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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13화 (13/656)

제 013화

진혁이 두 손을 씻고, 제과용 멸균 장갑을 꼈다.

반으로 썬 8과 1/2파운드 바닐라 케이크 시트! 가운데와 겉에 버터크림을 도포하고 모양 잡고 식히기까지. 거기까지는 아버지가 이미 전부 준비한 상태다.

‘미러 글레이즈 기법.’

진혁은 종이컵을 놓고 그 위에 케이크 시트를 옮겨 놓았다. 제일 먼저 쪽빛 하늘을 만들 진남색 글레이즈를 좍 부었다. 아름다운 쪽빛이 케이크 전체를 뒤덮으며 바닥에 몇 방울 떨어졌다.

“허어, 녀석. 솜씨가 대단하구나. 평생 동안 무스 케이크만 만들면서 살아온 놈 같네.”

아버지가 저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캔버스에 붓질을 하는 명인 화가처럼 진혁은 느긋하게 손을 움직였다.

“아버지, 찬일이…… 형 건은 안 물어보세요?”

“네가 병원에 데려다주었으니 괜찮겠지. 난 널 믿는다.”

“…….”

진혁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서렸다.

이미 쪽빛 하늘을 묘사하기 위한 바탕은 다 깔았다. 한 스푼의 흰색 젤라틴을 떠내어 그 위에 살살 붓는다. 한 줄 기다란 구름을 묘사하고 나서 다시 두 번째 구름, 그리고 마지막 떠오르는 해를 표현해야 할 시간이다.

‘흰색을 한 줄 더 넣으면 구름이 세 줄인 셈인데, 음.’

구름을 하나 더 넣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데 아버지가 감탄하며 말했다.

“일출 직전의 새벽하늘 같구나.”

“아. 해가 굳이 있지 않아도 되는군요.”

“그렇지, 노란 판초콜릿도 준비해두지 않았으니.”

“그럼 새벽에 떠오르는 금성까지만 묘사하고 그만두죠.”

진혁은 노오랑 점을 조그맣게 구석에 찍었다. 작은 붓에 하얀 젤라틴을 일부 묻히고서 뿌리듯이 화악, 허공에 붓질을 했다. 정교하게 튕겨 나간 작은 점들은 쪽빛 하늘 위에 우아하게 뿌려져 새벽하늘의 희미한 별들을 표현했다.

“네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시겠구나!”

무스 케이크의 데코레이션은 끈적끈적하고 아래쪽이 망가질 위험이 크다.

“케이크 링을 씌울까요?”

케이크 링은 얇고 투명한 필름으로, 케이크의 아래쪽 모양이 우그러지거나 찌그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아버지가 잠시 턱에 손을 가져갔다가 고개를 저었다.

“네 어머니는 버터크림을 좋아하시니까.”

아까 남아 냉장실에 넣어둔 버터크림에 희미한 노란색 색소를 섞어 색깔을 맞추었다. 버터크림을 별 모양으로 짜서 아래쪽을 장식하는 아버지의 손길은 섬세했다.

“이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았단다.”

“……자주 보던 스타 크림이네요.”

“그렇지, 요즘은 이 별 크림을 하는 데가 별로 없는데 말이야. 너희 어머니는 아주 좋아하신다고.”

“처음 알았네요.”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갔다.

“이전에는 해가 지기 전까지 가게 문을 열고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요즘은 손님을 맞느라 매일매일이 바쁘지.”

“오후에 오는 손님들은 그냥 돌아가시겠군요.”

“내가 내 삶에 오후가 있는 적이 처음인데, 너희 엄마가 아주 좋아한단 말이야.”

“…아, 네.”

‘처음으로 아버지가 손님보다 가족 생각을 먼저 하시는 걸 봤다.’

“그리고 가게 매출도, 사실 네가 없으면 이렇게 나올 수가 없지.”

“음…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면 가게는 없으니까요.”

“네가 케이크 만드는 개수 말이야.”

아버지가 느닷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꺼내셨다. 전부터 하려고 벼르던 이야기 같다.

“요즘 네가 체력이 달려서 그날그날 케이크 만드는 개수를 점점 더 줄이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좀 만들어서 도우려고 했는데.”

“아, 그런 건 아니죠.”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시다시피 이제 슬슬 조금 이름이 퍼졌으니까. 한정판으로 두고… 그걸 사러 온 사람들이 케이크나 과자가 다 팔리면 다른 빵도 사 가고 하니까. 아버지 빵도 맛있으니까요.”

“네 마음씀이 나보다 낫구나!”

아버지가 어깨를 툭툭 쳤다. 오른쪽 어깨를 움직이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고 느꼈는데 지금 모습에서는 그런 것이 없었다.

‘추궁과혈을 계속했더니 관절도 좋아지시는구나. 다행이다.’

“니 어머니하고도 이야기를 했는데, 너한테 월급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

잠시 진혁이 말을 더듬었다. 돈을 바라고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월급이 없다고?

“월급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겠다, 이 말이야. 가게 매출의 50%를 무조건 너한테 주려고 한다. 너는 그만큼 이미 몫을 해내고 있고… 나랑 엄마는 너를 믿는다.”

“……아버지.”

감격한 마음에 진혁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네가 네 돈 들여서 나가서 여기저기 가서 먹어보고, 재료 사서 이것저것 시도해 본 것도 다 알고 있다. 내가 네 나이 때 그런 열정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구나. 너는 뭘 해도 될 놈이야. 아버지는 네가 뭘 해도 믿는다.”

진혁의 아버지가 심각하게 말했다.

“사실은… 내 친구 황철우, 알지? 내 제빵 학교 동기인, 고구려 호텔에서 베이커리 수석쉐프를 하고 있는 놈.”

“알죠.”

“그 녀석이 네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키워 보고 싶다고 하는데… 어떠냐?”

“……!”

진혁은 놀라 입을 벌렸다. 이 제안은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이런 동네 빵집에서 썩을 놈이 아냐, 좀 더 큰물에 가서 놀아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네가 병원 갔다 올 동안 철우 그놈이 잠깐 우리 가게에 들렀다 갔는데, 네가 만든 케이크를 보고 감탄을 거듭하더라고. 씨앗이 좋은, 아주 싹수가 보이는 놈이라고. 허 참! 내가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었지.”

“그건…… 좀 더 생각해볼게요.”

어머니께서는 아주 좋아하셨다.

“여보! 오늘 점심때도 얘기 없어서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

“아니야. 저녁에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일부러 말하지 않고 있었지.”

아버지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어머니의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 몰래 속삭이셨다. 진희가 꺅꺅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아빠, 스윗해요!”

소곤거리는 이야기지만 진혁에게는 아주 잘 들렸다.

‘내가 당신 생각하면서 만든 케이크야. 우리가 지금 황혼 같지만 황혼이 지나면 무조건 새벽이 오잖아. 사실은 우리 삶도 오늘 바로 지금 시작인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머니는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버지는 자신만만하게 어머니가 방금 내젓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오늘 밤에 기대하라고.’

‘애들이 다 들어!’

‘안 들려.’

진혁은 혼자 생각했다.

‘…다 들립니다.’

그는 방안에서 홀로 미소지었다.

5장

진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하고서 눈을 감았다. 본래 암천심법은 부동심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자세를 할 필요는 없으나, 오늘 하루의 일을 정자세로 돌아보고 싶었다.

‘자칫하면 그놈을 죽여 버릴 뻔했지.’

그랬다면 아버지께서는 크게 상심하셨을 것이다.

‘이곳에서 살인의 무게는 중원에서의 그것과 다르다.’

아무리 천무지체에 과거의 무공을 되찾은 진혁이라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재주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천천히 기를 운기하는 진혁의 위에 검은 연꽃이 피어올라 여섯 개의 꽃잎을 활짝 피웠다. 광안마가 닿고 싶어 끊임없이 노력하던 그 경지다. 하지만 진혁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 부모님이 잠든 깊은 밤, 진혁이 항상 수련하는 시간. 일반인이 8시간의 수면을 취해야 한다면, 무공의 고수는 1~2시간의 수면으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내공은 이전의 힘을 점차 되찾아가고 있으나 육체적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외공을 쌓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

물론 어디까지나 진혁의 기준에서 부족할 뿐이다. 빵집에 납품하러 오는, 밀가루가 가득 실린 1.5톤 트럭을 들어 올리거나 하는 정도의 힘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종류의 힘은 그런 단순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불필요한 소음이 닿지 않게 문밖의 소음을 전부 차단한 진혁은 오늘 있었던 일을 차분히 복기했다. 마지막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절로 웃음이 났다.

‘아버지께서 인정해 주셨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수고를 돈으로 환산해,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이 기뻤다.

‘대우를 받는다면 그만큼 나도… 파트너 역할을 해야지.’

수익금의 50%만 분배받는 것과, 가게 내의 지출 등에 적절히 돈을 내는 것은 다르니까. 진혁은 받은 돈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멈추었다.

‘월세와 재료 구입하는 비용, 전기세 같은 것을 반 나눠서 함께 내겠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그리고 중간에 받았던 제안까지.

‘아버지의 가게를 떠나서…… 5성급 호텔 베이커리에 취업하는 것.’

마음을 결정한 진혁은 눈을 차분히 떴다.

“내일 말씀드려야지.”

그리고 갈 곳이 있다. 진혁은 검은색 바람막이를 걸쳐 입고 검은 야구모자를 눌러 썼다.

‘태평 병원 301호실.’

이미 아버지가 병문안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그런 놈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게 하겠다. 싹수부터 노란 놈.’

태평 병원까지의 거리는 10㎞ 정도. 건물의 지붕과 지붕 사이를 밟지도 않고 사뿐사뿐 날아간다. 천마강림보를 응용해 초상비와 함께 병용하면 바닥을 거의 딛지 않고 오랜 거리를 달려갈 수 있다.

‘신발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개발했는데, 지붕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데에도 쓸만하군.’

암살자들의 총수였던 암혈마가 알고 싶다고 졸라댔을 때 귀찮아서 안 가르쳐 줬다. 대신 기술자들을 시켜 던전처럼 만들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직접 훈련하라 했다. 세 달쯤 던전에서 구르고 나온 놈은 유유신법이라는 처음 보는 신법을 만들어서 잘 날아다녔다.

‘그냥 가르쳐 줄 걸 그랬지.’

부하 녀석들을 놀리는 건 꽤 재미있었다.

진혁이 병원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301호실, 찬일은 6호실의 오른쪽 구석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병실의 커튼이 사르락거렸다.

찬일은 눈을 떴다.

“누… 누구?”

진혁이 손을 뻗었다. 이마에 가볍게 손가락이 닿고, 찬일의 세상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으으으……!”

아혈을 짚여 소리를 낼 수 없다.

“…!”

찬일의 동공이 뒤집히며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진혁은 심어를 통해 가볍게 속삭였다.

‘가게를 접고 떠나라. 몽원동에 나타나지 마라.’

머릿속 깊숙이 박히는 절대명령!

정파의 기재이자 우수한 지도자로 꼽히던 무제의 손자 남궁재도 굴복한 절대명령이다. 이런 일반인에게는 지나치게 강할 정도일지도 모른다.

타다닥.

바깥에서 간호사의 발소리가 들렸다. 곧 야간 순회를 시작할 모양이다. 진혁은 그대로 창문을 열고 허공 위에 발걸음을 옮겼다.

“주무세요? 환자분, 환자분!”

찬일을 발견한 간호사가 깜짝 놀라 찬일을 깨웠다. 진혁은 그 소리를 뒤로하고서 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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