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단독 콘서트 투어 >
걸그룹 아일랜드의 국내 콘서트 투어.
오늘은 그 투어 일정의 첫 번째 날이었다.
잠실 종합운동장.
대기실에는 길고 긴 리허설로 인해 지친 애들이 있었다.
조용히 눈을 붙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멤버들.
리허설도 일이다. 체력과 심력을 엄청 잡아먹는다.
별이 말고는 단독 콘서트를 해본 적이 없으니 더욱 힘들었을 터.
그것도 다름아닌 잠실이다.
별이도 그룹으로 콘서트를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 지치는 것엔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비포 앤 애프터’도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심력이 배로 들었겠지.
그녀들이 그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최대한 정숙을 유지하고 있는 대기실.
나는 실장님들에게 눈짓하여 함께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복도 끝.
나는 박실장님에게 물었다.
“장동준 피디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우리 아일랜드는 음방 1위를 휩쓸고, 음원 차트를 점령했으며, 연일 화제를 독식하고 있다.
해외도 예외는 아니었다.
빌보드 순위 21위. 현재 순위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국행을 이르게 결정했다.
투어가 끝나면 바로 미국으로 떠날 수 있게 일정을 짜기로 했다.
그러니 이제부턴 국내 스케줄들은 슬슬 정리를 시작해야지.
방금 전, 박실장님은 장동준 피디님과 대화를 나누고 대기실로 들어왔었다.
그런데 대기실 안에 방송국 스탭은 없었어도 카메라는 있었기에, 이에 대한 보고를 들을 수 없었다.
박실장님은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하루라도 더 촬영하고 싶어 합니다. 미국으로 따라갈 수 있다고 꼭 전해달라 했고, 그게 안 된다면 출국 전에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가볍고 재밌는 촬영이라도 찍자고 제안했습니다.”
“실제론 온갖 말들을 덧붙였겠네요.”
정실장님이 큭큭 웃으며 덧붙인 말에 나도 옅게 웃었다.
처음 촬영을 시작하기 전 미팅에서, 우린 저쪽과 함께 암묵적인 합의를 나눴었다.
녹화의 끝을 정해두지 말고, 누구든 먼저 촬영을 끝낼 수 있도록.
그런데 화제성은 도통 줄어들 줄을 모르고, 프로그램에 대한 인기가 사상 최고를 달리고 있으니, 저쪽에서는 계속해서 목이 마를 터.
촬영을 먼저 끝내기로 한 건 결국 우리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지.’
난 예상했었다.
아무렴 우리 애들이 계속 ‘비포 앤 애프터’에 나온다고 해서 대중들이 지루해하려고.
황실장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미국까지 따라올 수 있다고 하는데 계속 찍는 건 안 좋을까요? 그것도 새로운 모습이라서 촬영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금 미국에서의 인기도 좋고요. 빌보드도 21위인데 그때 되면 더 높게 올라가 있을 거잖아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다 장단점이 있는 거지.
우리는 미국에서 큰 거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빌보드에서 한 계단이라도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1cm라도 더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애들도 쉴 땐 편하게 쉬어야죠. 지금 대기실만 봐도 애들 엄청 힘들어 하잖아요. 미국 가면 낯선 것들이 많아서 현지 활동에만 집중해도 정신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애들이 항상 붙어서 활동하지도 않을 거고요.”
또한 미국에선 항상 최상의 라이브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그쪽은 거의 생라이브 무대가 많으니까.
하나의 무대가 애들의 명성에 커다란 흠집을 낼 수도 있다.
그러니 국내에 있을 때 촬영을 끝내는 게 가장 좋을 터.
하지만.
‘뭐, 하루 정도야···.’
요즘 우리 애들이 너무 멋진 모습들만 나왔으니, 재밌는 장면을 보여줘도 팬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음···. 출국 전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도 괜찮긴 하겠네요. 저희가 자체 컨텐츠 찍는 날에 ‘비포 앤 애프터’도 같이 촬영하면 되겠어요.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정아가 ‘아이돌 체육 대회’에서 MC로 독설을 쏟아낸 장면을 친척들과 함께 TV를 통해 확인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언젠가 제대로 빌런의 위험성을 알려주기로 다짐했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게 바로 ‘히어로 & 빌런’ 컨텐츠.
정아 혼자 대마왕, 대빌런, 대마녀 역할을 맡고, 다른 멤버들은 히어로 역할을 맡는 콩트.
단순하고 가벼운 콩트였지만 이진국 감독님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재밌게 뽑히겠지.
지금쯤 아이디어를 쭉쭉 뽑아내고 있을 거다.
***
“하루? 결국 하루야?”
“하아···. 어쩌겠습니까. 이것도 겨우 얻어낸 건데.”
‘비포 앤 애프터’의 CP, 윤부장.
그리고 장동준 피디.
비보를 전하는 자리였기에,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우리가 뭔 짓을 해도 안 바뀌겠지?”
“시도하지도 마세요. 다음 기회도 있는 건데.”
유정아를 촬영하고, WE엔터는 아일랜드로서 다시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때 좋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미국에 따라가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더라도 어거지를 쓰며 진상 짓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기회라는 게 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그 하루는 아주 제대로 준비해! 리얼이니 뭐니 다 때려치고 어디라도 팍팍 데려가고 뭐라도 팍팍 시켜! 마지막인데 용두사미 될 순 없잖아. 가뜩이나 투어 끝나고 힘들어서 쉬고 싶을 텐데. 진짜 리얼로 하다간 숙소에서 쉬는 걸로 끝날 거야. 알지?”
이 프로그램의 철칙은 ‘진짜 리얼을 추구하며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자’였다.
하지만 아일랜드를 찍을 수 있는 그 마지막 하루를 그냥저냥 평범하게 찍을 순 없었다.
윤부장과 장피디의 의견은 일치했다.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WE엔터쪽 허락을 구해야 해서 엄청 빡세게 짤 수는 없긴 해도요.”
“역시 장피디! 뭐? 뭐 준비하고 있는데?”
장피디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일단 정아 씨한테 자전거를 태울 겁니다.”
“···음?”
“’아이돌 체육대회’에서도 운동을 못해서 MC를 맡은 거잖아요. 그런데 들어보니가 자전거도 못 탄다더라고요. 그날, 정아 씨는 김유민 사장님한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게 할 거예요.”
“아이템은 그렇다 치고··· 그거 그쪽에서 수락하겠어?”
장피디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전에 인터뷰했던 장면 중에 방송에 안 내보낸 게 있어요.”
장피디는 그 인터뷰 장면을 떠올렸다.
-정아 씨는 대체 못하는 게 뭐예요?
-많아요. 운동은 최악이고요.
-아! 아이돌 체육 대회도 선수로 참가 안 하셨죠? 혹시 얼마나 자신이 없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 남들은 다 할 줄 아는 것도 저한텐 힘들긴 하죠. 자전거 같은 거? 그래서 신인 때 영화에서도 자전거 타는 씬을 아예 빼버렸어요. 제가 하도 못 타서.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날 잡고 배우고 싶긴 한데, 글쎄요? 이젠 기회가 없을 것 같네요. 제가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정아 씨가 배우고 싶다고 했거든요. 자전거.”
장피디와 윤부장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정아 씨가 하고 싶다고 했으면 게임 끝난 거지.”
둘은 함께 아이디어를 쭉쭉 뽑아냈다.
유정아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에게도 분량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도록.
***
대기실에서 약간이나마 휴식을 취했기 때문인지, 멤버들의 얼굴은 조금 더 생글생글해졌다.
아니면, 이제 막 입장을 시작한 팬들을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걸지도 모르지.
우리는 여전히 대기실이었다.
메이크업과 헤어, 의상을 다시금 손보기도 하고, 헷갈리는 안무와 가사를 되뇌어보기도 했다.
그 와중이었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별이.
그녀는 자신이 앉은 소파와 주변을 정리하며 내게 말했다.
“누워서 쉬세요. 많이 피곤해 보여요.”
별이는 무대 걱정 대신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흘끗 거울을 보니, 내 몰골이 좀 피곤해 보이긴 했다.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입술을 말랐으며, 눈도 퀭하다.
요즘 콘서트 준비와 앞으로의 계획을 짜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덕이다.
나는 시선을 옮겨 멤버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별이에게 말했다.
“됐어. 너희만 하려고. 앉아서 편히 쉬어.”
내가 암만 바빠봤자 얘네보다 바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얼굴이 이렇게 찬란한 것은 분명 태생적인 문제겠지.
물론 관리를 받기도 하지만, 관리에도 한계가 있지.
만약 내가 관리를 받았더라도 저렇게는 절대로 안 됐을 거다.
“전 괜찮아요. 이제 무대에 올라가야 해서 처지면 안 되고요. 오빠 쉬세요.”
그리고 그때였다.
유진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카메라가 몇 대나 있는데 선배가 어떻게 그래. 별아, 선배가 저기에 누우면 그대로 관짝 뚜껑 닫혀. 애들 대기실에서 왜 네가 자냐고 그럴걸?”
“···아.”
“···.”
서연이가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하하! 그러네요? 그럼 내가 누워야지. 이 소파 엄청 푹신해서 좋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소파는 정아의 차지가 되었다.
난 세상 편해 보이는 정아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참 캐릭터 편하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도 대중들한테 사랑받는 캐릭터라니. 잘 잡았어, 참.”
“뭐래. 오빠가 뭘 알아? 무대에 서봤어? 이건 겸손한 거야. 얘네에 비해 내가 실력이 모자라니까 충분히 쉬어두는 거지. 이게 다 팬들한테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렇다 할 저항조차도 못하고 가장 푹신한 소파를 빼앗겨버린 서연이.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것뿐이었다.
***
“와아아아아-!”
팬들로 꽉 들어찬 콘서트장.
함성 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 그녀들은 ‘일도 잘하는 밴드’를 통해서 ‘미리 보는 아일랜드 콘서트’를 방송으로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그녀들이 가진 곡이 얼마 없기 때문에, 콘서트는 그때와 거의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도 감동적이고 훈훈하긴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규모가 달라졌기 때문인지, 아주 뜨겁고 펄펄 끓고 있었다.
귀청이 떨어질 듯 울리는 함성, 이 넓은 공연장을 빵빵하게 울리는 사운드 시스템, 그리고 시야를 어지럽히는 팬들의 응원봉.
무대에는 유진이, 서연이, 별이, 정아가 함께 올라가 있고, 스크린에는 행복하게 미소 짓는 그녀들의 얼굴이 커다랗게 비치고 있다.
“이거지···. 이거야.”
그토록 보고 싶던 장면이었다.
내 얼굴엔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순간, 난 완전히 확신했다.
이제 국내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의 이 장면은 코첼라 페스티벌에서도 그대로 펼쳐질 터.
지금 국내를 완전히 정복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 또한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비록 짧게는 수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빌보드 스타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겠으나.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또한 그것뿐이리라.
우리가 곧 차지할 최고의 자리를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역시 지금처럼 각자 활동을 하고 나서 뭉치는 게 좋겠지.’
붙어 있어야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룹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우리 애들은 혼자서 활동할 때부터 쑥쑥 성장하며 반짝반짝 빛이 났으니까.
앞으로도 각자의 재능을 살리며 솔로 활동을 하다 보면, 다시 함께 활동했을 때 더욱 뚜렷한 색깔을 낼 수 있게 되겠지.
“하아. 하아.”
“와! 너무 좋아.”
다음 무대를 위해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온 멤버들.
그녀들의 얼굴은 이미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입술은 화사한 미소를 그리고 있다.
“어땠어요?”
별이가 내게 물었다.
매번 같은 걸 묻고, 나는 매번 비슷한 대답을 하곤 한다.
어쩌면 그냥 습관적으로 묻는 것일 수도 있다.
“잘했어. 엄청 잘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정말로 너무 잘하고 있어서.
“그래요? 다행이다.”
별이의 눈매는 더욱 짙게 휘어졌다.
< 첫 단독 콘서트 투어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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