 어디 그이를 좋아한다던가?!”
“언니 성격에 맘에 안 들었으믄 벌써, 면상에 하얀 께이끼 처박았을 거 아뇨.”
“……넌 날 너무 잘 알아.”
“육십 년을 한동네에서 동기처럼 살았으니 잘 알 때두 됐제.”
오늘의 마라톤은 42.195km의 풀 마라톤이며 반환점은 햇살노인정이다. 5km 지점마다 보급소가 마련되어 있다. 반환점 앞의 보급소, 햇살노인정 앞의 테라스에는 임진혁이 있었다.
‘안정감 있고 좋은데?’
감 노인은 단골손님의 친구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은사다. 나이 든 어르신이 풀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을 아버지는 걱정하셨고, 그래서 진혁이 여기에 있다.
진혁은 천안투마공의 공능을 사용하여 멀리, 소망시청 앞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노인을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감 노인의 걸음걸이에는 안정감이 있었다.
“이번이 첫 대회가 아니신 것 같은데.”
진혁이 중얼거리자, 옆에서 얼음물에 생수병을 채워 넣고 있던 시청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5회부터 이 대회에 참가했어요. 이번에 빵집에서는 처음 오시죠? 금천복 어르신이 기증을 하신다고 해서 저희도 신나 있습니다. 완전 맛있기로 소문났잖아요.”
“……아, 감사합니다.”
“저희 퇴근하고 갈 때쯤에는 매일 다 팔리고 없어서 먹어본 적이 없거든요. 반환점에서 보통 빵은 많이들 안 먹는데, 이번 대회에는 반환점에 이 빵이 있다고 하니까 다들 이것만 먹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더라구요. 선수들 사이에 소문이 다 났어요.”
“그건 조금 곤란하네요.”
“엥?”
“꼭 드려야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감호철 노인은 느리다. 5시간 제한 시간 안에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여러 분이세요?”
“한 명이에요.”
여직원이 선하게 웃었다.
“그럼 여기 서랍 안에 하나만 넣어 두었다가, 그분이 오시면 꺼내 놓으세요.”
“……지나친 특혜가 아닐까요.”
“아니요.”
여직원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해 보였다.
“제가 보기에는 아마, 그분이 금천복 할머니가 요번에 빵을 기증하는 이유인 것 같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없군…….’
진혁이 실웃음을 흘렸다.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감돌자 놀라울 정도로 인상이 바뀌었다. 여직원이 뺨을 붉히며 묻지도 않은 것을 술술 이야기하였다.
“햇살노인정 할아범이 이번에 대회 신청하는데 못 나오게 해달라고 건의를 하러 오셨어요. 연령 제한을 둬달라고. 그런데 할아버지는 보건소에서 건강검진 받으시고 괜찮다고, 자기는 꼭 나갈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공중보건의 선생님이 할아버지 손을 들어주셔서 출전하시기로 했어요. 이전에 마라톤 대회에 몇 번 나오셨어요, 시간 내 완주는 못 하셨지만 그렇다고 쓰러지시거나 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렇군요.”
감호철 노인은 나름대로 여러 해에 걸쳐 이것저것 준비를 해온 것이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만 챙겨 두겠습니다.”
선두 주자가 하나둘씩 도착하며, 진혁의 빵을 집어갔다. 드물게 과일이나 바나나를 집어 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카스텔라를 골랐다. 이미 들어온 소문 때문이다.
“……!”
휴가를 내고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려고 온 회사원, 김온조는 빵을 먹다가 혀를 깨물 뻔했다. 이제 24km, 절반이 남았다.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하는데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동요할 수는 없다.
‘뭐야, 이 빵. 너무 맛있잖아.’
대회에 독이 될 정도로 맛있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순간적으로 자신이 대회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쉴 새 없이 두개골과 척추가 흔들리고 있어 빵을 씹는 데에 방해가 되자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더…… 이 맛을…….’
김온조 말고도 여러 선수들이, 한 손에는 빵을 쥐고 넋이 나간 표정을 한 채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추었다. 응원하던 이들이 농담 섞인 응원을 외쳐대도 한참 멈추어 있다가, 빵을 다 먹고 나서야 다시 뒤늦게 뛰기 시작한다.
“진혁 씨네 빵…… 마약 같은 거 넣으신 거 아니죠?”
누군가 빵을 집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을, 시청 여직원이 실소하며 바라보았다.
“저 선수도 또 멈췄어요.”
“약품 같은 건 안 들어있습니다.”
달리기에 집중한, 열정적인 표정을 한 남녀 선수들이 빵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손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굳어 버리는 광경은, 확실히 눈에 띄는 구경거리였다.
“저도 먹어봐야겠어요. 내일 저도 사러 갈 테니까, 저 카스텔라 좀 따로 빼 주세요.”
“지금 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선수들이 먹어야 할 음식인데 제가 먹어버릴 수는 없죠…….”
여직원은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나 정도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진혁이 묻자 여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 먹고 멈출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저는 저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렇게 맛있게 먹다니…… 마라톤을 하는 도중에 먹방을 보게 될 줄이야……. 내일 꼭, 꼭 남겨주세요. 다섯 개, 아니 열 개요!”
“그럼 만육천 원, 선금 부탁드립니다.”
“이따가 끝나고 계좌로 입금해드릴게요.”
‘진담이었어?!’
농담처럼 선금 얘기를 꺼낸 진혁이 놀랄 정도로 여직원은 진지했다.
선두 그룹이 지나고, 중간 그룹이 오면서 마라톤을 취재하고 있던 기자가 다가왔다.
“지금 선수들이 빵을 먹으면서 계속 멈추고 있는데요. 빵이 상한 건 아닌가, 아니면 약품이라도 들어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요.”
진혁이 여직원을 바라보았다. 여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반대예요.”
“예?”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아니, 그렇다고 이 순간만을 위해서 계속해서 달리고 연습을 해온 선수들이 갑자기 대회 중간에 멈출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빵이 맛있다고 해도 그 정도로 맛있을 수는 없죠.”
기자가 따졌다. 여직원이 웃었다.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보세요.”
새로운 선수가 한 명 나타났다. 그 선수는 무표정하게 카스텔라를 집었고 뛰면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땀범벅이 된 얼굴, 그리고 페이스를 잃지 않고 달리고 있는 다리, 밑창이 약간 닳아 있는 운동화까지 전형적인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였다.
“138번도 카스텔라를 집었군요.”
기자가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곧 138번 선수가 카스텔라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
조금 전까지 달리는 것,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던 얼굴이 편안하게 풀어졌다. 극상의 행복을 맛본 자의 표정이었다. 입이 벌어지며 남은 빵을 입안에 털어 넣었고, 다리는 그대로 멈추었다. 손은 움직여 빵을 마저 입에 넣으려고 한다.
기자가 물었다.
“빵에서 이상한 맛은 안 납니까?”
“?”
138번 선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뇨, 이거 엄청 맛있는데요. 더 먹어도 되나요?”
“그것도 다들 물어보셔서- 그럼 너무 개수가 부족해서 어려울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거 어디서 팔아요?”
“그것도 다들 물어보셔서-나중에 대회 끝나고 공지해드릴게요.”
여직원이 활짝 웃었다.
“지금, 달리세요! 빵집 물어보려고 이 대회 나오신 거 아니시잖아요!”
“맞다!”
마치 한편의 콩트처럼 짧은 대화가 오가고 다시 선수는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았는지 힐끗힐끗 뒤를 바라보며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