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화 (6/656)

제 006화

진희가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아드레아노 존부의 디저트 팩토리>라는 글자가 화려한 금빛 네온으로 빛나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다. 먼지 하나 없이 새하얀 성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니 놀랄 일이다. 디즈니랜드에나 어울릴법한 성이었다.

새하얀 대리석 문의 양쪽에는 그리핀이, 문 위에는 가고일이 놀랄 만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분위기부터 대단하지? 여기 꼭 와 보고 싶었어.”

진희가 문을 열었다. 무지개색 모자를 쓰고 요정처럼 녹색 옷에 작은 날개를 단 옷차림을 한 여자들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런 분위기는 ……정말 적응되지 않는군.’

하얀 대리석을 얹어놓은 탁자의 다리는 투명하고, 공주님 의자처럼 화려하게 곡선이 장식된 의자도 화려하다. 벽에는 촛불 모양의 LED 조명이 점점이 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인테리어적인 디테일보다 진혁이 관심 있는 것은 따로 있다.

“이쪽으로 오세요.”

메뉴를 받은 진혁이 짧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케이크 전부 주세요.”

“……!”

점원이 깜짝 놀랐다.

“차갑게 드시는 것이 좋은 케이크도 있고, 약간 따뜻하게 해서 드시는 것이 좋은 것도 있어요. 한꺼번에 드리면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순서대로 드릴까요?”

“한 번에 다 주세요.”

점원이 메뉴판을 들고 돌아가는데 진희가 진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너 진짜로 저걸 다 먹을 수 있겠어? 케이크 열 개에 타르트 열 개?”

“당연히 먹으려고 시킨 거지. 최고를 알아야 나를 알 수 있어.”

곧 케이크가 하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진혁이 제일 먼저 나이프를 댄 케이크는 갤럭시 치즈 케이크였다. 막상 도착한 케이크를 보고 나니 광안마가 떠올랐다.

‘잔소리가 없으니 심심한데?’

빙당호로나 당과라도 하나 사서 먹을라치면 옆에서 귀찮게 쨍알쨍알 잔소리가 많았다.

‘교주님의 품위를 지키셔야지 그런 음식을-!’

‘독이라도 있을까 봐 그래? 어차피 만독불침인데?’

‘그렇다고 하셔도 품위가-!’

이런 가게에서 누나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 그 녀석은 어떤 잔소리를 할까. 잔소리가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없으니 허전한 걸 보면, 수십 년간 함께 다니며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옛일이다.

“이건…… 오늘 아침 그거랑 똑같이 생겼네?”

진희 역시 호기심을 보이며 포크를 들었다.

“한 입 먹어보자고.”

진혁이 입안으로 케이크를 떠서 가져갔다. 남푸른 밤하늘 위에 뿌려진 화사한 별이 무너지며 부드러움과 치즈 향이 화악하고 입안에 퍼졌다.

‘재료가 다르군.’

‘배합 방식도 달라.’

‘확실히, 공개적으로 공개한 것은 실제로 만드는 비법과 다르군.’

비인부전!

외인에게는 자신의 무공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문은 폐쇄적이며 자신의 것을 숨기려 한다. 자신들이 주로 머무는 지역이 아닌 다른 성에 갔을 때는 자기소개를 할 때에 사문마저 숨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연히 남의 무공 수련을 엿보는 것은 죽을 수도 있는 중죄이며, 비무를 할 때에는 실력 중 이 할 이상은 숨긴다.

‘그렇지만 이것, 맛보니까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알겠는데?’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천무지체! 무공을 익히기에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난 그였기에 무림에서도 적응하여 지배자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진혁은 몰랐으나 대지의 흐름이 막히고 폐맥된 대한민국에 있었기에 봉인되었던 천무지체의 체질이 중원의 풍부한 기에 힘입어 깨어났던 것이다. 또한 암천심법의 도움을 빌려 내공을 쌓으면서 육체의 자질이 점점 더 깨어나 대성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미 그의 영혼이 천무지체를 자각하였다. 육체는 영혼을 따른다! 아직 환골탈태를 이루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훨씬 민감한 오감을 갖게 되었다.

‘먹으러 오길 잘했군.’

치즈를 세 종류를 써서 풍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느낌…… 이름은 모르지만 여러 가지 크림치즈를 맛보고 실험해 보면 똑같은 것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크를 먹어본 진희가 눈을 깜빡거렸다. 주변에 종업원이 지나가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진혁에게 소곤거렸다.

“거의 똑같은데? 진혁이 너 진짜 천재인가 봐. 이대로 만들어 팔면 우리 동네가 뭐야, 경기도에서는 다 우리 빵을 먹으러 올 거야.”

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케이크에 손을 가져갔다. 이번에는 조그만 갈색 크림이 산처럼 솟은 몽블랑 케이크였다. 밤 크림과 머랭, 생크림 설탕 크림으로 만들어진 몽블랑 역시 아드레아노 존부의 대표 디저트 중의 하나다. 겉은 수수하지만 그 안은 무엇보다도 달콤하다며 크게 광고해대던 그것, 과연 이것을 재현해낼 수 있을까?

진혁의 섬세한 감각은 크림에 담긴 미묘한 차이를 파악해냈다.

“설탕이 아니라 꿀을 썼군.”

그가 원래 알고 있던 몽블랑 레시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주 좋은 재료를 썼으며 기술이 예술적이다.

‘강기를 쓰면 이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어.’

진혁은 확신을 가졌다.

‘프랜차이즈 가게 따위가 문제가 아니지. 우리 가게가 오히려 프랜차이즈화될 수 있어.’

“여기 진짜 맛있다. 아빠 빵도 맛있는데 정말로 수준 자체가 다른 것 같아……”

다른 케이크를 맛보던 진희가 침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성미답게 이 케이크와 저 케이크를 가리지 않고 전부 파헤쳐놓았다.

“이제는 우리도 이 수준이 될 거야.”

“얘는!”

진희가 희게 웃으며 진혁의 등을 철썩 내리쳤다.

“그럼 진짜 좋겠다. 어머니도 이제 파출부 일 안 나가도 되고. 그럼 네가 내 이름 앞으로 빵집도 하나 차려 줘. 나도 병원 그만두고 사장님 좀 해보자.”

“차려 주지.”

“빈말이라도 고맙다!”

진혁은 무림에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 빈말도 해보지 않았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두고 보라고.”

그날, 가족 모두가 잠든 밤.

진혁은 도매시장에서 사 온 재료들을 사용해, 오늘 맛본 케이크를 하나하나 재현하기 시작했다.

치즈 세 종류를 사용한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의 갤럭시 치즈 케이크부터 시작했다. 아까 먹었던 것과 유사한 맛이다. 진혁 자신이 60% 정도 비슷하다고 느꼈던 케이크를 보고 진희가 거의 비슷하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거의 베껴왔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대로 팔순 없지. 어레인지를 조금 해야지.”

갤럭시, 우주, 은하수. 진혁은 체리향 젤로 가루를 보고 옛날에 보았던 무언가를 떠올렸다.

‘우주도 좋지만…… 황하의 황혼이 아름답지.’

현대 중국에 가면 그때의 그 황혼을 볼 수 있을까? 광안마와 흑백쌍귀, 혈백운과 시도하. 그때 곁에 있던 그 부하들은 여기에 없다. 진혁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진한 오렌지색에서 붉은색, 그리고 강물이 완전히 붉게 물들어버리는 그걸 재현하는 게 좋겠어.”

붉은색과 노란색을 적절히 혼합해서 원하는 색깔을 만들어낸 진혁은 맛에도 약간 차이를 두어보기로 했다. 치즈보다 크림의 비율을 조금 더 높여 부드러운 맛을 강조하였다.

‘표절했다는 말이 나오면 곤란하지. 어디까지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일 뿐.’

다음날.

두 번째, 세 번째 가게. 유명한 디저트 가게를 돌아다니며 종류별로 계속해서 디저트를 시켰다. 날라져 오는 케이크를 보며 처음에는 기뻐하던 진희가 나중에는 인상부터 찡그렸다. 네 번째 가게에서는 숫제 숟가락을 올려놓지도 않았다. 팔짱을 끼고 진혁을 노려보았다. 진혁은 무심히 맛보기를 계속했다.

다섯 번째 디저트 가게를 나오면서는 진희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따질 정도였다.

“야, 질리지도 않냐? 단 걸 그렇게 많이 먹어 놓고?”

단것에 질려 입을 다문 진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진혁은, 오늘 만들었던 케이크들을 떠올리며 다시 홀로 주방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밀가루와 달걀, 버터와 소금 등 재료를 허공에 띄웠다. 그대로 강기를 이용해 회전시킨다!

3분 후, 반죽은 회전을 멈추고 도자기 도마 위에 깔끔하게 내려앉았다.

“아주 만족스럽군.”

진혁이 씨익 웃었다.

‘내 무공으로 만드는 케이크는, 일반 빵집에서는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다.’

다음 날 아침.

‘크림슨’ 즉 황혼 치즈케이크를 포함한 시제품 다섯 개가 테이블 앞에 놓였다.

선명한 붉은색이 오렌지색을 지나 노오랗게 마무리되는 크림슨 트리플 치즈케이크.

바삭바삭한 얇은 과자 층을 백 겹 쌓아 초콜릿을 입힌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

유기농 버터와 팥앙금을 넣고 겉에는 직접 구운 거친 쿠키를 부스러뜨려 굳힌 황금 버터 앙금 소보루.

단단한 초코를 굳힌 것이 아닌, 부드러운 상티이 크림(생크림과 설탕을 섞은 크림)과 초콜릿 크림을 번갈아 섞어 맛의 다양화를 꾀한 ‘블랙 앤 화이트 크림소라빵.

블랙 발사믹 식초를 얹은, 캐러멜라이즈한 양파를 이용한 블랙 어니언 타르트. 토마토를 한 조각 곁들여 상큼함을 더했다.

다섯 개의 신제품을 본 어머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얼마 정도에 팔면 좋을까.”

멋대로 계산부터 하고 있는 진희 곁에서 어머니가 몇 번 더듬거리다 간신히 입을 뗐다.

“이건 개당 오만 원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어머니가 근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이 데코레이션, 색깔마다 네가 일일이 그려 넣는 거지? 이거를 어떻게 매일 해. 확실히 맛이 좋고 예쁘지만…… 네가 너무 고생한다, 아들아.”

진희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는 옆에서 아들이 만든 다양한 케이크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이건 네가 전부 생각해 낸 거냐?”

“어제 가보았던 가게들 맛도 보고. 군대에 있을 때부터 계속 생각했던 것들을 이번에 만들어 본 거예요.”

“가격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나?”

진혁이 가볍게 말했다.

“이런 퀄리티면…… 조각은 개당 팔천 원에서 만 원, 케이크 하나는 개당 사만오천 원에서 육만오천 원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디저트 가게에서 보았던 가격을 떠올리며 진희가 말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그렇게 팔면 여기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먹으러 오지 않을 거다. 우리는 저렴하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오는 가게니까.”

아버지가 근심스럽게 이마를 찌푸렸다.

“이거 재료비. 네 인건비는 얼마나 든다고 생각하니?”

“얼마 안 들어요. 제가 하는 것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요.”

무공을 사용해서 그렇다. 어젯밤에도 다섯 종류를 전부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이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만든다면 좀 더 걸리겠지만.

“아비가 좀 도우마.”

진혁이 양팔을 휘저었다.

“제가 저녁에 미리 만들어 놓고 밤 동안 숙성시키면 돼요.”

‘아버지가 계시면 무공을 사용하기 어려워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진혁이 덧붙였다.

“그리고 가격은 조각 천 원부터 시작합시다.”

"천 원?!"

"미끼 상품으로 내거는 거죠. 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의 치즈 케이크를 보러 온 사람들은 다른 빵도 사게 될 테니까요."

"언제까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데?"

"일주일 한정, 1일 스물네 조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착순으로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