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6화 (36/656)

제 036화

그는 무림에 있었지만 무림에 살지 않았다. 오직 현대로 되돌아오고자 했다. 거기서의 인연들은 온라인 컴퓨터 게임의 NPC처럼 인간이 아니라 느꼈다.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수없이 살인을 저질렀고 살아남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오랜 후회를 뒤로하고 잊힌 소원을 이루어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원하던 길…….’

일월신교의 번성을 위하여 교주 자신도 수레바퀴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무공을 수련하고 정파와 사파에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교내 고수들을 길러낸다. 종교적 제례를 주관하고 태양과 달에 제사를 지낸다. 소교주가 되어 교주를 따르며 제사를 보조하던 초반, 그 자신이 그러한 신앙을 미개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형식적인 절차로 수행해나갔던 것은 아무도 모를 비밀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변치 않는 일출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과거 직접 주관했던 태양에 올리는 제사가 떠올랐다. 일반교도들은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섭리’ 그는 무엇 때문에 진혁을 여기로 돌려보냈을까.

‘내가 겪었던 일들은 전부 필요한 일이었던 건가.’

심마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 단계에서는 수련보다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 ‘탈마의 경지’ 일월신교 역사상 아무도 오른 적이 없다는 그 경지에 오르려면- 아직 더 수련이 필요하다.

쪼르르르르륵.

옥상 가장자리에 놓인 이름 모를 화분의 잎사귀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진혁은 미세한 기를 주입한 후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화분 때문에 또 어머니에게 구박받게 둘 수는 없지,’

그는 계단을 걸어 집으로 내려왔다. 이제 출근해서 빵을 만들 시간이다.

◈          ◈          ◈

한편, 진혁이 우승한 것이 발표되고 직후의 일이다.

오븐 회사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번 데코레이션 페어에서 우승한 사람이 강마리오가 아니라고? 어떻게 된 거야?”

백정흠 사장이 책상을 쾅하고 내리치자, 앞에 서 있던 마케팅부장 안영윤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리라면 분명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줄 거라고 자네가 호언장담을 했지 않나. 이 대회에 천만 원짜리 업소용 오븐을 걸면 그 자체가 홍보가 된다고.”

사장이 짜증스럽게 양미간을 찌푸렸다.

“설령 강마리가 1등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을 거라고 해도, 2위 후보인 이달팽도 충분히 좋은 콘텐츠를 뽑아내고 있다며. 강마리의 이십만 팔로워에게 우리 오븐을 선보일 기회라며?”

‘달팽이 아니라 솔팽인데…….’

하지만 분노한 사장에게 지적을 할 수는 없다. 안영윤이 허리를 숙였다.

강마리오는 물품 후원을 받지 않는다. 본인이 구매한 것만 사용하고 솔직하게 평가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대회 상품으로 받은 것은 반드시 사용하며 꼼꼼하게 리뷰해서 영상을 올린다. 고작 학교 경쟁 대회 따위에 고가의 상업용 오븐이 상품으로 올라간 것은, 안영윤 마케팅부장이 사장과 이사를 설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화웅 제과제빵기계공업은 홍보가 부족해. 좋은 제품을 아무리 만들면 뭐하나, 다들 수입산 기계를 선호하는데.”

백 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부장은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이번에 제대로 된 홍보를 하고 싶다고. 학교와 기업, 새로 창업하는 가게에서 우리 기계가 어떤 건지 알고, 믿을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아가서 팍팍 사주면 더 좋고.”

“물론입니다, 사장님.”

“그런데 지금 뭐, 향인대의 듣도 보도 못하던 애송이가 우승을 했다며. 심지어 얘는 유튜브는커녕 SNS 자체를 아예 안 한다고.”

“죄송합니다, 사장님.”

안 부장의 고개도, 허리도 점점 더 숙여졌다.

강마리오의 팬층은 넓다. 단순히 강마리오를 사랑하는 여학생들부터 제과제빵과의 학생, 호텔의 꼬미 쉐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영상을 시청한다. 그중 대다수는 ‘빵과 양과자, 케이크를 좋아하기 때문에’ 강마리오의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20만 명이라는 팔로워는 적은 수가 아니다.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로 고액의 연봉을 받고 초빙된 안영윤 부장은 화웅의 이미지를 먼저 ‘친근함’으로 가져가자고 설득했다. 브랜딩 작업을 통해 국내에 화웅이 있다는 것 자체를 먼저 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첫 발짝부터 틀어졌다.

“당장 내일 그 집에 가서, 배송 전에 설득을 해 봐. 쓴다고 하면, 강마리오만큼 팍팍! 홍보 효과 나게 쓸 수 있는지를 좀 보란 말이야. 차라리 돈 얼마로 보상을 해주는 게 낫지, 내가 성심껏 만든 귀한 기계가 아무 놈팡이한테나 가는 건 난 못 보겠다.”

“……알겠습니다. 내일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당연히 자네가 직접 가야지! 자네가 싼 똥은 자네가 치워야 할 것 아냐.”

호통을 들으며 안영윤 부장은 이를 악물었다.

◈          ◈          ◈

진혁의 아버지, 임운정이 몸을 일으켰다. 어제는 아들의 수상 축하 소식 때문에 늦게까지 회식을 했는데도 눈이 가볍게 떠졌다. 지금쯤 아들은 이미 출근해서 빵을 굽고 있을 것이다. 한 시간 늦게 간다고는 했지만 오늘은 너무 늦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도 눈꺼풀이 가볍다.

“눈꺼풀만이 아니라,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

그는 신기한 듯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배긴 거친 손바닥이 맑고 깨끗하다. 그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항상 조금씩 굽어 있던 등이 곧게 펴졌다. 침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쑤시던 발목에 통증이 없으니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다.

“임자, 일어나 봐.”

“으음…….”

어제 임운정이 소주를 두어 병 마신 덕분에 밤늦게 긴장해서 운전해서 돌아온 아내 장은효, 진혁의 어머니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잘 잤어요?”

“아주 잘 잤어.”

“나도 오늘 피곤할 줄 알았는데 몸이 가뿐해요, 찌뿌둥한 것도 없고.”

장은효는 양팔을 바닥으로 뻗었다. 바닥에 있는 엄지발가락까지 거스름 없이 손이 닿았다.

“뱃살이 들어간 것 같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뱃살에 걸려서 발등은커녕, 발목까지도 손이 닿지 않았다.

“유연성도 좋아지고.”

장은효가 제 양 뺨을 꼬집어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어제 일봉댁이 그렇게 자기네 닭이 몸에 좋아서, 자기도 먹으면서 몸이 훨씬 좋아졌다고 하더니만!”

“부러진 다리도 철썩 붙여준다길래 아무리 몸에 좋다 좋다 해도 과장이 심하다 싶었는데…….”

임운정이 장은효의 뺨에 손을 갖다 댔다.

“여보 뺨이 이렇게…….”

임운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매출이 한 달에 간신히 오백만 원이 나오지 않던 시절에, 고된 파출부 생활을 시작해서 가게 월세를 보태주던 아내는 점점 더 억척스러워졌다. 곱던 뺨은 거칠어지고 부드러운 손은 인이 박여 딱딱해졌다. 그런데 지금 아내의 뺨은 마치 이십 대 초반, 처음 만났던 그때와도 같았다.

“시폰 케이크 같아.”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부드러운 것의 이름을 댔다.

“여보, 갑자기 왜 그렇게 달콤하게 굴어요.”

장은효의 뺨이 발개졌다. 임운정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저번에 부녀회장한테서 선물 받았다던 그, 진주 팩이던가? 홈쇼핑에서 잘 나간다던. 그 팩 덕분인가?”

“어젠 팩 못 하고 잤어요. 나만이 아니라, 어머, 어머. 당신도 피부가…….”

부인이 남편의 뺨을 만져보고서 감탄을 이었다.

“우리 어제 같이 먹은 건 그 닭. 토종닭밖에 없어요. 그 닭이 그렇게 건강에 좋은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 어머. 내 얼굴 좀 봐.”

장은효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뺨을 만졌다. 주름이 몇 길 남아있지만 곱고 깨끗한 피부는 십 년은 젊어진 것처럼 보인다. 검은색 염색을 수없이 해서 거칠었던 머리카락도 찰랑찰랑하게 길게 늘어진다.

“당신, 머리에 파마기가 사라졌는데.”

“그러게…… 그리고 머릿결이 부드러워졌어. 내 머리만 그런 게 아니야. 여보 머리도 그래요.”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며 부부는 영문을 몰라 했다.

“우리 먹을 것이 건강에 좋다, 좋아했어도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네.”

믿을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미 일어났다. 임운정은 빠르게 받아들였다.

“오늘은 오후 출근이라고? 나는 아들놈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게 갈게.”

“그래요. 오늘 점심 챙겨서 들를까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은효의 허벅지에, 임운정의 손길이 스쳤다.

“괜찮아, 쉬어.”

임운정은 순간적으로 전신에 치솟는 과다한 활기를 억눌렀다.

‘추…… 출근해야 해. 아들놈이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임운정은 신혼 때와도 같은 상기된 뺨, 붉어진 입술을 의식했고 장은효는 임운정의 탄탄한 근육을 의식했다. 순간 어색함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우리…… 잠시만…… 있다가 출근할까?”

“그래요.”

문 바깥에서 아기고양이가 야아아오오오옹 하고 울었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          ◈          ◈

안영윤 부장은 우울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울에서 운전해서 내려가는 길, 끊임없이 후회가 떠올랐다.

‘대회에 나가면 연전연승하기만 하고 져 본 적이 없는 녀석이 하필 이 대회에 져가지고…….’

안영윤 부장은 이 계획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침을 튀겨가며 사장님과 이사님을 설득한 과거의 자신을 후려패고 싶었다.

‘차라리 그냥 바로 학교에 렌탈하도록 권유하는 게 나았을 거야.’

백 사장의 부인인 강 이사는 한 명의 어린 남자애한테 홍보 자체를 맡기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제과제빵으로 유명한 학교에서 쓰도록 대여를 해주면, 기계를 쓴 학생들이 나중에 화웅의 기계를 찾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 강마리오의 유튜브 방송을 즐겨 보던 백 사장이 안 부장의 편을 들면서 자연스럽게 대회에 기증하는 편으로 의견이 모였다.

“강마리오 그놈이 확실히 오븐을 특이하게 다뤄. 예열하고 고온으로 해두고 바로 다른 거 굽고, 열었다 닫았다 하고, 희한한 재료를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쓰고…… 그 녀석이 학교에 오븐을 두든, 집에 두든 어쨌든 그 오븐을 사용해서 계속 영상을 올릴 거 아냐. 우리 화웅공업의 장점은 내구성이 좋은 점이야. 험하게 써도 고장이 안 난다는 거지. 강마리오가 써주면 좋아.”

대회를 선정한 것도 백 사장이었다. 강마리오의 최신편 유튜브에서 다음에 데코레이션 페어에 나가게 된다는 것을 보고, 이 대회에 상품을 협찬하면 어떻겠냐고 안 부장에게 의견을 구했다. 안영윤 부장은 기쁘게 동의했다.

‘그때 내가 정신이 나갔지.’

그는 본래 디지털 마케팅 전공이 아니었다. 마케팅부에 있었지만 인테리어와 디자인을 주로 했다. 하지만 마케팅 일을 하고 싶었고 관심이 많았다. 이직하면서 아예 주도하게 되면서 잘하리라고 믿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거야. 높은 연봉에 혹해서 마케팅 전문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하아…… 여기서 잘리게 되면 와이프하고 자식들 얼굴은 어떻게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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