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1화 (41/656)

제 041화

“화웅 사장님은 대단하다 대단하다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진짜 카리스마 있네요. 사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도 해외 부품 쓰는 경우가 많은데 오븐만 국산이 시장을 거의 점령하고 있잖아요. 거의 회사를 맨손으로 일으켜 세우다시피 한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오븐 만드는걸 어디서 배웠나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지, 외국 오븐 뜯어서 고치고 하면서 독학한 줄은 몰랐네요. 진짜 왕 대단합니다. 킹왕짱 대단함을 인정해야 돼.”

일봉이 바스락바스락 비닐 소리를 내면서 빵을 포장하는 데 비해서 진혁은 소리 없이 작업했다. 넘겨다본 일봉이 감탄성을 발했다.

“형은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길래 빵을 포장하는데 비닐 소리도 안 나요?”

“잘.”

“내가 살면서 여태까지 본 진짜 대단한 사람이 네 사람 있는데.”

진혁이 대답하지 않아도 일봉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중 첫 번째가 형이고, 두 번째가 그린 워터 농장을 하는 민병철 형이에요.”

“민병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진혁이 반응하자 일봉이 가볍게 말했다.

“녹색 농부 조합, 이번 주 수요일에 가게 닫고 같이 보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거기 농부 조합을 완전 혼자 만들고 지금 온라인 판매를 주도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형인데, 머리가 진짜 좋아요. IQ 186에 멘사 회원이고, 카이스트 졸업했어요.”

일봉이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농부라며?”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데, 실제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농사라면서, 지금 아쿠아포닉슨가? 아쿠아 파닉스인가? 잉어가 사는 물 위에서 채소를 길러요. 그래서 잉어 분변이 비료가 되니까 화학비료 없이도 채소가 잘 자라요. 진짜 백 퍼센트 유기농이죠. 그걸 온라인으로 파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형한테 사업 제안을 할 거라고 했어요.”

“사업 제안이라.”

임진혁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멀리 찻집에서 아버지와 사장님이 나누는 목소리가 또렷이 귓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일부러 들으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의 천리통(千里通)은 지인의 목소리를 실어날라 주곤 했다.

“화웅 사장님도 지금, 사업 제안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작은 사장형.”

문밖을 본 일봉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브레이크 시간 도중에 손님은 못 본 척 돌려보내자고 했잖아요.”

“그렇지. 하나하나 열어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선을 그어야 해.”

“저…… 지금 눈을 마주쳐 버렸는데 어쩌죠.”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손은 멈추지 않고 비닐 포장을 계속하며 일봉에게 말했다.

“장님인 척해.”

“형!”

◈          ◈          ◈

막 영업을 재개하려는 즈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 아버지.”

전화 건너편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진혁이 미소를 머금었다.

“가게는 맡기시죠. 오늘 저녁은 저하고 일봉이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엑! 형!”

분주하게 매대에 빵을 진열하던 일봉이 놀라 말했다.

“작은 사장형 안 계신 동안 저희가 얼마나 바빴는지 아세요?! 솔직히 저희 직원이 두 명은 더 필요해요! 제가 말은 안 했지만 오후 아르바이트생은 더 있어야 할 지경인데?!”

“내가 3인분 일하면 되지.”

“그러다가 형 죽는다고요. 큰 사장님 못 오신대요?”

“사업적인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더라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만 해도 다섯, 여섯 명은 되어 보인다. 브레이크 타임에는 절대로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아니까 그 시간에 맞춰 기다리는 것이다. 일봉이 문밖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저 팀만 다섯인데 우리 지금, 안에서 꺼내야 할 빵도 더 있잖아요.”

“그건 내가 다 하지.”

진혁이 웃었다.

“손님 상대하고 있어. 주방 안쪽 정리까지 내가 하고 나올 테니까.”

“그건 이따가 제가 할 테니까 손대지 마세요! 청소는 제 일이니까요!”

“내가 더 빨라.”

땡! 땡!

다시 오후 오픈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스마트폰 알람을 끈 일봉이 검은 앞치마를 둘렀다. 입술을 앙다물고서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자, 할 수 있다. 일봉아.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평화 일봉 농장의 후계자야.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 직원이다…….”

문이 활짝 열리고 손님들이 밀어닥쳐오기 시작했다.

“블랙 앤 화이트 크림 소라빵 다섯 개하고, 황금 버터 앙금 소보루 열 개 주세요.”

“치킨 파이 열 개요!”

좁은 빵집 안에 사람이 많아지자 자신이 원하는 빵이 있는 판매대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가 뭘 원하는지 외치는 것이다.

“형! 계산대 줄 너무 밀렸어요. 치킨 파이도 모자라요!”

도와달라는 말이다. 진혁은 바로 손에서 삼매진화를 피워올렸다.

‘이 정도로 손님이 몰리면, 저 녀석은 미리 구워 놓은 치킨 파이가 없었다는 건 생각해내지 못하니까.’

이십 개 정도 준비했지만 역시 모자랐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치킨 파이를 백 개, 더 구워낸 진혁이 밖으로 나왔다.

“치킨 파이 더 나왔습니다. 필요하신 분 계십니까.”

“황금 버터 앙금 소보루 여기 드리겠습니다.”

“7,000원이요!”

“만원 여기 있어요!”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 하나 꺼내 주세요.”

복작복작한 영업시간이 저물어갈 무렵, 아버지와 백정흠 사장이 함께 돌아왔다. 둘 다 불콰해진 얼굴로,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동생! 저 오븐 녀석은 내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나랑 같이 계속 갈 거니까 팔라 하지 마쇼.”

“알았으니까 형님, 내가 말한 것만 좀 잘 생각해 보쇼.”

술을 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깜짝 놀란 일봉과 달리 두 사람이 호형호제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진혁이 웃는 얼굴로 둘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조카가 하나 생겼네! 하하. 듬직한 조카야. 제빵 대회에서 상도 타고.”

‘이걸 삼촌 취급을 해야 하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 상대방이 아버지의 신뢰에 신뢰로 보답한다면 좋지만, 세상일이 모두 그렇게 좋게 흘러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적당히 걸러야겠군.’

어떤 사람인지 조사해보는 것은 진혁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다. 진혁이 슬몃 웃었다. 아버지는 방금 생긴 동생을 배웅하며, 진혁이 따로 빼놓은 빵을 하나씩 봉지에 담아 모았다.

“이것하고, 이것. 이것도 먹어봐야 해. 이것도 맛있어.”

평소 주량보다 술을 한참은 더 마셨지만, 아버지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뺨이 살짝 붉어진 정도로 정신은 멀쩡하다.

‘충동적으로 의형제를 맺은 건 아니라는 이야기지.’

반면 백정흠 사장은 코끝부터 목덜미까지 얼굴이 온통 시뻘겠다. 술이 사람을 마셨는지 사람이 술을 마셨는지 모를 정도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덕분에 이성의 끝자락은 잡고 있다.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던 백정흠 사장이 주방 문을 벌컥 열었다. 진혁이 청소해둔 덕분에 갈치 등처럼 은색으로 빛나는 주방은 깔끔하기 그지없다.

“아니, 왜 아직도 오븐이 안 와 있어?”

백정흠이 벌컥 화를 냈다.

“이 자식들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우리 조카가 정당하게 우승한 오븐인데! 후딱후딱 챙겨와야지.”

백정흠이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진혁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건 좀 기다려 보라고, 안 부장하고 얘기한 다음에 배송하라고 하셔서…….’

“무슨 소리야! 당장 오늘 배송하기로 빼놓은 기계가 하나 있잖아. 그걸 당장 가져오라고.”

‘알겠습니다-.’

전화기 상대편이 쩔쩔매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광폭대주 혈와수 같은 놈이군.’

광안마는 진혁에게는 유치원 보모처럼 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상 냉정하고 합리적인 상관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다른 부하들이 전부 그렇게 냉철하고 판단력이 앞서는 인간인 것은 아니었다. 혈와수 연모백은 다혈질 그 자체로, 정파에도 악명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독문지기인 혈와수라공은 폭발적인 힘을 뿜어내는 양기 계열의 마공으로, 항간에는 그가 익힌 무공 때문에 성격이 그렇게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실은 그냥 그놈 성격이지만 말이지.’

아버지는 가득 챙긴 빵 봉투를 백정흠 사장에게 내밀었다. 냉장실에 단 하나 남아있던 케이크도 바로 상자에 넣어 억지로 백 사장의 손에 들려주었다. 백 사장이 큰 소리로 운전기사를 불렀다.

“김 기사! 이리 와서 계산 좀 해.”

“아니야, 아니야. 돈을 낼 필요는 없어.”

아버지와 백정흠 사장이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는 사이, 김 기사라고 불린 남자는 옆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아랫사람 단속은 잘하는 모양이야.’

“자! 그냥 넣어두래도.”

결국 아버지가 이겼다.

“형님은 매일 빵을 구워서 그러신지, 신력이 보통이 아니네. 허허!”

힘 싸움으로 억지로 지갑을 도로 백 사장의 품 안에 밀어 넣어 줘서 이겼다. 백정흠 사장은 한 번 잡힌 팔목을 빼지 못하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아버지가 좀 힘이 좋으시죠.”

아버지는 다른 빵을 따로 조그만 봉투에 챙겨, 운전기사에게도 내밀었다.

“자, 기사님도 빵 좀 드시라고. 서울까지 운전해서 올라가려면 고생이니.”

김 기사가 주저하며 백 사장을 바라보았다. 백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형님이 직접 챙겨주시는데, 받아 둬.”

“감사합니다.”

자동차 안에 탄 백정흠 사장을 보며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창문을 내리고 백정흠 사장이 외쳤다.

“형님, 오븐은 내일 새벽에 와서 챙겨 줄 거요. 내가 직접 오늘 설치하고 갈라 했는데, 그게 안 되니 아쉽구만.”

“이렇게 서른 해를 썼는데 하루 이틀 늦게 와도 돼. 잘 부탁한다!”

“다음 주에 안 부장이 와서 촬영이랑 다 할 테니까. 저야말로 잘 부탁함다!”

“조심히 올라가고!”

부웅- 하고 매끄러운 배기음을 내며,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자동차가 저 멀리 사라졌다.

일봉이 중얼거렸다.

“큰 사장님, 이 시간에 술을 마시다니 이런 모습 처음 뵙습니다…….”

“서른 해 만에 거의 처음일걸.”

“일의 일환이지.”

취한 기색이 전혀 없이 말끔하게, 아버지가 옷매무새를 털어냈다.

“의형제라면서요.”

진혁이 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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