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2화 (32/656)

제 032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부담감이 있을 텐데…….”

김금관이 걱정스러워 하며 멀리서 말했다. 아무래도 관객석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부스를 지키고 있는 만큼, 진혁이 뭘 하는지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부지런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저기서 뭔가를 가져오고 냉장고에 무엇을 넣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아버지, 쟤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긴장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김은동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응원할 필요도 없어요. 압도적으로 이겨 버릴 걸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제가 엉망진창으로 졌잖아요. 절 이겼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이겨야죠.”

김은동이 씩 웃었다.

“이 호밀빵, 즉석에서 반죽해서 만들었다면서요. 데코에만 천재적인 솜씨가 있는 줄 알았는데, 반죽도 장난 아니에요. 재료의 정확한 배합 비율을 깨치는 센스만이 아니라 운도 있죠.”

은동이 멀리 시험장을 응시했다.

“저 실력이면 여기에서 지기도 힘들 걸요.”

“그래?”

“제가 이 밀가루로 빵 굽는 게 잘 안 돼서, 천연 발효 빵 전문 개인 클래스에 나갔잖아요. 거기 빵 가르쳐주시는 분이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오신 실력 있는 분이신데, 그분하고 같이 우리꼬맹이밀로 밀 빵 만들려고 노력을 했어요. 거의 백 번 넘게 했는데 잘 안돼서 다시 이번에 내려가면 또 하기로 했거든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은동이 그렇게까지 노력하고 있는 줄은 몰랐던 김금관이 눈을 크게 떴다.

“녀석, 그렇게까지 하고 있었냐.”

“대학생 대회가 아니라 쉐프전에 나가도 우승할 실력이에요. 저희를 도와준 것도 사실 컨설팅비를 지불해야 해요. 그런 지식을 쉽게 나눠주다니 쉬운 일은 아니죠.”

“밀을 공급받는 거로 충분하다고 했어. 어머니께 건강한 빵을 만들어드리고 싶다고 하더구나.”

“효자네요.”

“너만큼 하겠냐.”

김금관이 은동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드려 주었다.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노력을 하고 있었는지 이 아비가 전혀 몰랐구나. 고맙다.”

“그래도 결국 B-3번이 도와줘서 했잖아요.”

“그 은혜는 갚아야지.”

김금관이 어깨를 폈다.

“이 밀을 빵으로 만들어 판다면 우리 꼬맹이밀을 먹는 사람이 더 늘어날 거야. 그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입었어. 은인이 꼭 우승하셨으면 좋겠구나.”

“그 솜씨라면 우승을 안 할 수가 없다니까요.”

두 부자가 나누는 대화는, 양복쟁이가 한 사람 다가와 말을 걸면서 중단되었다.

“아까 여기 빵을 먹어보았는데 맛있더라고요. 국수도 한 봉지 줘보쇼. 얼마요?”

“여기 있습니다! 샘플비는 오천 원만 주십쇼.”

“아저씨 명함도 주시고.”

“예에, 여기 있습니다!”

활기차게 두 사람은 홍보를 계속했다.

◈          ◈          ◈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고 평가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심사위원의 알림이 끝나자마자 진혁과 마리오, 두 사람이 동시에 벨을 눌렀다.

“A조 강마리오와 B조 임진혁은 동시에 눌렀으므로 시간 점수가 동일합니다. 모양 평가를 하고 맛을 봐야겠죠?”

스텔라 위스커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머나, 이건 또 놀라운 음식인데요.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크로크 마담이로군요.”

강마리오가 자신의 음식을 내오자, 아드레아노 존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달걀부침은 정말로 예쁘게 잘 만들어졌네요. 교과서적인 크로크 무슈예요.”

“아래에 있는 빵은 코코넛 파운드 케이크입니다.”

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진혁이 만든 것은 럼 파운드 케이크였다. 둘 다 겉보기에는 토스트처럼 보인다.

‘토스트를 만드는 데에 파운드 케이크를 떠올렸다는 것이 비슷하군.’

하지만 생김새는 전혀 다르다.

저쪽에서 낯익은 기운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음……?”

대회장의 다른 쪽에서 열린 단체전을 끝낸, 경운대 팀원들이다. 김만석 교수와 낯선 후배들 다섯, 그리고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저 할머니가 여기까지 왜 왔지.’

매일 치즈케이크를 사러 오는 단골이자 햇살경로당의 토박이.

고물상을 운영하는 금천복 할매다.

그녀가 씩씩하게 자기 키보다 두 배는 더 큰 깃발을 휘둘렀다. 동네에서 맨날 보던 몸뻬 바지에 꽃무늬 상의를 요란뻑쩍지근하게 입은 모습이 아니다. 반듯한 은색 정장을 입은 금천복 할매 옆에는 할머니와 대단히 닮은 남자가 양복을 입고 서 있었다.

‘아들 보러 서울 가신다더니, 아들을 데리고 이리로 오셨나.’

진혁은 피식 웃어버렸다.

“총각! 잘 하라우!”

젊은 남자와 여자가 절반 정도 섞여 있는 강마리오의 팬들. 그밖에 진혁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열 명이 채 안 된다. 그저 관객석에서 조용히 올려다보는 김만석 교수와 씩씩하게 외치며 응원하는 이곳의 최연장자일 것이 분명한 금천복 할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정말로 초라하군.’

예전, 중원에서 갓 십육 세가 된 그가 명천(命天)대의 대장으로 임명받을 때에도 그랬다. 아홉 명의 명천대원들을 앞에 두고서 당시의 교주에게 임명장을 받았다. 본래 101명이었던 고아들은 혹독한 수련 끝에 열 명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

이곳은 단순한 친전 경기장이고, 자신은 여기에서 빵을 만들고 있다.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피를 보아야 할 필요도 없고, 살아남기 위해 친구에게 칼을 꽂아야 할 필요도 없다.

‘정말로 마음이 편하다.’

강마리오의 팬들이 낮은 목소리로 가만히 수군거렸다.

“저기는 팬이 없어서 친할머니가 응원을 왔나 봐.”

“난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어머니 덕에 이상한 오해를 받고 있네요…….”

다른 쪽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금천복의 아들이 중얼거렸다. 금천복 할매가 낄낄 웃었다.

“아무렴 네 면상에 저렇게 번듯한 아들이 있다고 하면, 오히려 칭찬해줘서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 아니냐?”

“어머니!”

모자가 투덕투덕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주 잘 들린다. 진혁이 무대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신경을 쓰는 사이, 강마리오의 평가가 시작되었다.

완벽한 크로크 마담의 비주얼!

토스트처럼 생긴 두 개의 네모난 빵 위에 올라가 있는 반숙 계란.

흰자의 가장자리에 살짝 갈색 자국이 있는 것까지, 누가 봐도 크로크 마담의 생김새다.

대회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거대한 화면에 크로크 마담이 클로즈업되어 드러나면서 모두가 오오-하는 감탄사를 냈다.

“이게 크로크 마담처럼 보이지만 크로크 마담은 아닙니다.”

강마리오가 자신만만하게 접시를 내밀어, 반 잘라 내보였다. 심사위원들 앞에 하나씩 접시가 돌아갔다.

“퐁당 위에 코코넛 크림을 올려놓은 건가요?”

달걀 프라이처럼 생긴 하얀 설탕 반죽을 맛본 스텔라 위스커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비주얼은 완벽한 크로크 마담인데.”

아드레아노 존부가 마저 맛을 보았다.

“맛은 확실히 다르군요.”

하지만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냉정한 말투로 그가 말했다.

“코코넛 파운드 케이크 위에 코코넛 크림을 올린 것까지는 무난한 조합입니다만, 계란 흰자로 쓴 퐁당의 양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달아서 전체적으로 맛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캐러멜 소스까지 뿌리니 더욱 달아요. 설탕을 절반으로 줄이고 소금을 조금 넣어 단맛을 강조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예…….”

강마리오가 입술을 깨물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강마리오의 팬들이 조용해지며 웅성거렸다.

“단맛이 이렇게 진할 경우에는 라즈베리나 블루베리를 써서 새콤한 맛을 추가하세요. 좀 더 맛의 밸런스를 추구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저는 7점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6점을 주겠어요.”

풀죽은 강마리오가 뒤로 물러나고 드디어 임진혁의 차례가 되었다. 진혁이 만든 디저트가 화면에 나오면서 다들 웅성거렸다.

“강마리오 것이랑 똑같잖아?”

“아니야, 베이컨도 있어.”

“그냥 평범한 토스트 모양인데…….”

누가 봐도 토스트에 베이컨, 그리고 반숙 달걀 무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스텔라 위스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그냥 토스트 아니에요?”

“아닙니다.”

진혁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보이는 것과 다른 맛입니까?”

아드레아노 존부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진혁은 말없이 토스트와 달걀 무침을 잘라내 작은 접시에 담았다.

“직접 드셔 보시죠.”

가까이에서 접시를 본 스텔라 위스커스가 코를 킁킁거렸다.

“파인애플과 레몬. 시트러스 향이 나요. 확실히 일반적인 토스트는 아니군요.”

토스트처럼 생긴 빵을 입에 넣고서 그녀가 눈을 감았다.

“음…….”

그리고 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남은 빵을 씹어 삼켰다.

“음……!”

빵을 전부 먹고 난 후에는 달걀 반숙으로 손을 가져간다. 반으로 잘린 달걀노른자는 흘러내리지 않고 탱탱하게 그대로 반쪽 모양을 유지했다.

“이건…… 달걀이 아니군요. 강마리오 씨처럼 퐁당을 쓰지도 않았어요. 파인애플 커드 크림으로 달걀노른자를 만들었군요. 그런데 흰자는 뭐죠?”

“레몬 버터크림을 얇게 휘핑해서 함께 얹었습니다.”

“크림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파이핑 실력이 뛰어나군요. 꽃 모양이나 별 모양 파이핑은 자주 봤지만, 계란 흰자처럼 이렇게 파이핑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파이핑이란 짤주머니에서 크림을 짜낼 때의 기술을 말한다.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기술이다. 단지 모양깍지를 어느 것을 쓰는지만이 아니라, 두께와 크기 그리고 힘의 조절, 짜는 각도, 손목이 회전하는 정도에 따라서 모양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오랜 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진혁이 웃었다.

“파인애플 커드 크림과 레몬 버터크림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코코넛 파운드 케이크를 토스트 모양으로 구워냈는데, 안에 넣은 건 뭐죠?”

“이 베이컨은……. 세상에.”

베이컨을 한 입 맛본 스텔라가 피식피식 웃었다.

“얇은 카사바 칩에 뭘 발라서 갈색으로 만들었어요?”

“메이플 시럽입니다.”

설탕보다 10배, 가격이 비싼 메이플 시럽은 몸에 좋고 단맛이 풍부하다.

“이 하얀 가루는 소금이고요.”

“예.”

메이플 시럽으로 그린 줄무늬가 갈색으로 익어, 멀리서 언뜻 보면 얇은 베이컨 칩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냈다. 물론 베이컨 칩 모양으로 잘라내어 칩처럼 꾸민 것은 철저하게 정교한 장식 기술이다.

“포테이토 칩이 아니라 카사바 칩을 쓴 건, 일부러 바삭바삭하고 딱딱 깨지는 식감을 노린 건가요?”

“예.”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저게 카사바 칩이라고?”

“카사바 칩이 뭐야?”

“포테이토 칩 같은 거야.”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지나치게 딱딱한 식감을 커버하기 위해 얇은 팬케이크를 부쳐내서 아래쪽에 한 겹 입혔네요. 팬케이크를 어떻게 이렇게 얇게 구웠는지 모르겠군요. 메이플 시럽과 카사바 칩하고도 잘 어울려요.”

“신기한 아이디어군요.”

아드레아노 존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누가 이긴 거야?”

심사위원이 점수를 발표했다.

“저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브런치의 맛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음식을 내보내신 참가자분에게는 10점을 드릴 수밖에 없죠.”

“단맛과 짠맛의 조화, 거기에 주제를 살리는 것까지. 대학생 부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입니다. 저도 10점을 드리겠습니다.”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20점! 향인대의 임진혁 군이 1등을 했습니다.”

사회자가 진혁의 옆에 다가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수상 소감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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