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24화 (24/656)

제 024화

“어머니, 제가 살려내겠습니다.”

어머니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대회 날인데 여기 신경 쓰지 말고 푹 자렴.”

“어머니는 건강 체조부터 하세요. 제가 책임지고 살려낼 테니까요.”

그는 함부로 빈말을 하지 않는다. 진혁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몸이 좋아지고 있지 않아요? 아주 효과 좋은 체조인데.”

“그래, 몸이 가벼워지긴 하더구나.”

“아버지도 같이 건강 체조 하시죠.”

“흐음, 흠.”

텔레비전을 보며 외면하고 있던 아버지도 못 이기는 척 이쪽으로 오셨다.

“거 당신은, 중요한 날에 꼭 이렇게.”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얼굴 한구석엔 근심이 있다. 힐끔힐끔 작은 고양이를 보는 것이 걱정하는 게 분명하다.

‘백일에 걸친 환골탈태는 기가 부족한 현대에서도 무리가 없어. 건강 체조를 빙자한 추궁과혈로 환골탈태를 유도하기 시작한 지 이틀째. 이제 98여 일만 지나면…….’

부모님 두 분 모두, 좀처럼 찾기 힘든 건강체가 되실 것이다. 두 분에게 번갈아 추궁과혈을 마친 진혁은 작은 상자 안에 담긴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어머니, 얘를 뭐라고 부르고 계세요?”

“진호…….”

어머니가 헛 하고 입을 가리셨다.

“삼색이는 보통 암컷일 텐데, 진호라고?”

아버지가 물었다.

“호랑이처럼 아프지 말고 튼튼하게 크라고 진호예요.”

어머니가 아픈 동물을 주워온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항렬자가 같은 이름까지 붙이신 것은 처음이다.

“마지막에 가기 전에 이름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머니가 눈물 어린 눈을 들어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 나이에 어미를 잃으면 살아남기 힘들어. 그냥 마지막에 가기 전에라도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따뜻한 자리에서 편안하게 갔으면 해서…….”

어머니는 이미 아기고양이가 생명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앞다리가 양쪽 다 부러져 있고, 입가에는 마른 구토 자국이 선명하다. 어른 손바닥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고양이를 내려다본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잘 돌볼 테니 염려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진혁, 진희, 그리고 진호.

졸지에 종족이 다른 동생이 생겼다.

“너도 새벽에 나가야 하는데 돌보긴 무슨.”

어머니가 걱정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의 시선이 잠시 다른 곳을 향한 사이, 진혁은 고양이에게 아주 살짝 진기를 불어넣었다. 1푼은커녕 100분의 1푼이어도 충분하다.

조금 전까지 헐떡거리며 조그마한 배를 있는 힘껏 움직이고 있던 작은 고양이의 호흡이 편안해졌다.

“정말로 괜찮아졌네.”

아버지가 신기한 듯이 들여다보았다.

“우리 진혁이 손이 약손인가 봐.”

어머니가 근심 어린 눈빛으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게 마지막 호흡은 아니겠지.”

“아니야, 상태가 좋아졌어.”

아버지가 고양이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는데.”

진혁이 제지했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정말 그만 주무세요.”

“그래, 너도 잘 자라.”

◈          ◈          ◈

데코레이션 대회 당일.

새벽에 일어난 진혁은 어젯밤 어머니가 데려온 아기고양이 진호부터 확인했다.

‘멀쩡하군.’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덩치가 커졌다.

손에 닿아오는 따뜻한 체온에, 헐떡거림도 사라졌다. 편안히 잠들어 있을 뿐이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겠어.’

진혁은 작은 고양이를 들어 올려 보았다. 조그만 고양이가 두 눈을 뜨더니 까끌까끌한 혀로 진혁을 핥으며 몸을 비벼오기 시작했다.

“흐음.”

자신에게 진기를 불어넣어 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아는지, 아니면 엄마로 착각하는지? 조그마한 머리통과 목, 등을 진혁의 큼지막한 손에 비비대며 한껏 애정을 표현한다. 부러져 있던 앞다리도 진기의 도움을 받았는지 제대로 붙어 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진호야.”

어제 어머니가 사다 둔 아기고양이용 분유를 조금 먹이니 금세 배가 볼록 차오른다. 다시 기분 좋게 잠든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진호는 옛 생각을 잠시 했다.

‘그때 키우던 백묘 녀석은…… 잘 있겠지.’

고양이에게 미세한 양의 진기를 불어넣어 주자, 금방 잠들었다. 다 자라지 못해 얇은 털가죽 아래에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근골이 최적화된 모양으로 점차 맞춰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녀석이 부모님보다 먼저 환골탈태를 해버릴 수도 있겠는데?’

진혁은 고양이를 내려놓고 수건으로 잘 감싸준 다음 채비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아침 7시까지 대회장에 도착해야 한다. 김만석 교수가 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진혁이 거절했다.

“기차 시간은 너무 아슬아슬하고. 버스로 오면 피로하고 지치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사실 진혁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마음이 없었다.

‘적당히 달려가면서 몸을 풀면 되지.’

중원의 땅에 비해 한국은 좁다.

일월신교가 있던 십만대산, 신강의 땅은 중원의 중심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진혁이 이끄는 일월신교의 신도들은 청해를 지나 감숙과 사천까지 세를 넓혔다. 그래서 신강과 섬서를 넘나들던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의 거리는 가벼운 산책에 가깝다.

어머니가 따로 세탁해 주신 조리복을 보자기로 싸서 등에 메고서 달리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연을 날리던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건물 옥상을 바라보았다.

“엄마, 저기 지붕 위에 사람이 있어.”

“응? 없는데?”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그래? 네가 잘못 봤겠지. 저기는 옥탑방이 있는 건물도 아니고, 사람이 올라갈 리가 없어.”

“진짜 있었는데. 저기 있다가 쇽! 하고 날아가 버렸단 말이야.”

“그래, 그래.”

“엄마! 내 말 안 믿지!”

‘동체 시력이 좋은 소년이로군. 좋은 자객이 되겠어.’

진혁은 여유롭게 지붕과 지붕 사이를 밟아가며 도약했다.

‘역시 높은 곳이 그나마 공기가 맑아.’

멀리 보이는 굼벵이처럼 특이하게 생긴 건물! 서울의 변방에 위치한 산업박람회장. 이곳이 바로 데코레이션 페어가 열릴 곳이다.

‘데코레이션 페어만 하는 것이 아니군.’

학교 두 군데만 나가서 장식 기술을 겨루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서 요리 라이브 대회와 푸드 카빙 아트 스킬 경연이 함께 이루어진다. 출전자들이 깎을 수박과 멜론, 사과와 단호박을 가득 실은 트럭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진혁은 생각했다.

‘저것도 의외로 재미있을지도 모르겠군.’

지나치게 일찍 도착한 탓에 대기실 문도 열려 있지 않았다. 진혁은 복도를 거닐며 포스터를 구경했다.

‘초청 손님이 많이 오나 보군. ……호오.’

낯익은 얼굴이 포스터에 있었다.

‘아드레아노 존부. 그 사람도 온다고?’

아드레아노 존부의 갤럭시 치즈 케이크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한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

나름 도움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재밌겠군.’

진혁이 눈을 빛냈다.

◈          ◈          ◈

“B-3번 참가자분, 이쪽으로 오십시오.”

“예.”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않고 공정하게 심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번호표를 부여받았다. 진혁은 자신의 번호표를 보았다.

‘B-3번.’

이런 유의 대회에 출전해 본 적이 없는 진혁은 막연히 자신과 강 마리오라는 자가 일대일 대결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A, B 각 두 개의 조가 주제에 맞춰 주방을 사용해 1시간의 제한시간 동안 완성품을 만들고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두 조에서 각각 한 명씩 선발된 우승자가 익일 다른 주제로 새로운 경쟁을 하게 된다.

‘개인용 작은 주방의 개수가 모자라다니. 주최 측이 돈이 없군.’

B조인 진혁은 A조가 작업하는 동안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

‘좀 더 늦게 와도 되었을 것을.’

금일의 주제는 현재 작업하고 있는 A조에게만 알려져 있다.

두 조가 같은 주제로 만들기 때문에, 구상 시간을 동일하게 주려는 의도이다.

하지만 진혁에게는 너무나 잘 들렸다.

‘십이간지 중 하나의 동물을 선택하고, 그 동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라고.’

특별히 주제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저쪽에서 멋대로 들려와 버린 것이다.

‘십이간지라고 하면 역시…… 그 동물이 좋겠지. 그리고 그 동물이라면 재료는…….’

버터와 유크림, 닭고기와 돼지고기. 고추와 아니스, 바질과 로즈마리.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가지의 재료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여기가 데코레이션 페어라는 건 잊으면 안 되지.’

데코레이션 페어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관’ 겉모습이다. 맛 또한 점수에 들어가지만 그 비중은 높지 않다.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B팀이 불렸다.

“B팀 전원, 준비해 주세요!”

B팀에서 출전하는 사람은 전부 여섯 명.

진혁은 그중에서도 세 번째다.

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진혁을 보고, 키가 작고 통통한 청년이 말을 걸었다. B-2번 팻말을 손에 들고서 조심스레 불렀다.

“저기요.”

‘A팀의 강 마리오는 돼지 모양의 돼지고기 키쉬(Quiche)를 만들어서 예선을 통과했군.’

달걀과 크림을 주재료로 활용하는 요리인지라 보통 에그타르트처럼 만든다.

‘도대체 키쉬를 어떻게 만들었길래 돼지처럼 생겼다는 건지.’

약간 궁금해질 정도다.

더군다나 여기까지 느껴지는 그윽한 파이의 향기!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썼군. 냄새도 잘 잡았어.’

크림에 무난하게 베이컨을 넣어서 만드는 것이 ‘키쉬 로렌’이라고 하며 가장 일반적이고 흔한 키쉬다. 베이컨이나 양파,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쓰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하지만 돼지 하니까 키쉬. 너무 무난해.’

“저기요, 거기 키 크고 검은 옷 입은 분.”

“음?”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강 마리오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듣고 있었던 데다가 아는 사람도 없는데 자기를 부르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왜.”

진혁은 무심코 반말을 해버렸다.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는 녀석이다.’

무력으로 치면 0점이 아니라 마이너스를 찍을 것 같은 인상의 B-2번 청년이다.

‘물론 이 대회는 무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니까 상관은 없다만.’

“저기요. 이 대회에 처음 나와보시는 거 같은데.”

“그래서?”

“번호표는 명찰처럼 다는 게 아니고. 이따가 요리 내면서 접시 앞에 붙이는 거…….”

통통한 청년이 말을 흐렸다.

“아.”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고맙다.”

“아뇨, 별말씀을요.”

B-2번이 조심스레 말했다.

“전 아산에서 올라온 김은동입니다. 스물여덟 살이고요.”

“그런데?”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김은동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쓸데없는 놈이군.’

심사위원 중 한 명,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 불만을 표했다.

‘다들 너무 흔한 발상밖에 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리 데코레이션 페어라고 해도, 맛이 완전히 예상한 그대로예요. 우리들을 놀라게 해 보라구요.”

진혁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아주 깜짝 놀라게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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