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47화
‘이렇게 엄청나게 맛있는 빵을 들여놓는다면, 가게의 매출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
사실은 100개, 200개를 가져오고 싶었다. 잘 되면 천 개까지 늘릴 생각도 있다. 백정흠이 보기에 충분히 그 빵들은 그만큼 가능성이 있었다.
눈치 없는 조카는 중얼중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원래 빵 좋아하지도 않는데, 삼촌이 오븐으로 빵 좀 직접 구워서 해 달라고 하셔서 노력했는데.”
듣다 보니 백정흠은 화가 치밀었다. 여태까지는 조카 놈이 어떤 소리를 해도 어리니까 나이 들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놈과 형님의 아들놈은 나이가 비슷하다. 하지만 태도는 전혀 다르다.
“너 이 녀석아!”
백정흠이 진영이 앞, 테이블을 후려쳤다.
쾅!
들썩이는 테이블 소리에 진영이 놀라 두 눈을 들었다. 송아지처럼 순한 두 눈동자가 끔뻑끔뻑,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백정흠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진영은 여태까지 삼촌이 자기에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가끔 회사의 다른 직원이나 친딸, 친아들에게 화내는 적은 있어도,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한 적은 없었다.
“삼촌……?”
“잔말하지 말고, 이거나 먹어봐.”
백정흠이 봉투에서 빵을 꺼내어, 진영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오늘 새벽에 배달되어 온 신선한 빵이다. 백정흠은 모르지만, 진혁이 직접 숙성시켜 구워낸 빵들이다.
“웁!”
진영이 켁켁거리며 기침을 했다.
“웁푸푸!”
백정흠은 팔짱을 끼고 철없는 조카를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분노에 차 있던 백진영의 얼굴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미간이 풀어지고, 다물려 있던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콧구멍은 마치 이미 사라진 향기를 잡으려는 양 벌렁거리고, 광대가 저절로 위로 솟는다.
“……삼촌, 이거 너무 맛있어요.”
방금 삼촌이 억지로 입에 쑤셔 넣은 것에 불평을 토해내려고 했던 진영이, 입가에 검은색 크림을 묻힌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이건 무슨 빵이에요?”
“블랙 앤 화이트 크림 소라빵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깊은 초콜릿 맛이 나는데, 이게 소라빵이라고요? 어떻게 소라빵에서 이런 맛이 나지?”
진영이 슬금슬금, 백정흠 앞의 샘플 봉투로 손을 뻗었다.
“담백하고 깔끔한 고급 생크림하고, 그리고 완전히 진한 초콜릿 크림이 부드러운 빵하고 섞여서 입안에서 그냥 녹아내리는데요? 배합이 완전 미쳤어요. 휘핑크림 올린 코코아를 빵에 찍어 먹는 것 같은 맛이에요.”
음료수에는 일가견이 있다 자부하는 진영이, 입맛을 다시며 백정흠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다른 샘플들도 있는데 제가 좀.”
조금 전까지 야단맞고 있던 것은 잊어버린 듯 빵을 찾고 있는 진영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백정흠이 깊고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영아.”
“삼촌.”
“오늘 영업은 열 시부터냐?”
“네.”
“지금 여덟 시잖아. 9시부터 가게 앞에 오픈 매대를 열고, 이 빵들을 샘플로 나눠 줘.”
“돈을 안 받고요?”
“작게 잘라서 무료로 먹을 수 있게 나눠 줘야 해.”
“왜요?”
이것조차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한다. 머릿속에 의형님네 아들이 스쳐 지나간다. 모델을 해도 좋을 정도로 큰 키에 잘생긴 얼굴. 게다가 제과제빵으로 유명한 향인 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교내 대표로 전국 대회에 나올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더군다나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나라에서 보장할 정도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백정흠은 진영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다리가 불편한 것과 독립적인 건 별개의 일인데. 내가 얘를 나한테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들었어…….’
백정흠이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한다. 여태까지 스스로 하도록 시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하면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그대로 따라오다 보면 언젠가 스스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아니야.”
“예? 삼촌.”
“네가 무료로 나눠 주기 싫다면 나눠 주지 않아도 좋다, 진영아.”
갑자기 말이 바뀐 삼촌을 바라보며 진영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촌?”
“너는 어떻게 하고 싶냐?”
“음.”
진영이 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어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다가 입을 다무는데, 정흠이 재촉했다.
“말해 봐라, 백진영.”
“화내실 거죠……?”
“아니, 화 안 내.”
백정흠이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키운 게 나야. 내가 잘못한 거다.’
백진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는 공짜로 주고 싶지는 않아요, 삼촌.”
“그래.”
“삼촌이 공짜로 일한다, 열정 페이는 우리 회사에서는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빵이 공짜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제가 공짜로 일하는 거고, 그 빵을 제가 만든 것도 아니니까. 삼촌이 빵을 가져오신 가격이 있잖아요.”
의외로 이전에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대로 논리적인 이야기를 해서, 정흠은 약간 놀랐다. 그저 공짜로 주기 싫다, 라는 떼쓰기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 공짜로 가져오신 거예요?”
“아니야. 도매가로 줬어.”
“으, 으음.”
진영이 웃었다.
“빵을 개당 100원씩에 내놓고, 그 돈은 전부 지체장애인들을 위해 기부했으면 좋겠어요.”
“진영아.”
“그리고 빵값은 제가 따로 삼촌한테 드릴게요.”
“네가 그런 생각을…….”
정흠이 입을 다물었다. 백진영이 열심히 말했다.
“솔직히 회사에서 다 놀리는 거 알아요. 다리 병신이라고 놀리고, 빵도 못 만든다고 놀리고. 제가 부자인 삼촌이 있어서 가게 받아서 놀고 있는 무능력자라고 소문 난 것도 다 알아요.”
“누가 그런 얘기를 해! 당장 데려와라.”
백정흠의 양미간이 찌푸려지며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가 탁자를 탕하고 쳤다. 하지만 진영은 동요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니까요.”
“진영아!”
“이 빵, 진짜 맛있어요. 이 빵을 계속 받으면 카페가 분명히 잘 될 거예요.”
진영이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그건 내 힘이 아니라, 삼촌의 힘으로 한 게 되겠죠.’
그는 입 밖으로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누가 만든 거예요?”
“의형님이.”
“새벽에 트럭을 보내서 가져온 걸 보면…… 여기서 멀어요?”
백정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지. 경기도 소망시에 있으니까.”
“진짜 멀긴 먼데.”
진영이 고개를 들었다.
“이 빵을 팔 수는 있는데, 삼촌. 제가 이 빵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받아서 팔다가 그쪽 가게 사정으로 더 이상 납품이 안 들어오거나, 다른 가게에서 똑같은 빵 받아서 팔면…….”
“그건 내가 다 고려해 놨다.”
정흠이 말을 가로챘다.
“강남구에는 독점으로 공급하기로 했고, 그쪽에는 의형님 가게 물려받은 아들도 있어. 아들이 빵집 계속할 때까지는 우리 가게에 빵을 내줄 거야. 개수는 그쪽에서 조절하고. 이것 봐라.”
정흠이 내민 계약서를 받아본 진영이 숫자를 훑어보았다.
“……?! 이 맛인데 이 가격이라고요?”
진영이 눈을 크게 뜨며 의심스러운 듯 정흠을 바라보았다.
“삼촌, 사기 치고 온 거 아니죠?”
“아니다, 인마! 거기서 원래 그 가격에 팔어! 우리가 운송 비용 다 부담하고, 그쪽에 최대한 유리하게 한 거야. 이 백정흠이가 의리 빼면 시체잖냐.”
“아니, 도대체 원가가 얼마길래…… 그 동네 물가는 십 년 전에 멈추었나?!”
“진영아. 네가 원하는 그 지체장애인 학교에 기증하는 거 말이다.”
“삼촌.”
“이번에 빵 팔면서 같이 해 봐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삼촌.”
“공짜로 팔지 않고, 먹고 맛있는 만큼 돈 내라고 해. 최저 금액 백 원 받으면 어떠냐, 전액 지체장애인 학교에 기증하고.”
“맛있는 만큼?!”
진영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모인 금액의 백 퍼센트를 내가 붙여서 기증하마. 백만 원 들어오면 내가 백만 원 붙여서 기증할 거라고, 근사하게 포스터 하나 뽑아주마.”
“솔, 솔직히 나는 삼촌을 잘 만나서 여기서 가게 하고 있지만. 남들이 다 나같이 사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 넌 착한 애야.”
정흠이 진영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럼 저 다른 빵도 먹어볼게요.”
“그래, 그 블랙 앤 화이트 크림 소라빵인가 뭐도 맛있는데, 이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인가 뭔가 하는 것도 맛있어. 그리고 또,”
정흠은 열렬하게 빵의 맛있는 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삼촌이 이렇게 빵을 칭찬할 만하네요. 엄청나게 맛있어.”
샘플 빵과 앞으로 주문할 빵의 개수에 대한 의논을 마치고 백정흠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진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지금 1층 장사가 잘 나오면, 소영이 누나랑 지환이 형이 좋아할까요?”
정흠의 친딸인 백소영은 회사의 인사부에서, 지환은 재경부에서 일하고 있다. 각자 직위는 높지 않지만 헌신해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진영은 그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돈만 받아가는 조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일부러 음료에만 집중하고 있는지 삼촌은 몰라요.”
씁쓸한 혼잣말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13장
그날 저녁.
가게를 닫고 돌아온 아버지는, 고양이의 사타구니 사이를 노려보았다. 암컷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다리 사이의 털 사이에 약간 볼록한 부분이 있다. 털을 헤쳐보면 진희 새끼손톱보다 조그마한 불알이 한 쌍,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다. 작아도 고양이 고환이라고, 보송보송한 노오랑 털이 뒤덮고 있어 언뜻 보면 고환인 줄 알아보기 어렵다.
“네가 고자라니.”
진희가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고양이 신문에서 본 적이 있어요! 하양, 노랑, 까만색이 전부 나타나려면 노랑 유전자랑 검은 유전자 두 개 X염색체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수컷은 XY니까 노랑이 아니면 까망이일 수밖에 없다고.”
“너 오늘 병원 간다며? 안 가고 뭐 해?”
“병원 사정으로 급 휴가.”
“그런 경우도 있어?”
아버지가 신기해했다.
“갑자기 일하러 불려가는 적은 있어도, 갑자기 휴가라니.”
“선배가 갑자기 다음 달에 학회 가게 되면서, 이번 달 근무 일수 맞춰야 한다고. 수선생님이 직접 부탁하셔가지고 제가 쉬게 됐어요. 마침 고향 집에도 있고.”
“야, 너 아까 아침에 병원 간다고 나갔잖아.”
두 시간 거리의 병원에 출근을 하다가 퇴근하라는 얘기를 듣다니, 이미 시간은 낭비할 대로 낭비한 셈이다. 부당한 상황에 진혁이 이마를 찡그렸다. 진희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렇게 많이 안 갔어. 그리고 나도 갑자기 쉬는 날 생기니까 땡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