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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27화 (27/656)

제 027화

“나도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도 잘 안 하고, 새벽에 일찍 나가서 일하고, 항상 당신이랑 나를 바라보면서…… 효도에 한이 맺힌 것처럼 굴지.”

“전에 제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걸어가려고 하는데, 아예 몸으로 차가 들어올 만한 길을 막으면서 제 앞에서 걷더라고요. 나를 꼭 깨지기 쉬운 유리 그릇 같은 거로 다뤄요. 밤마다 하는 안마와 기체조는 또 어떻구요.”

어머니가 신고 있는 빨간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생전 내가 발에 신발을 신는지 대야를 신는지, 뭘 신고돌아다니는지도 전혀 신경쓰지 않던 애가 갑자기 내가 쓰던 구두를 광나게 닦아놓지를 않나.”

어머니가 구둣발로 바닥을 탁, 하고 쳐 보였다.

“심지어 광을 어떻게 냈는지 모르겠는데, 손톱으로 긁어도 흠집이 안 나요. 아주 반들반들하고 신기하다니까. 동네 아주머니들 다 이 구두 사고 싶다고 난리에요. 우리 아들이 광내줘서 그런 거라고 하니까, 아들 빵집 그만두고 구둣집을 차려야 한다고 막 그러더라니까.”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하며 웃었다.

“기체조도 내가 따라서 할 때는 기력이 나고 신이 나더라니만, 혼자 해 봤을 때는 효과가 없더라구요.”

“진혁이가 열심히 배워와서 가르치는 거니까, 우리가 아들 보고 기운이 나서 그런가 보지.”

“우리 진혁이가 얼마나 순진한 앤데.”

어머니가 걱정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기체조만 배우는 거면 다행인데……, 이 기체조로 시작해서 이상한 사이비 종교 같은 거에 물들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는 사이비 종교가 어디 있어?”

아버지가 웃어넘겼다.

“처음에는 그런 척 할 수도 있죠.”

“애가 조금 달라진 건 당신도 눈치챘잖아요.”

“그렇지. 원래 군대 가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

아버지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사십여 년 전, 자신이 군대에 갔던 시절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가 물었다.

“고생을 많이 해서요?”

“그것도 있지만. 평소에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 사람들이 평소에 드러내지 않는 부분이 하나씩 있잖아. 하지만 한창때 남자애들을 몰아넣고 24시간 함께 살게 하니까, 모난 부분들이 전부 튀어나오게 되어 있는 거지.”

“그래요.”

“사실 진혁이가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서 국민학교, 중학교를 다 나왔잖아. 고등학교야 여기 없어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로 다녔다고 해도. 대학도 다니던 고등학교 코앞에 있는 향인대에 가고. 만나는 애들도 다 거기서 거기고, 사는 형편도 다 비슷비슷하지.”

“그렇죠. 맨날 만나던 애들을 만나고, 같은 학교 다니던 애들이 계속 올라가고.”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군대는 전국에서 같은 또래들을 모아 놓는 거라서, 생활 수준이 달라.”

아버지가 추측했다.

“진혁이가 아마 부모님을 잃은, 지지리도 못 사는 애들 사이에서 있었나 봐.”

“그래요?”

“그래. 그러니까 잘살아 보려고 열심히 하는 거지.”

아버지가 웃었다.

“반면교사가 되었나 보지.”

“그래요……. 흠,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득 생각난 듯 아버지가 물었다.

“그 고양이는? 주인집 딸한테 물어봤어? 수의사라더니.”

“애착 분리? 분리 불안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진혁이를 자기 엄마로 생각하나 봐요. 조금 울어도 지금 잘 먹고 잘 싸고 있으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애기랑 똑같다고.”

어머니가 웃었다.

“좀 시간이 필요한 건지? 일단은 익숙한 데 있는 게 제일 좋대요.”

“그래.”

“다 일 나가면 혼자 있어서 걱정된다고 하니까, 그럼 차라리 가게에 데려다 놓는 게 좋겠대요.”

“가게에 어떻게 데려다 놔. 주방 위생이 있는데.”

“사진 보더니 생각보다는 나이를 더 먹었을 거래요. 많이 못 먹고 자라서 그런 거지, 지금 당장 고양이 분유를 먹어야 하는 나이는 아니래요. 그냥 먹던 거 줘도 된대요. 고양이 사료도 좀 나눠 줬어요.”

“그건 다행이네.”

“신문지 말고 모래를 쓰는 게 좋다고 해서 화장실도 얻어 왔네요.”

아버지가 얼굴을 찡그렸다.

“거, 뭘 자꾸 얻어 와. 돈 주고 사면 될 것을.”

“전에 집에 있던 고양이를 이제 병원에서 키우고 있어서 어차피 남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좋다고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말하는데 거절하기도 쉽지 않죠.”

“거기 일도 이제 그만둬도 돼. 차라리 가게를 나와.”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런 일자리 찾기도 쉽지 않아요. 내가 여기서 하루 이틀 일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가게가 잘 되어도 또 안 되는 게 순식간이니까.”

“아니야, 당신도 그거 접고 이리로 와야 돼.”

“그리고 내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그 집은 또 어떡해요? 최소한 새 사람 구할 때까지는 있어 줘야지. 십 년을 같이 일했는데, 그렇게 정 없이 굴 수는 없어요.”

“휴.”

아버지가 말했다.

“한 달만 더 있어 봐. 지금 이 시기에는 믿을만한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해. 당신도 조금 더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당신 그 얘기, 결혼할 때부터 했잖아요.”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니까. 그럼 내가 아니라 진혁이를 믿어 봐.”

“여보.”

어머니가 심각하게 말했다.

“아무리 빵 만드는 재능이 뛰어나도 걔는 이제 이십 대 중반이에요, 아직 어린애라구요.”

“이십 대 중반이면 성인이지!”

“걔한테 의존해서 가게가 돌아가는 게 정상은 아니에요.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그렇지.”

“만석 씨랑 그 얘기는 했어요?”

“응.”

“당신, 빵 만드는 거 더 배우려고 한다고. 아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어머니가 자랑스러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진혁이한테 말은 언제 하려고요?”

“대회 끝나고 나면 하려고.”

“그래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등을 툭툭 쳤다.

“잘하라고요. 항상 노력하는 당신이 멋있어요.”

“고마워.”

두 분이 사이좋게 대화를 마치자 일봉이 헛기침을 했다.

“청소 마쳤습니다. 이제 정리해도 될까요?”

“우리가 정리할게요, 먼저 들어가요.”

“아닙니다!”

◈          ◈          ◈

밤이 되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손을 잡고 돌아왔다. 진혁이 문을 열어 맞이하자 아버지가 놀랐다.

“서울 가서 자고 오는 게 아니었냐?”

“아니요, 아침에 다시 올라가요.”

“피곤하지 않겠어?”

“가게는 어때요?”

“일봉이가 잘 봐 주고, 괜찮지 뭐. 그리고 너 도대체 반죽을 몇 개나 만들어 놓은 거냐?”

“이틀 치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뭘.”

“이틀은 무슨! 나흘은 팔겠다. 덕분에 내가 할 일이 없던데.”

아버지가 웃었다.

“고맙다.”

“별일 아닙니다.”

어머니가 신발을 벗자 고양이가 다가왔다.

“야아오오오옹!”

“진호야.”

고양이를 안아 든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고양이의 등을 한 차례 쓸어보았다. 보드랍고 고운 털을 느껴보고 나서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고양이의 이름을 불러 본다.

“진호야?”

“야아오오오오옹.”

어머니가 진혁을 노려보았다.

“진혁아. 너 혹시 할 말 없니?”

“무슨 의심 하시는지 알겠는데 절대로 아닙니다.”

진혁이 항복하는 것처럼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고양이가 하루 반나절 만에 이렇게 털이 고와질 리가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진호는 어디 가고.”

“야아오오오오오옹!”

작은 고양이가 항의하듯 꼬리를 치켜들었다. 비비대며 안겨오는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체온에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풀렸다.

“그래, 그래. 너는 아무 잘못 없지.”

진혁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물었다.

“원래 고양이는 죽었냐?”

“아뇨, 아뇨.”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 의심을 풀기 위해 사온 고양이용 샴푸를 들이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목욕을 시켰더니 털이 부드러워졌어요.”

“그래?”

어머니의 눈빛도 부드러워졌다.

“대회 다녀와서 힘들었을 텐데, 어머니가 이상한 오해를 해서…… 미안하다, 얘야.”

“그래. 우리 아들이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는 앤데. 그럴 리가 없지.”

어머니가 고양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 진호야, 오늘 하루 잘 있었어? 오빠가 잘 해줬어?”

“야아오오오옹.”

고양이를 안고 들어가며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얼굴 생김이 좀 바뀐 것 같기도 한데…….”

“그럴 리가요.”

“그래, 진혁이 쟤는 대회 끝나고 이제 왔는데 고양이까지 신경 쓸 새가 어디 있겠어.”

“똑 닮은 고양이를 구해올 수가 없지, 없어.”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두 분 뒤로 진혁이 외쳤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 건강 체조 하셔야죠. 지금 합시다.”

“그래, 그래. 나간다!”

“고양이 화장실 받아온 것 좀 설치하고.”

어머니 품에 안겨 안방에 들어갔던 고양이가 톡 튀어나와 문틈으로 빠져나왔다. 진혁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

“이것이 오빠 좋다고, 어미는 버리고 저쪽에만 가 있네.”

어머니는 약간 서운해 보인다.

“환희네가 데려가서 키운다면서요?”

“아유, 말도 마라.”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 밖으로 나가면 쏙 튀어와서 다시 네 방으로 들어가는 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네가 너무너무 좋은가 봐. 환희네 집은커녕 우리 집 현관도 제대로 못 나갔어.”

“어디 제가 한번 해 보죠.”

진혁이가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그가 안고서 현관 밖으로 나가는데 고양이는 미동 없이 가만히 안겨 있었다. 현관 밖에 서서 진호를 안은 채 진혁이 말했다.

“현관 잘 나갔는데요.”

“어머, 이럴 리가 없는데?”

어머니가 나가서 고양이를 옮겨 안았다. 진혁의 품에서 옮겨온 고양이는 어머니의 팔뚝을 한 차례 핥더니 톡 튀어나가 쪼르르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 진혁이가 데리고 나가면 괜찮은데 엄마가 데리고 나가는 건 싫어?”

어머니가 웃었다.

“어머니가 데리고 나가서 다른 집에 갈 걸 아나 봐요. 자식, 똑똑한데.”

“아주 대회도 따라가지 그러냐.”

아버지가 뒤에서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여보! 이 쬐끄만 애기한테 무슨 소리를 해.”

“야아오오오오오옹.”

고양이가 소리 높여 울었다.

“복도에 소리 울린다, 들어가자.”

진혁이와 진호, 어머니까지 다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 진혁이 고양이를 받아 내려놓고 말했다.

“두 분도 내일 일찍 나가셔야 하고, 저도 일찍 나가야 하니까. 오늘 건강 체조도 합시다.”

“정말로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하는구나.”

“예.”

진혁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원래 매일 해야 좋아지는 거예요. 어머니도 요즘 피부 좋아지셨다는 이야기 많이 듣죠?”

“그럼. 환희네 엄마가 어떤 화장품 쓰냐고 매일 물어보는데.”

“아버지도 불면증이 좋아지셨다면서요.”

“그래. 그리고 기분 탓인지 눈썹이 다시 나고 있어.”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연탄으로 그은 것처럼 굵고 진한 눈썹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눈썹이란 남자다움의 증명이지!’

사십 대까지만 해도 ‘다들 눈썹이 빠져도 나는 아직 멀쩡해.’ 라고 이야기하시던 아버지는 쉰이 넘어가면서 눈썹 자랑을 그만두셨다. 나이가 들면 눈썹 털이 절반 이상 빠지고 다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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