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9화 (9/656)

제 009화

오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드는 것을 구경하며, 도대체 무슨 빵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했다. 일봉은 본래 제과제빵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빵 만드는 것을 배울 겸 판매하는 법을 배울 겸 일부러 시스템이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에 입사했다.

‘솔직히 빵집에서 반죽도 안 하고 냉동 생지를 가져와서 그냥 주무르고 굽는 일밖에 안 하니까… 편하긴 해도 배우는 건 없는 느낌이야.’

동네 빵집은 냉동 생지를 반입받을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직접 반죽해서 만들 수밖에 없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매일 매일 새벽에 나와서 반죽과 굽기를 계속한다. 불 꺼진 동네 빵집 안을 눈여겨보던 일봉이 기지개를 쭉 켰다.

딸그랑.

“우리 가게에 무슨 볼일이죠?”

아까부터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끼고 있던 진혁이 나와 일봉을 응시했다.

“아니, 아까 낮에 사람이 많이 몰렸길래… 무슨 빵을 파나 궁금해서요.”

일봉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말했다.

“혹시 남은 거는 없죠?”

“가족들 주려고 남겨둔 것까지 다 팔렸습니다.”

“저도 뭔지 봤어요. 진짜 예쁜 색깔 케이크던데. 무스에요?”

“치즈입니다.”

“치즈! 치즈를 어떻게 그런 색깔로…… 아니다, 아닙니다.”

무심코 궁금해서 물어본 일봉이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이런 걸 물어보면 안 되죠.”

진혁은 눈살을 살짝 찡그리고 일봉을 바라보았다. 일봉이 더듬더듬 말했다.

“저는 향인대 제과제빵 과에서 제과를 전공했는데, 학교에서 이렇게 엄청난 케이크를 만드는 건 가르쳐 준 적이 없거든요.”

“향인대? 우리 아들도 향인대 휴학했는데.”

불쑥 튀어나온 진혁의 아버지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저는 지금 2학년이에요.”

“우리 진혁이 학교 후배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아, 혹시 빵을 사러 오셨나?”

“다 팔리셨다고 하셔서.”

“그래도 우리 가족 먹을 건 있는데. 내가 한 조각 나눠 줄 테니까 먹어 봐요. 우리 아들이 아주 기똥차게 만들어서, 한 번 먹으면 반드시 찾아오게 될걸?”

“그럼, 아버지가 아까 빼놓으신 게…….”

“진희가 자기 것을 남겨 달라고 생떼를 써서. 아까 냉장고에 넣어놓았던 것이 그 케이크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저렇게 직접 말해버리면 방법이 없다.

‘진희야, 미안하다. 오늘은 네 케이크는 없다.’

내심 진희에게 사과하는 진혁이었다.

크림슨 치즈 케이크의 포장용 상자. 그 상자를 들고서 아버지가 다시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자자, 따라 들어오라구, 우리 진혁이 후배 청년.”

일봉은 망설였다.

‘이 앞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데 여기에 이렇게 들어와도 되나? 라이벌 가게 아닌가…… 솔직히 사장님이 너무했지, 맞은편에 그냥 딱! 열어버리고. 상도덕이 없어, 상도덕이.’

머뭇거리며 서 있는데 진혁이 일봉의 어깨를 살살 두드렸다.

“그냥 들어오시죠, 후배님.”

“아니, 아니. 말 편하게 하세요.”

“손님으로 왔으니까.”

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에게는 들리지 않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봉에게 묻는다.

“맞은편에 사장이 보냈나?”

그 기백에 일봉이 찔끔했다. 등허리에 얼음물을 확 맞은 것처럼 정신이 났다.

“아니, 그냥 사람이 많아서 맛있어 보여서…….”

“상관없어.”

일봉이 더듬거리며 변명하는 동안 진혁이 아무렇지 않게 일봉을 스쳐 지나갔다. 케이크 상자를 열어 그 안에 있는 케이크를 꺼내 올려놓는다. 일봉은 그 자연스러운 동작에 놀라워했다.

‘사장님하고는 손놀림부터 다른데? 대학교 선배면 기껏해야 나랑 2, 3살 차이 날 텐데. 저렇게 능숙해?’

진혁이 빵칼을 꺼내 한 조각을 잘라냈다. 종이 접시에 담아 그대로 일봉에게 넘긴다. 일봉이 급하게 지갑을 꺼냈다.

“돈은 필요 없고.”

“아.”

창문 너머로 보였던 주황색 케이크. 불그스름한 색깔이 자연스러운 노란 색깔이 되는 그 믹싱 컬러도 놀라운데, 반 자른 그 안은 더 예뻤다.

노랗고, 희고, 다시 노랗다.

‘치즈를 한 종류가 아니라 세 종류를 썼나? 아니면 그냥 크림?’

어쨌거나 먹어 봐야 안다. 일봉이 케이크를 한입 물었다.

“……!”

일봉이 눈을 감았다.

“하나는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다른 두 개는 도저히 모르겠는데…….”

진혁이 빙긋 웃었다. 하나는 플레인 크림치즈에 꿀을 살짝 섞었고 다른 하나는 파인애플 크림치즈다. 달고 신 맛을 내기 위해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맛을 가감했다.

“맛이 굉장히 깊은데…… 어떻게 이런 맛을 낸 거죠? 와,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요! 데코레이션에 재능이 있는 선배인가 했는데 그냥 케이크 천재신가? 저도 이런 거 배우고 싶습니다!”

일봉이 침을 튀겨가며 격하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케이크를 만들죠? 이거는 5성급 호텔 베이커리에서나 나올 빵이에요! 한 조각에 얼마 드리면 됩니까?! 이걸 돈 안 받고 먹을 수는 없어요!”

얼굴이 새빨개져서 흥분해 말하는 일봉이다. 진혁과 아버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한 조각에 천 원. 홀케이크는 1만 원.”

“와 씨, 미친!”

“너 지금 욕하냐?”

아버지 앞에서 감히 욕을? 진혁이 눈살을 찌푸리자 일봉이 양팔을 휘저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거를 천 원이면…… 저도, 저도 사고 싶습니다! 내일 하나, 홀케이크 예약해주세요!”

“우리는 예약 안 받는데? 예약받으면 다음 날 팔 게 없어서.”

“으악! 하나만요, 제발!

“……뭐, 알았다.”

진혁의 아버지가 웃었다. 진혁은 아버지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귀엽잖니.’

‘시커먼 사내애가 뭐가요?’

‘딱 너 같다. 군대 가기 전에 너.’

‘…….’

진혁은 결국 케이크를 한 조각 더 잘라 일봉에게 포장해 주었다. 일봉은 결국 이천 원을 내고서 돌아갔다.

‘아르바이트할 가게를 잘못 골랐어…. 새 가게라서 좋아했는데, 이쪽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나았을걸.’

한편 진혁과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은 더 잘 팔릴 겁니다. 소문이 났으니까요.”

“그럴까?”

◈          ◈          ◈

사흘 후.

맛있다는 소문이 경로당과 중학교를 통해 퍼져나갔고 이미 손님이 꽤 늘었다. 이제는 앞의 아파트가 아니라 다른 아파트에서도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거, 우리 둘로는 사람이 모자라는데.”

진혁의 아버지가 계산을 돕고 진혁이 빵을 세어 건네준다. 하지만 두 사람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여느 때처럼 진혁이 새벽 먼저 나와 빵과 케이크를 충분히 구워냈는데도 벌써 점심때쯤 개수가 모자랐다.

“오늘 백 개를 구웠는데 벌써 모자라네요. 케이크는 모자란다고 설명을 써 붙이고, 오늘에 한해서 예약표를 써 두도록 하죠. 케이크 예약은 두 시간까지만 받고. 늦어도 내일까지는 직접 찾으러 와야 하고요.”

“허…… 참.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올 줄이야.”

진혁은 처음부터 크림슨 트리플 치즈케이크를 백 개씩 굽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걱정하며 사흘 만에 그렇게 널리 알려질 리가 없다며 개수를 줄이자고 했다. 머쓱해 하며 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섰다.

“문을 닫고 빵을 구울 수도 없고.”

“종류별로 빵이 나오는 시간 달리해서 게시하는 게 어떨까요.”

진혁은 이전에 보았던 다른 디저트 가게에서 영업하던 방식을 거론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데 비해 아버지는 피로해 하고 계셨다. 밤마다 추궁과혈을 계속하며 아버지의 몸에 쌓인 탁기를 제거하는 데에 주력했으나, 아직까지 완벽하지 않다. 진혁이 아버지의 어깨를 마사지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중간중간 간격을 두고 갓 나온 빵을 팔면 오히려 그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아침에 손님이 왔을 때 종류별로 빵이 전부 있는 편이 낫지 않으려나…….”

“어떻게 보면 원하는 종류가 없어도 신선한 빵이 있으면 그걸 골라서 사 갈 수도 있어요. 새벽에 구운 빵은 사실 5시간만 지나도 오후에는 맛이 덜해지니까요.”

“그래, 네가 정 그렇게 말한다면야.”

“케이크는 냉각시켜야 하니까 이제까지처럼 전날 저녁에 미리 굽겠습니다.”

“그래, 네 덕분에 아비가 호강한다.”

아버지는 진혁이 주물러준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거참 시원하다.”

“진희가 하는 것보다 낫죠?

“그거야 말이라고. 그런데, 주방에서야 위생 때문이라고 해도…… 언제까지 그렇게 마스크를 끼고 다닐 거냐? 기침하는 것 같지도 않더만. 감기가 오래 가? 네 엄마가 니 얼굴 까먹겠다고 하던데.”

찔끔!

예상보다 너무 빨리 환골탈태의 진도가 나가버린 탓에 성형수술 급의 외모 변화를 매일 조금씩 겪고 있는 진혁이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내일…… 아마 내일 정도면 벗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 참,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4장

그날 밤.

방에서 홀로 가부좌를 하고 앉은 진혁은 거울을 흘긋 보았다.

본래 평범한 편이었던 진혁의 외모는 환골탈태를 거치며 준 연예인급에 도달했다. 중원에서는 황동 거울, 구리거울 같은 것을 썼기 때문에 명확하게 깨닫지 못했는데 여기서 보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임독양맥을 전부 타동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면.’

소주천을 시행하며 진혁이 생각했다.

‘원래대로 돌아가면…… 부모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준이 된다.’

단전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따뜻한 기운. 영혼이 기억하는 이 진기를 통해 오늘 임독 두 맥을 뚫어버린다!

‘소주천에서 대주천을 하기 전에 그 전 단계를 겪는다.’

이전 중원에 있을 때는 사부의 도움을 받아 바로 대주천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주천만 하고 있는 상태다. 대주천하기 전 그 중간 단계로 호흡을 닦고 육체의 기틀을 마저 잡아둘 계획이다.

“오늘 천안투마공의 대성을 이루고, 신안술을 쓸 수 있는 기반을 닦는다.”

신안술! 그것은 천안투마공의 십이 성을 이루고 나서야 사용할 수 있는 신적(神的)인 기술이다.

상대의 눈이 아니라 뇌를 현혹해 시술자가 원하는 광경을 대상자에게 보여준다. 천안투마공을 원래 전수해 준 광안마도 상태가 좋을 때만 몇 초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천안투마공을 십 성까지 이루었다.

‘보통은 전투 시에 사용하던가.’

마지막에 광안마가 어떻게 사용했던가 돌이켜본 진혁이 피식,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남궁무제와 싸우다가 갑자기 자신을 남궁무제의 손녀딸, 남궁소화로 보이게 만들었지.’

아주 짧은 한순간이었으나 승패의 향방을 갈랐다.

‘내 부하지만 아주 나쁜 놈이었어.’

그래도 말 잘 듣는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신안술을 몇 초간 사용할 생각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벗는 한두 시간, 가능하면 온종일 사용하면 좋다. 그러므로 오늘 환골탈태를 끝마치고 이전의 경지를 되찾을 셈이다.

‘결코 양강지공을 대성해서 오븐 없이 빨리 빵을 굽기 위해서가 아니지.’

오늘의 매출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광안마와 광학사(狂學士), 혈도객(血途客) 세 명의 측근을 두고서 오직 넷이서 십만대산을 다스리던 자신이 고작 1주일에 450만 원의 매출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푼돈 때문에 기뻐하는 게 아니지.’

이번 달 월세는 걱정 없다며 기뻐하는 아버지의 얼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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