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05화
2장
방으로 돌아온 진혁은 컴퓨터를 켜서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텔레비전으로 본 영상은 너무 짧다. 처음부터 제대로 살펴보겠어.’
유명한 동영상 플랫폼, 우튜브에는 아드레아노 존부가 디저트를 제작하는 영상이 수백 개 올라와 있었다. 존부만이 아닌 다른 제빵사들의 영상 또한 넘쳐난다.
지금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주력으로 할인 판매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치즈케이크.
생크림 과일 케이크와 롤케이크를 주력으로 하던 아버지의 빵집에 오던 사람들이 그 맛을 못 잊어 다시 온다고 한다.
진혁은 제일 먼저 볼 영상으로 아드레아노 존부의 갤럭시 치즈 무스 케이크를 선택했다.
두 종류의 치즈를 층층이 쌓아 올렸고 겉표면에는 진한 쪽빛 식용 젤리를 엷게 씌웠다.
녹인 펙틴을 사용한 식용 젤리 위에 은빛 가루를 드문드문 뿌리자 밤하늘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단순해 보이는 레시피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양손 움직임은 섬세하고 정교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은 수만 개를 넘었다.
kmp2354 : 열 번을 시도해도 똑같이 안 됩니다!
┗Waytoostrong: 당신은 존부가 아니기 때문.
PastryKit11: 저거는 반죽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MintLove :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지.
rqwe : 사먹어 봤는데 정말 미친 맛ㅋㅋㅋㅋㅋㅋ 먹지 마라. 이거 먹으면 평생 다른 케이크 못먹음ㅋㅋㅋㅋㅋㅋㅋㅋ
┗옥빵상제 : 어디서 팔아? 여기 경기도 소망시인데, 이 근처엔 없어?
┗rqwe : 당연히 없지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
┗옥빵상제 : 그러니까 어디서 파냐고ㅠ 빵 좋아하는데 우리 동네는 다 거지같단 말이야.
┗모모코 : 빵세권이 아닌 곳에서 사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영상을 전부 본 진혁은 씨익 미소 지었다.
‘3성의 천안투마공으로 충분하다.’
이미 다들 잠들어버린 늦은 시간. 진혁은 부엌에서 혼자 케이크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대로. 아버지의 맛을 계승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아드레아노 존부의 스킬을 훔쳐서 아버지의 맛을 향상시킨다.’
뛰어난 제빵사의 제빵 실력을 카피한 후, 그 실력을 바탕으로 더 맛있는 빵을 개발한다!
우튜브에는 수많은 제빵사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천안투마공의 제 사성. 삼선투과(三線透過)의 경지다.’
삼선투과는 표면과 내부만이 아니라 동작 자체의 선을을 꿰뚫어보는 경지다. 몸을 움직이면서 다음에 어떤 동작이 오는지 십오분간은 완벽하게 그 동작을 외울 수 있다.
동영상 속에서 아드레아노 존부의 손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굳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본래 30분 길이의 영상을 15분에 짧게 요약해놓았으니 더 손이 빠를 수밖에! 하지만 15분이면 충분하다. 진혁은 존부가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발을 움직여, 동작을 완벽하게 복사했다.
‘더군다나 이 레시피는 오븐도 필요 없어.’
굳이 빵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여기서 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존부가 하는 방법대로 할 필요가 없지. 무공이 있으니까.’
오돌토돌한 쿠키와 버터 덩어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흐트러지지 않은 쿠키는 내가중수법을 사용한 타격으로 인해 산산이 조각나며 바로 버터에 박혀 들어갔고, 속까지 쿠키 가루에 꿰뚫린 버터는 허공에 잠시 떠 있다가 그대로 녹아내리며 도자기 그릇에 얌전히 담겼다.
버터에 완벽하게 버무려진 쿠키는 완벽한 원형 판 형태로 케이크 판 위에 자리 잡았다.
섬세한 기를 이용해 원형으로 다듬었기에 굳이 케이크용 링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무공이 이렇게 환경친화적이라니까.’
판 젤라틴이 물에 부는 시간은 1분.
‘그동안 크림치즈와 우유, 플레인 요거트와 부드러운 가루 설탕을 섞는다.’
아버지가 보고 계셨다면 휘핑기를 사용했겠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직접 손을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스테인리스 막대건 손이건 사용할 필요가 없지.”
진혁이 손가락 끝에서 쏘아낸 탄지공.
보통의 탄지공은 일직선으로만 나아가지만 그가 특별히 개발한 ‘나선왜곡(螺旋歪曲)’의 탄지공은 다르다. 적을 뒤에서 명중시켜 격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탄지공은 적의 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크림치즈와 우유, 요거트와 설탕을 빠르고 정확하게 섞는 것이 목적이다. 설탕 가루 한 알도 놓치지 않는 흰색 소용돌이가 진혁의 앞에 생성되었다. 처음에는 노랗고 희고 점점이 점도가 다르던 소용돌이는 순식간에 빙글빙글 돌며 연한 노란색으로 변했다.
‘이렇게 하는 게 빠르고 맛이 좋지.’
진혁은 이미 시험해본 적이 있었다. 휘핑기에서 휘핑하는 것과 자신이 나선왜곡 탄지공을 사용하여 휘핑하는 것! 스테인리스에 접촉하지 않은 후자가 약간 맛이 다르다.
‘일반인은 느끼지 못하지만 미각이 예민한 자라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여, 불린 젤라틴을 녹일 필요도 없다.
‘염화기공(炎火氣功).’
측근 화마(火魔) 양기천이 사용하던 지극한 양강기공, 염화기공을 빌리면 순식간에 녹는다. 손끝에서 퍼져나오는 열기로 적당하게 젤라틴을 녹이며 동시에 치즈 반죽과 함께 섞는다!
이번에도 탄지공이 톡톡히 역할을 하였다.
“좋아, 좋아.”
음한지공(陰寒之功)을 정식으로 익힌 적은 없지만 양강기공에서 사용하는 기혈의 흐름을 역으로 뒤집어 보자 곧 갇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염화기공을 극한으로 낮추면 한기를 뿜을 수 있지.’
매끄럽고 둥근 반원형 형태로 순식간에 차갑게 식은 치즈크림반죽.
이제 이 위에 우주를 입힐 차례다.
냉장고 위의 선반을 열어 본 진혁이 픽 웃었다.
‘집에는 남색 식용색소가 없군.’
잠시 어깨를 으쓱한 진혁은 냉동실 문을 열었다. 아니나다를까, 진희가 다이어트 한답시고 잔뜩 사다 놓은 냉동 블루베리가 킬로 단위로 얼려져 있다.
그는 냉동 블루베리를 살살 쥐었다. 싱크대 위에 내려놓고 내리쳤다가는 싱크대까지 박살 날 것을 알기에 처한 조치다.
즙밖에 남지 않은 블루베리는 곧 젤리를 말끔한 밤하늘 색으로 물들였다.
별을 대신할 슈가파우더 가루를 뿌리고 나니 놀랍게도 아름다운, 갤럭시 치즈 케이크와 완벽히 동일한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진혁은 케이크의 향을 맡아보았다. 확실히 시판 치즈를 사용한 덕에 그가 원하던 아주 좋은 치즈향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굳이 레벨을 나누자면 세계 급이 아닌 동네 급 케이크랄까. 예쁘고 고급스럽지만 그것뿐이다. 그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쁘지는 않은데. 이 정도로는 조금 부족할 것 같단 말이지.”
◈ ◈ ◈
다음날.
어머니가 냉장고 안에 있던 진혁의 갤럭시 치즈 케이크를 발견했다. 냉장 숙성을 위해 넣어놓은 것이다.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어머니가 눈을 깜빡거리며 입으로 손을 가렸다. 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완벽한 광택은…… 정말로 미술 작품 같구나. 이거 잘라 봐도 되냐?”
감탄을 멈추지 못하는 아버지가 바로 칼을 내밀었다.
“마, 맛을 보고 싶어.”
언제 일어났는지 진희가 바로 접시를 내밀었다.
“아침부터 단것을 먹어서 되겠어?”
“아들이 만든 음식이니까 괜찮다!”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댄 아버지가 바로 식칼을 들어 케이크를 향했다. 하지만 마저 자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예술작품처럼 생겨서 아까워서 자르지를 못하겠다.”
“아우, 아빠! 내가 할게!”
그윽한 치즈 향이 풍기는 케이크를 보며 군침을 흘리던 진희가 바로 칼을 빼앗아 가운데를 잘랐다.
마치 줄무늬처럼 진하고 연한 노란색이 폭신폭신하게 겹겹이 장식된 내부를 보고서 가족 모두가 감탄을 토했다.
“진혁아, 이런 걸 만들다니…… 이건 정말로 제과기능장 대회에서 입상할 만한 물건이다.”
아버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청출어람이구나!”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기뻐했다. 진희는 아무 소리 내지 않고 접시에 케이크를 퍼 담았고, 큰 숟가락으로 한술 퍼먹었다.
“꿀꺽.”
진희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케이크를 퍼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숫제 접시에 옮겨 담지도 않고 그냥 막 먹는다.
진혁도 한 입, 수저를 덜어 보았다.
입안에 퍼지는 그윽하고 달콤한 치즈 향. 거기에 단단함이라고는 없는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환하게 녹아내린다.
“먹을 만하군.”
십만대산에서 군주의 권위를 누리며 수없는 만한전석을 누렸던 진혁이 짧게 말했다. 진희가 화내듯이 소리쳤다.
“먹을 만한 게 아니야! 이거는 케이크의 혁신이야. 진짜 맛있다. 어떻게 만들었어?!?”
“그냥 보고 만들었지.”
“진혁아, 이거 만드는데 어렵지는 않니? 우리 가게에서…… 팔 수 있겠니?”
“그러려고 만들었죠.”
어머니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아버지가 반갑게 물었다.
“재료는? 지금 가게에 있는 것들로 오늘부터 만들 수 있을까?”
“부족해요. 제가 오늘 재료를 사 오면서 다른 가게 맛도 좀 보고 올게요.”
부모님과 진희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란 진혁이었다.
‘이 정도로 충분할 수도 있겠는데? 사람들 후각이 이렇게 둔하단 말이야? 미각도.’
진혁이 기억하는 한 아버지의 미각은 진혁보다 훨씬 예민했다. 심지어 어머니나 진희도 진혁보다는 맛에 민감했다.
‘무공 덕분이군…….’
“다른 가게? 어디?”
“아드레아노 존부의 서울 디저트 가게.”
“거기! 나도 가보고 싶어!”
“그럼 같이 가든가.”
반색을 하며 일어나는 진희였다.
“그럼 오늘은 내가 가게를 준비할 테니까, 진혁이 너는 거기 가서 맛을 보고 와라. 지금 이대로만 만들면 성공이야. 시간이 지나면 메뉴를 하나만 할 수는 없으니까, 다른 것도 생각해보고.”
“알겠습니다, 아버지.”
◈ ◈ ◈
서울로 나온 진혁은 드높이 솟은 빌딩 숲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나치게 많은 기척이 있어 불쾌할 정도였다.
‘사람이 많은 것뿐 아니라 도시 자체가 탁하군.’
흙은 검은 아스팔트에 덮여 숨을 쉬지 못하고, 공기는 자동차에서 뿜어나온 회색 연기에 물들어 본래 색을 잃었다.
‘중원에도 좋은 점이 하나는 있군. 자연이 깨끗하다는 것.’
그렇다고 해도 암천심법은 다르다. 일반적인 삼재심법 같은 하류심법이었다면 이런 곳에서는 거의 기를 쌓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암천심법은 이렇게 탁기가 쌓인 곳에서도 기를 맑게 한 후 흡수하는 공능이 있다. 더군다나 이미 대성했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깨달음’을 중시하는 암천심법의 특성상 타 심법보다 더 용이하다.
“진혁아, 이쪽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