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화 (3/656)

제 003화

‘지금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는 편이 좋겠어.’

현실로 돌아온 지 한 달, 진혁은 완전히 적응했다. 처음 교통사고를 당한 후 강호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강호에서 형편없는 육체를 가지고 삼류무사도 못 되는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때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참 방황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고향에 돌아왔다.

‘이렇게 돌아오게 되다니……’

천마라고 불리며 극상의 사치를 누렸으나,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충실한 부하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의 명령을 수행했으나 진정 그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을 터놓았던 유일한 이인 광안마는 ‘다른 차원’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회귀까지 하게 되어버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진혁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단지 전설상의 탈마의 경지에 이르면 알 수 있을까 하고 막연히 짐작해볼 뿐이다.

“아주 잘하는데? 이 빵은 완벽해. 내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겠어.”

‘아버지가 만드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같은 재료를 사용했으니까요.’

아버지가 갓 구워진 우유 식빵을 들어 올리며 감탄했다. 눈에는 기쁨이 서리고 표정에는 구김이 없다.

“우리 아들, 천재가 분명해. 한 달 만에 우리 빵집의 빵을 전부 완벽하게 구워낼 수 있게 되다니.”

“아버지가 잘 가르쳐주셔서 그래요.”

한 달 동안 진혁은 바빴다. 밤에는 대대로 교주에게만 전해지는 심법, 암천심법으로 축기를 계속하여 3성에 달하는 진전을 이루었다. 낮에는 아버지에게 제빵의 기술과 요령, 손님을 응대하는 법 등 작은 빵집을 경영하기 위한 모든 것을 배웠다.

아버지의 삼십 년 비결을 한 달 만에 전부 마스터할 수 있었던 비법은 간단하다.

‘심안心眼을 써서 이런 걸 배우는 걸 알면, 광안마 녀석은 주화입마에 들어버렸을지도 모르겠군.’

진혁이 강호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시절, 그에게는 측근이 둘 있었다. 그중 지략을 담당하는 참모인 광안마는 천안투마공이라는 독문 무공을 사용하였다. 인체 중 안력을 극도로 단련하는 무공으로, 심안을 얻어 수련하는 것이 주가 된다. 심안이 십이 성이 되어 대성하는 경지에 이르면 아주 짧은 미래를 순간적으로 예지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무공이다. 광안마는 이 무공을 사용하여 싸움 상대의 투로와 초식을 꿰뚫어보았고 기억하여 흡수하여 자신이 사용하였다. 진혁은 광안마의 천안투마공을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아버지의 모든 기술을 전부 익혔다. 게다가 이 무공의 또 다른 장점은 내공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진혁이 익힌 천마강림보나 천마검강의 경우 위력이 강대한 만큼 크나큰 양의 내공을 필요로 했다. 보통 교주의 후계자라면 영약과 진, 추궁과혈을 통해 충분한 양의 내공을 준비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 될 일이 없다. 하지만 지금 진혁은 대자연이 파괴되어 축기가 어려운 대한민국에 있어 천안투마공의 그러한 장점이 매우 크게 와 닿았다. 천안투마공은 현재 삼성에 달했고, 일성밖에 안 되었을 때조차도 아버지의 반죽이나 제빵 기술을 배우는 데에는 충분했다.

“제가 열심히 해서 기특하시죠?”

“그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해서 기특해 죽겠다, 요 녀석아.”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진혁의 머리를 헝클었다.

“아버지! 제 나이가 몇 살인데요!”

“몇 살이긴. 이제 스물넷? 다섯인가?”

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차, 그것밖에 안 되었나. 기분상으로는 지금의 아버지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정신은 나이 들어 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바뀐 진혁이 심각하게 말했다.

“오늘 저녁 반죽과 내일 아침 빵은 제가 준비할게요.”

“벌써 들어가라고?”

평소 아버지가 남아서 다음날의 반죽을 미리 준비해두고 가셨다. 하지만 보름 전부터는 진혁이 아버지의 야근을 막고 빵집에서 대신 그만큼 일했다.

“또? 아버지가 안 도와줘도 되겠냐?”

“이제 믿고 맡기실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래, 고맙다.”

아버지는 흔쾌히 조리모와 앞치마를 벗어 걸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딸랑,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난 후 진혁이 주방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는 조용히 양손을 벌려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이 들어 올려지면서 동시에 백 개의 달걀이 깨졌다. 극히 미세하게 뽑은 강기로 달걀을 들어 올려 깨뜨린 것이다.

“아버지가 계시면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해서 귀찮으니까.”

깨진 달걀은 그대로 열 개의 스테인리스 보울 속에 빠져들었다. 미리 담겨 있던 밀가루와 어우러진 달걀은 조그마한 소용돌이가 되었다. 회전하는 작은 태풍 속으로 완벽하게 섞인 기본 반죽에 설탕과 견과류, 초콜릿 가루 등의 부가적인 재료들이 뛰어들었다.

“좋아, 좋아. 오늘치 반죽은 다 했고.”

식빵용 반죽과 슈크림용 반죽, 소보루빵과 크림빵 모두 재료와 비율이 다르다. 천안투마공을 발동한 진혁은 예리한 눈으로 모든 반죽의 비율 상태를 살폈다.

“상태도 좋고. 이대로 랩 씌워서 하루만 지나면 되니까.”

아버지가 하셨으면 세 시간이 넘게 걸렸을 일이다. 십 분 만에 모든 반죽을 끝낸 진혁이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이제 내공 수련이나 해볼까.”

집안에서는 아무리 방문을 닫고 수련해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갑자기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아무도 없는 가게, 이곳에서의 시간이 진혁이 제일 집중해서 수련하는 시간이다.

가부좌를 한 진혁이 눈을 감았다.

‘회귀하고 첫날에는 믿을 수가 없었지.’

그날 소주천을 하고 나서야 자신의 혈도가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소주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이 강호에서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이후 그는 계속해서 내공 수련을 해왔다. 지금은 한 달간 꾸준히 자고 있는 시간에 해온 소주천을 통해 어느 정도 혈관이 튼튼해진 상태다.

‘오늘, 임독양맥을 타동한다.’

임맥과 독맥, 두 맥의 길을 뚫는 것은 대주천을 위한 첫 번째 단계다. 하지만 이 임독양맥의 타동은 바로 환골탈태로 이어지기 때문에 당장은 이리저리 곤란한 점이 있다. 과거 경험에 따르면 그는 환골탈태를 한 후 10㎝ 정도 키가 커지며 압도적으로 얼굴 형태가 변하였다.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화된 근골로 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 만에 얼굴이 변하면 가족들부터 그를 몰라볼 것이다.

‘환골탈태는 백일에 걸쳐서 조금씩, 천천히 한다.’

강호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백일에 걸친 환골탈태. 그는 처음으로 그 신기원을 이룩할 작정이었다. 임독양맥의 타동은 그 첫 번째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번에는 임독양맥, 초반부를 완전히 열어두고 진기가 흐를 길을 예비하는 데까지만.’

진혁은 눈을 감았다. 회음혈에서 백회혈까지, 전신을 관통하는 진기의 흐름은 장강처럼 느긋하게 천천히 흘렀다. 과거 그가 경험하던 막대한 양의 내공에 비하면 새 발, 아니 코끼리 발에 묻은 핏방울만도 못하다고 할 정도로 소소하다. 하지만 그 흐름만은 과거 못지않다. 그는 양맥을 통해 자연스럽게 올라가려는 진기를 입구에서 나선형으로 회전하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의념지기의 단계까지 올랐던 그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아니……!”

단단하고 탄력 없는 기혈은 팽창하며 전신의 근육에 통증을 전달했다. 이쯤은 검신 남궁무제와 싸우다가 심장께 칼이 박혔던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대로 기혈을 순행했다.

“……! 이 진기는……”

그는 놀라 입을 벌렸다. 임독양맥의 절반까지 순식간에 치솟아 올랐기 때문에 임의로 순환을 중단했다. 그리고 갑자기 전신에 기혈이 충만하듯 무언가, 차올랐다. 마치 잔에 넘친 물이 흘러 넓게 퍼지듯, 텅 비어있던 단전으로부터 갑자기 따뜻한 무언가가 퍼져 올랐다. 그것은 그가 과거에 갖고 있던 내공과 완전히 동일한 기운이었다. 진혁은 그 기운이 바로 임독양맥을 뚫어버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았다.

“내공이라는 것이……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 남는가?”

그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과거에 갖고 있던 내공의 절반을 회복했다. 아직 임독양맥을 타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세맥에는 기운이 넘쳐흘렀고, 썩은 듯한 노폐물이 피부 바깥에 줄줄 흘렀다. 하반신, 허리와 다리가 노폐물을 잃고서 재구성되며 우드득거리는 기묘한 소리를 냈다.

하얀 조리복은 이미 녹아내려 간 곳이 없다.

“나의 훌륭한 백일 환골탈태 계획이……”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시 비탄의 신음을 흘렸다.

“젠장.”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오른손을 짚는데 바닥의 타일이 파각! 하고 부서졌다.

“…….”

가볍게 짚기만 했는데 타일이 부서질 정도다. 이전의 힘을 절반 이상 회복한 것이다. 그는 금강불괴의 외공을 익히지 않았으나, 상시 기를 운기하는 부동심법의 묘리를 통해 내기를 항상 전신 세맥에 흐르게 하여 몸을 보호했다. 그것은 자동 호신강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그의 육체를 효과적으로 보호해 주었다.

깨진 타일을 내려다보며 진혁이 한숨을 쉬었다.

“……키가 컸잖아?”

키가 컸을 뿐만 아니라 발 사이즈가 커졌다. 다행히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코가 높아지고 광대가 약간 솟아오르며 피부가 조금 좋아진 정도다.

“…….”

여분의 조리복으로 갈아입은 진혁은 얼굴에 황사 마스크를 썼다.

“계획이 첫날부터 실패하다니. 이틀이면 충분해지겠군…….”

◈          ◈          ◈

삑, 삐빅. 삑, 삐빅.

문이 열리고 진혁이 들어오자 어머니가 물었다.

“아들, 그 마스크는 웬 거야?”

“요즘 미세먼지가 심해서 쓰고 다니려구요.”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쓰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진혁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 들어간 진혁은 한숨을 쉬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내일 아침에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해 볼까.’

99일 정도 일반적인 인간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단지 부모님이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으신다는 전제하에서지만. 다시 소주천을 위해 가부좌를 트는 진혁의 귀에 문 바깥쪽에서 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이가 일을 많이 도와줘서 내 일이 덜어지긴 했는데, 빵은 안 팔려.”

“혁이 솜씨 때문이야?”

“아니야, 저 앞에 생긴 찬일이네 프랜차이즈 빵집이 요즘 할인 행사를 계속해. 그래서 그런 거 같아.”

“그럼 우리도 할인 행사를 할까?”

“통신사 포인트 적립이니 뭐니…… 복잡하게 해서 하는데. 우리가 그런 걸 할 수 있겠어?”

“자, 할인을 하자. 숙자, 말자, 정자…영자… 이름이 자로 끝나는 사람이 빵을 사러 오면 하나 더 주는 거지.”

“예끼, 여보!”

어머니가 깔깔깔 웃으시고, 아버지가 허허 마주 웃으셨다. 어머니가 이어 말했다.

“스위트 바게트는 저번에도 한 번 생겼다가 망했잖아. 이번에도 별일 없을 거야. 진혁이도 잘하고 있고, 우리는 괜찮아.”

“그래, 여보. 요즘 관절염도 나아졌고, 다 잘 될 거야.”

관절염이 나아진 건 진혁이 밤마다 몰래 추궁과혈을 겸한 전신 마사지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밖 너머에서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수십 년 전의 일이라 기억해내는 것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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