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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9화 (19/656)

제 019화

어머니가 집 앞에서 서성거리며 동네 아주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어머니를 비추었다.

“여보, 이제 왔어?”

“안녕하세요. 여기 부녀회장이에요. 또 뵙네요.”

“반갑습니다.”

진혁이 가볍게 인사했다. 이전에 가게에 온 적이 있는 손님이다. 치즈 케이크를 시식해 보라고 했더니 거절하다가 먹고 나서 오히려 팬이 되었다. 부녀회장이 웃었다.

“저 기억하시죠?”

“예, 아이와 함께 오셨죠.”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그 애 때문에 이번에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어머니가 흥분해서 말했다.

“다음 주에 전교 학생회장 선거가 있대. 그때 우리 가게에서 빵을 주문하고 싶다고 하시는구나.”

“……전교 학생회장 선거요? 이 여름에?”

진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래 학생회장이 교통사고로 입원하게 돼서 보궐선거를 하게 됐어요.”

부녀회장은 기쁜 듯한 얼굴로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봄 선거에서는 저희 아들이 아슬아슬하게 졌는데, 이번에 여기 빵 도움을 받으면 승산이 있어 보여요. 선거할 때 보통 피자나 햄버거를 주문하는데, 요새 여기 빵이 엄청 핫해요.”

그 말에 진혁의 어머니가 해맑게 웃었다. 아버지가 놀랐다.

“요즘 초등학교가 한 반에 몇 명이더라…… 우리 때는 오십 명이었는데. 좀 줄어들었다면서요. 전원이 몇 명 정도죠?”

“한 반에 서른다섯 명, 많은 반은 마흔 명 정도예요. 학교가 시골이라 한 학년에 여덟 개 반밖에 없어요.”

“많아야 360개…… 이틀만 미리 말씀해 주시면, 어렵지 않습니다. 메뉴는 무엇으로 생각하고 계신지요?”

“추천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치즈 케이크가 맛있는데 그건 가져가서 학교에서 보관하기가 까다롭고 먹으려면 포크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상황을 다 고려해서 뭐가 좋을지. 좀 특별한 거였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먹기 쉬운 간식을 떠올려 보았다.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 정도면 되겠군.’

“저희가 하루에 백 개만 만드는 한정 쿠키가 있는데. 그거라면 어떨까요?”

진혁이 묻자 아이 어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무 달아서 애들 건강에 안 좋지 않을까요?”

“초콜릿은 안 주려고 하고 있어서요…….”

“…….”

“그렇습니까.”

사실 다른 음식에도 설탕이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단 것을 주지 않으려면 빵 자체를 주지 말아야 한다.

‘소금 없이 김치 만들라는 소리 같군…….’

“빵은 전부 설탕을 몇 컵씩 들이붓고 만든다고, 텔레비전에서 나와서…… 그런데 여기 빵이 맛있으니까 자꾸 먹게 되고.”

‘설탕이 걱정되면 아예 빵을 먹지를 말아야지.’

진혁의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친절하게 대응했다.

“그렇다면 설탕을 쓰는 다른 빵 같은 것도 내키지 않으시겠군요.”

아버지가 말했다.

“저희가 만드는 블랙 어니언 타르트는 다른 빵보다 설탕의 양이 80퍼센트 이상 적습니다. 설탕이 아닌 양파의 단맛을 이용하거든요.”

“맞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제 아들이 개발한 메뉴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런 게 있어요?”

“아주 오래 캐러멜라이즈한 양파는 자연스러운 단맛이 우러나서 설탕을 넣지 않아도 괜찮아요. 건강에 좋죠.”

“흠…….그거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저도 프랑스식 양파 수프 만들 때 한번 해 보려고 했는데……”

부녀회장이 신기해 했다.

“그렇죠. 하지만 건강에 좋은 저도 이번에 저희 아내가 당뇨 위험군 진단을 받아서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설탕과 밀가루를 덜 쓴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어요. 아들이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요? 양파를 오래 볶으면 단맛이 나긴 하죠. 저도 양파 수프 만들 때 그렇게 하긴 해요. 그걸 타르트로도 만드는군요.”

“예, 하루에 스무 개 정도만 만드는데 아마 오시는 시간에는 전부 다 팔려서 못 보셨을 겁니다.”

“좋아요, 그거랑 또 추천해주실만한 게 있나요?”

“이번에 아들이 새로 개발한 치킨 파이가 있는데, 이것도 설탕은 거의 쓰지 않아요. 닭고기를 듬뿍 넣었는데 정말 맛있어요. 한번 샘플을 드시러 오세요.”

“그 두 개면 좋겠어요. 맛이 괜찮으면… 한 사람당 두 개씩 나눠줄 수 있게 준비하고 싶네요.”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맛있으실 거예요. 요즘 아들 녀석이 개발해 오는 빵들이 다들 너무 맛있어서 저도 어찌할 바를 모르거든요. 이것 봐요, 저도 살이 부쩍 붙었답니다.”

어머니가 양팔을 들어 보였다. 치맛자락이 펄럭이며 아래로 시선이 내려갔다. 부녀회장이 어머니의 구두를 눈여겨보았다.

“매일같이 검은색 단화를 신으시더니, 예쁜 빨간 구두네요. 잘 어울리세요. 발목도 가늘어 보이시고.”

“그렇죠? 이번에 제 생일 기념으로 딸이랑 같이 백화점 가서 산 거랍니다.”

앞코가 네모진 붉은색 구두는 거친 피부에 푸른 혈관이 굵게 튀어나온 발을 나붓이 감싸 주었다. 그녀가 평소 신던 에나멜 재질이 아니고 색깔도 촌스럽고 선명한 새빨간색이 아니다. 약간 어둡고 우아한 붉은색이다. 새틴처럼 고운 광택을 내는 가죽구두는 발에 딱 맞아 발목 선이 더 고와 보였다.

“예쁘죠.”

자랑스럽게 오른발을 내밀어 구두를 보여주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은강제화에서 이번에 나온 신상이죠? 양가죽 구두는 구두가 약하고 손질하기 어려워서 자주 갈아 신으셔야 해요. 예전에 신으시던 인조피혁 구두처럼 매일 신으시면 금방 구멍 뚫리고 엉망이 되니까 조심하세요.”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사라졌다. 진혁이 끼어들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발이 모자라셔서 더 사 드리려고 하던 참이에요.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신으실 수 있도록 마련해야겠네요.”

“어머, 저 비싼 구두를 색깔별로… 대단하네.”

부녀회장이 웃었다.

“그럼 내일 먹어보러 가도 될까요? 오후 늦게 갈 건데, 따로 빼 놔 주시는 거죠?”

“예. 샘플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부녀회장 모녀를 보내고 나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쳤다.

“……여보, 미안해.”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긴, 무슨. 진혁아, 너도 괜찮다. 발은 두 개밖에 없는데 구두가 왜 7켤레나 필요해. 이거 하나면 됐어.”

“알겠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          ◈          ◈

진혁은 핸드폰을 꺼냈다. 진희에게 연락할 때다.

“이번에 어머니께 사드린 구두 봤어.”

“응! 괜찮지! 어때? 잘 골랐지? 발 작아 보인다고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어. 돈 보내준 거 잘 받았어. 네가 사십만 원 다 내고 싶어 했다고 전달도 했고.”

진희가 유쾌하게 대답했다. 진혁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거 여섯 켤레, 더 주문했으면 좋겠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진희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럴 일이 좀 있어서.”

“흠…….”

진희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두는 색깔이 세 종류밖에 없었어. 갈색이랑 붉은색, 검은색. 엄마는 검은색을 사려고 하셨는데 내가 일부러 밝은 색깔 하자고 졸랐거든. 처녀 적에 빨간 구두를 좋아하셨다고 한 기억이 나서.”

“어.”

“그런데 그걸 6켤레나 더 사는 건 좀 그래. 차라리 다른 종류를 사 드리지……?”

“양가죽이라서 약하니까, 전에 신던 검은 단화처럼 매일같이 신고 돌아다니면 금방 구멍 날 거라더군.”

“……아.”

진희가 놀랐다.

“그거 양가죽이었어!? 나 소가죽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떡하지? 진짜 금방 까질 텐데.”

“……그래?”

진혁은 약간 당황했다.

‘양가죽이 약하다고?’

그가 생각한 양가죽은 흉노족, 북방의 유목민이 입던 거친 가죽이었다. 몽골 초원의 혹한에도 견디는 양들은 가죽이 튼튼하고 질겨 혹독한 겨울바람은 물론이다. 질 좋은 양가죽을 여러 겹 방탄 조끼처럼 두텁게 겹쳐 입은 흉노족들은 갑옷 없이 화살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뛰어들었다. 화살이 몇 대 박혀도 멀쩡하게 피흘리는 일 없이 돌아다니는 자들이었다.

“양가죽이라는 건, 튼튼하고 강한 것이 아닌가?”

“양가죽은 약하고 금방 벗겨져서 구두에는 잘 안 써. 항상 자동차 타고 다니면서 잠깐잠깐 걸을 때만 신는다면 모를까…… 우리 어머니처럼 신으면 하루만 지나도 금방 앞코가 까질 거야.”

진희의 목소리에 속상함이 묻어났다.

“엄마가 그 구두를 계속 쳐다봐서 일부러 그 구두로 해드렸는데…… 내가 멍청이야! 색깔이랑 굽하고 디자인만 보고…….”

‘그 손님이 쓸데없는 소리로 어머니를 놀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걱정하는 말을 해준 걸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 구두가 약한 걸 네가 어떻게 알아서 해?”

진혁이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내가 아는 구둣방에 맡기면 절대로 벗겨지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어.”

그날 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무시는 시각, 진혁은 신발장으로 향했다.

‘이건가…….’

오늘 어머니가 신고 나갔던 붉은색 구두. 메이드 인 코리아가 뚜렷하게 박혀 있다. 오늘 온종일 신고 다니셨을 텐데 까진 흔적 하나 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 집안으로 들어오던 때도 그랬다. 한 걸음 내딛기 전에 주변을 살피고, 만에 하나 어디 눈먼 벽에라도 구두코가 부딪힐까 살금살금 걷던 모습이 기억난다. 아직 새 구두에 발이 익숙해지지 않아 그런가 라고 무심히 넘겼는데, 아무 데도 구두가 닿지 않게 하려고 신경 썼기 때문인 것일지도 모른다.

‘발보다 구두를 더 소중하게 여긴 것처럼 보이는데…….’

진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손을 뻗어 구두를 만졌다. 진기를 흘려보내어 살피니 아주, 가늘게 펴서 얇아진 양의 가죽이 바늘과 실로 꿰어져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구조인가…….’

일월신교의 교주가 보통 전부 사술에 능하지는 않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수십 년 동안 인신 공양을 제외한 온갖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 와중에 강시를 만드는 혈교 놈들과 상대할 일이 있었는데, 그놈들이 인간의 거죽에 양가죽을 덧댄 강시를 보내서 골치 아프게 했다.

‘본래 혈강시란 것은 말짱히 죽은 시체를 가져다가 귀신을 집어넣는 거지.’

죽은 시체가 알아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술사가 망령을 집어넣어 원한을 이루어준다며 꼬드긴다. 시체의 거죽에 피로 주술문을 새겨 불러들인 귀신을 속박하는데, 백 명의 동남동녀의 진혈을 짜내어 주술문으로 피를 빨아들이게끔 한다. 말이 백 명이지, 이백 명, 삼백 명, 가능하면 천 명. 흡수한 피가 많을수록 강시의 피부가 더 강해지고 튼튼해진다.

일월신교의 어린아이들은 모두 부모에게 전수받은 무공을 익히고 있으며, 특정 나이가 되면 일정 장소에 모여 집단 수련을 한다. 혈교는 일월신교의 아이들이 강시의 재료로 적합하리라 결론을 내리고 실천하는 멍청한 결단을 내렸으며 그 결과 교 자체가 무너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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