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07화
그렇다고는 해도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진희가 기함했다.
“그러면 원가도 안 나오는 거 아니야? 케이크 몇 조각이 하난데? 케이크 하나에 만원이 안 돼?”
“케이크 하나에 만 원, 개당 조각은 10개. 그리고 조각은 약간 작게 맛을 볼 수 있는 걸 포인트로 해서 천원. 홀케이크는 홀케이크로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 조각을 모아서 한 개 받아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뭐 어쩔 수 없고.”
“천 원이면 진짜 모든 사람이 다 사 먹겠는데!?”
어머니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잠시 발바닥으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다가 팔짱을 끼며 벽에 기대었다.
“그건 임시로 하는 할인 이벤트니? 언제까지 할 거냐?”
“거, 맞은편 프랜차이즈 <스위트 바게트>가 문 닫을 때까지요.”
“…….!”
“일부러 우리 맞은편에 문 연 거 다 알아요.”
“알고 있었니……?”
“예.”
‘회귀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죠.’
아주 괘씸하다.
장사야 사실 다들 밥 벌어먹자고 하는 일이니 가게를 여는 것을 보고 무어라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 빵집 주인, 김찬일 새끼는 초장부터 밟아 줘야 한다.
“젊었을 적에 아버지 제자였다면서요?”
아버지가 주춤했다. 어머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희는 전혀 영문을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라빵을 냉큼 집었다. 다들 당혹해 하는 사이에 몰래 빵을 입속에 쑤셔 넣고 있는 모습이, 어제 디저트는 질렸다며 악악대던 때와 명확하게 비교된다.
“어떻게 알았냐?”
‘어떻게 알았긴. 회귀 전에 직접 말씀해 주셨지.’
잠들어 누워 있는 진혁에게 한탄하며 이야기하셨다. 진혁보다 열 살이 많은 김찬일은 아버지의 친구 아들로, 아버지가 조카처럼 아껴왔다. 빵집에서 빵 기술을 배워서 독립한다고 하고 서울로 떠났는데, 느닷없이 내려와 아버지 가게 앞에 냉큼 프랜차이즈를 차렸다. 대놓고 아버지 가게를 망하게 하려는 수작인 것이 뻔히 보여서 아버지는 속상해하셨다.
“본점에서 빵집 바로 옆 말고 다른 가게 권했어도 우리 맞은편으로 왔을걸요.”
“마음은 착한 놈이다.”
“…….”
그래서 아버지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았던가. 이미 몇십 년 전이라 기억이 아득하다. 진혁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냥 맛있는 빵을 만들어서 파는 거죠. 제가 뭐 거기 망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역시 내 아들이다.”
아버지가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
뒤에서 진희가 갑자기 왁 소리를 냈다.
“뭐야! 크림소라 빵, 생크림 안에 또 초콜릿 크림이 들었는데 그 안에 또 생크림이 있어? 맛이 섞이지도 않고 섬세한 게 완전히 대단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너무 맛있잖아!”
아버지가 픽 웃었다. 어머니가 진희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너는 얘, 아직 아버지는 맛보시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냉큼 빵을 주워 먹니?”
“이렇게 맛있는 향기가 나는데 어떻게 안 먹을 수가 있어!”
찰싹, 찰싹. 찰진 소리가 난다.
“괜찮아요, 어머니. 먹으라고 만든 건데요.”
“군대 갔다 오니 진혁이 철든 것 좀 봐. 너도 진혁이 반만 본받아라!”
“아니, 왜 갑자기 그 얘기가 나와!”
진희가 소리를 빽 지르고, 아버지가 하하 웃었다.
‘이 가족이 바로, 내가 지킬 가족이다.’
진혁 역시 미소 지었다.
3장
“미친, 이 케이크 뭐야?”
중학생 김도을.
단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단것과 짠 것을 곁들여 먹는 것은 더 좋아한다. 최근에는 통신사 할인을 받아 스위트 바게트에서 치즈 케이크를 사고, 거기에 푸딩글스 포테이토칩을 곁들여 먹는 것을 즐긴다. 오늘도 야간 도서실을 가기 전에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사러 스위트 바게트를 향하던 찰나, 맞은편에 있던 구린 동네 빵집의 신메뉴를 발견했다.
김도을이 ‘크림슨 치즈 케이크’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눈을 크게 떴다. 확장된 갈색 동공에 붉고 노란 케이크가 선명하게 박혀 들어와 뇌 속까지 아로새겨질 것만 같다.
눈을 떼지 못하는 중학생 뒤로 한참 키 작은 할머니가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이것이 뭐시여?”
할머니가 입을 딱 벌리고 크림슨 치즈 케이크를 보았다.
“케이크에요, 케이크.”
중학생이 넋 나간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케이크가 아니라 보석 같네. 루비에 금을 녹인 것 같아.”
70대 금천복.
맛있는 것은 팥빵이요, 좋아하는 것은 찹쌀떡이다. 하지만 요즘 이가 성치 않아 팥빵을 녹여 먹어야 해서 속상하다. 고물상의 주인이자 거리 폐지 수거의 1인자로, 서울 사는 잘난 아들을 두었다. 거리에서 폐지를 줍고 그날그날 토실한 찹쌀떡 한 개 반 쪼갠 것의 팥앙금을 쪽쪽 빨아 먹는 것이 세상 최고의 낙이다. 어머니 서울로 올라와서 같이 살자는 아들의 제안은 한 달마다 신나게 거절하며 아들이 효심 깊다고 자랑하는 것 또한 즐긴다.
“그런데 왜 보고만 있어?”
“향기가…… 향기가 진짜 미친 향기가 나요.”
“그려? 그리 좋은 향내가 나?”
후각이 둔한 금천복 할머니가 코를 킁킁거렸다.
“이건 먹어야겠어요. 아저씨! 여기 이거 얼마에요?”
스위트 바게트의 치즈 케이크 따위는 여기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다! 이것은 스위트 바게트 케이크보다 훨씬 더 비싸겠지만 한 번쯤은 먹어도 될 것이다. 굳게 결심하고 주머니 속의 오천 원짜리를 꼬깃하니 잡은 김도을이 손을 살짝 떨었다.
“거기 쓰여 있잖아. 천 원.”
이미 수십 년을 살아온 진혁은 아저씨라는 말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심드렁하게 가격표를 가리킨다.
“만원인 줄 알았어요!”
중학생이 기쁨에 가득 차 외쳤다. 당연히 천원일 리 없다고 생각해서 잘못 본 것이다. 진혁이 다시 확인해주었다.
“천 원 맞다. 할인 행사 중이야.”
“그럼 저 오천 원어치 주세요.”
진혁은 바로 여섯 개의 조각 케이크를 포장해 주었다.
“여섯 갠데요?”
“많이 사가니까 덤이다.”
거기에 초코 슈크림도 하나, 비닐 봉투에 던져 넣어 주었다.
“우와!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나는 22살이잖아?’
정신적인 연령이야 어쨌건 육체는 22살이다. 그런데도 과연 아저씨라고 불려야 하는 것인가?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고 부르라고 버럭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육체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 과연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잠시 딴생각에 빠진 진혁을 할머니의 목소리가 불러 깨웠다.
“거, 초옹가악.”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던 할매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총각, 내가 모찌를 좋아하는데 혹시 그런 맛 나는 빵도 있어? 팥빵이 좋은데 요즘은 씹기가 쉽지가 않고 틀니에 끼고 그래서 먹기가 쉽지 않어.”
주름진 얼굴이 입을 벌려 환히 웃는데 촌스러운 은색 틀니가 반짝인다. 진혁은 그 얼굴을 보며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했다.
‘아미파의 그 노파랑 비슷하구먼.’
아미파의 문주였던 진철 사태. 그 노파는 특별히 주안공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자태가 곱고 아름다웠다. 얼굴도 체격도 시대도 공간도 다르지만 이 할머니의 얼굴에서 그 미소가 묻어났다. 평생 풍파를 겪어왔으며 앞으로도 험난한 세상을 혼자 몸으로 자신만만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여자의 웃음이다.
“버터 팥앙금 빵이라고 있는데…… 이걸 좋아하실 거예요. 한 입만 샘플로 드셔 보세요.”
“샘플로? 돈을 안 줘도 되고?”
할머니가 주섬주섬 구겨진 천 원짜리를 꺼내려고 손을 가방으로 가져갔다. 70 평생을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는 주름진 손이다. 진혁이 그 손목을 덥석 잡았다.
“한입 드셔 보시고 결정하세요. 사가실지 말지.”
“그래, 그래.”
황금 버터 팥앙금 소보루. 본래 서울의 유명 베이커리에서는 ‘앙버터 브레드’라며 패스츄리 계열의 빵 안에 버터와 팥앙금을 넣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보다 조금 더 다른 것을 원했다. 거칠거칠한 소보루 안에 들어 있는 극한의 부드러움! 강기로 하나하나 찢어발긴 팥 알갱이들은 살살 녹은 버터와 우아하게 조화를 이룬다. 조금 전 소보루에서 느낀 거친 식감이 대조되어 팥과 버터는 더 강렬하게 부드럽게 느껴진다.
버터와 팥이 함께 녹아내리는 그 맛은 이미 부모님이 찬사를 멈추지 않은 바 있다.
진혁은 소보루 부분을 일부러 많이 떼어내고, 안쪽을 주욱 찢어 할머니에게 건넸다. 빵을 건네며 손이 살짝 닿았다.
“에구, 고맙네.”
한 입 베어 문 할머니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동자가 커졌고, 그다음에는 입을 딱 벌렸다. 양손을 벌리며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렸다.
“이, 이것이 정녕 빵이여? 속은 뭐시여, 이거는 내가 알던 팥이 아닌디?”
“팥과 버터를 섞어서 속을 만들었습니다. 팥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걸 골라내서 그걸 으깨고 다져서 썼구요.”
“그래, 내가 여태까지 먹었던 모찌는 모찌가 아니구만. 이 빵 모찌가 최고구만, 최고야!”
할머니가 꽉 쥔 작은 주먹을 휘휘 휘둘렀다.
“아이고, 힘이 넘친다, 넘쳐!”
‘……진기를 고작 한 푼 정도 불어넣었을 뿐인데.’
갑자기 할머니의 키가 쑤욱 커진 듯싶다. 조금 전까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할머니가 쪼오끔, 아주 약간 허리를 폈다. 진혁은 생각보다 과장된 반응에 할머니를 똑바로 응시했다.
“기운이 난다, 기운이 펄펄 나!”
할머니는 쿵 하고 한발을 구르더니 흥분해서 외쳤다.
“이 빵 이름이 뭐라고?”
“황금 팥앙금 소보루입니다. 겉 부분은 좀 딱딱하시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괜찮아, 이거 오십 개만 줘봐. 얼마라고?”
“한 개에 천 원입니다. 그렇게 많이 사가시게요?”
“우리 경로당에 있는 입이 스물다섯 개야. 한 사람당 두 개씩은 먹어야지. 이거는 한 개만 먹고 멈출 수 없는 맛이여.”
할머니는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오만 원짜리를 내더니 턱 하고 얹어주었다.
“고마워, 고마워. 내 평생에 맛있는 거는 모찌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디 이거는 그보다 더 좋구만. 부드럽고 단 것이 아주 입맛에 꼭 맞아.”
진혁이 돈을 받으며 빵을 하나 더 넣어 주었다. 이번에 새로 만든 블랙 앤 화이트 소라 크림빵이다.
“이 빵도 드셔 보세요. 부드러운 걸 좋아하시면 괜찮을 겁니다.”
“고맙네, 총각!”
할머니는 빵 봉지를 소중하게 받아들었다. 곧이어 아들을 데리고 걷던 젊은 여인이 다가왔다. 아이는 체구가 작은 편으로 초등학생 즈음 되어 보였다.
“이게 하나에 천원이에요?”
“예, 이번 달 동안 특별히 할인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졸랐다.
“엄마, 나는 이 주황색 케이크 할래.”
“밥 먹기 전에 단것 먹으면 못 써!”
“그건 그렇게 단맛은 아닙니다. 치즈케이크거든요.”
“아…….”
아이는 갤럭시 치즈 케이크 앞에서 똑바로 서서 팔짱을 꼈다. 어머니를 노려보는 단호한 시선에 아이 어머니가 곤란한 듯 혀를 찼다.
“어휴, 이렇게 보기에 화려한 건 맛있기가 어려워.”
아이 어머니의 시선이 보란 듯이 길 건너편을 향했다. 스위트 바게트의 간판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고 있다. 벽에 붙은 단순한 치즈케이크 포스터가 시야에 확 들어온다.
진혁이 빙긋 웃었다.
“시식을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케이크를 시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