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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4화 (14/656)

제 014화

진혁의 방.

탕탕!

밖에서 강하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하나밖에 없다.

진혁은 느긋하게 심호흡을 하고 걸어나가 문을 열었다. 조금 전에 창밖으로 외출을 감행해 10㎞를 다녀온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로워 보인다.

“뭔가… 환기했어? 청량한 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네.”

진희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 말 하러 들어온 건 아니지? 나 새벽부터 일했다.”

“아니야.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들어왔어.”

진희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요즘 너 정신 차리고 일하니까 어머니도 좋아하시고,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어머니 관절염 완전히 고질병이었던 거, 그것까지 좋아진 것 같더라. 진통제를 아무리 먹어도 아침에는 너무 뻣뻣하다고 괴로워하셨는데.”

“……그래.”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던 쌍둥이 누나가 갑자기 사과를 해오자 어색하다. 진혁이 멀뚱멀뚱 바라보자 진희가 급히 말했다.

“오늘 엄마 결혼기념일, 아빠가 잊어버렸다고 온종일 풀 죽어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쨘! 하고 케이크 가져오니까 엄청 좋아하시잖아. 네가 챙긴 거지? 아빠 그런 거 기억 잘 못 하시잖아.”

“…….”

진혁은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께서 알아서 기억해내셨지만.’

진희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오만 원 내놔.”

“어? 왜?”

“결혼기념일 선물로 홍삼 해드린 거. 그거 네가 반 내기로 했잖아.”

“……어어.”

아마도 수십 년 전에 했을, 당시는 지켜지지 못했던 약속이다. 원래 지금쯤 진혁은 병원에 입원해 있고 가족 모두가 그 수발을 드느라 바빴다.

“고마워.”

지갑에 담겨 있던 오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진희에게 주었다. 뻗대지 않고 순순히 주자 진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상하다? 너 원래 완전 짜증 내면서 삥 뜯기는 얼굴 하잖아. 되게 웃긴 얼굴.”

“그렇지 않아. 오해야.”

미리 기억해주고 챙겨줘서 어머니에게 선물을 알아서 주다니 정말로 고맙다. 직접 사러 간다면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했겠지. 얼마 정도 가격대로 해야 하는지도 몰라 쩔쩔맸을 것이다. 무엇보다 절대로 결혼기념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 참.”

“그럼 다다음 주에 있는 엄마 생신 선물에도 반 내라?”

“……또?”

“또가 아니라, 매년 한 번씩 오는 거잖아! 당연히!”

진희가 버럭 성질을 냈다.

“엄마 신발 뒷굽이 완전히 닳아버린 거 봤어? 그걸 계속 굽을 갈아가면서 계속 신고 있다고. 우리가 중학생 때부터 신던 신발이야.”

“아….”

“어머니 백화점 모시고 가서 좋은 구두, 제대로 된 거로 사드리려고 하니까. 너도 같이 가자.”

“응.”

“한 사십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너무 큰 가격은 아닌가, 하고 눈치를 보는 모습이 귀엽다.

“나 이번에 돈을 좀 넉넉하게 받게 되었으니까, 내가 사십만 원 다 낼게.”

“너는 돈 별로 없으니까 십만 원만 내… 어?”

서로 동시에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사십만 원을 내? 난 직장인이잖아. 내가 삼십 낼 테니까 네가 십만 원만 내.”

“이번에 가게 수익을 좀 분배받기로 했고, 가게도 잘 되고 있으니까. 사십 정도는 낼 수 있어. 더 좋은 구두를 사드릴 수도 있고.”

“……그럼 이번엔 네가 내라? 솔직히 이제까지 네가 돈을 제대로 낸 적이 있어?”

그렇다. 고등학생 때 서로 똑같은 용돈을 받을 때도 진희가 부모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나 어버이날 따위를 챙기는 동안 진혁은 어떻게든 돈을 내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돈이 참 아깝게 느껴졌지.’

PC방도 가야 했고 술도 마셔야 했고 브랜드 운동화도 사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짓이야…….’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참 많이 신경을 낭비했다.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제대로 내고 싶어졌어.”

“알았어. 고마워.”

잔뜩 훈계하는 말을 늘어놓을 태세였던 진희가 엄지손가락 손톱을 깨물기 시작했다. 어려운 말을 하기 전에 하는 버릇이다.

“뭐야. 뜸 들이기 전에 말 해봐.”

진혁이 다리를 벌리며 편하게 앉았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깔면서 진희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려 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진희가 어렵게 물었다.

“있잖아, 너 진짜 무슨 일 없었지?”

“무슨 일?”

“군대를 갔다오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너 진짜 너무 많이 달라졌어. 좋은 쪽이기는 한데. 그래서 엄마도 아빠도 걱정은 별로 안 하시는데…….”

중학교 때까지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남매가 같은 방을 써야 했다. 다행히 사춘기가 지나면서 다른 방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진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진희였다.

“너, 내가 아는 그 진혁이 맞지?”

정면으로 바라보는 작고 동그란 얼굴.

진혁과 이란성 쌍둥이라 닮지 않은 그 얼굴이 걱정스레 진혁을 지켜보았다.

당연히 달라졌을 수밖에 없다. 이미 이십 대 시절의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너무나 희미하다. 첫 육십 년, 그리고 그 후의 육십 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진혁이 대답했다.

“……어, 맞아. 고생을 많이 해서 철이 들었을 뿐.”

진희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집게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투명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은 짧고 상처가 많았다.

“내가 너 대신 군대를 갔어야 했는데…….”

“헛소리하지 말고.”

“진짜야. 넌 먹는 것도 예민하고 자는 것도 예민하고 섬세한 데가 있잖아. 나는 그런 건 없는데.”

“됐어. 빈 소리는.”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진희가 알아보았다는 걸 안다. 남매가 있을 경우 여자가 군대에 가면 남자는 군대가 면제된다는 헛소문. 그걸 정말로 믿고서, 자원입대를 결심하고 체력장을 준비했었다는 사실.

‘다행히 진짜로 입대하러 간다고 하기 전에 부모님이 말렸지.’

진희는 계속해서 애꿎은 검지손가락 손톱을 짓이겼다. 진혁이 물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긴 뭔데?”

“어…… 아니.”

진희는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바깥에서 어머니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치킨 왔다! 치킨 먹어라!”

◈          ◈          ◈

도착한 것은 치킨 박스와 1.25L 펩시콜라만이 아니었다. 돌돌 말려있는 포스터가 함께 왔다.

“예이! 우리 동네도 아직 남아 있었구나! 우리 병원 지점은 완전히 매진됐거든!”

이름 모를 보이 그룹 포스터를 껴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데 어머니가 웃었다.

“그렇게 기뻐?”

‘……결국 저게 가지고 싶었구만?’

진혁은 혀를 쯧쯧 찼다.

‘저런 걸 보면 아직 애야, 애. 저러고 누나 취급을 받고 싶어 하고.’

치킨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치킨! 포스터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딱 봐도 상술인데 저런 것에 혹하는 것이 우습다.

얇고 바삭바삭한 갈릭 후레이크를 올린 양념치킨. 불그스름하고 끈적한 양념에 가득 배어 있는 닭고기는 언뜻 보기에도 중원에서 보던 것보다 한참 작다. 옆에는 썰어놓은 양파와 파채가 가득 담겨 있다.

“닭고기 한 입, 양파 한 입 그렇게 먹으면 맛있대요.”

“그럼 그렇게 먹어볼까?”

아버지가 닭고기를 한 입 먹었다. 곧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족들에게도 권했다.

“진혁아. 너도 먹어 봐라. 맛있네.”

“어머니부터 챙겨 주세요.”

“역시 우리 아들밖에 없네!”

“엄마! 돈은 내가 냈는데.”

시끌벅적하게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닭고기를 먹는다. 보통 어머니께서 음식을 하시지 이렇게 배달시켜 먹는 경우는 많지 않다. 소복이 쌓인 닭고기를 가족 모두가 먹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진혁은 아버지가 접시 위로 올려주신 닭 다리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아작!

닭의 다리뼈가 부러졌다.

‘……닭 뼈가 뭐 이리 약해?’

자신의 힘이 세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중원의 보통 닭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닭 뼈가 약했다. 진희가 물었다.

“진혁아! 고기 먹다가 왜 갑자기 닭을 노려보고 있어?”

“아니, 아무것도.”

진혁이 휴지에 닭 뼈 조각을 퉤 하고 뱉어냈다. 어머니가 놀라워하셨다.

“어머, 어머. 이 뼈 부서진 것 봐.”

“아니 이 단단한 닭 뼈를 어떻게 그리 다 부쉈어? 진짜 신기하네.”

신기해하던 진희가 문득 떠올랐는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 뭐 뼈에 입천장 같은데 긁힌 건 아니지? 어디 아파?”

“…아주 멀쩡해.”

진희가 물었다.

“그런 덴 쉽게 덧나서….”

“전혀. 괜찮아.”

“입 안 열어서 좀 보여줘 봐.”

“뭐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 정말로 멀쩡하다니까.”

진희가 설명했다.

“내가 무균실에 있잖아. 조혈모세포이식 병동.”

“어… 뭐 그런 데 있다고 들었지.”

누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알아서 멀쩡히 몇 년째 병원에 다니고 있으니 잘하고 있나 보다 할 뿐이다. 진혁이 관심 없이 치킨을 계속 먹자 진희가 답답해했다.

“이쑤시개에 긁히기만 해도 구내염 생기는 애들 맨날 보니까, 걱정돼서 그런다. 왜!”

“……내가 백혈병 환자냐.”

어이없어하면서도 진혁은 그냥 받아주었다. 그냥 조금 별난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자.

“보통 의사는 팔다리 잘린 거,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 하도 많이 봐서 사소한 상처에는 전혀 신경 안 쓰지 않나.”

마의(魔醫)의 이야기다. 사실 팔다리가 잘린 정도가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봐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일반적인 무림인이 피를 보는 데에 개의치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 녀석은 정도가 심했다. 유아의 안구와 내장을 적출해 만든 생강시를 보고서도 멀쩡하게 연구하고 싶어 했던 놈이니까.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라고 하지만, 환자는 사실 환자고. 가족은 가족이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희가 신경 쓰고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무림인이 닭고기를 먹다가 뼈에 입천장이라도 다칠 일은 단언컨대 절대로 없다. 만년화리(萬年火鯉), 즉 만 년 묵은 잉어와 같은 영물의 뼈라면 또 모를까. 그리고 진혁의 수준이라면 만년화리의 생선뼈도 씹어 먹을 수 있을 수준이다.

진혁은 묵묵히 닭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양념에 버무린 닭고기는 달콤했지만 양념 맛이 너무 강했다.

‘내가 예민해졌나.’

닭은 고기가 너무 부드럽고 묘하게 씁쓸한 맛이 느껴지면서 뼈는 약하다.

‘양념치킨이 맛없다니…… 이럴 수가…….’

어머니의 아욱 된장국은 맛있었는데 어째서? 미각이 변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다르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진혁은 조금 실망했다.

‘치킨이 이렇게 맛이 애매한 음식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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