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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2화 (42/656)

제 042화

“그건 그거대로, 얘가 찬욱이 대신을 하겠다고 어찌나 들러붙던지. 사람이 나빠 보이지는 않아. 사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견적도 금방금방 내고,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아버지…….”

아버지는 그 어떤 사람을 보아도 나쁜 사람이라고 한 적이 없으셨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진혁은 지금이라도 수백 명, 천 명이 넘는 나쁜 놈들을 줄줄줄 늘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몇몇 사람은, 아주 좋은 사람인 척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마교라고 불리는 일월신교에 있는 나쁜 놈보다, 정파라고 불리며 허울 좋은 정의를 외치는 놈들 중에 더 나쁜 놈이 넘친다고.

아버지가 힘차게 양어깨를 쫙 펴고 양팔을 휘휘 돌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엄청난 제안을 받았다고. 얼떨결에 의형제 제안도 같이 승낙해 버렸지. 찬욱이한테 못다 갚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데, 내가 거절할만한 명분이 없더라. 명분은 중요한 것이야.”

“예.”

“어떤 제안인데요?”

가게 정리를 하던 일봉이 궁금해했다.

“인터뷰를 하자고 하네.”

“인터뷰요? 화웅이 신문도 아닌데 어떻게 인터뷰를 해요?”

일봉이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빗자루 손잡이가 바닥을 치기 전에 진혁이 자연스럽게 다시 잡아들어 일봉에게 건넸다. 일봉은 여전히 입을 딱 벌린 채로 진혁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사내 매거진하고 사내 동영상 강의의 일부에 들어간다고 하더라. 신입사원 교육하고 그럴 때 쓰는 거 있잖아. 그리고 화웅 광고에도 들어간다고 하더라.”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된 거예요?”

“화웅이 이번에 중소기업 국무총리표창 상을 받는단다. 거기에 이 오븐에 대한 것과 이 오븐을 써온 사람 인터뷰를 싣고 싶대. 회사 35주년을 기념해서 이 오븐을 꼭 찾고 싶어서 찾고 있었는데 정말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고. 시리얼 번호까지 확인해서 적어갔다.”

진혁이 물었다.

“돈은 준다고 합니까?”

“이천만 원.”

일봉이 평했다.

“가게 일주일 매출이네요.”

그렇다. 그동안 가게의 매출은 꾸준히 늘었고, 이제는 일주일간의 매출이 예전의 월 매출을 가볍게 상회할 정도가 되었다. 크림슨 트리플 케이크의 홍보 기간이 지난 후 가격은 조각당 3,50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매출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늘었다.

“그렇지, 그래도 촬영하고 인터뷰는 하루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들뜨고 흥분한 기색이었다.

“치즈 케이크 가격이 오르고 난 다음에 매출이 늘어난 게 신기했는데.”

진혁이 문득 중얼거렸다. 일봉이 말했다.

“이게 사실 너무 싸니까, 모르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의심이 생기거든요. 저도 원가가 안 나올 텐데? 진짜 치즈 맞나?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진짜 치즈가 아닌데 어떻게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먹어보면 알 수 있지.”

“그렇죠, 완전히 맛부터 다르니까.”

일봉이 말했다.

“그러니까 오히려 실제적인 가격이 되면서, 더 사람들이 믿고 살 수 있게 된 게 아닐까요?”

“자기 일처럼 소문내주시는 단골손님들도 있지. 금천복 씨나, 그 맨날 오는 중학생이나. 요즘은 그 부녀회장 통해서 오는 사람이 많지.”

아버지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화웅에서 인터뷰를 하고 그걸 화웅 광고로 쓴다면, 우리 가게도 홍보 효과를 또 보겠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덧붙였다.

“원래 인터뷰이한테 돈을 주지는 않을 텐데, 사실 거의 감사비 명목으로 주는 거지.”

“오래된 오븐으로 빵 만들어 팔았다고 말 나오는 거 아니에요?”

“오랜 경험과 뛰어난 실력으로 빵을 만들었다고 부러워하겠지.”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화웅은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중소기업이야. 그 회사 안에서 만드는 사내 잡지가 어떤 수준이겠냐.”

“그건 그렇네요.”

일봉이 수긍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술이 안 취한단 말이야. 전에는 이 정도 먹으면 금방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왔는데, 이제는 술을 마셔도 마셔도 화장실을 자주 가고 별로 취기가 올라오지를 않아.”

진혁이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건강해지셨나 봐요.”

환골탈태 후에 몸이 변화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진혁은 바닥 위의 먼지를 한 알 한 알 세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해. 자연스럽게…….’

설마 아버지가 ‘네가 나를 멋대로 강제 환골탈태를 시켰지!’ 라고 호통을 치실 리는 없을 것이다. 꿈에도 생각 못 하시겠지.

그때, 아버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버지는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누구지?”

“빵에 뭘 넣었어?!”

전화 안에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는, 조금 전에 차를 타고 출발한 백정흠 사장의 그것이었다.

“뭘 넣었길래 이렇게 맛있어!!! 형님!! 나랑 계약합시다, 그 빵 좀 우리 회사에 팔아요!”

“……목소리가 엄청 크시네.”

일봉이 놀라워하며 중얼거렸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술 깨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동생님.”

“알았어요! 꼭이요, 꼭!”

전화를 끊고 나서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진혁아, 네가 만든 빵을 먹고 나면 다들 난리다, 난리야. 반드시 다시 찾아오게 되어 있어.”

진혁이 말했다.

“아버지가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죠.”

“아니야, 네가 만든 빵들은 맛이 남달라. 다시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맛이라고.”

“작은 사장형 빵이 진짜 맛있긴 맛있지. 저희 부모님도 퇴근할 때마다 오늘은 뭐 가져왔냐고 성화인데, 뭐 팔다 남는 게 있어야 사든지 하죠.”

아버지가 말했다.

“진작 말을 하지! 내가 따로 구워놔 주마.”

진혁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버지, 아까 화웅 사장님 챙겨 드린 빵 말인데요.”

“응?”

“오늘 진희 온다고 어머니께서 따로 부탁해서 빼놨던 케이크하고 빵들입니다. 오늘 빵은 다 매진돼서 장사 일찍 접었어요.”

“!”

“어머니께는 아버지가 말씀해 주세요. 비즈니스 때문에 빵을 남길 수가 없었다고.”

아버지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거, 네가 좀 잘 얘기해 주면 안 되겠냐? 늬 엄마가 네가 말하면 잘 듣잖냐.”

“빵 챙겨주신 건 아버지입니다?”

“그냥 지금 다시 구워가면 안 되겠냐?”

“트리플 치즈 케이크는 다 숙성고에 들어가 있는데. 당장 가져갈 수 있는 건 없어요…….”

일봉이 풀죽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흠, 흠흠. 괜찮을 거다. 남편이 광고에도 출연한다는데, 것 빵 좀 안 갖다 줬다고 무슨 일 있겠냐! 하하.”

◈          ◈          ◈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혁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어머니, 지금 집에 계세요? 진희는 왔나요?”

“얘가 이제 누나라고도 안 하네.”

“그래, 누나. 왜 누나가 어머니 전화를 받아?”

진희가 전화기 너머에서 까르르 웃었다.

“엄마가 지금 갈비찜하고 계셔. 전화 좀 대신 받아 달래.”

옆에서 걷고 있던 아버지가 궁금해했다.

“니 엄마는 뭐 한다냐?”

진혁이 손을 내저었다. ‘잠시만요.’ 입 모양으로 벙긋하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입사한 지 2년 되는 기념일이라고.”

그리고 진혁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추었다.

“엄마가 아빠한테 케이크랑 빵 부탁했다더라. 그렇게 안 챙겨줘도 되는데.”

“어…… 어.”

진혁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 다이어트 중이긴 한데, 오늘은 특별히 먹어 줄게. 일부러 조깅도 30분 뛰고, 점심도 굶었다 이거야. 갈비찜하고 케이크 먹으려고 허리띠도 풀고 있어.”

“…….”

“왜 말이 없어? 지금 끝나고 오고 있는 거 아니야? 가게 아직 안 끝났어?”

진혁이 바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조금 늦어. 일이 오늘 다 안 끝나서.”

“자영업은 그게 안 좋다니까.”

약간 시무룩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난 또, 전화 와서 너랑 아버지 일 끝나고 돌아오는 줄만 알았네.”

“잠깐 한가해서 확인차 전화해본 거야.”

“그래, 빨리 와!”

끊어진 전화를 손에 쥐고 진혁이 말했다.

“아버지, 먼저 돌아가시죠.”

“응?”

“오늘이 진희 입사 2년 기념일이라네요.”

“……!”

“제가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 바로 만들어서 가져갈 테니까 조금만 시간 끌고 계세요.”

“어어, 미안하다. 내가 술기운에 빵을 전부 백정흠이를 줘버려서…….”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숙성이 다 된 케이크가 하나 냉장고에 있어. 그것만 챙겨 가져오면 됩니다.”

진혁은 아버지의 변명을 듣지 않고 바로 가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의식해 일부러 느리게 걸었다.

‘5분 안에 케이크를 숙성시키고 다른 빵들을 구워 아버지와 합류한다.’

숙성된 케이크 따위는 없다. 하지만- 가게의 구조와 기물의 위치는 전부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빵을 구울 때 숙성 시간도, 무엇도, 심지어 오븐도 필요 없다. 눈앞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을 필요도 없다.

횡단보도 앞, 붉은 불이 켜져 있다. 진혁은 그대로 멈춰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먼저 천안투마공으로 본다. 그리고 허공섭물, 그리고 흡자결을 사용하면-.’

그는 ‘보이지 않는’ 벽 너머의 무언가를 움직여 보려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안투마공이 심안(心眼)의 경지에 도달한 지금이라면……!

‘호오.’

여기서 500m의 거리.

천안투마공으로 세 개의 문을 꿰뚫고 들여다본다.

빵집 안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다.

주방으로 통하는 나무문을 지나서 은빛 숙성고의 문을 응시한다.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잡을 필요도 없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내일 판매될 예정이었던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가 하나, 허공으로 떠올라 조리대 위에 내려앉았다.

‘흡자결보다 허공섭물이 더 적절하군. 그리고 치즈의 숙성은-’

진혁은 잠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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