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16화
진혁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 관계를 보니 옛일이 하나둘씩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미 다 과거의 일이다.
‘쓸데없는 생각들이지.’
진혁은 양손을 사용해 얇은 반죽을 겹겹이 쌓는 작업에 들어갔다.
‘일일이 손을 써야 하니까…… 오히려 속도가 느려지는데.’
그렇다고 해도 보통 사람보다 충분히 빠른 속도다. 번개 같은 속도로 얇은 반죽을 열 장, 백 장, 천 장을 뽑아낸다. 옆에 휘날리는 밀가루 가루가 연기처럼 뿜어 올라와 진혁을 가렸다.
진혁은 시험용으로 사 온 닭을 도축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해체한 1.5kg짜리 토종닭이다. 목과 꼬리를 잘라버리고 닭 날개와 다리도 분리했다.
숭덩숭덩 썰어서 순식간에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발라낸다.
정석적인 방법으로 할 때는 관절을 굽히고 밖에서 칼집을 넣어서 썰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정상의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절대 하지 않는 닭 해체! 보통은 세가의 요리사나 백정에게 맡긴다.
‘아니다. 개방의 그 노인네라면 충분히 즐기면서 할지도…… 흠.’
거지들이 자주 구워 먹는 진흙 오리구이. 오리 안에 이것저것 향초와 곡식을 채워 넣은 다음 진흙으로 감싸서 흙 속에 파묻고 굽는다. 개방의 취개 노인은 강호 전역을 쏘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오리구이를 해먹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진혁도 우연히 한 번 맛본 적이 있다. 고기가 맛있어서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다. 물론 노인네는 죽여달라고 날뛰었지만.
‘아닌가? 죽여달라고가 아니라 대결해 달라고였나. 뭐, 그게 그거지.’
살 한 점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발라낸 뼈는 따로 냄비 속에 던져 넣었다. 이대로 끓여서 닭 육수를 만들 생각이다.
“양념치킨 빵 만드는데 물까지 끓이냐?”
옆에서 기본적인 소보루 빵을 위한 반죽을 하고 있던 아버지가 궁금해했다. 일봉의 시선이 냄비 안에 닿았다. 무엇을 끓이는지 바라본 일봉이 놀라며 물었다.
“와. 이 뼈 뭐에요? 어떻게 늑골까지 살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발라내신 거예요?”
진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칼로.”
“……아니, 그거야…… 당연히 칼로.”
“우리 진혁이가 칼을 좀 잘 쓰지.”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칼을 잘 쓰는데 어째서 아버지가……?’
진혁이 피식 웃었다. 맑게 우러나오기 시작한 국물을 바라보고서 아버지가 진혁에게 물었다.
“뼈 육수까지 내는 걸 보면. 아예 정통 영국식 치킨 파이로 가는 거냐?”
본래 치킨 파이는 영국에서 왔고, 영국식 치킨 파이는 사실 빵보다 크림스튜에 기원을 둔 음식이다. 채소와 고기에 육수와 생크림, 우유를 섞어 진하게 끓여낸 스튜에 페이스트리를 올리고 오븐에 넣어 구워낸다. 즉, 본래 국물 요리였던 것에 빵을 추가한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데 조금 달라요.”
하지만 진혁이 생각하는 것은 영국식 치킨 파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의 딤섬에 가까운 물건이다.
‘소롱포(샤오롱바오)의 빵 버젼이지.’
만두피 대신 얇은 파이지를 겹겹이 쌓는다.
‘호주식 치킨 파이는 겉껍질이 아주 두껍지. 한국식 고로케의 튀김옷만큼이나 두꺼워. 그러니까 고기를 많이 넣고 껍질을 얇게 하면…….’
시험적으로 만든 파이지는 크기가 전부 달랐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경단 모양부터 시작해서 손바닥만 하고 둥근, 전통적인 미트 파이 모양의 파이까지 일부러 다르게 했다.
‘어떤 게 제일 맛있을지 모르니까 다 해보자.’
총 세 종류의 파이 생지를 굳히는 동안 닭고기를 손질한다. 생강과 마늘로 밑간을 해 냄새를 뺀 닭고기를 경단처럼 작은 크기로 손질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기다리는 동안, 소보루 빵 만들기를 마친 일봉이 진혁에게 와서 물었다.
“작은 사장님, 오늘 도대체 몇 시에 나오신 거예요?”
“항상 5시에 나오는데. 왜?”
“제가 8시에 오잖아요. 가게가 너무 깨끗해서. 작업량도 장난 아닌데 가게 청소까지 다 해두셔서. 그런 건 이제 제가 할 테니까 그냥 두셔도 됩니다.”
쭈뼛쭈뼛, 어색해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인성이 덜된 놈은 아냐.’
“나는 내가 하는 게 편한데.”
“그래도 제가…….”
진혁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럼 저녁 뒷정리를 부탁하지.”
“예! 제가 깨끗하게 해놓겠습니다. 저, 저도 나중에 작은 사장님 같은 제빵사가 되고 싶어요.”
“…….”
이런 말을 하던 놈은 꼭 일찍 죽더라.
‘저도 교주님같이 강한 무림인이 되고 싶어요!’ 하고 말하는 놈은 사지로 돌진해서 빨리 죽어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나보다 우리 아버지 같은 제빵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게 나을 거야. 기초가 탄탄하시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봉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40분간 소보루빵이 발효되는 동안에는 블랙 앤 화이트 크림소라빵을 만든다. 진혁이 개발한 레시피를 바탕으로 이제는 아버지도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아버지가 지시한 대로 크림을 짜며 일봉이 신기해했다.
“이걸 어떻게 하신 거지…… 초콜릿 크림이랑 하얀색 생크림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질 않네요? 원래는 갈색이 되면서 진흙같이 보일 텐데.”
“내 아들놈이 아침에 일찍 만들어 놔. 그놈이 식혀 놓은 크림은 섞이지를 않더라고.”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자, 그건 이런 모양으로 짜면 되고.”
블랙 앤 화이트 크림소라빵에서 제일 차별화된 점은 역시 ‘크림’이다. 진혁이 미세하게 진기를 다르게 불어넣은 크림 두 종류는 서로 엉키지 않는다. 크림이 살아있어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먹으면 건강도 좋아진다.
“이렇게 짜도 안 섞이네.”
“그렇지. 그래서 꾸미기가 편하지.”
반죽은 기존의 소라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진혁은 구워진 치킨 파이지를 살폈다.
‘이제 이 안에 닭고기와 육즙을 넣으면 된다.’
진혁이 혼잣말을 했다.
“닭고기가 조금 더 쫄깃했으면 좋겠는데.”
일봉이 대답했다.
“아! 저희 아버지가 양계장을 하세요. 닭은 진짜 쫄깃하고 자신 있어요. 그런데… 닭이 좀 비싼데…….”
“왜?”
“방사농장이에요.”
“아니, 평사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그런 손 많이 가는 걸 한단 말이냐?”
아버지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어디서 하시는데?”
“저기 소망면 쪽에서 조그맣게 하세요. 지금은 이만 마리 정도 키우고 있어요.”
“닭은 정말로 질이 좋긴 하겠구나. 하지만 가격이…….”
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지간히 비싸게 받지 않고서는 수지가 맞을 수가 없지.”
“방사농장이라면.”
진혁이 물었다.
“닭들을 풀어 키운다는 뜻인가?”
“네. 울타리 쳐놓고 닭을 풀어 키워요. 저희 집은 완전히 방사를 해서…… 보통 자연복지 농장이라고 해도 평사거든요.”
“평사?”
“평사는 닭을 풀어 키우는데, 이천 마리 키우는데 그냥 큰 창고 하나만 있으면 돼요. 한 층에 닭들을 풀어 주는 거고. 막말로 백 평짜리 건물 하나만 있으면 해결이 되는데…… 우리는 방사농장 인증을 받아서 하는데 건물에 방사장이 구백 평은 필요하고…….”
일봉이 중얼중얼 현재 닭 사육의 현황과 미래, 그리고 아버지의 비전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진혁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닭고기가 맛이 다르게 느껴졌나.’
씹히는 맛도 다르고, 근육도 다르고, 희미하게 미묘한 약 맛이 느껴졌다.
‘원래 생각하는 그 닭고기 맛이 아니었지.’
중원에는 공장형 닭 사육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닭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마음껏 먹으며 흙에 목욕을 한다. 반면 지금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닭들은 조금 자라면 바로 도살해 버린다. 자라면서 먹는 사룟값이 닭의 값보다 더 비싸지기 전에 죽는다.
“배터리형, 그러니까 아파트같이 층층이 쌓아놓은 계사는 닭들이 스스로 목욕도 못 하고 몸에 이도 못 잡으니까 항생제를 처바를 수밖에 없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닭에게 좋은 게 인간에게도 좋다는 의견을 갖고 계셔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식재료들도 마찬가지다. 비단 닭뿐이 아니라 돼지도, 소도 같다. 옛날 방식과는 다른 사육을 한다.
“작은 사장님도 동물 복지에 관심이 있어요?”
“아니, 전혀.”
진혁이 즉답했다.
“맛있는 고기에 관심이 있지.”
“저희 육계들은 고기 탄력부터.”
“흠…….”
띠링! 벨이 울렸다. 15분이 지난 것이다. 아버지가 시험 삼아 일봉에게 시켜 본 소보루빵이 다 되었다. 실력을 테스트하려고 만든 서른 개의 기본 빵이다.
이제 일봉의 실력이 판가름나는 순간이다.
일봉이 주먹을 꽉 쥐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일봉의 이마에 맺혔다.
“주방 보조로 계속 써도 되겠어.”
“감사합니다!”
일봉의 표정에 환한 웃음이 어렸다. 그때 옆의 오븐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닭고기를 바삭바삭하게 굽는 냄새에서 기름기를 쫙 뺀 것 같은 유혹적인 냄새였다.
일봉이 코를 벌름거렸다.
“이거 시제품 몇 개 구우셨어요?”
“스물네 개.”
“그 판에 다 들어가요?!”
“크기가 달라서.”
아버지가 말했다.
“지금 다 익은 것 같은데?”
기감을 사용해 오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진혁이 대답했다.
“15초 정도만 더 기다려 보죠.”
아버지가 입맛을 다셨다.
“14초, 13초…… 너무 긴데.”
두 남자가 동시에 츄릅 하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다 됐습니다.”
동시에 띠링! 하는 소리가 났다.
“작은 사장님은 진짜…… 어떻게 이렇게 시간까지 정확하게 맞추십니까?”
“냄새 맡고.”
“코가 진짜 귀신 같네요.”
육수는 페이스트리 바깥으로 단 한 방울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작은 경단처럼 작은 것부터 손바닥만 한 것까지 모두 다갈색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윤기 나는 완벽한 빛깔에 아버지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크기가 다른데 용케 다 이렇게 골고루 구웠네.”
‘오븐 안에 자그맣게 바람을 불어넣어 열기가 고루 돌게 해주었죠.’
진혁이 웃었다.
“시간이 아까워서 급하게 했는데 잘됐네요.”
“자식, 큰 것들을 가장자리에 놓고 조그만 것들을 가운데에 놓은 게…… 우리 집 오븐의 특성을 아주 잘 알고 있구나. 오래돼서 가운데에 열이 덜 가는 것도 다 파악했구만.”
“다음에 제과 페어에 가서 오븐도 한 번 알아보죠.”
“아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이건 내가 가게 열었을 때부터 계속 썼던 오븐이니까. 웬만하면 수리해서 쓰고 싶구나.”
아버지가 오븐의 문손잡이를 어루만졌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저, 작은 사장님. 이거 시식은 안 하나요?”
일봉의 입가에서 침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작은 것부터 먹어 봐. 양념이 다 다르거든.”
“넵!”
먹으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손을 뻗는다. 제일 작은 것부터 집어 들어 바로 입안에 던져 넣은 일봉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