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8화 (28/656)

제 028화

“기분 탓이 아니야, 여보. 진짜로 눈썹이 다시 나고 있어.”

“그렇지?”

어머니에게 확인받고서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진혁도 흐뭇했다.

“내일만 지나면 제가 다시 돌아가니까, 일하는 데 더 힘들진 않으실 겁니다.”

“그래.”

생각났다는 듯이 아버지가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우리도 휴일을 하나 만들려고 해. 평일 중에 하루는 쉬어야지.”

“예?”

진혁이 물었다.

“원래 가게는 365일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면서요.”

아버지가 웃었다.

“너도 이제 복학해야지. 학교는 졸업해야 할 것 아니냐.”

“저는 학위는 필요 없는데…….”

“몇 년도 아니고, 고작 한 학기 남은 걸 가지고.”

아버지가 혀를 찼다.

“일봉이 녀석이 우리 가게에서 일한 걸 실습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학교에 신청을 했었나 봐.”

진혁이 신기해했다.

“개인 윈도우 베이커리에서 일한 걸 산학협력으로 인정해준다고요?”

“사업자등록증이랑 몇 개 내고, 간간이 교수가 나와서 점검하고 그러면 가능한가 봐.”

아버지가 씩 웃었다.

“나도 경력을 인정받아서 강사로 들어가기로 했다.”

“예?”

진혁이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강의를 들어오신다구요?”

“여보, 내일 이야기한다면서요.”

어머니가 말하는데 아버지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만석이 놈이 전부터 몇 번 얘기하기는 했었는데, 실력 있는 실습 강사가 필요하다는 소리를 했어. 현장에서 감독을 하는 역할로 해서 학기에 한두 번 가서 봐주면 되는 것 같더라.”

“예에.”

아버지가 기지개를 켰다.

“전에는 일하고 나면 피곤하고 온몸이 쑤셨는데, 요즘은 네가 함께 일하고 일봉이도 있으니 확실히 몸이 편해.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상쾌한 게 딱 좋아. 네가 이렇게 연구하고 개발하니까, 나도 학교의 세미나 같은 데에 참여해서 새로운 기술도 배워 볼 참이다. 실습 강사에게는 다양한 세미나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꼬시더라.”

“그렇군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아직 환갑이 되지 않으셨고, 한창 젊으시니까요.”

진혁이 마지막으로 혈도객을 보았을 때 그 녀석이 아흔이었다. 반로환동을 한 무림고수라면 한창때라고도 할 수 있을 나이다. 환골탈태를 한 무림인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오래 건강하게 산다. 칼 맞아 죽는 비율은 더 높지만.

어머니가 핀잔을 주었다.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아.”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말은 아니다. 진혁이 웃었다.

“팔은 이렇게 올리시고요.”

어설퍼 죽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어설프도록 자세를 봐 드린다.

“다리는 이렇게 해서 서 계시는 겁니다.”

“이 기체조도 군대에서 가르치는 거냐?”

어머니는 호기심이 많다. 진혁이 어허, 하고 헛기침을 했다.

“오른쪽으로 조금 더 움직이세요. 네, 이렇게. 처음보다 훨씬 낫습니다.”

자세를 봐 드리면서 진기를 주입한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하루에 오 분 정도밖에 안 하는데 이렇게 상쾌하다니 신통방통한 노릇이야.”

“그렇죠?”

진혁이 웃었다.

“그럼 오늘도 잘 주무시고요, 내일 아침에 먼저 나가겠습니다.”

“쯧쯔, 피곤할 텐데 늦게까지…….”

“괜찮습니다.”

◈          ◈          ◈

다음날.

대회장에 도착한 진혁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진혁아! 혹시 나갈 때 진호 못 봤니?”

전화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공황에 빠져 있다. 진혁이 얼굴을 찡그렸다.

‘작은 털뭉치 녀석…… 여러모로 어머니 속을 썩이는군.’

“제가 가서 찾아볼게요.”

“아니다, 대회가 있는데…….”

“여보! 우리가 알아서 찾아봐야지. 이제 기차 타고 가고 있는 애한테 심란하게 그런 전화를 하면 어떡해.”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 목소리도 들린다. 진혁은 대전표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가야 할 결선은 오후 1시. 지금은 오전 7시, 오히려 지나치게 빨리 온 감이 있다.

“진혁이가 여기에 다시 온다고 해도 다시 기차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면 대회에 나갈 수가 없어.”

천마강림보를 사용해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5분에서 10분 이내의 거리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처에 친구가 있으니까 부탁해 볼게요.”

“그래, 고맙다. 진혁아. 괜히 너한테 연락해서 미안하다.”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진혁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환골탈태까지 마친 녀석이 전보다 조금 빨라지긴 했지.’

그렇다고 해서 진혁을 따라올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어제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진혁이 얼굴을 찡그렸다.

‘설마.’

가방을 다시 내려놓고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낯익은 녀석이 손을 흔들었다.

“향인대 대표 임진혁?”

진혁은 강마리오를 쳐다보고 말했다.

“김 마리아?”

“나는 경운대 대표로 너희 학교에…… 김 씨 아니라고!”

강마리오가 팔에 걸치고 있는 붉은색 체크무늬 재킷을 바라보며 진혁이 말했다.

“옷 좀 빌리자.”

“어? 아니 옷은, 이봐!”

재킷을 낚아채서 순식간에 사라진 진혁을 바라보며 그 뒤에서 강마리오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섰다.

“야! 내 옷!”

강마리오가 서둘러 뒤를 쫓으려고 해보았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이미 다른 건물과 건물 위를 뛰어넘어 소망시를 향해 내려가는 중이다.

“뭐 저렇게 걸음이 빨라?”

강마리오는 당황해서 발을 굴렀지만, 이미 진혁이 간 곳을 찾을 수 없었다.

◈          ◈          ◈

집 근방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들린 것은 어머니의 외침 소리였다. 고양이를 찾아서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고 계시다.

‘출근 시간에 늦으셨을 텐데.’

진혁이 이마를 찡그렸다. 그가 기를 탐색하기 전, 작은 털뭉치가 폴짝 뛰어올라 진혁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진혁이 지나간 길을 냄새를 맡아서 따라오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밟았던 지붕 위에서 코를 들이대며 킁킁대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니가 개냐? 따라오게?”

진혁은 조그만 고양이의 이마를 콩 하고 때려주었다. 고양이가 야옹 울었다.

“이으야오오오옹.”

“엄마 속이나 썩이고. 이 새싹 노란 놈아.”

다시 한대 콩 때려주었다.

“이야으엉.”

자그마한 항의를 내뱉고서 고양이가 진혁을 핥기 시작했다.

“핥지 마라. 정든다.”

간단한 역변술을 응용하여 얼굴의 근육 위치를 뒤바꾼다. 자세를 낮추고 붉은색 체크무늬 재킷을 걸치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진혁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굳이 상위의 천안투마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됐잖아?’

굳이 백 일간의 환골탈태같이 엉뚱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천안투마공으로 부모님의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역변술은 아예 얼굴 근육 자체를 바꿔버리니까, 조금씩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

광안마 녀석이 알았으면 배를 붙잡고 웃었을 것이다.

‘교주님은 묘하게 어설픈 데가 있다니까요!’

물론 그리고 대련에 끌려가 한 대 맞았겠지.

고양이 진호의 목덜미를 잡고서 진혁은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머니가 계신 곳을 찾는 것은 쉬웠다.

“진호야-진호야-”

끊임없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서 이미 목이 쉬어버리셨다. 진혁은 조용히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아 올려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다.

“너, 잘했어. 못했어.”

고양이는 파란색 투명한 눈동자를 깜빡거리더니 얼굴을 돌려 피했다.

“진호 이 자식, 너 사실은 말 알아듣는 거지?”

고양이가 애앵-하고 울었다. 멀리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머니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호야-”

진혁이 황급히 지붕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 높이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 정도의 자각은 있다. 지붕 뒤 다른 골목으로 뛰어내려 빙 돌아오는 동안, 어머니는 경비원과 마주쳤다.

“저, 어린애라두 잃어버리셨수?”

경비원이 다가와 물었다.

“아까부터 진호, 진호 하고 소리를 치셔서. 저가 뭐 도와줄 것은 없는가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고양이를 잃어버렸어요. ”

“아니 사람 애도 아니고 고양이를 지금 그렇게 찾고 있는 거유?”

핀잔 주듯 말하는 경비원의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 고양이입니까.”

나지막하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일부러 더 낮게 낸 것이다. 어머니가 반색하며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네! 맞아요! 진호야!”

고양이는 달아난 적 없다는 듯이 뺨을 비비며 어머니에게 안겼다. 골골대면서 안기는 것을 본 어머니가 눈물을 닦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진혁이한테 부탁받으셨나요?”

“예에에에에에에.”

괜히 말꼬투리라도 잡혀 정체가 들킬까 봐 긴장한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뒷걸음질을 쳤다.

“찾아주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이거라도.”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진혁은 그대로 도망쳤다.

“저기, 청년! 거기!”

어머니가 외치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우리 아들하고 대단히 닮았네요. 덩치도 비슷하고…… 이런 친구가 있는 줄 몰랐는데…….”

쓸데없이 좋은 청력은 아주 멀리에서 어머니가 외치는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진혁은 경기장에 도로 도착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다. 건물 옥상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리려던 진혁이 아래를 내려다보고서 피식 웃었다.

강마리오가 문 앞에서 두리번거리면서 아직도 진혁을 찾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이 한참 돌아다닌 것처럼 보였다.

“어디 갔어?”

20분이나 지났을까? 진혁이 경기도 소망시에 다녀오며 고양이를 찾아서 돌려주고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마리오에게는 당황스러운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니 옷 여기 있다.”

진혁은 강마리오의 뒤에서 튀어나왔다. 강마리오는 기절할 만큼 놀랐다.

“조금 전까지 여기에 없었는데?! 어디 숨어 있었어!”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

강마리오가 악을 썼다.

“네가 먼저 반말하고 옷도 가져갔잖아.”

“그렇군. 그럼 너도 반말해라.”

진혁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반말을 찍찍하는 애송이를 용서하기로 했다. 띠링, 띠링 문자가 계속해서 왔다. 어머니가 고양이를 찍은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낸 것이다.

“급하게 쓸 일이 있어서. 잘 썼다.”

진혁은 바로 옷을 돌려주었다. 강마리오가 땀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뭐? 옷 대여료라도 받으려고?”

진혁이 주머니를 뒤졌다. 차비 하라고 김만석 교수에게 받은 오만 원권 지폐와 어머니, 아버지가 각각 챙겨주신 현금이 조금 있었다.

“얼마면 돼?”

“돈 문제가 아니야!”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받기 싫으면 말고.”

진혁은 강마리오를 뒤로하고 시험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행사용 부스에 사람들이 나와 준비하고 있는 무렵이다. 어제는 예선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지만 오늘은 부스전을 구경할 생각이다. 뒤에서 강마리오가 무어라 말하며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진혁이 평범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강마리오는 따라오지 못하고 처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