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0화 (40/656)

제 040화

“수없이 빵을 만들면서 단련한 실력을 아낌없이 아들에게 전수해서, 이런 훌륭한 음식들이 탄생한 거야. 그런데 위치가 나쁘고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까, 아직까지는 손님이 많지 않은 거지.”

디지털 마케팅이 아니라, 오프라인 마케팅이라면 안영윤 부장의 전공 범위 내다. 전단과 회원 쿠폰, 그리고 입소문.

“이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맛있는 빵이라면, 저기가 아니라 강남 한복판 같은 데에 있었으면…….”

그러고 보니 회사의 강남 건물, 그곳에도 1층에 카페가 있다. 사장님의 조카가 영업하는 카페의 빵은 지지리도 맛이 없어,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다. 가끔 오는 모르는 사람들만 주문하곤 한다.

“그 가게가 거기로 자리를 옮기면 진짜 잘 될 텐데.”

하지만 그 짠돌이 사장님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사장님이 무슨 제안을 가지고 오던지, 그게 제일 직빵일 것 같은데.”

운전하면서 올라가는 길은 내려오는 길보다 훨씬 즐거웠다.

“한 봉지만, 한 봉지만 와이프한테 갖다 줘야지. 소영이 몰래 먹으라고.”

소영이는 큰딸의 이름이다. 정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아직 어린아이다.

“소영이가 이거 먹으면 이제 다시는 밥을 안 먹는다고 선언할지도 몰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나이야.”

와이프와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아주 맛있는 빵 봉지를 들고 퇴근할 생각을 하니 신이 난다.

“내가! 이 안영윤이가 얼마나 훌륭한 남편인지를 잘 보여 줘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다음 빵을 향한 손은 멈추지 않는다. 바삭거리는 비닐을 한 손으로 성급히 벗기고, 기다리고 있는 기쁨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핥았다. 안영윤은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행복했다.

“강마리오는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하지. 강마리오가 금괴에 이솔팽이 은괴라고 하면,”

저절로 크크큭,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임진혁은 그야말로 다이아몬드 원석이야.”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다. 앞에서 기어가고 있던 차들도 사라지고, 지금은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밟으며 입안에는 빵을 물고서, 안영윤이 중얼거렸다.

“그 녀석 손맛이 아버지가 빵 만드는 솜씨의 반만 가도 돼. 우리는 이미 성공한 거야. 제빵계의 새로운 스타 임진혁을 발굴한 거지.”

◈          ◈          ◈

다음날 오후,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고급 승용차가 한 대, 가게 앞에 섰다. 보통 회장님 전용 차량이라고 불리는 고급 라인의 국산 차다. 그 안에서 차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내렸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쉽지만 저희가 지금 당장은 브레이크 타임이라-”

일봉이 싹싹하게 인사하며 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작업복을 입었고 공구 통을 손에 든 남자는 고개를 젓고서 말했다.

“빵을 사러 온 손님이 아니오.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의 사장, 백정흠이오.”

“……예?”

안녕하세요, 에 돌아온 느닷없는 자기소개에 일봉이 당황했다. 옆에서 빵을 포장하고 있던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오신다고 어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봉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 사람이 화웅의 사장이라고?’

대한민국에서 상업적인 제과제빵을 하는 이라면 모두 화웅을 알고 있다. 60년대 후반 창업한 화웅은 전국의 대기업 중 70% 이상에 오븐을 납품한다. 당장 일봉이 스위트 바게트에서 봤던 오븐 역시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사의 것이다.

반면 진혁은 딱히 화웅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여기 삼십여 년 전의 우리 회사 모델을 쓰고 있다고 안 부장이 말하던데,”

우렁차게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다. 백정흠 사장의 목소리가 주방 안까지 들렸는지, 주방 안에 있던 아버지가 나왔다.

“아, 오븐을 보러 오셨습니까?”

아버지가 반갑게 웃었다.

“찬욱이 녀석이 오븐 주문하던 사장이 참, 장인 정신이 있다고 칭찬하던데. 이렇게 뵐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네요.”

주방 안까지 들어온 백정흠은 아버지의 안내 없이 바로 자신이 찾던 오븐 앞에 섰다. 그 앞에 장승처럼 서서는 눈꺼풀이 꿈틀거리고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열었다를 반복한다. 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뻗어 오븐을 만졌다. 현재의 디자인이 있기 전, 초라하게 새겨놓은 화웅의 마크 아래 자신이 긁어 놓은 자기 이름 이니셜도 확인했다.

“그 오븐이 맞군요. 주문하신 분이 김찬욱 의사 선생님이셨죠.”

“그 친구가 젊은 시절에 아깝게 갔죠.”

백정흠 사장이 중얼거렸다.

“60년대 후반에는 빵이란 게 양과자점에서나 파는 고급 물건이었습니다. 미국의 원호물자가 줄어들고, 정부에서 소맥 수입을 늘리면서 아예 빵을 만드는 공장을 세운 회사도 생기고, 빵의 소비가 확 늘었습니다. 그때부터 국산 오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처음으로 전기 오븐을 만들었는데, 빵쟁이들이 전부 불란서니 일본이니 하는 곳에서 빵을 배워오다 보니까 국산 오븐을 쓰질 않는 겁니다.”

그것은 임운정에게 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속삭이는 옛이야기 같았다.

“나는 분명히 멀쩡하고 좋은 오븐을 만들었는데, 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화상을 입어서 병원에 가게 됐죠.”

그는 작업복의 소매를 걷어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왼팔 아래쪽의 1/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얼룩덜룩한 흉터를 보여주었다.

“어쩌다가 이런 화상을 입었냐, 라는 걸 물으시더라구요. 오븐 안에 용접을 해서 만들다가 이렇게 됐다고 말을 했죠. 국산 제빵 오븐도 있는지 몰랐다고 하시길래 어쩌다 보니 내 인생사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외국산 오븐 고치는 걸 배워서 뜯고 보고 하다가 국산 오븐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고요.”

백정흠 사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랬더니 막역지우가 빵집을 열 건데 오븐이 필요하다고, 당장 하나 주문하신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환자로 가서 의사한테 오븐을 팔아 본 건 그게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분이 주신 어음으로 회사가 살았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임운정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이 잘 나가기 시작한 건 IMF 때부터죠…….”

“예, 작은 가게나 공장 같은 데만 팔아서 근근이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환율이 오르고 외제 오븐이 너무 비싸지면서 대기업 같은 데서 우리 오븐을 한 번 써본 겁니다. 그리고 너무 좋다고, 주문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커졌어요. 직원도 늘어나고. 그런데 그것도 다 그때의 그 의사 선생님 주문, 이 오븐이 없었으면…… 그때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웃었다.

“그 오븐은 제가 새벽에 일어나 빵을 구울 때마다 든든하게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습니다. 이걸 고쳐 주신다고 들었는데요.”

“새 오븐은 오후에 배달되어 올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계속 쓰신다면서요.”

백종흠 사장이 눈을 찡그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임운정도, 임진혁도 모두 사장의 눈물을 못 본 척했다.

“예, 같이 쓰려고 합니다. 단지 요즘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삼십여 년간을 썼으니 그럴 수도 있지요. 이게 수리가 가능할까요.”

백 사장이 전동 드라이버를 꺼내며 물었다.

“전기는 어디에서 꽂아 쓸 수 있죠? 아, 여기구나.”

백종흠 사장이 뚝딱거리면서 오븐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오븐을 팔아 달라고 하려고 왔습니다.”

“그래요? 뭣에 쓰시려고.”

“저희 회사 로비에 놓고 자손 대대로 물려주려고 했지요. 반쯤은 혼자 손으로 만들어서 제 피와 땀이 다 들어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도 내구도가 높은 물건이라 여태까지 버텨줬네요.”

감개무량하게 말하는 백종흠 사장에게 진혁의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그 녀석은 이 집에서 현역으로 좀 더 일을 해야겠습니다.”

“좋은 주인을 만났군요.”

진혁은 지켜보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처음에…… 테스트 조로 양강지기를 과다하게 흘려보낸 부분이 타 버렸군.’

결국은 멀쩡한 오븐을 진혁이 고장 내 버린 셈이다. 그 이후에는 흘려보내는 양강지기를 극미량으로 조절하여 어떻게든 빵을 구워냈다. 아버지나 일봉은 진혁이 없을 때면 아랫단의 왼쪽 부분만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오븐을 보며 이상해하곤 했다.

‘결국 내가 고장 낸 건가.’

지금 와서 사과하기도 뭐하고, 어떻게 고장 냈는지 설명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합선이 될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여기만 타 버렸네.”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백종흠 사장은 여분으로 가져온 부품을 꺼내어, 교체를 무사히 마쳤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수리를 마치고 일어난 백종흠 사장이 임운정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내가 드리고 싶은 말이 좀 있는데…….”

말하던 백종흠 사장이 콧구멍을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운정의 눈짓을 받은 일봉이 따로 빵을 챙겨서 가지고 온 것이다.

“화웅 사장님! 저희 빵 좀 드세요. 저희 사장님이 챙겨주시는 거예요.”

일봉이 씩씩하게 말했다.

“여기 빵 드시면 진짜, 이제 다른 데 빵 못 먹어요. 위험한 음식이에요.”

일봉이 덧붙이는 말에 백종흠 사장이 픽 웃으며 작업용 흰 장갑을 벗었다.

“냄새가 너무 좋은데, 주방 안이라고 해도 지금 빵 굽는 작업을 하는 게 아닌데 빵 냄새가 대단히 진하네요.”

코를 킁킁거리며 백종흠 사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희 회사 1층에 카페 겸 베이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도 이런 냄새가 나면 좋겠는데요. 혹시 냄새를 진하게 하는 요령이라도 있는지?”

임운정과 임진혁, 일봉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셋이 동시에 대답했다.

“따로 냄새를 피우는 건 아닙니다.”

“허, 이게 진짜 빵 냄새라구요. 대단하군요. 이 오븐으로 구운 거죠?”

백종흠 사장이 자랑스러운 눈으로 자신이 방금 고쳐낸 오븐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도 이 빵을 만드는 데 한 푼쯤 일조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렇죠, 그렇죠.”

아버지가 흔쾌히 말했다.

“밖에서 기다리시는 기사님 빵하고, 가족분들 드릴 빵은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제 돈을 주고 사 먹어야죠. 제가 이래 봬도 이런 건 철저한 사람입니다.”

백종흠 사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번에 상을 탄 임진혁, 그 청년이 사장님 아들이라면서요.”

백 사장이 일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들이 참 싹싹합니다.”

“……제 아들은 이쪽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그 녀석은 일봉이라고 저희 아르바이트 겸 실습생이고요.”

백 사장은 잠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외면했다.

“흠흠, 흠. 제가 사장님께만 따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잠시 시간은 괜찮으신지.”

임운정이 힐끗 진혁을 바라보았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괜찮겠어?”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이니까.”

“그럼 이 앞에 커피숍에 잠깐 다녀오마.”

“예, 다녀오세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두 사장이 사이좋게 나간 후, 가게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닫힌 문을 보면서 일봉이 중얼거렸다.

“큰 사장님, 대단한 분이었네요.”

“음?”

“간접적으로 화웅을 키운 분이시잖아요. 본인도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진혁은 묵묵히 치킨 파이를 비닐에 집어넣었다. 휴지기를 충분히 가진 치킨 파이들은 작은 비닐 안에서 윤기 나는 광택을 뽐냈다. 일봉은 블랙 앤 화이트 크림소라빵을 하나씩 정성 들여 비닐에 담으며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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