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5화 (35/656)

제 035화

진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 이 치즈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이 치즈도 저희가 받아서 쓰는 치즈와는 차원이 다른 맛인데요.”

치즈가 올려진 콘버터가 아주 맛있었다. 요리 솜씨는 굳이 꼽자면 중상인데 이것만 특별히 재료가 좋았다.

‘버터도 괜찮고, 치즈가 쫄깃쫄깃한데 보통이 아니야.’

“아니야. 이거는 우리가 받아서 쓰는 건데, 저쪽에서 소 풀어 키우는 수하 목장이라고. 거기서 직접 만들어서 주는 거야.”

“아주 맛있네요. 대단한데요.”

아무런 조미료도 섞이지 않은, 담백하고 산뜻한 치즈의 풍미.

봄이 느껴지는 향긋하고 단순한 맛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빵집이라고 했지? 지금 거기서 치즈 받아가는 빵집은 아마 없을 거야. 그런데 많은 양이 나오지 않고 직접 짜서 만드는 우유로 생산하는 생치즈라 가격은 좀 될지도 모르겠네. 우리야 달걀 주고 치즈 받아오지만.”

“진짜 자급자족이네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진혁이 치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본 아버지가 물었다.

“거, 그 치즈 업체 말인데. 아까 말씀하신 쌀농사 하는 집하고 같이 한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요즘 제 부인이 건강을 신경 써야 하는 나이가 되니까 아들이 건강에 좋은 재료에 관심이 많아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아들놈이 벌써 저의 건강까지 생각해서 빵을 만드는 나이가 되다니, 아직 손주도 보려면 멀었는데.”

어머니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들 하나는 정말 잘 키웠어요.”

진희가 말했다.

“엄마, 딸은요?”

“아유, 우리 딸도 훌륭하지.”

따뜻한 요리의 김이 식어갈 무렵, 일봉의 아버지가 와서 인사를 했다. 키가 작고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부족한 우리 아들을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이라 저희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일봉의 아버지가 일봉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전에 일하던 가게와 달리 이제 미리 한 반죽을 응용해 다양한 생지로 대량의 빵을 만드는 방법을 충분히 익혔다고 자랑을 많이 하더라구요.”

“아버지.”

일봉이 어색해하면서 말을 더듬는데 진혁의 아버지가 웃었다.

“당연히 가르쳐 줘야죠.”

일봉의 아버지와 진혁의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진혁은 닭고기를 꼭꼭 씹어 맛보았다. 이 탁월한 쫄깃함을 맛보니 다른 생각이 났다.

‘닭고기를 꼭 치킨 파이에만 쓰지 않아도 되겠어. 닭가슴살을 반죽해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피자를 건강하게 만들어도 괜찮겠는데.’

당장 빵집에 메뉴를 추가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어머니께 개인적으로 만들어드리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아 그는 기억해두기로 했다.

‘어머니를 위한 닭고기 피자. 좋아.’

11장

밤이 되었다.

구름에 가린 달이 희미한 달무리를 뿌렸다. 도시의 밤은 고요하지 않다. 그러나 새벽에 돌아다니는 술꾼들마저 잠에 취할 정도로 느지막한 시간.

진혁은 잠든 부모님의 곁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깊이 잠드신 아버지.

일이 끝나고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셨던 어머니.

숨 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규칙적으로 울렸다. 두 분의 발치에는 작은 아기고양이가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고롱고롱 행복한 소리를 낸다.

오늘의 행복한 일을 상기하기라도 하듯, 잠든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진혁은 손을 뻗어 아버지가 덮고 계신 얇은 이불 위에 손을 댔다.

아기고양이가 깨어나 야옹 하고 울려고 했다.

진혁은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서 심언을 전했다.

‘조용히 해라.’

고양이는 혀를 내밀어 제 앞발을 핥았다.

‘안 그러면 맞는다.’

진호는 수직으로 꼿꼿이 꼬리를 들어 세우고 방 밖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진혁이 진기를 주입하여 환골탈태를 시켜서 그런지, 진혁이 직접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면 어느 정도 전달되는 듯했다.

‘이 자식 알아듣는 게 분명한데 가끔 모르는 척을 한단 말이지.’

방해꾼이 사라진 후 진혁은 다시 아버지의 등 뒤에 손을 올렸다.

‘이 자세로라도 상관없어.’

타인을 강제로 환골탈태시킨다!

이 비법은 유서 깊은 구파일방에도 전해지지 않는다. 본래 환골탈태는 일정 이상의 내공을 가진 무인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피륙 속 육신을 무골에 최적화된 육체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나비로 날아오르려면 스스로 번데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 다이빙대에 서 있는 사람을 억지로 물속에 떠밀 수는 있지만 대신 수영을 해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이유로 정파에서는 타인을 환골탈태시킨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아득한 옛날에는 남궁세가 등의 명가에서 갓난아기를 벌모세수시키기 위해 장로 여섯 명이 생명을 바쳤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혁이 머물렀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고작해야 추궁과혈과 내공 전수, 영약을 통해서 후계자를 훈련한다.

하지만 진혁은 타인을 환골탈태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기존 중원 무림의 ‘타인에게는 불가능하다’ 라는 편견을 갖고 있지 않던 그는 자신이 환골탈태한 것과 같은 요령을 이용했다. 주화입마에 걸린 타인의 몸 안에서 요동치는 기혈에 자신의 진기를 주입하여 끓어 넘치는 기운을 다스렸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자는 죽었을 것이기에 실험과도 같은 처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살린 놈이 광안마다. 은혜라곤 모를 것 같던 나쁜 놈은 강제로 환골탈태 당한 원수를 갚겠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왜 원수냐고 물었더니 언젠가 자신이 알아서 환골탈태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빼앗았단다.

‘그리고 여러 대 맞았지.’

맞고 나서 다시 제대로 된 충성 맹세를 했다.

광안마 놈은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환골탈태를 당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그런 방법을 쓸 수는 없다. 진혁이 기체조라고 하면서 관절의 유연성을 강화하며 진기를 주입해온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어머니의 수혈을 짚은 후 진혁은 행동을 개시했다.

‘고통 없이, 한순간에.’

먼저 아버지부터다.

‘바닥에 비닐부터 깔고.’

환골탈태 시에 분비되는 탁기의 찌꺼기는 냄새가 지독하여, 이불이나 침대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세탁이 곤란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진혁이 미리 챙겨온 방수 비닐이 하늘을 나는 양탄자처럼 스스로 날아가 침대 위에 자리 잡았다. 최근 제빵할 때 주로 쓰는 허공섭물의 술수다.

다행히 여름에는 두 분 모두 옷을 입지 않고 주무시기에, 걸치고 있는 것은 얇은 홑이불밖에 없다. 진혁은 부모님의 벗은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혼혈을 짚은 후 머리 위 백회혈에 손을 얹었다. 정수리의 백회혈부터 시작하는 것은 본래 일반적인 대주천 방법은 아니지만, 광안마에게 시술할 때에는 이 방식으로 했다.

‘그러면-백호혈을 지나서-’

마르지 않는 샘이 흐르듯이 끊임없이 샘솟는 진기가 아버지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임맥과 독맥을 완전히 뚫어야 해.’

본래 자신의 의지로 견뎌내야 하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과정.

이 과정을 정신을 잃은 채로 수행하는 와중에, 신음이라도 흘러나오면 곤란하다. 아무리 혼혈을 짚었다고 해도 의식 없이 신음을 흘릴 수도 있기에 진혁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아버지께 마음속으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아혈 좀 짚겠습니다. 30분 내로 끝납니다.’

우두두두둑, 우두두둑, 우둑!

가죽 아래 뼈가 요동치고 근육이 끊어지며 다시 이어진다. 깨어있었다면 비명을 참지 못하였을 고통이다. 시꺼멓고 누런, 고형화된 탁기가 줄줄 흘러 비닐 위에 떨어졌다.

번데기가 탈피하듯, 말 그대로 뼈를 깎고 근육을 다듬는 시간이 지났다. 한 식경이 지난 후 진혁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깨끗하고 맑아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은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피부가 깨끗한 것은 물론이요, 눈썹과 콧날, 광대와 입술이 모두 균형을 이루고 있어 마치 유명 영화배우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혁은 아버지의 눈썹 사이, 이마 아래의 인당혈에 손을 가져갔다.

‘이 상태로 그냥 돌아다니시면 본인부터 곤란해지신다.’

세심하게 아버지의 얼굴 근육과 골격의 위치를 매만져, 이전의 얼굴에 가깝도록 다시 얼굴 형태를 바꿔놓는다.

‘천천히…… 천천히.’

사실 스스로 했던 ‘백 일간의 환골탈태’ 방법은 지나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루 만에 환골탈태를 해 버렸기 때문이다.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의 개념이 존재하는 중원에서도 하루 만에 외모가 바뀌어서 등장한 인물에 대해 일반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호의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젊어진 외모와 커진 키, 완성된 무골은 두려움과 경외, 질투의 대상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 좋지 않다. 호패 대신 신분증이 존재하며 구석구석에 CCTV와 감시 카메라, 타인의 시선이 멈추지 않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와중에 환골탈태를 하여 생김새가 바뀌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된다.

‘사실 성형 수술을 했다고 생각하면 믿어줄 텐데. 아버지도 어머니도 성형 수술을 하러 가십시다, 했을 때 오케이 하실 만한 분들은 아니니.’

진혁은 아버지의 이마 위를 흘깃 바라보았다.

회색으로 물들어 가던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고, 새까맣고 숱 많은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 있다.

‘최근 탈모로 고민하시던 점이 해결되었고.’

아혈과 혼혈을 풀고서 다시 수혈을 짚는다.

‘이 정도면 전보다 약간 잘생겨 보이지만 기분 탓이다! -하는 느낌일 것이야.’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의 전 얼굴로 보이게끔 돌려놓았다. 적절한 부위에 진기를 주입하여 근육을 당기고 뼈를 고정하였다. 이 진기는 차차 조금씩 풀어지며 신체에 흡수되어, 시간을 두고 변화한 얼굴로 돌아가게 된다.

‘백 일. 백일 정도 안에 환골탈태한 얼굴로 돌아가시게 될 테지만.’

50대인 아버지가 30대로 돌아가 버리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눈가와 입가의 주름 정도는 남겨 두는 것이 좋겠다. 진혁은 주름이 있어야 할 부분에 특별히 더 많은 진기를 주입하였다.

‘주름은 계속 유지되도록…….’

이것은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일 년은 갈 것이다. 옆에서 세심히 관찰하면서 조절하면 된다.

아버지의 고질병인 어깨 통증과 허리 디스크, 발목의 인대 늘어나는 증상은 이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의 차례다. 어머니의 혼혈을 짚고서 진혁은 다시 아주 천천히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보다 오히려 내장의 상태는 더 좋지 않으시다.’

어머니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탁한 찌꺼기들은 아버지의 것보다 훨씬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아침 해가 뜨기 전, 어머니의 얼굴 근육에 대한 미세 조정까지 모든 것을 마친 진혁은 탁기 찌꺼기가 담긴 비닐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얗고 뜨거운 열이 비닐과 탁기를 전부 태워버린다. 삼매진화로 재조차 없이 모든 것을 소각해 버리고 나서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다. 평화 일봉 농장과 수하 목장, 그리고 끝없이 논이 펼쳐져 있는 너머에서 굼실굼실 기어오는 찬란한 태양은 백 수십여 년간 보아왔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먹빛 황하를 찬란하게 물들이며 타오르는 불길로 솟아오르던 태양은 그 모습 그대로다. 단지 아래에 있는 건물이 삐죽하니 솟은 풍경과 여기 있는 사람만이 다를 뿐이다.

진혁이 한숨처럼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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