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5화 (55/656)

제 055화

“이게 그 오븐이군요! 삼촌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까 더 좋네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여기에 있었다고, 아버지께서 여러 번 이야기하셨죠.”

“……만져…… 봐도 될까요?”

절박해 보이는 그 얼굴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차가운 은빛 표면을 만지며 백진영이 중얼거렸다.

“저희 아버지가 이걸 같이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

“저희 아버지도 삼촌하고 같이 회사를 창업했던 멤버로, 손재주가 좋아서 뚝딱뚝딱 뭐든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고로 가신 후에는 그 자리에 숙모가 대신 들어와 일을 떠맡으셨다고 들었어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황급히 덧붙였다.

“물론 지금은 숙모가 훌륭하게 잘하고 계시지만요.”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진혁이 웃었다.

“저의 아버지도 친우의 선물이고 목숨줄이라며 애지중지하는 물건입니다.”

‘빚 때문에 가게를 전부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도 이 오븐만은 절대 팔지 않으시려고 했지…….’

하지만 결국 진혁의 병원비에 보태기 위해 팔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침대 곁에서 쓸쓸하게 서 계셨다. 오븐이 소중하지만 너만큼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오븐이 누군가 빵을 구워줄 수 있는 사람의 손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오븐을 수리할 수 없어 고물상에 팔려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그날 밤 아버지는 친구를 다시 잃은 것처럼 오열하셨다.

회귀하기 전,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오랫동안 잘 사용해 주신 티가 납니다. 삼촌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고 싶다고 하셨는데, 진혁 씨 아버님께서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백진영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현역으로 뛰고 있는 물건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도 못할 일이죠.”

“그렇죠. 어떻게 보면 지금, 살아 있으니까요.”

“빵을 굽기 위해 태어났고 계속해서 빵을 굽고 있으니 이 오븐도 행복할 겁니다.”

백진영이 오븐 안쪽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하얀 반죽들이 천천히 부풀어 올라 갈색으로 물들어 간다.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뜨거운 공기가 오븐 안쪽에서 대류하여 반죽을 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백진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요즘 가게도 잘 되신다고, 삼촌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편이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가게에 들어오는 빵도 아주 잘 팔리고 있습니다. 보내 주시는 분량이 이제는 아침 한 시간 만에 다 팔릴 정도예요.”

진혁이 미미하게 동요했다.

“그 정도입니까?”

그 정도로 잘 팔릴 줄은 몰랐다. 지금 빵집이 위치해 있는 소망동은 경기도 구석에 있는 시골 마을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를 알고 있다. 최근 들어왔다가 망한 스위트 바게트를 제외하면 프랜차이즈 빵집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작다.

반면 강남에는 아드레아노 존부의 디저트 팩토리 분점을 비롯하여 5성급 호텔의 파티셰들이 포진한 갖가지 디저트 카페와 베이커리가 있다. 농구의 고등학교 선수 리그와 대학 프로 리그만큼, 어쩌면 더 차이가 난다.

진혁이 웃었다.

“잘됐네요.”

“그래서 사실 어려운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도 어렵게 종류별 100개씩만 주시고 있는데, 주문량을 좀 더 늘린다면 가능하실지…….”

백진영이 말을 흐렸다. 가능하다면 일일 1,000개라도 주문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파티셰가 두 분, 아버님과 진혁 씨라고 들었습니다.”

“견습 한 명 더 있습니다.”

오늘은 촬영하는 날이므로 일봉에게 휴가를 주었다. 백진영이 물었다.

“저희가 말씀드리면 오해하게 될까 봐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혹시 향후 직원을 더 채용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지금 가게가 엄청 잘 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삼촌과 의논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다. 단순히 구매자와 판매자가 아니라, 이미 의형제를 맺은 관계다. 그런데 무작정 빵을 더 많이 만들어 달라고만 한다면? 적은 직원이 이미 가게를 경영하면서 외부에 납품까지 하는, 한계까지 일하는 상황에서 업무량이 너무 늘어나 더 곤란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달부터 어머니께서 일을 도와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잘됐네요.”

백진영의 얼굴에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를 잃은 것은 십여 년 년 전의 일인데도 아직도, 다른 사람들이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표정 관리를 할 수 없다. 진혁은 모른 척해주었다.

“그럼 혹시 빵 생산량을 좀 더 늘리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새 오븐도 들어왔고요.”

“가격을 더 쳐 주신다면 아버지와 의논해 보죠.”

진혁이 씩 웃었다.

“가격은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진영이 수첩에 만년필로 글자를 써 보여 주었다. 그것은 지금보다 20% 정도 올라간 숫자로, 백정흠이 미리 지시한 가격이었다.

“가능하면 지금보다 2배 정도, 더 빵을 받고 싶습니다. 진혁 씨나 아버님께서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갑자기 두 배나 늘어나면 힘들어지시겠죠. 삼촌도 걱정하고 계시고요.”

“지금 종류별로 100개…… 총 5종의 빵을 매일, 종류별로 200개라.”

진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오해하시는 게 있는데, 지금 제가 만들 수 있는 최대량만큼 빵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닙니다.”

“예?”

“저희 동네에서 팔리는 빵의 양은 사실 비슷비슷합니다. 지금 이 동네 사람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아서 일부러 조절해 가면서 만들고 있어요.”

“아……! 그럼.”

“원하신다면 종류별로 사백 개를 주문하셔도 됩니다.”

진혁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보았다.

‘사실 혼자서 하루에 사천 개를 주문받아도 상관없지.’

다만 신경 써야 할 점은 상식적으로 현재 있는 오븐이 구워낼 수 있는 만큼의 빵을 계산해서 구워내야 한다는 것뿐이다. 또한,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새벽 시간에 미리 준비하는 편이 편하다.

“새로 들여주신 데크 오븐도 있고, 오백 개까지는 어머니가 일을 시작하지 않으셔도 여유 있습니다. 그 후에는 더 늘릴 수도 있겠군요.”

백진영이 기쁨과 놀람이 뒤범벅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부디…… 이 가격으로 개당 오백 개씩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거의 일 2,500개씩 부탁드리는 건데…….”

“치킨 파이는 저희가 닭을 공급받는 곳에 재료 수급량을 확인해봐야 하고요, 다른 건 문제 없습니다.”

“그럼 치킨 파이 대신…….”

“스트로베리 파이 같은 걸 새로 만들어 볼까요? 이번에 질 좋은 딸기가 들어왔던데. 계절마다 과일 수급량이 다르니까 아예 계절 과일 파이, 이렇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주마다 메뉴가 바뀌는걸 감안해 주신다면.”

백진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입니다, 물론입니다! 뭐든 좋습니다.”

‘이왕 성공할 바에는, 아예 크게 성공해야 해.’

진혁의 빵집이 빵을 보내기 시작한 지 이제 스무날이 갓 지났다. 이미 순이익은 지난 일 년간보다 더 커졌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이익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야 누나와 형에게 짓눌리지 않아.’

지금 진혁에게 이만큼 빵을 납품받을 수 있다면, 가게의 순이익 규모 자체가 더 커진다.

‘아예 삼촌의 빌딩에서 나갈 수 있을 만한 돈을 모으려면 아직도, 아직도 부족해…….’

백진영, 그는 내심 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진혁과 함께라면 그 허황되어 보이는 꿈도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버지와 의논해 보아야 하니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촬영이 끝나고 난 다음에 이야기해보죠.”

“아…….”

백진영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물론입니다.”

딸그랑, 딸그랑!

촬영 때문에 오늘은 문을 닫는다고 바깥에 팻말이 걸려 있는데도,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있었다. 백진영이 눈을 깜빡이며 바깥을 보았다.

“누가 오셨는데요?”

“총각! 총각 있나!”

진혁이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감 선생님.”

“이제 자네까지 감 선생님이라고 불러?”

감 노인이 웃으며 이 없는 분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웃음 지었다. 주름진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부탁한 것을 찾으러 왔는데.”

“여기 있습니다.”

진혁은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그 우아하고 화려한 모습에 백진영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이거, 이건 웨딩 케이크입니까?!”

진한 갈색 케이크 위에는 활짝 핀 백장미가 섬세하게 세 송이, 그 옆에는 풍성한 초록색 잎사귀, 새끼손톱만큼 작은 분홍빛 다알리아 꽃이 공주를 지키는 시녀처럼 여덟 송이, 백장미를 둘러싸고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아직 피지 않은 분홍빛과 선홍색, 보랏빛과 파란색 장미 봉오리가 옹기종기 쌓여 있다. 장미보다 자그마한 노오란 민들레꽃이 다섯 송이, 구겔호프의 가장자리를 드문드문 장식하고 있어 마치 아름다운 봄의 정원을 옮겨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가장자리에는 조그마한 인형이 하나 서 있었다.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설탕 인형이, 우아한 은빛 정장을 입고 서 있다. 크기가 작은데도 얼굴의 주름과 환한 미소까지 재현되어 있어 누구나 보면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다.

“금 씨하고 똑 닮았구먼.”

감 노인이 놀라고 신기해하며 중얼거리는 동안 진혁은 백진영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

“웨딩은 아니고 생일 케이크입니다.”

“주문 제작 케이크도 받으십니까?!”

“당연히 받죠.”

진혁이 케이크를 상자에 넣으려고 하는데, 스마트폰을 꺼낸 백진영이 굳어진 얼굴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잠시만요!”

진혁이 손을 멈추고 백진영을 바라보았다.

“이건 주문받은 제품이라 다른 분에게 팔 수는 없습니다.”

백진영이 당황해서 더듬거렸다.

“다, 당연하죠! 그냥…… 저……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아름답고 독특한 디자인은 특급 호텔의 개인 주문 웨딩 케이크에 필적한다. 진혁이 만드는 빵이 맛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장식기술까지 있는지는 몰랐다. 백진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사진이라…….”

감 노인이 기분 좋게 승낙했다.

“팥빵 맛 나는 케이크가 이렇게 예쁘기도 할 줄 몰랐네그려. 젊은이가 사진 찍어서 내도 한 장 보내 주면, 기념으루 우리 햇살노인정에 멋있게 걸어놓으면 좋겠구만.”

진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감 선생님, 금천복 어르신께 의논을 하고 난 다음에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려, 그럼 그렇게 해 줘. 물어보고 알려줄 테니까, 나중에 사진 보내 줘.”

감 노인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나갔다. 백진영은 방금 찍은 스마트폰 상의 사진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혁이 백진영에게 물었다.

“사진을 찍어서 뭘 하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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