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22화 (122/124)

< 참 힘들게도 산다 >

잭은 아일랜드에게 스며들었다가 콘서트 티켓 매진에 절망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첫 콘서트에 올 수 있었다.

“땡큐, 파더.”

아일랜드의 팬인 게 티가 많이 났나 보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어느새 표를 준비해두고 계셨다.

‘아일랜드만 나왔다 하면 네가 라디오랑 TV 채널 못 돌리게 했잖아. 그러니 알 수밖에 없지!’

물론 최고의 자리는 아니었지만, 여기에 올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아직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진 않았으나, 잭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했다.

팬들로 가득한 공연장.

아일랜드와 각 멤버들의 곡이 배경음처럼 깔리니, 사람들은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잭 또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기대감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였다.

두둥! 둥- 음악과 조명이 바뀌며, 공연장의 분위기 또한 단번에 바뀌었다.

“우와아아아!”

“컴오오오오온!”

“아일랜드─!”

이제 곧 무대가 시작된다는 걸 깨달은 관객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나오는 익숙한 반주.

사람들은 더욱더 열광하기 시작했다.

“김, 김별─!”

“Bad! Bad야!”

“와아아아!”

김별의 정규앨범 1집의 타이틀 곡, Bad.

댄스곡이었다.

잭의 숨이 가빠졌다.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시뻘게졌고, 하도 세게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목에 핏대가 섰다.

자신이 이럴 줄 상상이나 했던가.

K팝에 미쳐버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김별이 마침내 무대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잭은 아일랜드에 미쳐버릴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팬이 되길 잘했지.

새삼 그녀들의 팬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나쁜 여자 김별.

그 컨셉에 맞게 그녀의 모습은 몹시 위험해 보였는데, 그게 심하게 매혹적이었다.

샌드위치 식당에서 그렇게 맛있게 먹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도 인상적이었는데, 지금 그녀의 모습에선 그때의 모습이 전혀 겹쳐 보이지 않는다.

‘컨셉 천재!’

그녀들을 파보며 K팝과 팬 문화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이런 걸 ‘컨셉 천재’라고 한다는 것도.

혼자서도 이 넓은 무대를 꽉 채우고 있는 그녀.

존재감이 남달랐다. 이런 게 바로 스타성이겠지.

실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격하게 춤을 추면서도 노래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멤버들 모두 이런 라이브 실력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실제로 현장에서 들어보니 정말 경악스러울 지경.

‘귀가 녹을 것 같아!’

라이브의 안정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귀가 황홀하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친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잭은 노래를 있는 힘껏 따라불렀다.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 하지만 어떻게든 발음을 맞춰서 불렀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

.

.

클레이가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잭은 그제야 조금 편하게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

이유진의 댄스를 보며 턱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랐고.

유정아의 무대를 보며 한 편의 명작 영화를 압축하여 감상하는 것처럼 전율이 찌릿찌릿 올라왔다.

구서연의 무대를 보면서는 미칠 듯이 흥분하고, 왠지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해서 벅차오르기도 했다.

김송송송의 무대와 김별의 무대도 비슷했고.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격한 감정들이 튀어나와버리니, 너무 좋은 기분과는 별개로 조금 힘이 들기도 했다.

‘클레이도 엄청 잘하네.’

관객들은 클레이의 무대에 잘 호응해줬다.

워낙 유명한 노래니 따라 부르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다들 방금 전과는 달리 너무 여유로웠다.

‘역시 아일랜드가 엄청 어메이징한 거야.’

지금은 빌보드 2위였으나, 그녀들은 무조건 1위를 해야만 했다.

그래야 마땅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무대들을 보여줄 수 있는 그녀들은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그렇게 클레이의 무대가 끝나자.

잠시 내려앉았던 흥분과 기대감이 훅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젠 어떤 무대지?’

그리고 그때, 스크린에 네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

아일랜드.

드디어 완전체의 무대였다.

관객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콘서트장이 무너질 듯 열화와 같은 반응.

잭 또한 극도로 흥분하여 괴성을 내질렀다.

“우오오오오오오오!”

***

WE엔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로드 매니저, 이정호.

면접에서도 말했었듯이, 그는 멤버들 모두의 팬이었다.

팬이라고 밝히는 게 매니저 면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나, 그것도 일반적일 때지.

‘아일랜드를 안 좋아한다는 사람이 더 수상해.’

대한민국에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팬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 이정호에게 있어 지금 보이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었다.

LA에서 외국인 팬들이 모두 한국말로 크게 떼창을 하며 열광하고 있다.

무대 위에는 아일랜드 네 명의 멤버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솔로 무대로 존재감과 재능을 마구 뽐내던 그녀들.

역시 함께 있으니 시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팬이자 매니저여서 그런가.

자부심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대박이네, 진짜···.”

그룹으로서의 첫 번째 무대가 끝났을 때.

이정호의 시선은 무대에서 내려와 뒤를 향했다.

팔짱을 낀 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유민 사장님.

원래부터 그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 있었고, 매니저가 되기 전부터 존경스러웠었는데.

그 존경심은 나날이 커져, 이젠 정말로 롤모델이 되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반이라도, 아니 반의 반만이라도 그처럼 되고 싶다.

단 한 명만이라도 좋으니, 저 무대 위에서 하늘의 별보다 반짝거리는 슈퍼스타들처럼 아티스트를 키우고 싶었다.

‘···그것도 무리려나?’

하긴 저 멤버들이 어디 보통 가수도 아니고.

각자가 다 세계 최고를 노릴 만한 가수였으니, 보통 힘든 게 아닐 거다.

“왜 그래?”

사장님을 계속 흘끗거리던 그때, 황실장님이 다가와 물었다.

“아, 실장님.”

“뭐 때문에 그래? 뭐 문제 있어?”

“아뇨···. 그냥 사장님 보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음?”

“사장님처럼 되고 싶어서요.”

공연장의 황홀한 분위기에 너무 흠뻑 빠져든 탓인지, 진심이 툭 튀어나왔다.

황실장님은 처음엔 자신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이내 피식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환영한다. 너도 들어왔구나.”

“네?”

“나도, 박실장님도, 정실장님도, 그리고 이 바닥에서 진심으로 이 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표거든. 우리 사장님.”

“아.”

“워낙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우고 있잖아. 처음부터 지금까지 실시간으로 전설을 써내려가는데 목표로 삼을 만하지. 많이··· 힘들겠지만.”

이정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들 노리고 있구나. 정말 진심으로.

이정호의 목표는 이 순간 더욱 굳건해졌다.

경쟁자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마음을 단단하게 먹으며, 목표도 높게 세워야 했다.

사장님의 반의 반도 아니고, 반도 아니고, 정말로 사장님과 같이 만족을 모르고 저 하늘 끝까지 나아가봐야겠다.

***

LA에서 열린 이틀 간의 콘서트가 끝이 났다.

이제 적당히 스케줄을 하고 적절히 휴식을 하며, 다시 주말의 콘서트를 준비해야 할 때.

하지만 우리는 휴식을 해도 편히 쉴 수 없었다.

빌보드 1위를 차지했는데, 어찌 편하게 쉴 수 있겠는가.

“와아아아아! 1위! 우리 1위했다!”

한 방에서 스탭들의 대부분이 다 같이 모여 있었는데.

빌보드 순위가 나오는 순간, 내 포효를 시작으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순위를 기다리고 있던 건 우리 스탭들뿐만이 아니었다.

방의 문이 열리고, 그녀들이 뛰쳐들다시피 들어왔다.

잔뜩 흥분하고 기뻐하는 기색이 얼굴에 만연했다.

“순위 봤어요!? 우리 1위했어요!”

서연이가 방방 뛰었다.

“축하해!”

“축하합니다!”

“우리가 빌보드 1등 먹었다!”

기세로 보아 이미 예정되어 있던 1위였으나, 우리는 모두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전세계 최고의 가수다.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이 주는 자부심과 행복감은 어마어마했다.

정말 문자 그대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

정아조차도 어린아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으니 말 다 했지.

우리가 모두와 함께 기쁨을 나누며 자축하고 있던 그때.

환하게 웃고 있던 서연이의 시선이 갑자기 내게 고정됐다.

“사장님! 우리 파티해요!”

별이와 유진이, 정아의 눈도 반짝거렸다.

“파티?”

“오! 선배! 파티 하죠? 우리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도 남았는데.”

“오빠, 할 거지? 이건 해야 돼.”

스탭들의 눈에도 기대감이 어렸고.

내 입가에 씨익 미소가 어리자, 모두가 두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파티,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지.’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파티를 성대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파티라는 것을 꼭 성대하게 할 필요는 없다.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그게 파티지.’

또한 누구보다 화려한 그녀들이 이곳에 있으니, 어쩌면 가장 성대한 파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우리는 즉시 파티를 준비했다.

곳곳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술을 샀다.

그렇게 소소하고도 화려한 파티가 준비되는 동안, 멤버들은 모두 내 곁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리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에서 서로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가 이래서일까.

내 입에선 낯간지러운 말들이 술술 잘도 나왔다.

“진짜 감격스럽다. 다들 지금까지 열심히 해주고 잘해줘서 너무 고마워. 너희랑 만난 건 정말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인 것 같아.”

별이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

“저도 오빠를 만난 게 제 생애 최고의 행운인 것 같아요. GO엔터에 있을 때부터 절 계속 믿어주시고 잘 이끌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유진이와 서연이도 덧붙여 말했다.

“선배, 저도 엄청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알죠? 매니저였을 때부터 하나같이 다요. 선배 아니었음 진짜 어쩔 뻔했어.”

“저도요. 사장님 아니었으면 저 가수 되는 거 포기했을 거예요. 감사해요!”

정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야, 이런 분위기야? 파티 준비하는데 왜 분위기가 이렇게 말랑말랑해? 나도 한마디 해야 돼?”

“하하! 아냐, 됐어.”

“되긴 뭘 돼? 아무튼 나도 뭐··· 알지?”

둘만 있을 땐 가끔 낯간지러운 말도 할 줄 알더니, 다 같이 있으니 그런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 츤데레가 따로 없지.

이런 정아의 모습에 우리 사이로 큭큭, 웃음이 흘렀고.

자기도 웃긴 모양인지, 정아의 입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팬분들 지금 엄청 좋아하시겠다.”

별이의 말에 멤버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살펴봤던 나는 덧붙여 말했다.

“맞아. 완전 난리 났더라. 축포를 아주 뻥뻥 크게 터뜨리고 계시더라고.”

다음 콘서트와 코첼라 페스티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전세계에 포진된 우리의 팬들에겐 바로 오늘이 축제의 시작이었다.

.

.

.

너무 기분이 좋아서 파티는 찰나 같이 끝이 났다.

이제 스케줄을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때.

다들 자리를 털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니, 어수선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도 정리를 거들어야지.

이렇게 좋은 날에 권위를 내세우는 사장이 되고 싶진 않았다.

막 허리를 굽히며 술병을 집어들려는데, 소매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정아가 내 손목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어. 정아야, 왜?”

정아는 헛기침을 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설마··· 아까 고맙다는 말을 못 꺼내서 지금이라도 하려는 건가?

이렇게 주변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그···.”

그녀는 눈을 빠르게 굴리며 주변을 슥슥 쳐다봤다.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걸 남들이 좀 보는 게 그렇게 껄끄럽나?

평소엔 그렇게 남 눈치를 안 보는 사람이?

그래도 노력이라도 하려는 모습이 좀 귀엽게 보이긴 했다.

“그··· 음. 아무튼 뭐, 알지? 나 스케줄 갈 테니까 푹 쉬고 있어. 잠 좀 많이 자란 말이야. 알았어?”

“···그래, 고맙다.”

“어.”

그녀는 휙- 몸을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참 힘들게도 산다, 힘들게도 살아.’

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참 힘들게도 산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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