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49화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아들 자랑이 아주 대단해서, 보고 있으면 부럽다니까, 호호! 빵 만드는 솜씨가 아주 대단하던데.”
자연스럽게 송이버섯을 잘라 석쇠 위에 놓아 주면서 아주머니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사업은 좀 해. 좋은 대학 나온 놈이 갑자기 농장을 한다고 해서 정신이 나갔나 했는데, 꽤 잘 나가더라고. 진혁이, 진혁이 맞지?”
“예.”
“진혁이도 지금 빵을 아주 잘 만든다고 동네에 아주 소문이 다 났어. 청출어람이라고, 아버지 솜씨를 벗어나서 엄청난 빵을 만들더라. 나도 좀 먹어 봤는데 너무너무 맛있더라고. 우리 아들이랑 같이 하면 분명히 잘 될 거야. 얘기 좀 같이 나눠 봐요.”
아주머니가 밉지 않게 가볍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그럼 아줌마는 이제 자리 피해 줄 테니까, 남자들끼리 사업 이야기 잘해 봐. 음료수 필요하면 더 이야기하고.”
일봉이 국산 생맥주의 병뚜껑을 따면서 웃었다.
“우리 사장 형님 먼저 따라 드릴게요.”
“야, 야. 항상 나 먼저 따라주더니 많이 변했다?”
병철이 농담하자 일봉이 정색하며 말했다.
“초보 빵쟁이 입장에서 세상 최고의 빵을 만드는 우리 작은 사장님 당연히 먼저 드려야죠.”
하얀 맥주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잔. 진혁은 술잔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돌아가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체력을 확인하고, 고양이 녀석을 타이를 계획이다. 곱창은 먹을만하고 야채는 신선하지만,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오래 쓸 생각은 없다.
“사업 제안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제안이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진혁을 보고 병철이 약간 당황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저희가 재배하는 야채와 채소를 이용해서, 빵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흠.”
진혁이 턱을 괴었다. 병철이 몸을 진혁 쪽으로 기울이며 열성적으로 말했다.
“케일은 맛있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보통은 착즙 주스, 디톡스 주스 쪽으로 많이 나가죠. 저희는 루꼴라와 로즈마리, 타임, 바질 같은 허브뿐 아니라 다양한 채소와 야채를 기르고 있어요. 하지만 샐러드로 그치는 게 아니라 빵과 피자, 샌드위치로 만들어지면 어떨까요.”
진혁이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진혁 씨가 만드는 빵에 저희 채소가 함께라면, 저희 그린 워터 농장만이 아니라 진혁 씨네 빵집도 완전히 날개를 다는 겁니다.”
“야채를 온라인으로 판다고 들었는데, 어떤 식으로 하고 있죠. 스마트 스토어나 오픈 마켓에서 팔고 있는 겁니까?”
진혁이 진지하게 묻자 병철이 대답했다.
“저희만의 플랫폼이 있다고 할까, 저희 농장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럼 아무래도 오픈 마켓에 비해서 방문자가 적지 않습니까? 또 방문이 반드시 구매로 이어지지도 않을 테고.”
진혁 역시 진희,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온라인 판매에 대해 상의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을 어떻게 구매로 유도하는가,
궁금해하는 진혁에게 병철이 스마트폰으로 웹사이트를 보여주었다.
“구독 방식으로 야채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구독?”
“신문 배달 같은 거죠. 한 달에 두 번씩, 원하는 날짜에 샐러드를 박스째 배달해 주고 있어요. 반응이 좋고 문의도 많아서 주 1회씩 배달해 주는 사업도 고려 중입니다.”
진혁은 깻잎을 집어 입에 넣었다. 신선한 깻잎은 확실히 잘 팔릴 만했다.
‘하지만 돈을 내고 야채를 꼬박꼬박 배달받으려는 사람이 많을까.’
당장 진혁의 집만 해도, 어머니는 시장에서 저렴한 야채를 직접 보고 골라서 사 오신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나만 뒤처져 있는 걸까.’
“저희 야채를 사용한 샌드위치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기획하고 있던 차에 직접 만드신 빵을 먹게 된 거죠. 이야, 이건 진짜 같이 일을 해야겠다. 하고 생각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왜 아버지가 아니라 저를.”
“같은 나이 또래하고 이야기하는 게 더 낫기도 하고.”
병철이 웃었다.
“저도 그 빵집에 안 다닌 게 아닌데. 확실히 맛있어지기 시작한 건 진혁 씨가 오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
“저희는 원래 야채를 좀 더 홍보하기 위한 용도로 샌드위치 단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진혁 씨가 야채를 재료로 다른 빵들을 만들어 주실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판매량에 따라 지속적인 인센티브도 드리려고 합니다.”
병철이 내민 계약서를 바라보면서 진혁이 말했다.
“그렇군요.”
병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사인을 하시면,”
“좀 더 생각해 볼 부분이 많습니다.”
진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제품 빵을 기획하는 데에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죠.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실현화시키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 빵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획 개발비 자체가 빠져 있군요.”
“……!”
병철이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라디오처럼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입이 굳게 닫혔다. 진혁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화장실에 갔던 일봉이 돌아왔다. 분위기가 뭔가 달라진 것을 눈치챈 일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안 보면 아무도 불판 안 보는 거예요? 지금 여기 마늘 다 탔어요. 아깝다.”
“음.”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시고 그러신 건지, 일부러 그러신 건지 모르겠군요.”
병철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제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리서치는 중요하니까……. 예, 그 부분도 추가적으로 책정해서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계약서에 새로 추가된 숫자를 보고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일회성인 부분이 아니니까, 판매되는 금액의 지분 퍼센트를 높이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음…… 그건.”
병철이 곤란해 하며 머뭇거리는데 진혁이 씨익 웃었다.
“저희는 사실 이미 가게에서 빵을 파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일봉이 옆에서 새로 마늘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가게가 좀 미친 듯이 바쁘긴 하죠. 이번에 오븐 회사에 빵 납품하게 된 것 양도 늘었고. 아, 진짜 직원 한 명 더 뽑아야 한다니까요. 제 밑에 막내 하나 더…….”
“다음 달부터 어머니께서 합류하실 거야.”
“신입을 뽑아달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한 분 더 늘어나신다고요?!”
“잘해라, 유일봉.”
“네…….”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에 병철이 물었다.
“그럼, 수익 배율을 5:5로 하고 저희가 야채를 공급하고, 추가로 기획비를 더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진혁은 새로운 제안을 훑어보았다.
“괜찮군요.”
“그럼 사인을…….”
“하지만 제가 결정권자가 아니라서, 아버지와 상의하고 말씀드리죠.”
병철이 입을 살짝 벌렸다.
“아, 알겠습니다.”
거래가 마무리되고 마저 남은 곱창과 우삼겹을 나누어 먹은 후, 술자리는 훈훈하게 끝났다.
진혁을 배웅하고 난 후, 일봉이 병철에게 물었다.
“형, 우리 작은 사장님 등쳐먹으려고 한 거 아니죠? 중간에 나 화장실 다녀오고 나서, 분위기가 싸하던데.”
“아니야, 아니야. 나는 정당한 계약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빠뜨린 부분이 있었지.”
이미 멀어지고 있는 진혁의 뒷모습에 가로등이 비추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 끝에 시선을 두며 병철이 중얼거렸다.
“군대에서 도대체 뭘 했길래, 사업적인 감각이 저렇게 뛰어나지?”
“음? 우리 작은 사장형은 사업가보다는 아티스트 타입인데.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아까?”
“보통 사람이 아니야. 이런 큰 거래를 한 두 번 해본 게 아닌 것 같아.”
“그냥 큰 사장님한테 물어본다고 한 거잖아?”
일봉이 묻자 병철이 대답했다.
“그게 대단한 거라고. 지금 우리 기업 가치가 엄청 치솟아 있는 상황이고 그걸 보여주면서 기를 누르려고 했는데.”
“와, 우리 사장형한테 사기 치려고 한 거 맞네!”
“사기가 아니고 당연한 거지. 소개팅 나가면서 일부러 트레이닝복 입고 나가는 남자가 어딨냐? 면도 하고 깔끔하게 차려입는 게 당연하잖아. 우리가 이만큼 괜찮은 회사다 하고 어필한 거라고. 기를 누르려는 걸 의도한 게 아니라고. 그냥 보통 이 정도 이야기하고 성과 그래프 같은 거 보여주면, 시골 가게 주인들이 알아서 기가 죽을 뿐이지.”
“그게 그거지!”
일봉이 언성을 높였다.
“병철이 형, 안 되겠다. 난 이번에 사장 형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소개해 주려고 한 건데, 완전히 우습게 보고 교섭하려고 했잖아. 형은 사업 경험도 많고 한 번 말아먹은 적도 있고 말도 잘한다고 세상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일봉이 너, 말이 심하다?”
병철이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병철 형한테만 특별히 얘기해 주는 거야.”
일봉이 주변을 둘러보고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장형이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 통해서 들으면 그냥 호구 효자 같지? 절대로 아니야. 누구보다도 가족들을 아끼고 챙기는 건 맞지만, 그게 자기 선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한테도 해당하는 게 아니야. 절대 우습게 보일 사람이 아니라니까.”
“어떤 점이?”
“내가 처음에 김 사장님 가게에서 일할 때 한번 찾아갔었어. 그때 풍기던 위압감이란……. 우리 가게에 발 한 번 들여놓은 적도 없으면서도 내가 거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
일봉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
“스위트 바게트 사장 알잖아? 내가 맨날 욕하던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 망해서 나갔잖아. 처음부터 시작하는 꼴 자체가 망할 거 같더라니.”
병철이 맞장구를 쳤다.
“대놓고 사장 형네 가게 앞에 빵집 차린 것부터 잘못된 거야.”
일봉이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사장형한테 업혀 들어오는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솔직히 사장형이 손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바닥에 머리 부딪혔다고 하는데,”
“진짜야?”
“그럼, 가짜겠어?”
일봉이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나중에 찬일 사장님 한 번 뵈었는데 전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 전에는 큰 사장님을 엄청나게 욕하고 다녔는데, 진짜 거짓말같이 싹 입을 다물었어. 이제 제빵하고 완전히 다른 일 하신다고, 무슨 공장에 취업하신다고 하더라. 나한테도 그간 가르쳐준 게 없다고 사과를 하더라니까? 세상에! 미안하다는 말 한 번 한 적 없던 사람이.”
병철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협박이라도 당한 거 아니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일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협박당했는데 나한테 왜 사과를 해. 난 그냥 알바생 찌끄러기잖아.”
“알바생 찌끄러기라니, 대농장의 후계자면서.”
“아우, 아니야!”
병철이 빙글빙글 웃으며 놀리자, 일봉이 양손을 휘저으며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냥 아주 큰 오해가 있었다고, 자기 인생이 너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니까. 무슨 일인지 진짜 궁금한데 양쪽 다 바위같이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해서 알 수가 없어. 그 주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흠.”
“행여나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말라고.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래, 그래.”
병철이 빙긋 웃었다.
“나도 그런 빵을 만드는 사람을 적으로 두고 싶지는 않아. 가능하다면 매일 사 먹고 싶은 정도라고.”
“실제로 맨날 사 먹고 있잖아!”
“그렇다는 얘기지.”
“작은 사장형…… 진혁이 형에게는 무언가가 있어. 내가 느끼지 못하는 뭔가 커다란 것이 있어. 사람은 좋지만 그거하고는 별개라고. 평소하고 달리 본격적일 때는 대장군님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있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네가 진혁 씨를 아주 존경하고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았다고.”
병철이 양손을 들며 항복 자세를 취했다.
“조금은 섭섭하다? 옛날에는 나한테 형, 형하고 따라다니더니.”
일봉이 씨익 웃었다.
“원래 돈 주는 사람이 최고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