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1화 (31/656)

제 031화

“와. 진짜 맛있다.”

빵 조각을 맛본 남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자기야, 이것 좀 봐. 아주 맛있어.”

“한 조각 더 먹어봐도 되나요?”

“한 사람당 한 조각씩이요! 지금 이 청년이 만들어 준 거라 별로 없어서.”

아저씨가 밝게 웃었다. 진혁은 줄 서 있는 인파를 힐끔 보고서 자리를 떴다.

‘명함은 받아 뒀으니 나중에 아버지를 통해서 주문해야겠군.’

통밀로 빵을 만들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거래처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이 페어에 나오길 잘했어. 일봉이한테 고맙다고 해야겠군.’

다른 곳을 서성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곧 대회 출전 시간이 되었다. 출전자를 불러 모으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데코레이션 페어, 대학생 부문 개인전, A, B조 우승자들은 대기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          ◈          ◈

한편, 그 시간에 우리꼬맹이밀 부스의 아저씨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청년이 있었다.

“아버지, 그건 뭐예요?”

“은동아! 오늘은 대회 때문에 행사장에 못 온다더니.”

꼬맹이밀을 3대째 키워오는 전수자, 김금관이 아들을 보며 웃었다. 우리꼬맹이밀 부스에서 밀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빵이 전부 사라지자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몇 군데 도매 업체에 샘플을 보내기로 했고, 개인적으로 흥미를 보인 바이어들도 몇 있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하루였다. 은동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어제 예선에서 붙어서 오늘 대회에 출전할 줄 알았죠. B조에서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아버지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해요.”

김은동이 바닥을 보면서 말했다. 김금관이 은동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다. 사내 녀석이 깨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거지.”

은동이 억울한 듯이 말했다.

“솔직히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나는 아산에서는 제일 빵을 잘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시골 출신이라 어쩔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풀 죽기는! 원래 풍랑을 겪어야 더 큰 사람이 되는 법이야. 그럼 오늘은 들어가서 좀 쉬지 그랬냐.”

“그래도 아버지 혼자 부스를 지키고 있으실 수는 없잖아요. 제가 같이 있어야죠.”

김금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까지 착한 청년이 한 명 도와주었어. 괜찮다.”

“착한 청년이요?”

“이것 봐라.”

김금관이 따로 빼두었던 작은 빵 조각을 내밀었다.

“우리꼬맹이밀로 만든 통밀빵이야.”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 우리꼬맹이밀은 글루텐 비율 때문에 반죽이 잘 안 돼서 빵이 맛있게 되기가 힘들다고……. 그래서 여기서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비율을 조절해서 여러 번 테스트해봐야 빵을 만들 수 있어요. 행사 끝나고 고향 내려가면 제가 다시 해 볼게요.”

“너야말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냐?”

김금관이 아들의 코앞에 빵조각을 들이밀며 흥분해 말했다.

“이게 우리꼬맹이밀로 만든 통밀빵이라니까. 그 청년이 조합 비율과 온도도 다 말해 줬다.”

김은동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이미 어제의 패배로 인해 기분이 잔뜩 가라앉아 있다. 더군다나 처음으로 우리꼬맹이밀을 손에 쥔 지나가는 사람이 훌륭한 빵을 만들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가 백 번이 넘게 만들어 본 우리꼬맹이밀 통밀빵은 빵이 너무나 맛없어서 전혀 상품성이 없었다.

“그런 동화 같은 일이 어디에 있어요. 지나가는 착한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아버지가 횡설수설하며 말하는 천사 같은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맛있을 리가 없어요.”

은동이 남아있는 빵조각을 잘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

맑은 가을바람이 순간적으로 불어와 온몸을 감싼다. 이것은 우리꼬맹이밀을 경작하던 밭의 모습이고, 땅의 향기이며 하늘의 바람이다.

우리꼬맹이밀은 유난히 키가 작아 높이가 일반 밀의 절반에서 1/3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거센 바람과 태풍이 불어도 바람에 쓰러지는 경우가 적다.

거세고 차가운 여름 태풍이 불어와도, 물결에 넘실거리듯 바람을 흘려보내는 황금빛 밀밭.

지금 눈앞에 그 모습이 그대로 펼쳐진다.

“반죽에…… 밀기울을 섞었어.”

은동이 떠듬떠듬 말했다.

“나는 빵을 더 부드럽게 만들려고만…… 고운 밀가루를 쓰는 데에 집착했는데, 밀기울을 섞어서 더 거칠게 만들었어. 씹힘맛이 더 살아나게 했어.”

“대단하지, 나도 맛있게 먹었다. 빵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빵은 승산이 있을 것 같아.”

“계속해서 만들어 준대요?”

“거기 가서 배워야겠어요.”

은동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르쳐줄 수 있냐고 물어봐야겠어요. 아이디어 자체부터 달라요. 분명히 제빵의 명인일 거예요.”

“너랑 비슷한 나이 또래의 청년이야.”

“그런-!”

은동이 문득 떠올렸다. 저쪽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결선장에 있는 세 사람을 가리켰다.

“혹시 저 세 사람 중에 있어요?”

“멀어서 잘 모르겠는데…….”

김금관이 말했다.

“무슨 대회에 나간다고 하긴 하더라. 가게 명함을 받아두었으니까 대회 끝나고 소개를 해 주마.”

“꼭, 제발요! 정말로 부탁드립니다.”

은동은 생각했다.

‘예선 진출자는 둘밖에 없는데…… 둘 중에 누구지?’

아까 소리에 이어서, 커다란 확성기가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주제는, 브런치입니다.”

반원형의 무대는 심사위원들이 살펴볼 수 있게 3개의 조리대가 나란히 서 있다. 각자의 오븐과 냉장고, 조리대가 동선이 겹치지 않게 별도로 구분되어 있다. 가장 왼쪽에 서 있는 강마리오 앞에서는 개인 팬들이 플래카드를 흔들며 이름을 외쳤다.

“강마리! 강마리!”

“마리 오빠-여기 봐주세요!”

“이기러 왔다!”

“브런치?”

강마리오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주제지.”

강마리오가 브이 자를 그리며 팬들에게 윙크하자 팬들 사이에 우와 하면서 함성이 일었다. 다양한 종류의 전통 프랑스식 제과제빵 기술을 선보이는 경운대 출신 강마리오. 그리고 평범한 도전자 임진혁.

강마리오의 팬이 웅성거리면서 진혁을 의식했다.

“저 사람은 누구야?”

“마리 형이 최고라고.”

“그런데 되게 잘생겼다…….”

“잘생기면 다야?! 빵을 잘 만들어야지! 그리고 빵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프랑스식 양파 사골 수프에 이길 수 있겠냐고! 마리 형이 만든 바게트와 양파 사골 수프는 최고란 말이야!”

임진혁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트위터를 활발히 하면서 십만 단위의 팔로워를 관리하는 강마리오와 달리, 철저하게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1인인 것이다. 서로를 견제하는 팬들 사이에서 소곤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참가자가 불쌍해. 저렇게 잘생겼는데, 마리 오빠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밖에 안 되다니.”

“그런데 진짜 멋있긴 하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는데도 멋있어.”

“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여기 모델을 해야 할 것 같아.”

멀리서 잠시 다가와 진혁을 확인한 김금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저 남자야.”

김은동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저 사람이 제가 말한, 빵을 엄청나게 잘 만드는 애예요. 저랑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데 데코레이션 실력이 장난 아닌…….”

“그런데 왜 쟤 앞에만 사람이 없지?”

은동이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가 나빠요. 강마리오는 제빵 유튜버 중에서는 탑이에요.”

“야구를 할 때도 홈경기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김금관이 안타까워했다.

“이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관객석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은 뒤로하고서 심사위원, 스텔라 위스커스가 마이크를 들었다.

“자, 조용히 해주십시오.”

아드레아노 존부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말했다.

“두 번째 주제는,”

웅성거리고 있던 관중이 조용해졌다.

“보이는 것은 실제의 것과 같지 않다-입니다.”

진혁은 생각했다.

‘그럼, 그걸 만들면 되겠군.’

띠링-! 벨이 울렸다.

“시간은 3시간입니다. 여러분, 시작하세요!”

진혁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중국식 점심이라면 모를까, 브런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가볍게 먹는 음식을 하면 좋겠어.’

그가 생각한 메뉴는 아주 단순했다.

‘맥도날드 맥모닝 세트 같은 걸 하면 되겠지.’

케첩을 곁들인 달걀 프라이와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그리고 해쉬 포테이토. 그리고 샌드위치. 진혁의 머릿속에는 성공을 향한 완벽한 지도가 그려졌다.

‘레몬과 파인애플 커드 크림으로 달걀노른자를 대신하고, 베이컨 육포 모양은 얇게 구운 감자 칩과 고구마 칩을 길게 구워내서 만든다.’

진혁은 식칼을 집어 들었다.

파인애플의 잎사귀 부분을 잘라내고 순식간에 껍질을 벗겨낸다. 진혁의 번개 같은 손길에 잘려버린 파인애플은 순식간에 잘게 가루가 되었다. 맛을 살려야 하니까 더 작은 토막으로 자르는 것은 좋지 않다.

‘카메라가 보고 있으니까…… 최대한 느리게, 느리게. 나는 거북이다. 나는 거북이다…….’

특별한 무공은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놀림 자체가 너무나도 빠르다.

“브런치에 왜 파인애플이 들어가?!”

“언제 잘라서 토막 낸 거야? 잘린 파인애플이 있었어?”

“조금 전에 잘랐잖아!”

강마리오의 팬들도 진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편, 강마리오는 조리대 위에 가루 쇼트닝을 뿌리고 가루 설탕을 펴 발랐다. 믹싱 볼에 마시멜로를 가득 넣은 후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전자레인지에서 마시멜로가 녹는 동안 가스레인지에서는 코코넛 버터를 녹이며, 오른쪽에는 식용 색소를 주르륵 늘어놓았다.

‘보이는 것과 맛보는 것을 다르게 할 때는 퐁당이 최고지.’

퐁당(Fondant)이란 설탕을 다른 첨가물과 함께 녹여 반죽 형태로 만들어, 장식하기 쉽게 만든 것을 말한다.

그는 크로크 마담을 만들 생각이었다.

크로크 무슈와 크로크 마담은 프랑스에서 흔히 브런치로 먹는 메뉴다. 토스트 사이에 햄과 치즈, 베사멜 소스를 넣어 만든 프랑스식 샌드위치를 크로크 무슈라고 한다. 토스트 위에 반숙 달걀부침을 올린 것이 마치 여성의 모자와도 같다고 하여 크로크 무슈 위에 달걀부침을 올린 것은 크로크 마담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라야 하니까.’

그는 노란색 색소를 넣은 코코넛 크림으로 달걀노른자를 대신하고, 흰자는 하얀 퐁당으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빵은 토스트가 아니라 핫케이크를 구워내, 토스트처럼 겉을 바삭하게 후처리를 할 예정이다.

‘크로크 마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코코넛 버터크림 핫케이크지.’

크로크 마담에 빠질 수 없는 베사멜 소스는 녹인 버터에 밀가루를 넣고, 생크림과 우유를 넣어 끓여서 만든다. 만드는 데만 서너 시간이 넘게 걸리는 메뉴다.

‘코코넛 버터크림 핫케이크에 베사멜 소스는 어차피 어울리지 않아.’

강마리오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국자를 들어 올렸다. 걸쭉한 코코넛 크림에 코코넛 워터와 설탕을 조금 넣고 끓이는, 홈메이드 코코넛 밀크 캐러멜 소스 레시피다.

‘베사멜 소스 대신 코코넛 밀크 캐러멜 소스를 뿌리면, 완벽해질 거야.’

사실 강마리오가 좀 더 브런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돼지고기 키쉬다. 하지만 이미 예선에서 12간지에 따른 요리가 나오면서 키쉬를 이미 해 버렸다.

‘키쉬를 한 번 더 하면, 너무 진부한 느낌을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크로크 마담이다. 강마리오가 요리에 집중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마리! 강마리!”

“마리 오빠! 사랑해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두 출전자! 모든 사람이 출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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