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48화
진혁은 진희 병원의 부조리한 처사에 대해 ‘기억’해두었다. 진희는 아무렇지 않게 조잘거렸다.
“유전자 변형으로 XXY나 XXXY 고양이가 태어난 거지. 그래서 불임인 거야. 아마 유전자형 때문에 값이 꽤나 나갈 텐데……?”
진희가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신기하다는 눈빛이었다.
“그 수의사가 뭐라고 안 했어?”
“데려갈 사람이 많을 텐데, 혹시 좋은 데 보낼 생각은 없냐고 하긴 하더라. 그런데 이미 우리 막내로 받아들였다고 했지.”
“금액은 말 안 해?”
“전에 경매 붙었을 때 3억까지 올라갔다고 하긴 하던데. 그만큼 받긴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던데?”
“나도 그 정도로 들었어.”
진희가 감탄했다. 아버지가 놀라워하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여보, 우리가 3달 동안 일한 것보다 당신이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얘가 더 몸값이 높네. 당신이 복덩이야, 당신이.”
아버지가 어머니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았다.
“자기가 열심히 살아와서 그렇죠.”
어머니가 살짝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달 말까지만 해주고 그만두기로 했어요.”
“잘했어, 여보.”
“우리 가게 일구는데 나도 힘 보태야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수요일이 되었다. 판매가 끝난 후 가게를 정리한 후, 진혁과 일봉 두 사람은 가게를 나섰다.
“유비 포차?”
“네. 유비 포차가, 병철 형네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에요. 아마 가격 좀 빼주실 걸요?”
“이 동네는 너무 좁아.”
진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유비 포차는 빵집에서 진혁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가는 길 도중에 있는 포장마차다.
“여기는 지나다니기만 해도 들어가 본 적은 없는데.”
“그래도 아줌마는 아시잖아요?”
“나는 몰라. 어머니랑 아버지가 아실걸.”
진혁이 일봉에게 대답하며 속도를 맞춰 걸었다.
‘일반인의 속도는, 이 정도로.’
멀지 않은 거리라 두 사람은 금방 유비 포차 앞에 도착했다.
“병철 형네 어머니가 삼국지 팬이셔서 이름을 유비 포차로 하셨대요.”
“촉 포차가 아니라 다행이야.”
“형…… 그런 아재 개그를…….”
‘개그 아닌데.’
바깥은 허름해 보였지만 안은 의외로 깨끗했다. 노오란 조명이 은은하게 실내를 비춘다.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삼면 벽 한가운데에 열린 주방에서 중년 아주머니가 분주하게 밑반찬을 나르고 있었다.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 아주머니가 웃으며 외쳤다.
“일봉이 왔니? 옆에 그 잘생긴 총각이 진혁이구나.”
아주머니가 두 사람을 탁자로 안내했다. 고기를 구울 수 있게 가운데에 둥그런 모양으로 비어 있는 양철 탁자 앞이다.
“형, 여기 앉아요.”
등받이 없는 검은색 철제 의자를 밀어주려던 일봉은, 벌써 옆자리에 앉아 있는 진혁을 보고 놀랐다.
“언제 앉은 거예요? 진짜 번개 같다니까.”
“조금 전.”
“병철이는 지금 오고 있어. 너희 먼저 먹어라.”
“아, 기다릴게요.”
아주머니가 깔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불붙은 숯을 바로 넣어주며, 호쾌하게 말했다.
“기다리긴 무슨. 지가 약속 잡아 놓고 늦는 놈 기다릴 필요 없다. 고기는 뭐부터 줄까?”
“형, 뭐부터 먹을까요? 소 곱창? 삼겹살?”
진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가게, 집, 가게, 집을 오가며 외식을 해 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 평화 일봉 농장에서 먹은 닭 요리에 생각이 미치자, 일봉을 믿어 볼 마음이 들었다.
“넌 뭐가 맛있는데?”
“소 곱창이랑 야채 모둠이요.”
“그럼 그렇게 주세요.”
미리 준비되어 있었는지, 아주머니가 바로 접시에 가득 담긴 곱창을 내왔다. 소복이 담긴 곱창 옆에는, 주문하지 않은 다른 부위들도 가득했다. 붉고 신선해 보이는 내장들이다.
“내가 서비스로, 우삼겹이랑 염통도 준다.”
“이모 최고!”
일봉이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외쳤다.
숯불이 일렁거리며 지글지글 곱창이 익어가는 동안,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불길을 바라보았다.
‘오븐과 비슷하면서도 달라. 공기가 대류하면서 열기가 위쪽으로 소용돌이치고 있군.’
화기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도 기묘한 감각.
‘불길이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어. 대단히…… 아름답군.’
깨달음이 그를 강타했다.
‘이 불의 길을 그대로 응용하면, 오븐 안의 빵을 숯불처럼 구울 수도 있겠어.’
빵에 불맛을 입힌다면, 어떤 빵이 탄생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진혁의 귀에 낯선 발소리가 들렸다. 신중하고 무거운, 닳을 대로 닳은 구두가 내는 발걸음 소리였다.
‘열심히 일하는 남자야.’
발소리만 들어도 성격을 대강 알 수 있다.
아직 일봉의 귀에 발소리가 들릴 때는 아니다. 일봉은 푸릇푸릇하고 내부가 맑은 오이와 상추, 당근과 파채를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이게 병철이 형이 아쿠아뽀닉스? 농법인가 뭔가로 재배하고 있는 야채에요.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농약 안 쓰고 비료는 물고기 배설물로 대체해서 친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인 최신 농법이래요. 형이 이걸 미국에 가서 배워 온 거예요.”
“너 그 얘긴 저번에 했다.”
“제가 듣고 너무 신기해서…… 하하. 저희 집처럼 닭을 풀어서 키우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는 웰빙이잖아요. 그런데 병철이 형이 하는 웰빙은 뭔가 미래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할까. 그래서 신기해요.”
곧 문이 열리고 안경 쓴 남자가 들어왔다. 양손에는 무겁게 검은 비닐봉지를 바리바리 싸든 채였다.
“안녕하십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봉지들을 내려놓고서 허리를 굽혀 90도 각도로 깍듯하게 인사한 남자는, 허름한 포장마차와 어울리지 않게 완벽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일봉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렇게 차려입으니까 진짜 멋있다, 병철이 형.”
“난 원래 멋있어.”
“자뻑하지 말고. 여기 우리 젊은 사장님이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민병철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키가 팔 척은 되어 보이고 안경을 썼는데 호리호리하게 말라서 더 커 보인다. 진혁이 마주 일어나 가볍게 묵례했다.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병철이 씨익 미소 지었다.
“제가 가게는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 빵은 많이 먹어 봤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클래식 지휘자처럼, 양팔을 활짝 벌리며 병철이 극적으로 말했다.
“신의 손을 갖고 계시더군요.”
“…….”
진혁은 딱히 대답할 맛이 없었다. 그는 오이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아삭하고 상큼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오이는 마치 오늘 따온 것마냥 신선함 그 자체였다.
“오이가 맛있군요.”
진혁이 짧은 감상에 민병철이 입꼬리를 올렸다.
“맛있죠? 제가 새벽마다 직접 따서 어머니께 보내드리는 채소 중 하나입니다. 여기 깻잎하고 상추,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지죠. 케일도 세 종류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병철이 검은 비닐봉지에서 녹색 잎채소를 하나 꺼내 들었다. 방금 밭에서 뽑아 온 것처럼 뿌리에는 갈색 흙이 묻어 있다. 잎의 색깔은 선명한 푸른 빛이나 줄기는 붉고, 잎의 생김새는 고불고불하니 파마한 것처럼 여러 겹 접혀 있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고 비타민 K를 충분히 공급하며, 비타민 A와 C도 풍부하죠. 지구상의 슈퍼 푸드라고 할 수 있는 케일입니다. 이건 적곱슬 케일이고,”
그는 녹색 잎이 타원형으로 둥글며 줄기가 연두색인 다른 채소를 꺼내 보여주었다.
“챔피언 케일입니다. 다른 케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잎이 제일 부드럽다는 특징이 있죠. 그리고 저희는 레드 러시안 케일도 키우고 있습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레드 러시안 케일은 줄기가 보랏빛이고 잎이 어두운 녹색이죠. 철분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달콤한 향이 납니다.”
그가 내놓는 채소들 모두 생기가 넘쳤다. 진혁은 내심 감탄했다.
‘채소들 모두 살아 있어. 우리가 받아오는 채소들보다 훨씬 신선하군.’
당장 받아서 화분에 심는다면 두고두고 키우는 것이 가능한 최고의 상태다.
병철의 어머니가 나와서 집게로 곱창을 집어, 앞접시 위에 하나씩 올려 주었다.
“자, 자. 먹고 해, 먹고!”
그녀가 웃음 지으며 진혁의 앞에 큼직한 곱창 토막을 올려 주었다.
“잘생긴 총각이 많이 먹고.”
“……감사합니다.”
“어머니! 지금 진지한 이야기 중이었다고요.”
“곱창 탄다, 어서 먹어라.”
“네.”
어머니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조용해진 병철을 보며 일봉이 킥킥 웃었다.
“이모님,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제가 구울 때랑 이모님이 구울 때랑 맛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니까요.”
진혁은 접시 위에 놓인 곱창 토막을 바라보았다. 엄지손가락만 한 곱창은 군침 도는 갈색으로 그을려 있다.
“이 쌈장도 내가 직접 담근 거예요.”
아주머니가 진혁에게 말했다.
“거기 찍어서 여기 깻잎에 싸 먹어봐요.”
“아니, 아니. 지금 처음 먹는 거잖아? 그러니까 쌈장 말고 먼저 일단 맛을 보고, 그다음에 기름장을 찍고. 마지막으로 쌈장에 찍고, 그리고 나서 깻잎에 싸서 먹어요.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병철이 끼어들었다. 일봉도 자기 의견을 나름 떠들었다.
“저는 기름장이 제일 좋아요. 역시 곱창에는 기름장이지.”
“…….”
마지막으로 곱창을 먹을 때 뭐하고 같이 먹었더라. 솔직히 말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즐기는 음식이 아니었고, 소주 안주로 몇 번 먹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최근에 한 외식은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 찾아갔던 디저트 가게들뿐. 일봉이네 닭고기 식당도 사실 업무의 일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진혁은 곱창을 입에 넣었다.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맛있는데.”
진혁은 사실 곱창을 즐겨 찾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만했다. 그는 아버지가 소 곱창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문득 떠올렸다. 와서 먹는다면 좋아하실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어.”
진혁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은효하고 운정 씨? 그 두 분은 자주 오시는데.”
“…….”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아주머니는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뻘이니 내가 말 놔도 괜찮지?”
부모님이 동네에 이곳저곳 발이 넓은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포장마차 주인까지 잘 알고 지내는 줄은 몰랐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삶을 살아온 연령으로 치면 오히려 아주머니가 진혁의 고손녀 뻘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인정하는 만큼 부모님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분들도 인정하기로, 그는 마음을 놓았다.
짧은 순간 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가고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