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6화 (46/656)

제 046화

“제가 반려동물용 케이크는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역시 어렵겠군요.”

“봉칠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뭡니까?”

“음, 아마.”

손님이 말했다.

“단호박하고 연어? 닭고기도 좋아합니다. 고구마랑.”

“그 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겠군요.”

혼잣말처럼 진혁이 중얼거리자 단골손님의 눈이 번뜩였다.

“주, 주문 받아주시는 겁니까?!”

진혁이 봉칠이를 바라보았다. 길고 하얀 털로 온몸이 싸여 잘 보이지 않지만, 천안투마공을 통해 보면 알 수 있다. 뼈와 거죽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진혁이 개의 위에 난 덩어리를 보며 단골손님에게 말했다.

“위 정밀 검사는 받아 보셨습니까?”

“요즘 잘 먹지를 못해서…이번에 검사 받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흠.”

단골손님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만들어 주시는 건가요?”

“위 정밀 검사 결과를 보고, 말씀해 주시면 적당한 걸 만들어 보도록 하죠. 하지만 금액은,”

진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선불입니다.”

“물론이죠!”

단골손님이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와 명함을 꺼냈다.

“저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 김도형이라고 합니다. 다음 달 1일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몇 시에 찾으러 오실 겁니까?”

진혁은 머릿속으로 메모해 두었다.

덜컥.

문이 열렸다. 안에서 예방 접종을 마치고 나온 수의사가 흥분해서 말했다. 품에는 얌전한 진호를 안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아주 건강하고 덩치도 큽니다. 집에서 소중하게 대해주셨나 봐요.”

“……그런 셈이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의사가 마저 말했다.

“아주 복덩이를 데려오셨습니다.”

“……이게요?”

“이름은 진호, 라고 하셨죠?”

“예.”

옆에서 단골손님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군요. 너무 귀엽게 생겼네요. 6개월 정도 됐나요?”

“2개월 정도입니다.”

수의사가 대답했다. 고양이의 커다란 덩치를 보고 단골손님, 김도형이 놀라 말했다.

“예? 저도 이런 고양이를 키워 보았는데 이렇게 금방 크지 않을 텐데.”

“유난히 발달이 좋네요.”

수의사가 웃었다.

“이 고양이는…… 아주 희귀한 녀석입니다.”

◈          ◈          ◈

진혁은 집에 돌아가, 고양이를 잘 타일렀다.

“집 잘 지키고 있어라.”

“야아오오오오오옹.”

“가게는 위생적인 곳이라 네가 올 곳이 못 돼.”

“야아오오옹.”

“집. 잘. 지키고. 있어라.”

다시 가게까지 돌아가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바람같이 가게에 도착한 진혁을 맞이한 것은 아버지와 일봉이었다.

“금방 왔네?”

“가까우니까요.”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어요?”

“괜찮아. 우유 식빵은?”

“다 구웠고 비닐 포장도 마쳤어요.”

“좋아.”

진혁은 약간 생경한 기분이었다.

‘최근 3개월 동안은 내가 전부 혼자 해 두었던 일인데.’

아버지나 일봉이 하는 것보다 진혁 자신이 하는 편이 빠르다. 그들은 일반인답게 손이 느려서, 진혁이 혼자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진혁이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자 이미 훌륭하게 일을 마쳐둔 상태인 것이다. 원래는 갔다 와서 진혁이 도울 생각이었다.

“일봉이 이제 손이 꽤 빨라졌네.”

“큰 사장님이 도와주셨어요.”

“나도 빵을 굽고 나서 시간이 좀 남더라. 요즘 몸이 좋은지, 확실히 일하는 속도가 빨라졌어.”

“잘 됐군요.”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새삼스레 깨달았다.

‘여기는 나 혼자 하는 가게가 아니니까.’

“택배는 갔어요?”

“아까 트럭째 전부 실어 갔지.”

“진혁 스페셜 모두 50개씩, 사실 싣고 나서 한참 남았어요.”

빵 진열까지 전부 마치고 손님을 기다리기 전, 잠시 있는 휴식 시간. 일봉이 조잘거렸다.

“이제 여기 빵도 강남까지 진출하고, 너무 멋있어요. 사장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네, 하하.”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고양이는? 예방 접종 맞고 괜찮대?”

“괜찮죠.”

“내가 고양이 예방 접종은 모르는데 아기 예방 접종은 해 본 적이 있잖아.”

아버지가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했다.

“너하고 진희, 어렸을 때 넌 멀쩡한데 진희는 탈이 자주 나서. 예방 접종 맞고 나면 한참은 앓곤 했어. 약한 감기처럼 와가지고. 의사는 그게 정상이라고 하지, 열은 오르지, 느이 엄마가 고생 많이 했다.”

“고양이는 건강해요. 아, 그런데 하나 특이한 점은 있었어요.”

진혁이 덧붙였다.

“원래 삼색 고양이는 유전자 때문에 전부 암컷인데, 얘는 수컷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색이는 전부 암컷이라고? 그건 몰랐네. 그런데?”

“1만 마리 중에 한 마리만 수컷으로 태어난대. 아마 불임일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

“…아….”

일봉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에 사장님 댁에 새로 데려온 고양이가 고자라고요?”

“…99.99%의 확률로.”

“불쌍하다. 태어날 때부터 고자라니…….”

일봉이 쯧쯧, 혀를 찼다.

“왜 그렇게 공감해?”

아버지가 웃으며 물었다.

“저희 집이 농장 하잖아요. 아시다시피. 수탉들이 진짜 짐승적인 본능이 엄청나요. 능력 있는 수탉들은 암탉을 열다섯 마리까지는 감당을 해요. 보통은 네 마리? 그런데 저희가 지금 수컷 두목이라고 해야 되나… 보스급인 수탉 호칠이랑 호팔이가 각각 암컷을 스무 마리씩 거느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래서 호일이랑 호이, 호삼이 호넷이 호달이 호육이, 얘네들은 암탉을 한 마리도 못 가지는 거죠. 모태 솔로랄까? 능력이 없다고 해야 하나 여튼 암탉 없이 홀로 무리에서 벗어나서 살아요.”

“그거랑 우리 진호랑 무슨 상관인데?”

아버지가 궁금해했다.

“후천적인 고자가 된 애들인데 얘네들이 되게 외로워 보이거든요. 아침에 꼬끼오하고 울 때도 뭔가 서러워 보이고. 그런데 원래 선천적으로 고자면 더 슬프지 않을까 해서요.”

진혁이 덧붙였다.

“유전적 돌연변이 때문에 수컷 삼색이는 보통 3억 정도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 팔 생각은 없다고 말해 뒀어요, 아버지.”

“헐.”

일봉이 입을 딱 벌렸다. 아버지도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식빵 봉지를 놓쳤다.

툭.

식빵 봉지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진혁이 자연스럽게 받아서 올려놓았다.

“고양이 몸값이 3억이라니, 내가 잘못 들은 거냐?”

“연구용으로 그렇게 팔린 적이 있대요. 팔 생각 있냐고 물어보는데 거절했습니다.”

“허, 참. 얘 몸값이 삼억.”

일봉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리는 사이에, 진혁이 말했다.

“자, 일합시다.”

“그래!”

◈          ◈          ◈

“삼촌. 외부에서 빵을 받아 왔다구요?”

화웅 베이커리 앤 카페.

강남의 한복판, 그것도 환승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위치 좋은 디저트 카페다. 사원 복지를 위해 사원들에게는 할인된 가격으로 빵을 판매하고 있다. 그곳의 점장을 맡고 있는 백진영이 툴툴거렸다.

“제가 열심히 만든 빵이 이만큼 쌓여 있는데.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미리 말씀해 주시지.”

“진영아.”

백정흠 사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약간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네가 어제 전화를 안 받았잖냐. 오늘은 샘플로 50개씩만 받아왔다. 메뉴판도 내가 준비해놨다.”

“50개라뇨!”

당황한 진영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저희 하루에 케이크가 스물다섯 개 팔릴까 말까 한 거 아시잖아요. 저희는 케이크가 아니라 커피가 주메뉴라고요. 그렇게 많이 갖다 놓으시면 어떡해요.”

계산기를 두들기며 진영이 한숨을 쉬었다.

“삼촌. 제 빵이 그렇게 맛이 없어요? 저한테 의논도 하지 않고 바로 주문을 넣을 만큼?”

진영이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백정흠을 올려다보았다. 백정흠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백진영은 정흠의 죽은 남동생의 외동아들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으면서, 어린 백진영은 다리를 크게 다쳤다.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고 장애인이 된 조카가 안쓰러웠다. 정흠은 아내의 양해를 얻어 진영이를 데려다 키웠고, 나이가 들자 회사 안의 가게를 내주었다.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

백정흠의 한숨이 점점 더 길어졌다.

‘내가 형님으로 모시기로 한 분의 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치는 대로 배워서 똑 부러지게 하고 있던데. 오냐오냐해서 키웠더니, 자기가 받아왔던 게 당연한 건 줄 아는구나.’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조카가 애틋하기만 했다. 언제나 눈치를 보며 구석에서 주눅 들어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어린아이. 점점 더 커가면서 진영이는 죽은 남동생을 똑 닮은 얼굴로 자라났다. 서른 살에 요절한 남동생의 얼굴, 항상 자신을 믿고 따르던 놈의 얼굴을 진영이의 얼굴에서 매일 보았다.

그래서 상냥하고 다정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없으면 넌 어찌 되겠냐.’

아내는 진영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들과 딸도 마찬가지다. 만일 당장 정흠이 급사한다면, 진영이는 돈 몇 푼과 함께 세상에 남겨질 것이다. 제 명의로 되어 있는 얼마 되지 않는 돈도 홀랑 사기당해 날려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카페 경영을 시킨 거였는데.’

가게를 제대로 꾸려나간다면, 회사에서 먼 곳에 따로 제대로 된 가게를 차려 독립시켜줄 생각이었다. 삼촌의 후광이 있는 곳에서 햇빛을 받아 조금 자라나면, 마치 화분을 분갈이하듯이 멀리 보내려고 했다. 그래서 아내의 불평을 무릅쓰고 여기 가게를 맡긴 것이었는데.

‘강남에서 제일 맛없는 가게로 소문이 났지.’

커피는 그렇다 치고 빵이 끔찍하게 맛없기로 유명해졌다. 유명 블로거 한 명이 리뷰를 했고, 마치 성지 순례를 오듯이 ‘맛없기 그지없는 빵’을 맛보러 사람들이 놀러 왔다. 맛없는 빵 리뷰는 한동안 인터넷에 떠돌았고, 모두가 ‘믿거빵’이라고 부르는 가게가 되어 버렸다.

‘믿고 거르는 빵이라던가.’

백정흠이 주로 상대하는 오븐 판매처는 대기업과 학교,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에 그 소문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영향을 준 것도 아니었다. 계약할 때마다 회사 1층의 빵집 이야기가 나오면, 백정흠은 이야기를 돌렸다.

‘내보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을 했지.’

하지만 그는 진혁이네 가게의 빵을 먹고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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