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5화 (45/656)

제 045화

“잠깐만 아무도 말하지 말아봐요.”

“야아오오오오옹-.”

“너도 말하지 말아 봐.”

고양이는 다시 조그마한 입을 벌렸다. 진혁이 고양이를 바라보며 눈을 마주쳤다.

‘곱게 말할 때 조용히 해라.’

“…….”

전음을 들은 고양이,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혀를 집어넣는 것은 깜빡했는지, 검고 촉촉한 코 아래 세모 모양으로 다문 입 앞으로 분홍빛 혀가 쏘옥 튀어나온 채다.

‘혀 집어넣어라.’

고양이는 혀를 집어넣었다.

‘그래.’

고양이 진호가 황토색과 검은색, 흰색 얼룩이 있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진혁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 녀석, 전음은 이해하는구나.’

“푸하-끝났다.”

혈압을 전부 다 잰 진희가 귀에서 청진기를 뺐다.

“완전히 정상이네요…….”

진희는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를 발라보더니 손을 뻗어 아버지의 팔꿈치를 살며시 더듬어 보았다.

“여기, 여기, 여기. 전에는 아프시다고 했잖아요? 혈압 잴 때마다 앓는 소리 내셨는데.”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

“정말로 좋아진 게 맞구나. 피부도 저보다 더 좋은 것 같고. ……엄마는요?”

“나도 진짜로 괜찮아.”

진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머니 옆에 앉아서 손을 뻗었다. 입가에는 조금 전까지 먹고 있던 크림치즈를 묻힌 채다.

“엄마 혈압도 좀 재 볼게요.”

진희가 푸슉푸슉, 혈압계에 달린 검은 고무공을 손으로 힘차게 누르는 동안 옆에서 고양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돌아다닌다. 마침내 2차 혈압 측정이 끝나고 진희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엄마 저번에 혈압이 꽤 높았는데, 이번에 완전 내려갔어요. 어떻게 된 거지?”

“얘, 요즘 진혁이가 기체조를 알려줘서 하는 데 효과가 좋아.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건강 신경 많이 쓰고 있어. 나중에 너희들에게 짐 되지 않으려고 한단다.”

“엄마! 무슨 그런 소릴 다 해요. 엄마가 우리한테 짐 되는 날이 언제 온다구.”

진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가 손을 뻗어 진희의 입가에 묻은 크림치즈를 휴지로 닦아 주었다.

“어른스럽게 굴면서도 입가에 이런 걸 묻히고 있어? 아직 애야, 애. 넌 도대체 언제 철 들어서 시집가니?”

“엄마! 나 아직 결혼할 나이는 아니야.”

“난 니 나이에 시집와서 너랑 진혁이를 낳았어!”

“지금은 그때랑 시대가 다르잖아.”

진희가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그럼 두 분 다 프리미엄 말고 그냥 베이직 검진으로 해드릴게요. 그건 진짜 기본적인 거니까 얼마 하지도 않아요.”

“아빠가 내 돈으로 할게. 네 쌈짓돈 써서 검사받아봐야 기쁘지 않다.”

아버지와 진희가 한마디씩 하는데 진혁이 말을 잘랐다.

“그냥 내가 낼게. 프리미엄으로 해.”

조용히 있던 진혁이 말하자 모두 진혁을 바라보았다. 진희가 씨익 웃었다.

“맞다, 진혁이 너도 건강 검진 받아보자.”

“나는 왜? 나 군대 제대한 지 반년 됐다. 건강 그 자체야.”

진혁이 양팔을 들어 올려 보였다.

“직계비속 건강 검진 할인은 네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돼. 그러니까 할인될 때 빨리 받아야지.”

“……그게 무슨 논리야?”

“군대 갔다 와서 몸 망가지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다고 들었어. 너 지금 하는 일도 거의 밀가루 포대 나르고 반죽하고 완전 노가다 아니야? 한 번 검사해 두자. 내 제대 선물이야.”

“내가 원치 않는 선물인데……,”

“이 고양이 진짜 귀엽다. 진혁이 네 허벅지에 기대서 자는 것 같아.”

진희가 갑자기 딴소리를 하며 몸을 기울이더니 부모님께 들리지 않게 진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야, 받는다고 해. 네가 건강 검진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 모시고 가야 검진받으실 거야. 부모님 나잇대가 제일 생활습관 질환에 취약한 나이란 말이야. 지금 혈압이 높다가 갑자기 떨어진 게 오히려 뭔가 안 좋은 질환이면 어떡해?”

‘부모님 몸은 진짜 괜찮은데.’

하지만 왜 괜찮은지 설명할 수 없었던 진혁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알았어.”

“좋아! 되는 날짜 알려주면 내가 예약해 둘게요.”

‘사실은 병원 입사 2주년 축하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부모님 건강 검진을 챙기러 온 거구나.’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어머님 생신, 그리고 건강 검진까지. 맘먹고 효도를 한다고 하지만 진희가 챙기는 것과는 다르다.

‘여자라서 그런가, 간호사라서 그런가? 저런 걸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건.’

진혁의 옆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던 진호가 폴짝 뛰어 탁상 위로 올라갔다.

“에비! 거기 올라가면 안 돼.”

어머니가 고양이를 안아 올려 품에 안았다.

“우리 진호, 엄마 말 잘 들어야지?”

고양이는 몸을 비틀며 액체처럼 미끈하니 빠져나오려고 했다. 아주 짧은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고양이를 놓아주려고 했으나, 진혁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진혁이 진호를 향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엄마 말 잘 들어라.’

“야아오오옹-”

고양이는 움찔하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아기고양이 진호는 갑자기 몸에 힘을 빼고 어머니에게 안겼다. 작은 체중이 팔 안에 안겨오는 것을 느낀 어머니가 행복해했다.

“어머, 얘가 이제 나한테 마음을 열었나 봐.”

어머니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녀가 집게손가락으로 고양이의 이마를 살살 쓰다듬었다.

“이쁜 우리 막내야. 이제 엄마를 좀 믿을 수 있니?”

‘엄마 말 잘 들어라. 안 들으면-’

진혁과 눈이 마주치고, 고양이의 홍채가 점점 더 둥글어졌다. 새까만 눈동자로 고양이가 진혁을 바라보며 입을 살짝 벌렸다.

“야아오오오오옹-.”

‘니 말 못 알아듣는다.’

“야아오옹!”

‘엄마 말 잘 들으라고.“

“야옹.”

어머니가 흐뭇한 듯이 고양이의 등을 살살 긁어주었다.

“엄마. 얘 동물 병원에서 예방 접종 맞는다더니. 접종은 하고 왔어요?”

“응?”

어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진희가 입을 살짝 벌렸다.

“내일 오전에 동물 병원 가서 접종하면 좋겠어요. 제가 예약해 놓을게요.”

“넌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음-.”

진희가 곤란해 했다.

“어떡하지? 나 근무 일정은 바꾸기가 힘들어. 고양이들은 작을 때 후딱후딱 예방 접종 맞아야 한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우리 가족 전부 내일 가기는 어렵지? 옆집에 부탁할 수도 없고.”

어머니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부녀회장이 내일 집에 있는 날인가? 그쪽에 좀 부탁을 하면…….”

진혁이 말했다.

“10시부터 11시까지 저희 잠깐 브레이크 타임이에요. 그때 아버지가 가게에 계시면, 제가 데리고 동물 병원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줄래? 고맙다, 진혁아.”

12장

진희가 예약한 병원은 빵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진혁이 오가면서 계속 간판을 보던 병원이다. 안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양이가 아주 얌전하네요. 냄새도 낯설고 많이 무서울 텐데.”

수의간호사가 진호를 안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방 접종이랑 체중 측정을 하실 거예요-.”

수의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 곧 안에서 흥분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야아오오오오오오옹!”

진혁은 전음을 보냈다.

‘괜찮으니까 말 잘 들어라.’

고양이 비명 소리는 곧 줄어들었다. 진혁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이래서 내가 따라온 거지.’

진희나 어머니가 데리고 오려고 했다면, 고양이는 이리 도망가고 저리 도망가서 다른 데로 샜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번거로워진다.

진혁은 어제 대화를 되새겨 보았다.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한 달만 더 하고 그만두시기로 했고.’

진혁과 아버지는 조금 더 제빵에 집중하고, 어머니께서 매장 판매 일을 봐주시기로 했다.

‘사실 전부 나 혼자 해도 되는데.’

한 달 후면 어머니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사실 판매보다는 제작에 더 관심이 있던 진혁은 기지개를 켰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며 헐떡거리는 흰 개를 데리고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진혁은 마저 인사했다. 가끔 빵을 사러 오는 단골손님이다.

“개를 키우시는군요.”

3kg 정도 되어 보이는 흰 개는 혀를 내밀고 축 늘어져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개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던 손님이 물었다.

“오늘 빵집 열려 있던데 여기서 뵙네요.”

“예. 잠깐.”

“동물을 키우시나 봐요?”

“저는 아니고 어머니가.”

단답형으로 딱딱 끊어지는 대답에, 단골손님이 머쓱해 했다. 그는 자신이 안고 있던 하얀 개를 소개했다.

“얘는 봉칠이라고, 더위를 먹어서 병원에 자주 와요.”

“그렇군요.”

잠시 침묵이 오가고, 손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반려동물용 빵을 만드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단골손님이 묻는데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반려동물용… 빵이요?”

“예. 온라인에서 보니까 개 생일 케이크 같은 것도 팔고 그럽디다. 소망시까지는 배송도 안 되고 하는데, 저희 개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거든요. 이제 한 달쯤 남았어요.”

손님은 봉칠이의 머리를 소중히 쓰다듬었다.

“이놈이 이래 보여도 나이가 열 살이 넘었어요. 늙을 대로 늙어서 더위 먹으면 고생하는데 또 낮에 나가고 싶다고 팔짝팔짝 뛰어서… 최대한 이것저것 해주고 싶군요.”

진혁은 봉칠이를 바라보았다. 하얀 개는 호흡이 점점 더 가라앉더니, 이제는 편안하게 숨 쉬고 있었다. 체구는 작지만 얼굴과 코에 있는 주름, 본래 짙은 색이었다가 희어진 수염 등등에 나이가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개 나이가 열 살이 넘었으면…….”

“작은 개니까 거의 여든이 넘은 셈이죠.”

손님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하고 평생을 같이한 놈인데. 사장님 오신 다음부터 거기 빵이 미친 듯이 맛있어졌잖아요. 진짜, 무슨 빵에 마약 넣은 것같이 맛있는데. 이놈이 사장님이 만드신 버터 크루아상에 환장을 해요.”

“개한테는 안 좋을 텐데요?”

“그런데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식욕 없던 놈이 먹고 싶다고 꼬리 흔들면서 애교도 부리고.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이 반려동물 음식은 안 하시는 거 알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당연히 특별 주문하는 케이크 값은 잘 쳐 드리겠습니다.”

진혁은 단골손님을 바라보았다. 중간 키에 보통 머리, 그리고 뿔테 안경. 여느 때처럼 체크무늬 상의를 걸치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하지만 자신의 개에 대해서 말할 때의 그 애정만은 마치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처럼 깊고 따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