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23화 (123/124)

< 다시 솔로로 >

코첼라 페스티벌.

우리 애들은 메인 스테이지에 섰으나, 헤드 라이너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애들이 무대를 하고 있는 지금.

헤드 라이너도 과연 이렇게까지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을지 궁금할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어디 있다가 나타났는지, 우리 차례가 되자 구름 같이 몰려든 관객들.

오늘 코첼라 페스티벌에 온 사람들이 전부 이곳으로 몰려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이 모두 팔을 하늘 위로 뻗으며 노래를 부른다.

4곡이 있는 우리 애들의 미니앨범.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수록곡까지도 따라부르고 있다.

“이게 빌보드 1위의 위엄인가?”

내 말에 황실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쟤들 덕분에 어깨가 아주 쫙 펴집니다. 하하!”

우린 그녀들의 무대를 미소와 함께 즐겁게 감상했다.

그렇게 무대가 끝나고 그녀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왔을 때.

애들의 텐션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와아! 우리 방금 엄청 잘했죠!?”

“반응이 너무 좋은데? 앵콜 나오잖아! 선배, 우리 레퍼토리도 많은데 좀 더 서면 안 돼요? 각자 솔로로요!”

“오빠! 빨리 어떻게 해봐! 앵콜 하자고!”

“저도 오늘 컨디션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관객들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를 세게 두드리고 있다.

그러니 가수로서 텐션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겠지.

‘근데··· 괜찮으려나?’

호텔로 돌아가면 라이브 방송이 예정되어 있었다.

코첼라 무대에 섰다는 기쁨과, 빌보드 1위에 대한 기쁨 또한 나누기 위함이었다.

‘텐션이 너무 많이 높은데···.’

난 고개를 갸웃하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걱정을 접어뒀다.

이제 딱히 스포일러를 할 것도 없다.

또한 애들이 평소에 욕을 하는 것도 아니며, 기본적으로 엄청 착한 애들이다.

텐션이 높다 하여 문제가 발생하진 않겠지.

***

라이브 방송.

네 명이 한 방에 모여 카메라를 보며 말하고 있었고.

나는 카메라 뒤에서 물끄러미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왜 코첼라 코첼라 노래를 부르는지 알겠더라고요! 진짜 분위기가 너무 너무 너무 좋았어요!”

서연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고.

“맞아요. 진짜 엄청 재밌었어요! 콘서트랑은 또 다른 느낌이 있더라고요.”

별이 또한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빌보드 1위 몇 주나 할 것 같냐고요? 많이 할수록 좋죠. 한··· 100주? 하하!”

유진이도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정아 또한 종종 웃음을 터뜨리며 방송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예쁘고 귀여운 애들이 이렇게 엄청 즐거워하며 떠드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피우게끔 만든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난 함박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그녀들 중 한 명의 표정이 시간이 갈수록 아주 조금씩 변해갔다.

“얘들아, 이제 목소리 조금만 낮추자. 귀 아파 죽겠어.”

정아가 입으론 옅게 웃으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정아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언니! 이렇게 좋을 땐 좀 즐겨도 되죠! 팬분들도 엄청 재밌게 보시는 것 같은데. 맞죠, 여러분?”

서연이의 말대로 팬들의 채팅은 엄청나게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고.

채팅의 내용 또한 누가 봐도 되게 재밌어하며 즐기고 있었다.

정아도 그런 채팅을 보고 있었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애들의 입은 멈출 줄을 몰랐고, 텐션은 내려올 기미도 안 보였다.

“꺄아! 김별! 간지럽히지 마! 그만!”

“헤헤.”

“여러분! 방금 봤죠? 별이도 장난 엄청 많이 친다니까요? 여러분들이 속고 계신 거예요!”

이유진과 김별이 간지럽히며 장난을 치고 있는 사이.

서연이는 살금살금 몰래, 정아의 옆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악! 야! 하지 마!”

좀만 더 하면 맞을까 봐, 적당한 선에서 그친 서연이.

정아는 순간 눈을 부라리다가, 간신히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후우! 너네 안 피곤하니? 이제 슬슬 마무리하고 자자.”

“에이! 어떻게 그래요? 팬분들이 이렇게 좋아해주시는데?”

“···그럼 정신 사납게 좀 하지 마. 힘드니까.”

“하하! 알겠어요!”

와. 저걸 참네?

정아도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인내심이 짧은 그녀가 터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 내가 조용히 좀 하라고 했지! 너 일로 와!”

“헉! 살려줘! 사장님! 살려줘요! 언니가 저 죽이려고 해요!”

“너 일로 안 와!?”

“사, 사장님! 어떻게 좀 해봐요! 구경만 하지 말고요!”

나를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도는 정아와 서연이.

유진이는 카메라를 들고는 그런 우리를 찍었다.

난 헛웃음을 터뜨리며 채팅창을 바라봤다.

-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럴 줄 알았다ㅋㅋㅋ

-오늘 방송 레전드네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동생들 텐션이 너무 높아서 맏언니 감당 안 되잖아ㅋㅋ

-정아 역정 낸다ㅋㅋㅋ

-사장님이 고생이 많네ㅋㅋ 육아의 고통 느낄 듯ㅋㅋㅋ

‘그래, 뭐.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면 됐지.’

팬들도 그렇지만, 멤버들에게도 지금 이 순간은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다.

코첼라 페스티벌이 열린 오늘을 기점으로 이제 미국 활동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세계 투어.

그 뒤론, ‘아일랜드’라는 프로젝트 걸그룹의 첫 번째 활동이 완전히 끝이 난다.

이제 다시 솔로 활동을 시작해야지.

아일랜드의 두 번째 활동.

가깝고도 먼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오늘 같은 하루가 매일매일 반복됐으면 한다.

***

세계 투어를 돌이켜보면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짧았던 것 같기도 했다.

열심히 활동하다가 어느새 돌아보니 시간이 훅 가 있었다.

브라질과 영국에선 별이가 솔로 활동으로 한 번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기 때문인지, 별이의 인기가 유독 높았고.

일본에서는 서연이의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클레이처럼 콘서트 게스트로 나와준 호시노와의 이야기가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의 투어를 마치고 세계를 돌며 투어를 하는 동안.

우리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매일매일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화나는 일도 있었고, 씁쓸한 일도 있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대부분은 기분 좋은 나날들이었다.

여행이나 식사는 어디를 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번 투어는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뭐 하지?”

유진이가 혼잣말하듯 모두에게 물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모든 활동을 마치고 귀국을 하는 날이다.

그 말인즉슨, 첫 번째 그룹 활동이 오늘부로 끝나버렸다는 얘기.

귀국한 뒤로 개인 스케줄들은 있었지만, 이제 그룹 스케줄은 거의 없는 것과 같았다.

그 때문인지, 나와 그녀들이 모여 있는 방 안에는 묘한 공기가 내려 앉았다.

슬픈 건 아니고, 무겁지도 않은데, 들뜬 느낌도 아니다.

아쉬움과 뿌듯함이 절묘하게 맞물려 있는 듯하다.

정아는 그 분위기 속에서 여상한 어조로 말했다.

“내일 바로 우리집에서 짐 빼. 이제 개인 스케줄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우리 집에 짐 놔둘 순 없잖아.”

유진이가 중얼거린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별이는 샐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별이 또한 정아의 말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오늘 뭐 하냐구요. 오늘은 이제 스케줄도 없는데 여기서 가만히 있을 거예요? 날씨도 좋은데 나가서 놀아요.”

서연이가 말을 받았다.

“맞아. 날씨 엄청 좋으니까 같이 나가서 재밌게 놀아요!”

정아는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물었다.

“오빠, 우리 오늘 나가도 돼?”

“어, 괜찮아. 나랑 매니저들이 따라가면 되니까.”

이제 우리 애들의 얼굴은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빌보드 핫 100차트 10주 연속 1위.

우리가 만약 미국에서 계속 활동했었더라면 그것보다 훨씬 더 길게 1위를 유지했을 테지만, 세계 투어를 함으로써 얻은 게 훨씬 많았다.

전세계 곳곳에 탄탄한 코어팬들을 만들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호텔 밖으로 나가면 우리 애들이 어떻게 정체를 숨기려 해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엄청 많겠지만.

이런 날에까지 나가지 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정아를 시작으로 멤버들이 입을 열어 의견을 쏟아냈다.

“난 아무거나 좋아.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

“전 할리갈리요!”

“전 스탭분들까지 해서 마피아 게임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

“음. 근데 느긋하게 라이브 방송 오랫동안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나와 정아의 눈이 마주쳤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딱 내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난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들에게 물었다.

“대체 날씨 얘기는 왜 한 거야?”

날씨 좋으니까 밖에 나가서 놀자더니, 막상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다 실내에서 해야 하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그녀들이 얘기한 셋 모두를 다 했다.

우리끼리 할리갈리를 하고, 팬들과 라이브 방송을 하고, 스탭들과 함께 마피아 게임을 하고···.

늦은 밤.

모든 게 끝나고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니, 온통 웃은 기억밖에 없었다.

***

국내로 돌아온 뒤,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숙소 정리였다.

정아의 집에서 멤버들의 짐을 모두 빼는 것.

어제 너무 재밌게 놀아서 그런지, 모두의 얼굴엔 옅게나마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야 너네 짐 싸면서 은근슬쩍 내 거 가져가지 마라?”

“언니, 저희가 도둑이었으면 이 집에 이미 남아 있는 거 없었어요.”

별이가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맞받아친다.

이에, 농담을 건넸던 정아도 피식 웃고 말았다.

난 애들이 짐을 싸는 걸 바라보다가 도와주고, 통화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짐 싸는 게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갈 즈음.

난 그녀들을 식탁으로 불러모았다.

“앞으로 스케줄 방향에 대해서 알려줄 테니까 음료수 마시면서 편하게 들어. 아직 확정은 아니니까 자유롭게 의견 말해도 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다른 거 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다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신뢰가 가득한 눈빛을 쏟아내고 있다.

내가 뭘 말해도 다 받아들일 모양새.

난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별이는 피처링이랑 OST 제안들이 많아. 한꺼번에 녹음해도 발매되는 시기가 달라서 두세 개 정도는 빠르게 녹음해도 괜찮을 거야. 리스트 뽑아놨으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선택해서 해.”

“네, 알겠어요. 사장님도 그중에서 추천해주실 거죠?”

“어. 그런데 그렇다고 너무 내 추천에만 의지하지 말고.”

“네.”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는 별이.

과연 내 말이 귀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한 귀로 흘러나왔는지 모르겠다.

왠지 내 추천 그대로 할 것 같은데.

난 시선을 돌려 정아를 바라봤다.

정아는 내 입술이 열리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난 뻔하지 뭐. 드라마야 영화야? 오빠가 제일 추천하는 건 뭐고? 다 읽어보긴 했지?”

“다 읽어봤지. 그리고 내가 제일 추천하는 건 넷플릭스 드라마야. 이게 어떤 드라마냐면-“

나는 내 감상을 덧붙여 대본을 설명했고,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경청했다.

어차피 그녀도 대본을 읽게 될 테지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내가 이 대본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자세히 살피는 듯했다.

“되게 좋게 봤나 보네? 알았어. 그거 갖다 줘. 읽어볼게.”

“그래.”

난 시선을 돌려 유진이와 서연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너희 둘은-“

“우리 둘이요? 서연이랑 저랑 뭐 같이 해요?”

“오! 뭐예요?”

난 씩 웃으며 말했다.

“아이돌 오디션 심사위원.”

“···엥?”

“선배, 저희가 심사위원이라고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경력은 짧아도, 심사위원 중에 너희만큼 뛰어난 사람은 없을 거야. 심사위원 중에서도 너희가 메인이라고 보면 돼. 어때? 할 거야?”

서연이와 유진이는 벙찐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매에 짙은 호선을 그렸다.

“솔직히 뭐··· 언니랑 저 정도면···.”

“괜찮을지도···?”

이제 이런 건 부담스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건 자신감이라고 하기에도 뭐 했다.

자신들의 실력과 위치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볼 수만 있다면, 이런 태도는 당연한 거니까.

‘이제 다시 시작이구만.’

멤버들은 이렇게 다시 솔로로 흩어지게 되었다.

물론 케이팝 콘서트나 시상식, 그리고 내년의 그래미 어워드 등, 아일랜드로서 함께 무대에 서야 할 때가 있겠으나, 그건 잠시일 뿐.

우리 애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한 스케줄들을 소화하며, 또 한 번 각자가 가진 재능을 성장시켜나갈 것이다.

“핵심적인 건 이 정도야. 다른 스케줄들은 많이 안 잡을 거고. 이제 좀 쉬엄쉬엄 해야지. 그동안 엄청 열심히 달렸으니까.”

별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기념으로 추어탕 먹을까요?”

서연이는 실소를 터뜨리며 물었다.

“기념은 갑자기 무슨 기념?”

“음···. 아일랜드··· 활동 잠정 중단 기념?”

“···.”

“···.”

“···.”

“너 이제 그냥 아무거나 막 갖다 붙이는구나?”

난 정아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

“아일랜드 정규앨범 1집 대박 기원으로 하자.”

다시 아일랜드로서 컴백할 건 확실하다.

그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솔로 활동을 하며 앨범을 내다보면, 어느 순간 또 적당한 타이밍이 오겠지.

우리는 그때의 대박을 기원하기로 했다.

< 다시 솔로로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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