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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5화 (15/656)

제 015화

원래 초코파이도 군대에서 먹으면 맛있는 법이다. 사회에서 먹으면 그때 그 맛이 아니다. 그렇지만 치킨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맛있을 거라고 믿었다. 무림에서 생각했던 양념치킨의 맛은 이런 맛이 아니었다.

진혁이 묵묵히 닭고기를 먹던 손을 놓았다. 그때 진희가 폭탄을 터트렸다.

“구두 사러 가는 거, 엄마. 진혁이도 돈 보탠대.”

“어머! 그러니? 그럼 아예 같이 가면 되겠다!”

어머니는 손뼉까지 치며 좋아하셨다.

‘저, 저기요.’

절대 같이 가고 싶지 않다.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럼 내가 백화점에 가면, 아버지 혼자 가게 보라고?”

“그건 그러네.”

어머니가 수긍했다. 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나는 괜찮다. 어차피 걔 있을 때 빼고는 이십 년 넘게 평생을 혼자 하던 일인데. 아들이 엄마 생일 챙기러 백화점을 같이 가고 싶다는데 기특하지.”

‘아버지!!’

진혁은 마음속으로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아버지는 듣지 않으셨다. 다행히 어머니가 나섰다.

“요즘이 파리 날리던 옛날이랑 같아요? 당신 혼자 가게 볼 수가 없어. 그리고 당신이랑 진혁이 둘만 있는 것도 너무 힘들어 보여요. 아르바이트생을 새로 모집한다더니 대체 언제 뽑아요?”

“매일 매일 일 하다가 정신없다 보니…….”

아버지가 쩔쩔맸다.

“당신 목사님 부인이 옷 사러 다닐 때 양옆에 딸 하나 아들 하나 데리고 다니는 거, 부러워했잖아. 내가 백화점을 통째로 사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못 해줄까 봐?”

목사님 부부. 그들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가 존경하시는 그 부인 말이죠….”

“그래, 연탄 봉사하러 멀리까지 다니시고 하는 그분.”

진혁의 집안은 교회가 아니라 절을 다녔지만, 부인과 어머니가 국민학교 동창이라는 인연으로 꾸준히 교류해 왔다.

신도가 아닌데도 집안이 곤란했을 때 기도회를 열어 성금을 모아주시고, 찾아와서 안수 기도를 해 주신 목사님과 그 부인.

자식들도 비슷한 나이 또래라서 항상 비교가 되곤 했다. 그 집 아들은 특히 효자라서 더 그랬다.

‘옛날에는 기분이 나빴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목사님 부인은 아들이 엄마 쇼핑에 같이 와 주었다며 행복해하고, 요리를 도왔다고 기뻐했다. 생각해보면 그 집에는 자랑할 만한 것이 착실한 아들밖에 없었다. 진혁이네나 개척교회 목사댁이나 형편이 비슷비슷했다. 그나마 그 자랑도 진혁이 사고 나서 입원하면서 아예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어머니가 내 자랑을 하시느라, 그쪽 아들이 여기를 신경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조금 우스울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아버지가 신경을 쓰고 있다니.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같이 가주시는 건 어때요?”

진혁이 제안했다.

“똑같지. 너 혼자서 가게를 어떻게 봐!”

어머니가 정색했다. 진혁이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이미 아르바이트할 학생을 알아봐 놓으셨어요.”

‘음? 내가 언제?’

아버지가 어리둥절해 하는데 진혁이 눈짓을 했다. 아버지가 아!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네 학교 후배 말이냐?”

“걔가 저한테 연락을 해 왔어요. 일을 하고 싶다고.”

닭 뼈를 모아 봉투에 정리하면서 진혁이 설명했다.

“이미 휴학도 헀고, 아버지한테 빵 만드는 것부터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잘 됐다! 아르바이트생은 언제부터 일할 수 있대?”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서렸다.

“우리 아들, 남편 둘 다 힘들게 일하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 생기면 좋구말구!”

“그 아르바이트생은 언제부터 일할 수 있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원래 학교에서 알던 후배야?”

진희가 궁금해했다.

“아버지가 진혁이 후배를 어떻게 알고 뽑은 거예요?”

“거, 참하게 생긴 애가 케이크 사러 왔는데. 맛을 보는 혀도 괜찮고, 애도 착실해 보이더라. 그때 학교 후배라고 하더라고. 진혁이가 원래 학교에서 알던 아이는 아닌 것 같아.”

“인연인가 보네.”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혁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미각이 문제일 리는 없어. 닭고기가 문제다.’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닭고기 맛은 어때?”

“맛있어, 맛있어.”

진희가 행복한 표정으로 닭봉을 베어 물었다. 어머니가 흐뭇해했다.

“잘 먹으니 좋다.”

“엄마도 좀 드세요.”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작은 가슴살 조각을 집어 드신 어머니가 퍼뜩 생각났는지 물었다.

“치킨이 이렇게 맛있는데 왜 치킨 맛 빵은 없는지 몰라?”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있지, 왜 없어. 전에 치킨 고로케 만들었잖아.”

“너 만들 생각 없어? 만들면 대박 날 거 같은데.”

“흐음…… 아버지, 치킨 고로케 잠깐 팔다가 그만두지 않았어요?”

“그렇지.”

“문제가 뭐였죠?”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양념을 너무 강하게 하면 닭고기 맛이 안 나고. 닭고기 맛을 살리려면 양념이 너무 약해지고. 어떻게 제일 적정한 비율을 만들지 고민해서 만든 건 튀김옷에 기름이 너무 강해서…… 또 느끼한 맛이 나고.”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 아버지의 어깨에 어머니가 손을 얹었다.

“옛날에 그 느끼한 빵? 고기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치킨 양념 맛만 났지.”

“진혁이가 하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진혁이 웃었다.

“재료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재료라니, 무슨?”

“요즘은 닭을 양계장에서 키우잖아요.”

“그렇지.”

“옛날에는 닭들이 돌아다니면서 모이를 쪼아먹고 하면서 운동도 하고 건강했는데…… 양계장에서 키운 닭들은 항생제도 써야 하고. 건강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도 생각을 하네?”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고기는 맛도 덜해지니까, 음.”

“토종닭 같은 걸 쓰면 단가가 안 나올 텐데.”

“그건 또 그렇죠.”

진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우,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에요! 뭐 이렇게 진지해져. 진짜로 만들어달란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아니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양념치킨은 치킨으로 먹으면 되지, 굳이 빵으로 먹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닭고기를 안에 넣고 겉에 얇은 페이스트리를 여러 겹 입혀서, 호주식 미트 파이처럼 만들면 되지.”

“고로케가 아니고?”

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튀김옷을 얇게 해도 되는데. 치킨 고로케는 이미 다른 가게들에도 흔하게 있는 메뉴니까요. 치킨 파이를 하는 집은 많지 않을걸요.”

“치킨 파이라…….”

아버지가 생각에 잠겼다.

“좋은 고기를 써서 고기 맛 자체를 느끼게 하고, 빵 반죽에 양념 향을 아주 약하게 넣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페이스트리를 겹겹이 쌓으려면 손이 어지간히 빠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저 손 빠른 거는 아시잖아요, 아버지.”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 나온 김에 한번 해 보죠.”

“……그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가 하나 더 느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네가 너무 힘들게, 일을 많이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구나.”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무리하는 거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진혁을 향했다.

“날도 덥고 힘든데, 일 양만 늘어나는 건 아닌지.”

“……무리하는 건 아닙니다. 이제 알바생도 일하기 시작하면 더 낫겠죠.”

◈          ◈          ◈

새로운 아르바이트생 일봉이 와서 정식으로 일한 지도 사흘째, 이제는 손이 꽤 익숙해졌다. 진혁도 아르바이트생을 어떤 식으로 부려야 할지 감을 잡았다.

“여기에는 이렇게 두면 될까요?”

“그래.”

양손으로 들어 달걀 열 판을 옮긴다.

‘내가 직접 하면 한 번에 백 판씩 옮기는데.’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진혁과 함께 일할 시간에는 거의 판매 일을 보조하게 될 것이다.

일봉에게 제빵을 가르치는 것은 아버지가 맡아서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너같이 젊은 애가 가르치는 것이 낫지 않겠냐?”

“저도 아직 초짜인데 누굴 가르쳐요. 아버지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낫죠.”

“네가 정 그렇다면야…….”

아버지는 하나부터 천천히 가르쳤다.

“달걀을 한번 깨 보지.”

일봉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진혁이 스테인리스 그릇을 내밀었다.

“이거 찾고 있었어?”

“아! 감사합니다.”

“그렇지. 거기에 깨야지.”

아버지가 간단하게 평했다.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상식이다. 달걀을 깰 때는 반죽에 바로 붓지 않고 다른 그릇에 깨도록 한다. 만에 하나 깬 달걀이 상했을 때는 이미 섞여버린 멀쩡한 반죽을 골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전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깬 달걀을 반죽에 바로 붓다가 불호령을 들었지. 그때의 나보단 낫군.’

하지만 아버지가 보는 포인트는 한 가지 더 있다.

조리대 모서리, 튀어나온 부분에 달걀을 부딪치는 일봉을 보며 진혁이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의 나랑 같은 실수를 하는군.’

모서리가 아니라 평평한 곳에서 달걀을 깨면, 껍질 조각이 들어갈 가능성이 줄어든다. 일봉은 금이 간 달걀을 그릇 위로 가져가 반으로 깬다. 아니나다를까, 달걀 껍질 조각이 달걀 안으로 함께 빠졌다.

“달걀을 깰 때는 평평한 바닥에 깨야 해. 그렇지 않으면 달걀 조각이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아버지는 짜증 내거나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했다.

“네!! 시정하겠습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원래는 저 자리에 진혁이 있었다. 하지만 태도는 달랐다. 볼멘소리를 하면서 건성으로 배웠다. 대충 귀로 흘려 들으며 대강대강 따라 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입원했어도 아버지의 맛을 재현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가 일봉에게 물었다.

“거기서는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았나.”

“반죽은 다 냉동 생지를 써서요…. 계란 쓴 건 실습할 때랑 집에서 이것저것 혼자 베이킹해볼 때 말고는 쓸 일이 없었어요.”

“쯧쯧.”

아버지가 혀를 찼다.

“그래도 거기서 갑자기 해고를 당했는데 여기서 받아주셔서…… 관련 분야에서 일 년 정도 일하며 경험을 쌓고 복학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붕 떠버릴 뻔했어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봉이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마침 일할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진혁이 후배기도 하고. 서로 돕고 돕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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