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53화
꽃장식을 만드는 동안 이스트가 전부 부풀어 올랐다. 진혁은 혹여 있을까 하여 반죽을 넣을 그릇을 찾기 위해 선반을 확인했다. 아니나다를까, 구겔호프를 판매하고 있지 않아 구겔호프 팬이 없다.
‘역시 없군.’
그는 이번에는 구겔호프 팬 모양으로 기막을 감싸 반죽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미리 준비해 끓여둔 팥들!
원하는 위치에 완벽한 모양으로 팥이 쏙쏙, 박혀 들어갔다. 춤을 추듯 아름다운 나선을 그리며 구겔호프 반죽 안에 파고들어 간 팥들이 골고루 자리 잡고 나서야, 진혁은 반죽에 열을 가하기 시작했다.
화마(火魔) 양기천의 독문 기공인 염화기공(炎火氣功)의 8성, 열화장.
지속적이고 끈질긴 열을 보내어 상대의 겉은 멀쩡하고 내장을 구워버리는 악독한 기공이다. 진혁은 그 열화장의 온도를 살짝 낮추어 오븐 대신 유용하게 써먹었다.
‘아무래도 나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빨리빨리 결과를 보고 싶다고.’
순식간에 먹기 좋게 익은 구겔호프 케이크는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만개한 장미꽃과 소박한 안개꽃, 그리고 선홍색과 분홍색 매화가 케이크를 장식한다. 우아한 꽃과 그 옆에 피어난 잎사귀는 마치 갈색으로 잘 익은 구겔호프가 화분인 양 잘 어울렸다.
“주문은 완성했군.”
바깥에는 해가 뜨고 있다. 진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오늘의 일을 시작해 볼까.”
◈ ◈ ◈
해시태그 강남맛집. 빵스타그램.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5만 명, 유튜브 팔로워가 2만 명에 달하는 인기인인 강 마리오는 오늘,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위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회에서 패배한 후 충격에 그는 당분간 유튜브 방송을 쉬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일상 방송을 하다가 이제 슬슬 다시 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볼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소형 마이크를 옷 칼라에 달고, 동영상 카메라를 셀프로 촬영하면서 거리를 걷는다. 그런 그의 눈에 사람들이 쭉 늘어서 있는 줄이 보였다. 그 줄의 끝에는 ‘화웅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왔다.
“연예인 사인회라도 있나 했는데, 이 줄의 끝이 빵집이 있네? 웬일로 사람들이 저렇게 줄이 서 있는지 모르겠어!”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다. 시청자들을 향해 강 마리오가 활기차게 말했다.
“나도 같이 줄 서서 먹어보려고!”
시청자들의 멘트가 줄줄이 올라왔다.
┗모리나가핫케이크: 거기 어디예요? 나도 오빠 옆에 줄 서고 싶다.
┗응답하라1984: 내가 저기에 서 있어야 하는 건데! 그래야 양보를 해드릴 텐데.
┗울프스레이: 저기 어딘지 알아요. 빵 미친 듯이 맛있어요.
┗옥빵상제: 우리 동네 빵집도 저기 만큼 맛있는데.
마지막 시청자의 말을 본 강 마리오가 반갑게 말했다.
“이미 가본 시청자님도 있네! 뭐가 제일 맛있을까?”
┗울프스레이: 나ㅁ아 있는 거요.
“남아있는 거? 매진되는 일이 많은가 봐?”
강 마리오가 시청자의 오타에도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울프스레이: 지금 시간에 줄 서면 남아있는 게 없어요. 만드는 빵 종류는 다섯 갠데 다섯 개 다 미치게 맛있어요.
시청자 울프스레이의 실시간 대화가 예언이나 되는 것처럼, 앞쪽에서 여자 점원이 짜랑짜랑 외쳤다.
“오늘 빵 마감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아계신 분께는 커피 10% 할인 쿠폰을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줄을 서 주십시오!”
검은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어 올린 여자 점원의 명찰에는 김가영이라고 쓰여 있었다. 공무원 수험생 생활을 그만두고 화웅 베이커리 앤 카페에 정식으로 취업한 그녀다.
“아-이 빵을 한 번 먹어보려고 했는데, 다 팔려 버렸네요. 다음 라이브 방송 때는 조금 더 빨리 와야겠어요!”
카메라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하는 강 마리오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이렇게 인기 있는 빵집은 없었는데. 흠…… 방송 전에 한 번 더 찾아와봐야겠어.’
다음날. 아침 7시, 화웅 베이커리 앤 카페가 오픈하는 시간이다.
카메라를 들지 않은 강 마리오가 야구모자에 야구점퍼를 입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대충 걸치고 화웅 베이커리에 나타났다. 분주한 출근 시간 다들 빵을 사느라 바빴기에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도 특이하네.’
보통 빵집에 빵을 사러 가면, 사장도 점원도 모두 자신을 알아보는 데 익숙한 강 마리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마리오는 빵을 종류별로 두 개씩 전부 주문했다.
“이거랑, 이거요.”
“포장이신가요?”
“먹고 갈 겁니다. 어울리는 음료가 있나요?”
단정한 김가영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잠시 심각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뭐야, 이 질문에 왜 이런 반응이야?’
“헌드레드 쿠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하고 잘 어울리고요, 블랙 앤 화이트 크림소라빵은 우유가 더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5종의 빵에, 다섯 종류의 음료를 추천해 준 김가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아무 음료도 드시지 않고 그냥 빵 자체의 맛을 느끼시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음료 추천을 엄청나게 진지하게 하네…….’
빵을 받아 자리로 돌아온 강 마리오는 탁자 위에 빵을 늘어놓았다. 어떤 것부터 먹을까?
‘블랙 어니언 타르트부터.’
지나치게 달콤한 것을 먹으면 그다음에 어떤 맛이 올지 모르니까, 시작은 제일 덜 단 맛일 타르트로 정했다.
코끝에 블랙 어니언 타르트를 갖다 대자 낯익은 향기가 아련하게 감돈다.
“발사믹 식초에…… 올리브 오일을 썼군.”
코를 킁킁대고 입안에 어니언 타르트를 가져갔다. 손바닥의 절반만 한 크기인 작은 타르트 위에는 캐러멜라이즈된 양파가 올려져 있다. 제일 먼저 혀끝에 느껴진 맛은 단맛이었다.
“달아. 아주 달아.”
인공적인 백설탕의 단맛이 아닌, 오랫동안 졸여 익힌 양파의 은은하고도 감미로운 단맛이 혀끝을 감싸며 미뢰를 자극한다. 거기에 상큼한 토마토가 한 조각 곁들여져 단맛이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그 후 바로 터져 나오는, 신선하고 바삭한 식감! 얇은 파이지를 여러 겹 겹쳐 구워 마치 조그마한 크루아상을 먹는 맛이 난다. 희미한 올리브 오일의 향이 사라지고, 농밀한 버터의 맛이 입안에 감돈다. 맛 하나하나가 각자의 색을 잃지 않고서 파도처럼 다가오고 거품처럼 부서지며 다 함께 어울린다.
“파이지 반죽은 시중의 것을 쓰지 않고 직접 구웠나 본데…….”
마치 입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축제와도 같다. 강 마리오는 눈을 감고 신음했다.
“……너무 맛있잖아…….”
자신이 고무공이라도 된 것처럼 폴짝 뛰어오르고 싶다. 열 살 적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맛이다.
“나도, 언젠가 이런 빵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 실력이라면, 양파를 캐러멜라이즈하는 양파 타르트를 만드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탄 맛 하나 없이 완벽하게 다디단 맛을 한계까지 선명하게 뽑아내는 양파 타르트를 만들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강 마리오는 눈가를 비볐다.
“당연히 만들 수 있지! 아암, 내가 누군데.”
그는 이 빵을 만든 누군가를 상상했다.
“틀림없이 이십 년 넘게 평생 동안 빵을 구워온 제과장인일 거야. 호텔급 키친에서 일을 하다 온, 해외 유학파. 분명히 르꼬르동 블루의 코스를 완수했겠지. 40대나 50대라면, 정말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천재적인 인물.”
강 마리오는 르꼬르동 블루에 다니고 싶었지만 학비가 모자라 그냥 전액장학금을 주는 학교에 가기를 선택했다.
지금은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휴학 중이다. 하지만 이런 빵을 만드는 사람한테서라면 분명히 배울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는 마저 한 입, 타르트를 베어 물었다.
“이 블랙 어니언 타르트는 분명히 이 사람의 시그니쳐 디쉬일 거야.”
시그니쳐 디쉬(Signature Dish)는 쉐프가 자신의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고유의 레시피를 이용해서 만든, 최선의 메뉴를 말한다. 마리오는 입을 다물고 한참 동안 입안에 남은 맛을 느꼈다. 이 맛을 다시 잃고 싶지 않으니까.
“치킨 파이는 퓨전인가?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 황금 버터 앙금 소보루. 블랙 앤 화이트 크림소라빵. 흠…….”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빵을 갖다놨는지 모르겠다. 쿠키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식사가 될법한 빵만 올려놓은 것도 아니다.
강 마리오는 두 번째로 치킨 파이를 입에 물었다.
인삼과 황기의 씁쓸한 맛이 없이, 짭조름한 치킨 육수가 그대로 분수처럼 폭발해 입안에 가득해졌다.
“뜨겁지 않아.”
하지만 그 온도는 적당하고 따스해서 먹기 딱 좋은 정도였다. 닭 국물에 자연스럽게 적셔진 파이지는 안쪽은 촉촉하며 바깥쪽은 바삭바삭하다. 한약재의 맛을 빼버린 삼계탕 맛! 단지 찹쌀이 아니라 파이지가 그 맛을 대신하고 있으며, 겉에 있는 것이 닭이 아니라 빵이라는 사실만 다르다.
“맛있어…….”
소금과 후추만으로 잘 양념 된 백숙 같은 맛이 난다. 수십 겹의 파이지는 지극히 얇고 고와 비단결 같다. 강 마리오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블랙 어니언 타르트는 이 사람의 시그니쳐 디쉬가 아니었어…….”
블랙 어니언 타르트의 생지와 이 치킨 파이의 생지는 두께부터 다르다. 치킨 파이의 생지 쪽이 더 얇고 바삭바삭하다. 또한 겉으로 보기에 안쪽에 육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도톰하게 올라온 모닝빵 같은 비주얼을 보라! 겉으로 육수가 새어 나오지 않는 파이지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꽤 했을 것이다.
“가장 안쪽의 파이지는 무언가를 섞어 반죽했어. 쫄깃쫄깃할 뿐만 아니라 육수가 스며들지 않게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하는데…… 그 바깥쪽의 파이지는 얇고 바삭바삭하며 쉽게 부스러진다.”
강 마리오의 입가에 침이 흘렀다. 그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페이스트리 쉐프는 분명히 5성급 호텔 출신이야. 아까 그 블랙 어니언 타르트는 호텔에 있을 때 연구했을 거고, 이 치킨 파이는 윈도우 베이커리를 시작하면서 새로 연구해서 낸 야심천만한 작품일 거야. 일 년 이상의 시간을 공들여 연구했겠지.”
막연히 상상 속의 쉐프를 상상하던 강 마리오가 굳게 주먹을 쥐었다.
“이 사람 밑으로 들어가서 배워야겠어. 호주식 미트 파이에 대한 참신한 변주에, 이 완벽한 기술까지…… 분명히 배울 것이 많을 거야.”
그는 벌떡 일어나 점원을 찾아갔다. 그가 창가에 앉아 빵을 먹는 동안, 이미 기존의 빵은 전부 매진되고 없었다. 카운터에 있던 점원이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 빵은 여기서 직접 만드는 겁니까?”
“아, 아니요.”
김가영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지방에 계신 쉐프님께서 직접 구운 빵을 새벽마다 택배로 실어 와요.”
“그, 그곳이 어딘지는 알 수 있을까요?”
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백진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건 저희가 확인해봐야 합니다.”
백진영이 곱지 않은 눈으로 강 마리오를 훑어보았다.
“명함을 남겨주신다면 쉐프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쉐프님께서 관심이 있으시면 직접 연락을 주실 겁니다.”
이미 이러한 질문을 한 사람이 수백 명이 넘었던 듯, 매끄러운 응답이었다. 강 마리오는 실망하지 않고 씩씩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유튜버 강 마리오입니다. 분명히 제 이름을 들으면 아실 겁니다. 꼭 찾아뵙고 배우고 싶다고 전달해 주십시오.”
“예, 예.”
백진영이 명함을 받아 구석에 있는 상자에 넣었다. 그 상자에는 다른 명함들이 수백 장,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강 마리오도 이름을 알고 있는 유명한 베이커리와 호텔 명함들도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