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4화 (34/656)

제 034화

오랜만에 아버지가 가게 뒤에 주차되어있던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릉, 부릉.

시속 50㎞ 정도로 안전하고 느릿하게 규정 속도를 지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진혁은 살며시 양 손목을 쥐었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군.’

“멀지 않으니 그렇게 신경 쓸 것 없어. 배가 많이 고파?”

“……아닙니다.”

“네가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 오랜만에 온다. 군대 가기 전에는 가게에 올 때마다 그랬잖아.”

그때는 아버지가 제빵의 신처럼 보였다. 아버지를 실망시킬까 두려웠고, 항상 긴장해 있어서 이것저것 실수를 하곤 했다. 지금의 일봉이처럼 실수를 하고 난 후에는 바로 사과하고 싹싹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갓 배치된 신병처럼 굳어 있었다.

“거의 다 왔다.”

평화 일봉 식당.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넓디넓은 방사장 바깥쪽에 옛 건물이 하나 서 있다. 붉은 기와집의 기왓장은 누군가 정성 들여 가꾸고 있는 티가 났다.

“아.”

와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적은 있다. 아르바이트생, 일봉이의 아버지가 농장을 하시고 어머니가 그 앞에서 식당을 하신다고.

“느이 어머니도 미리 와 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진혁의 어머니와 진희도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셨구나.’

“여보!”

“어서 오세요!”

“형님! 축하합니다.”

문을 박차고 달려 나온 일봉이 환한 웃음을 띠고서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 녀석 코를 납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잖아도 너를 찾긴 하던데.”

“그놈이 제 이름을 안다구요?”

일봉이 파하하하 웃었다.

“별일이 다 있네. 형님, 오늘 메뉴는 먹어보고 싶다고 하셨던 닭고기예요. 백숙에 도리탕에 갈비까지, 어머니께서 종류별로 다 준비하셨어요.”

“저희 아들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미소 짓는 닭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성이 나와 함께 인사를 했다. 손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거친 손을 보면 험한 일을 마다치 않고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다.

“저희 아버지는 닭 농장 일이 바쁘셔서 이따가 잠시 들르신다고 합니다.”

“그래, 그래.”

진혁의 아버지가 진혁에게 손짓했다.

“여기 와서 앉아라.”

“예, 아버지.”

“진혁아! 축하해!”

“고마워.”

2kg은 되어 보이는 큼직한 닭이다. 잘 손질되어 희디흰 닭백숙 위에는 붉은 대추와 상앗빛 통마늘, 초록색 대파가 빛깔 선명하게 장식되어 있다. 크디큰 검은색 뚝배기 안에서 맛있는 향내가 풍겼다.

“이쪽은 볶음탕이에요.”

불그스름한 국물 속, 양념이 잘 밴 닭고기들이 감자와 대파, 고추와 함께 보글보글 끓고 있다.

“닭볶음탕인데 뼈를 전부 제거하셨네요?!”

진혁의 어머니가 놀라워했다.

“저희 집 닭은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뼈가 더 튼튼한 감이 있어요. 혹시 조각 뼈에 상처를 입으실까 봐, 백숙은 그렇더라도 볶음탕은 뼈를 따로 빼고 조리하고 있어요.”

“손이 한 번 더 가실 텐데. 순 살 치킨은 봤어도 순살 닭볶음탕은 처음 봐요. 밑반찬도 아주 맛있어요. 시금치는 어떻게 무치신 거예요? 저희 집보다 더 깊은 맛이 나네요.”

“아, 이거는요…….”

어머니 둘은 벌써 친한 친구처럼 요리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봉이 소주잔을 따르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사장님, 한 잔 받으시죠.”

“오늘 우승자 먼저 줘야지.”

“자, 자. 작은 사장 선배 형님.”

“작은 사장님이면 사장님이고 선배면 선배지. 그리고 형님? 언제부터 내가 형님이었지.”

의형제는 함부로 맺는 게 아니다. 진혁은 옛 기억이 떠올라 살짝 핀잔을 주었는데 일봉이 넉살 좋게 웃었다.

“대회 때마다 나와서 저를 팍! 팍! 눌러버린 그놈을 꺾어주신 것으로 충분히! 형님이십니다.”

일봉이 침을 튀길 것 같은 기세로 열심히 말했다.

“향경전에서 진 건 저예요. 팬케이크가 주제였는데 제가 메이플시럽 팬케이크 냈다가 졌고요.”

“그래서.”

“가을 시즌 디저트 페어에서도 제가 대표로, 팀전으로 나갔는데요. 애플 빙수하고 애플 타르트를 내보냈는데 저쪽에서는 무화과 타르트하고 칵테일을 가지고 왔어요.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져버렸다고요. 저희가 먼저 사과를 고른 순간부터 솔직히 이건 이겼다! 라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죠.”

“흠.”

“가을만이 아니고요, 윈터 스위트 케이크 페스티벌에서도 마리오 그놈이 이겼고요. 겨울을 주제로 한 하얀 제과류를 만드는 거였는데 말이죠! 아시다시피 그다음에 봄 딸기빙수전도 졌고요."

“허허.”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었다.

“이번에 형이 진짜, 완전히 콧대를 눌러줘 버려서 다행이에요. 교수님한테 들었는데 요즘 스폰서들? 제과제빵 대회 스폰서들도 강마리오가 대회 상품 다 싹 쓸어 가니까 점점 더 좋은 걸 내놓는다고 하더라고요. 걔가 상품 리뷰는 기가 막히게 하거든요.”

“그래, 만석이에게 들었다. 이번에 대학생 대회 치고 상품이 엄청나게 고가의 물건이 나왔다고.”

“자기가 그 오븐 가져다가 뭐 구울 건지 다 방송해놨는데 아주 쌤통이에요!”

일봉이 킬킬 웃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 형 동생 해도 되지. 그래도 가게에서는 엄연히 선배니까 일봉이 너도 조심해라.”

“그런데 형님, 디저트 대통령과 케이크의 여왕이 형님이 만든 케이크를 맛본 기분은 어땠습니까?”

“대통령하고 여왕?”

“거, 아드레아노하고 스텔라 말입니다.”

“웃긴 별명이네.”

“웃긴 별명이라니요!”

일봉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검지를 들었다.

“아드레아노는 이탈리아인과 한국인의 혼혈로 르꼬르동 블루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한 정통 쉐프로, 거기서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한국에 와서 디저트 제국을 건설했잖아요. 그래서 대통령이고.”

그리고 셋째 손가락을 들어서 마저 설명했다.

“스텔라는 미국에서 온 페이스트리 쉐프로, 데코레이션 케이크 전문이에요. 셀러브리티의 케이크들부터 시작해서 온갖 유명한 케이크들을 만들어서 케이크의 여왕이라고 불려요. 실물 크기 말 모양 케이크부터 시작해서 웨딩케이크, 생일케이크 같은 걸 독특한 모양으로 만드는데 진짜 조각 작품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었군.”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봉이 물었다.

“심사위원들이 뭐래요? 맛있대요?”

“뭐, 비슷하지.”

“아우, 뭐라고 했는지 너무 궁금하다!”

일봉이 자기 가슴을 쳤다.

“이게 실시간 방영하는 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학교 방송은 다음 주에나 볼 수 있대요. 형 인터뷰도 했다면서요. 그것도 보고 싶고!”

진혁이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별말 안 했다.”

“스텔라도 그렇고, 아드레아노 존부도 그렇고 둘 다 제가 너무너무 존경하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리고 형도 마찬가지예요. 형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데요. 진짜 저랑 한두 살 차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못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라면 형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바로 보고 알았을걸요. 뭐라고 안 하던가요?”

진혁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가위를 들어 백숙을 반으로 갈랐다. 다리를 그대로 진혁의 밥 위에 얹어 주며 슬몃 웃으셨다.

“진혁이 너는 닭 다리를 좋아했지?”

“……네.”

오돌토돌하고 부드러운 껍질을 벗겨내면 그 아래에는 실처럼 부드럽게 찢어지는 탄력 있는 하얀 속살이 있다. 다리 살을 주욱 찢어내자 맑은 닭 국물이 뚝 뚝 앞접시 위로 떨어진다. 파김치를 하나 올려 입안에 집어넣자 부드러운 버섯의 향과 함께 진한 닭고기의 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건 정말 맛있는데?”

씹히는 질감부터가 다르다. 단 한 번도 계사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 어린 닭고기의 연한 살과는 다른, 탄력 있고 쫄깃한 식감이다.

“파이 겉껍질을 조금 더 바삭하게 해도 되겠어. 국물하고도 잘 어울리고.”

진혁의 얼굴에 감도는 놀라움과 감탄을 보고서 일봉이 씩 웃었다.

“닭고기 맛있죠?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다른 닭고기는 입에 못 댄다니까요.”

일봉이 양손을 움직여 닭의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다른 데서 말하는 그런 토종닭이 아니고요, 진짜 토종닭이에요. 외국에서 수입해 온 육종계하고는 깃털 길이부터 달라요. 꽁지깃도 좀 더 길고, 얼굴이 크고. 부리는 좀 더 길고 굽어 있고, 머리하고 몸통 생김새도…….”

“가격은 좀 더 상의해 봐야겠지만.”

진혁이 선을 그어 잘랐다. 아버지가 닭의 날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껍질도 흐느적거리지 않아. 딱 씹기 좋군.”

“여기 있는 모래주머니 볶음도 같이 드셔 보세요. 술안주로 좋아요.”

“진짜 맛있어요.”

진희가 모래주머니 볶음을 하나둘씩 집어먹으며 신기해했다.

“저 이거 무지 좋아하는데, 비린내가 있어서 항상 양념을 해서 먹거든요. 여기는 소금간만 했는데도 비린내가 없네요. 토종닭이라 그런 건가?”

“정제 소금으로 주물러 비벼서 닦아서 그래. 잘 닦으면 고추장 양념을 하지 않아도 비린내가 안 나요.”

“여기, 소금 참기름장도 찍어서 먹어봐.”

“쌀도 직접 재배하시는 거예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한 숟갈 뜨고서, 진혁의 어머니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쌀은 저희가 직접 키우지는 못하고, 요 앞에 쌀농사 하는 집에서 받아요. 일종의 물물교환 같은 거랄까? 우리는 닭을 주고 거기는 쌀을 주고.”

일봉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쌀 이야기가 나오자 진혁이 이번 대회에서 만났던 김금관 아저씨를 떠올렸다.

“아버지, 이번에 대회에서 토종밀을 키우시는 분을 만났어요.”

“그래?”

아버지가 관심을 표했다.

“그러고 보면…… 토종닭이나 쌀은 있어도 토종밀은 들어본 적이 없어.”

진희가 말했다.

“요즘 재료에 엄청 신경 쓰네? 전에는 빵의 맛이나, 이런 것에 주로 신경을 썼잖아.”

“그래서 명함을 받아왔는데, 토종닭 파이의 식감도 좀 더 거칠게 하고 싶거든요.”

“전에 그 자체로 충분히 맛있었는데, 더 고쳐야 할까? 이미 완성된 식감인데.”

“아뇨, 더 맛있어질 수 있어요.”

진혁이 웃었다.

“건강에도 더 좋구요. 어머니가 드시기에 더 좋을 거예요.”

진혁과 아버지의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 건강 때문에 생각했냐?’

‘네.’

‘고맙다.’

눈빛으로 짧은 대화가 오가고서, 진혁의 어머니가 감동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일봉의 어머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어머. 저희가 토종닭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자식들이 항생제 걱정 없이 건강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드님을 아주 잘 키우셨네요.”

진혁의 아버지, 어머니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혁은 반찬을 하나하나 맛보았다. 약하게 간이 된 반찬들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 유독 맛이 좋은 것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