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4화 (54/656)

제 054화

“저 상자는…….”

“쉐프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분들의 명함을 모아둔 거예요.”

가영이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쯤 전달이 될까요?”

강 마리오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백진영이 잠시 스케줄을 생각해 보았다.

“내일쯤에는 전달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강 마리오가 인사를 하고 나간 다음에, 김가영이 강 마리오의 명함을 살펴보며 감탄한 듯한 소리를 냈다.

“호오-.”

“아는 사람이야?”

“저 사람, 아주 유명한데. 빵 좀 만드는 사람들은 저 사람 유튜브 봤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대학 대회 씹어먹겠다고 나갔다가 씹어 먹히고 돌아왔다고 한동안 유명했었는데, 요즘 다시 활동 시작하나 보네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바깥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삼촌.”

“문 닫을 준비는 됐냐?”

“네!”

정리를 마친 김가영이 환하게 웃었다.

“오늘 그 빵집 가신다면서요.”

“안영윤 부장이 이번에 힘 좀 썼지. 인터뷰만 하는 게 아니라, CM도 작게 만들 거고. 빵은 어때? 잘 팔리냐?”

“잘 팔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모자라요. 좀 더 받아올 수는 없나요?”

백진영이 전자 장부를 보여 주었다. 백정흠 사장의 동공이 커졌다.

“와, 이건……. 이 정도 판매력이면, 우리가 빵을 더 많이 받아와야겠는데.”

“아예 그분을 스카우트해서, 여기서 만들면 더 좋죠.”

“그건 안 돼. 아버지 있는 곳을 떠날 사람은 아니야. 우리 전에 5성급 호텔에서도 스카우트가 들어왔는데, 눈 깜짝하지 않고 거절했다고 들었다.”

“흠…….”

백진영이 웃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자. 일단 내려가자.”

“예, 삼촌.”

안영윤 부장이 운전해서 내려가는 길, 삼촌과 조카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도대체 빵 만드는걸 어디서 배웠대요? 이 근방의 빵집을 다 뒤져봐도 치킨 파이나 특이한 만두 같은 빵을 만드는 곳이 아예 없던데. 그게 제일 인기가 많아요.”

“향인대 나왔습니다.”

운전하던 안영윤이 대신 대답했다. 백진영이 놀라며 말했다.

“그냥 제과제빵 학과에서 배운 애가 그렇게 독특한 걸 한다고요? 우리나라 교육이 그렇게 효과가 좋았나…….”

“똑같은 교육을 받아도 이런 이레귤러가 있는 것 같아.”

백정흠 사장이 물었다.

“그 협회 기증한다던 건 했냐?”

“그날 들어갔던 돈은 따로 빼놨어요. 저희 가게 이름이 아니라, 말씀하신 그 부자 이름으로 기증하고 싶어서. 오늘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이다. 내가 의형한테 크게 면목이 서겠네.”

“CM 찍는 사람들은 먼저 가 있나요?”

“우리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거기서 찍고 있을 거야.”

“그 가게 광고 촬영도 겸해서죠?”

“그렇지. 당연히 그렇게 해 줘야지. 따로 돈 좀 쥐여줬다.”

“그래도 몇천만 원은 했을 텐데요?”

운전하던 안영윤 부장이 놀라서 거울을 힐끗 바라보았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백정흠 사장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크흠. 내가 의리 하나는 끝내주지.”

“모델료도 2천만 원은 주셨을 텐데……. 사실 일반인이 그 정도 모델료라는 건…….”

“그 오븐은 단순히 그 돈의 의미가 아니야.”

백정흠 사장이 말했다.

“그건 우리 화웅의 역사야.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반드시 힘이 된다. 자네도 항상 얘기해왔잖은가.”

“그렇죠.”

백씨 삼촌과 조카, 그리고 마케팅부장 세 사람이 소망시의 베이커리 앞에 도착하는 데에는 차로 4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조카는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악했다.

“그 빵을 만든 사람이 아버지 쪽이 아니고, 아들 쪽이라고요?”

“그래.”

“엄청난 재능이군요.”

진영이 중얼거렸다.

“우리하고 독점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같이 성장해 나가면 좋겠지.”

◈          ◈          ◈

“안녕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삼촌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내 아들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요.”

“이쪽은 저번에 봤지? 내 아들.”

간단한 소개를 교환한 후 아버지는 곧장 인터뷰 촬영 쪽으로 불려갔다. 백정흠 사장 또한 따라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백진영은 눈앞의 청년과 홀로 남겨졌다.

‘향인 대학 출신의 대학 대회 우승자.’

진영은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차 안에서 삼촌이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남자다. 그는 자기 친아들도 그렇게 칭찬한 적이 없는 삼촌이 그렇게 또래 젊은 청년을 좋게 보는 것을 처음 봤다. 페이스트리 쉐프가 아니라 페이스트리 쉐프복 모델처럼 보였다. 심지어 키도 커서 진영이 올려다봐야 했다.

‘……만드는 빵은 전부 엄청나게 맛있지. 능력이 좋아. 거기에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데다가 잘생겼어.’

진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착하고 효도를 잘하기까지…… 그리고 효도할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시지.’

정말로 다 가진 사람이다. 백진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람하고 친해지고 싶다.’

백진영이 혼자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모른 채, 임진혁은 자신이 맞이해야 하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가게 손님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개인적으로 응대해야 하는 손님을 만났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보통 먹을 것과 차를 내어 대접하던가……?’

손님의 급에 따라 다른 차를 내오기도 한다. 보이차와 용정차, 그리고 다른 값진 차들. 무림 초출 행세를 하고 있을 무렵에 마시던 쓰디쓴 잎차들.

진혁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고, 어설퍼 보이는 ‘사장 조카’에게 물었다.

“무엇을 마시겠습니까.”

“어, 응? 아니, 괜찮습니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사장 조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진혁은 찬물을 한 잔 갖다 주었다.

“켁켁!”

진영은 긴장해서 단숨에 물을 들이켜다가 사레가 들렸다.

“푸우웁!!”

눈앞에 물을 뿜었지만 앞에 있던 진혁은 이미 잽싸게 피해서 별일 없었다.

“죄, 죄, 죄송합니다.”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 앞에서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였다. 진영이 간신히 표정을 수습하고 사과하자 진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

“…….”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또래 남자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자 대단히 어색했다. 진영은 양복 사이로 축축하게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드신 빵 먹어봤습니다.”

긴장하자 횡설수설하며 본심이 튀어나왔다.

“대단히 맛있었습니다.”

진혁이 백진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타부타 말이 없자 진영이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런 빵을 만들고 싶었는데 잘 안됐습니다. 엄청나십니다.”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진혁이 대답했다.

“매일 듣는 이야기입니다.”

“예?”

진혁이 아, 하고 입을 다물었다. 매일 일봉과 만담처럼 주고받는 이야기라 무심코 똑같이 반응해 버렸다. 백진영이 풉 하고 웃었다.

“유머 감각도 있으시네요!”

“…….”

진혁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빵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진혁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만들면 됩니다.”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사실 저도 그렇게 빵을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맛이 나오지 않아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한 번 먹어보고 그 맛을 재현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인간은 진혁 자신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백진영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임진혁 님에게서 빵을 받기 시작한 다음부터, 매출이 완전히 뛰었습니다. 이 수치를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요즘에는 오전에 전부 동이 나 버려요.”

백진영은 이제 떨지 않았다. 카리스마 있는 진혁이 생각보다 이야기를 잘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진혁 님을 초빙하고 싶습니다. 새벽에 구운 빵도 그렇게 맛있는데, 바로 구워 만든 빵을 팔면…….”

“저는 여기에 있을 겁니다.”

진혁의 시선이 잠시 저쪽을 향했다. 진혁의 아버지가 촬영을 하고 있는 저쪽이다. 대화가 들릴 리야 없겠지만 어느 쪽에 있는지 정도는 보일 것이다. 백진영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듣던 대로 정말로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시는군요.”

“특별히 그런 건 아닙니다. 보통이죠.”

160여 년의 세월 동안, 가족을 그리워했던 마음.

지금도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은 한다.

강남의 빵집에서 빵을 만든다는 것은 금전적인 면에서 보면 매력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가족을 떠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진혁 님 같은 맛을 낼 수만 있으면…….”

백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다리를 살짝 절며 정수기를 향했다.

“제가 떠 드리지요.”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떠오지요.”

진혁의 시선이 백진영이 알 수 없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다리를 응시했다. 확실히, 이전에 백정흠이 아버지에게 술자리에서 언급했던, 가족을 잃고 다리도 절게 된 조카다.

‘마치 이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단 말이지.’

성격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지만, 그래도 가족을 전부 잃고 갑자기 혹독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이 비슷하다. 다만 임진혁은 새로운 세상에서 적응해야 했지만, 백진영은 현대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침묵이 흐르고, 진혁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내일 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만…….”

“네, 네, 물론입니다. 일하시는데 제가 방해를 해서…….”

눈치를 보던 백진영이 슬쩍 물었다.

“혹시 일하시는 것을 봐도…… 괜찮을까요…… 물론 방해가 된다면 나가 있겠습니다.”

진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 눈앞에서 하는 일이다. 진혁은 아까 촬영 감독이 이쪽에도 카메라를 설치해두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으니 몇 개 있든 상관없다.

“하지만 영업 비결이라든가,”

“보고 배우셔서 똑같이 따라 하실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죠.”

“역시 대단하십니다…….”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봐도 상관없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단순한 손놀림이지만, 그 안에는 진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절대 고수가 숨어 있다. 일반인은 따라 할 수 없다.

진혁이 오븐 옆, 숙성고에서 발효된 반죽을 꺼냈다. 진영은 30년 된 오븐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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