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51화
햇살노인정에서는 티격태격하는 두 노인이었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받은 대우에는 둘 다 불만이 많았다. 당장 이곳 근처로 오면서 가게를 기웃거릴 때, 가게 주인들이 그리 좋은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다. 물건 살 거 아니라면 나가라는 이야기를 진혁 역시 멀리서 들었다. 진혁이 말했다.
“금천복 할머니께서 매일 빵을 그렇게 많이 사 가셔서 어느 분들이 드시나 했는데, 어르신 분들이었군요.”
“그렇지, 그렇지.”
“우리가 사내 체면에 아낙에게 신세만 지고 있어서 원.”
“금 씨는 아낙이라고 할 수가 없어! 대장부지, 대장부야.”
용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딴소리만 하는 두 노인이다. 일봉이 난감해하면서 진혁에게 눈짓했다.
‘형, 어떻게 하죠?’
진혁이 피식 웃었다. 어르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진혁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금천복 할머니 생신이 곧 이라고 들었는데요.”
“아암! 그렇지, 그렇지.”
“아무리 자주 온다고 해도 할매 귀빠진 날까지 알구 있어? 이 총각, 위험한 거 아니야?”
막말하는 홍 노인을 진혁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굳이 상대할 필요도 없다. 홍 노인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점잖은 감 노인이 진지하게 말했다.
“젊은이, 금천복 여사가 우리한테 매일같이 께이끼를 갖다 줘서 우리가 이리로 왔어.”
“그렇지, 그렇지. 금 씨가 여기 빵을 아주 좋아해.”
“금 씨 생일에 우리가 빵을 선물하고 싶은데, 특별한 빵이었으면 좋겠소.”
“특별한 빵이라……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 할매가 모찌를 아주 좋아해. 쫄깃쫄깃한 찹쌀떡 안에 달콤한 팥소가 들어간 것.”
홍 노인이 신나서 말하는데 감 노인이 타박했다.
“십 년 전 얘기를 이제 떠들어! 이가 안 좋아 먹지 못한다고 햐.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데, 특히 여기서 파는 황금 버터 앙금 소보루를 제일 좋아하제.”
“허 참!”
홍 노인이 툴툴거렸다.
“그 속이 꺼먼 노란 빵 말이지. 그건 맛있지.”
그리고 두 노인이 동시에 진혁을 바라보았다. 마치 유치원생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들이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진혁이 입을 다물고 내려다보았다.
“그렇다고 맨날 먹는 그 소보루를 주기도 그렇지?”
“잔치 같은 느낌이 들지 않제?”
“젊은이가 생각하기에는 어때?”
“뭔가 좋은 생각이 없는감?
결국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진혁이 말했다.
“주문제작 생일 케이크를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개인 주문도 따로 받아?”
사실 개인 주문용 케이크 문의를 받은 적은 없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금천복 할머니는 매일 오시는 손님이니까요. 받겠습니다.”
“젊은이가 만드는 건 뭐든 맛있으니께, 어떻게든 만들어 주면 우리가 크게 사례를 하것소.”
“햇살 노인정이 전부 다 돈을 합쳤다 이거야. 우리가 이래 봬도 연금도 두둑하구, 아주 큰 사례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
여러 사람이 돈을 모은 듯, 각자 다종자양한 방식으로 구겨진 지폐들.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가 뒤섞여 넣어져 있는 흰 봉투를 내밀며 감 노인이 민망해했다.
“이거 내가 다린다고 다렸는데, 영 구겨진 게 펴지질 않네.”
“돈은 돈이니까요.”
이 가게의 케이크 가격을 생각하면 넘치는 돈이지만,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수고를 생각하면 더 받아도 좋을 정도의 애매한 돈.
하지만 진혁은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할머니가 좋아한다고 하셨던 옛날식 팥빵을 재현해 볼까.’
재료비도 얼마 들지 않는다.
“저는 생각해둔 게 있는데, 두 분이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나는 바쁜 사람이라……. 흠흠.”
조금 전부터 슬금슬금 진혁의 눈치를 보던 홍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빠져나갔다.
“그럼 감씨가 알아서 하시게나. 할 일도 없을 텐데 말이지!”
홍 노인이 나가고 나서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감 노인이 쯧쯧, 혀를 찼다.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하이.”
“괜찮습니다.”
특별히 노리고 살기를 뿌린 것도 아닌데, 눈치는 빠른 노인이다.
‘쥐새끼 같군. 어디서나 오래 살아남을 인상이야.’
감 노인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금 씨가 여기에 매일 와서 밝은 얼굴만 보여 주니 잘은 모르겠지. 그이도 실은 인생에 복이 별로 없는 사람이야. 스무 살 어릴 적에 남편을 여의고 독하게 살았지.”
“그렇습니까.”
남편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나 일찍 사별했는지는 몰랐다. 그 당시 여자가 남편 없이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용기를 얻은 감 노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죽은 남편 놈이 내 절친한 친우여서 나하고도 아는 사이가 되었지. 그 녀석이 단 것에 미치도록 환장했어. 그중에서도 애성당의 팥빵을 제일 좋아했지. 매달 보름이 되면 애성당의 수염 난 배달원이 빵을 봉다리째 봇짐에 메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팔러 왔는데, 그때마다 쌈짓돈을 모아 서낭당 앞에 서서 기다렸다가 열 개, 스무 개씩 사가곤 했던 게 내 친구놈이야.”
감 노인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 가서, 어이없이 죽었지. 뼈 한 조각 돌아오질 않았어.”
“…….”
“희한하게도 금 씨가 그다음부터 팥빵을 꼬박꼬박 챙겨 먹더라고. 단팥이 가득 든 모찌에, 애성당 팥빵에, 단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던 사람이 말이야.”
“원래 단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 전에는 남편분 때문에 좋아하지 않으시는 척했던 건가요?”
일봉이 끼어들어 물었다. 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나야 모르지. 내가 그 여자 깊은 속을 어찌 아나.”
“…….”
“그때는 팥이 아주 귀했어. 지금처럼 께이끼 같은 것도 없고, 롤께이끼는 정말 귀한 음식이었제, 혼수에 롤께이끼를 가져가는 사람두 있었다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진혁이 물었다.
“애성당이라면……?”
“지금은 문 닫은 지 오래됐지, 암. 아주 잘나가는 부잣집이었는데…… IMF인가? 그때 문을 닫았을 거야.”
“그 집 식구들이 지금 뭘 하는지는 모르시죠?”
“그건 모르는데, 그 집 큰아들이 일본에서 배워왔다고 들었어. 머리가 영글지 않은 열 살 때 밀항해서 도쿄에 가서 빵 만드는 걸 배워가지고 와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고. 그것도 그 아들 죽고 나니 폭삭 망했지만.”
“다른 건 기억나는 게 없으십니까?”
“어어…….”
일봉이 시원한 얼음이 든 물을 들고 와서 감 노인에게 주었다.
“손님이 오셨는데, 제가 너무 늦게 갖다 드리네요. 날도 더운데, 목마르시죠?”
진혁이 눈짓했다.
‘고맙다.’
“그 집이, 아마.”
진혁은 손을 뻗으며 감 노인의 이마를 살짝 건드렸다.
“방금 벌레가 지나간 것 같았네요. 함부로 몸에 손을 대서 죄송합니다.”
“어어, 어. 괜찮아.”
감 노인은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그는 갑자기 머리가 청량하게 맑아진 것을 느꼈다.
“그래, 이제 기억난다. 그 집 외가가 아주 크게 팥 농사를 지었어. 그래서 거기서 직접 가져온 팥을 골라서 팥빵을 만들었지.”
“특별한 팥이었나 봐요.”
“팥이 특별하다기보다 그 고르는 방식이 특이했어. 팥을 전부 다 팥앙금에 쓰는 게 아니야. 원래 쪼그라든 팥이나 벌레 먹은 거, 그런 건 골라내서 앙금을 만드는 건 다 하는 일이지.”
감 노인이 흥겹게 양팔을 벌려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거기는 완전히 성한, 제일 좋은 팥알만 골라내서 그걸로 팥앙금을 만들었어. 그리고 앙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모르겠는데? 이거 하고는 어떤 차이가 납니까?”
진혁이 감 노인의 펼친 손에 황금 버터 앙금 소보루를 하나 쥐여주었다. 오늘 갓 구워나온 빵이다. 우물거리며 잠시 말을 멈춘 감 노인이 눈을 감았다.
“이 빵도 엄청나게 맛있네…… 조그맣고 맛이 대단하네. 아주 침이 줄줄 나는데?”
“먹어보지 못하셨습니까.”
“요 빵만은 금 씨가 남을 주덜 안 해서, 나는 맛본 적이 없제. 혹 먹어보라 해도 내 양보한다오. 과연, 이런 맛이었구나. 평생 먹어보지 못한 맛이야.”
“팥 맛은 어떻게 다릅니까.”
진혁은 기다렸다.
마디지고 주름진, 바싹 마른 손가락이 하나씩 하나씩 빵을 손톱 모양으로 떼었다. 이가 없는 감 노인은 잘게 자른 빵 조각을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녹여 먹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맙네, 젊은이. 이렇게 노인 이야기를 들어주고 빵도 베풀어 주고…… 자네 같은 사람이 진정 선인이야. 일부러 금 씨에게 빵을 많이 주고 있지? 금 씨 살림이 빤한데 매일같이 그 많은 양의 빵을 가져오는 걸 보면……. 나도 고마워서 뭐라도 하고 싶어.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여기 와서 빵 만드는 걸 배웠을 텐데. 그러면…….”
감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금 씨에게 추억의 팥빵을 직접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몇십 년 동안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 한 조각.
‘금천복 씨, 정말로…… 진철 사태 같군.’
아미파의 진철 사태는 어렸을 적 가문끼리 약혼한 정혼자를 비명에 잃었다. 첫날밤도 보내지 못했지만 자신의 길은 정해졌다며 바로 아미파에 귀의하였고 한결같이 무공을 닦았다. 그리고 그러한 진철사태의 곁에는 무당파의 장로, 독고인이 항상 따르고 있었다.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 무엇이든지 도우려고 했지. 진철사태가 그렇게 두지는 않았지만…….’
도사이자 정파의 장로와 비구니인 장문. 그 두 사람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독고인은 내키는 대로 전장을 종횡하면서도 저녁이면 반드시 아미파의 곁에 돌아왔다.
강호의 법도란 무엇이기에, 도리란 무엇이기에!
결국 독고인은 진철 사태를 대신해서 목숨을 던졌다. 독고인은 죽고 진철 사태는 살아났다. 진철 사태는 이후 장문 자리를 제자에게 넘기고 폐관 수련을 하며 강호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마대전에서 수많은 정파인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으나. 독고인의 이름은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게 남아 드넓이 회자되었다.
독고인의 심장에 꽂은 칼은 진혁, 자신이 찌른 것이었다. 죽어가는 독고인의 얼굴에는 연꽃처럼 환한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 그 얼굴이 떠올랐다.
“좋은 팥알을 골라서 팥소를 넣은,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어 보지요.”
진혁이 말했다.
“제가 만드는 편이 더 맛있으니, 직접 만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감 노인이 푸핫, 하고 웃었다. 그때 딸그랑, 종소리가 울리며 아버지가 들어왔다.
“감 선생님?”
아버지의 눈썹이 올라가고 입이 벌어졌다.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가게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오시기 전에 기별하시지 않고요.”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 아시는 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