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15화 (115/124)

< 쇼케이스 >

드디어 오늘이다.

아일랜드의 미니 앨범 발매일과 쇼케이스.

우리는 아침부터 리허설을 시작했고, 앨범 발매가 30분 앞으로 다가왔을 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뮤비와 앨범 공개는 6시고, 쇼케이스는 8시였으니 식사를 할 정도의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

대기실.

애들이 무대 의상을 입고 식사를 하는 모습을 여러 대의 카메라들이 찍고 있다.

오늘은 대망의 데뷔일이었으니, 아마 방송 분량도 많을 터.

하지만 이 장면은 몇 주 뒤에나 방영될 거다.

애들이 나오는 회차의 첫 방송이 내일이었으니까.

나는 도시락을 까먹는 애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연히 별이에게로 시선이 고정됐다.

‘역시 먹방은 별이가 최고네.’

팍팍 먹는다. 한 숟가락을 떠도 크게 뜨고, 한 젓가락을 집어도 크게 집는다.

이러니 먹방으로 레전드를 찍지. 저 모습은 엔제 봐도 시선을 끌었다.

“별아, 물이랑 같이 먹어. 체하겠다.”

“네.”

물을 건네주자 또 벌컥 들이킨다.

서연이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사장님, 별이 먹는 걱정이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얘는 절대 안 체한다니까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이제 곧 앨범이 공개되기도 하고 쇼케이스 전이라 긴장할 수도 있지.

“근데 오빠는 왜 안 드세요?”

별이가 도시락 하나를 새로 까면서 내게 물었다.

저걸 또 먹으려나? 당연히 그렇겠지.

“난 별로 배고 안 고파서. 쇼케이스 끝나면 먹으려고.”

“그래도 드세요. 조금이라도요. 쇼케이스 끝나려면 아직 세 시간 넘게 남았잖아요. 이따 배고파지면 어떡해요.”

도시락을 다 깐 별이가 내게 그 도시락을 내밀었다.

‘나 주려고 깐 거구나.’

난 소소한 감동을 느끼며 수저를 들었다.

먹으니까 또 들어간다.

“맛있네.”

“그쵸?”

별이는 또 새로운 도시락을 까더니 먹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우리는 이렇게 여상한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대기실 안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제 발매까지 남은 시간은 단 5분.

그런데 나와 멤버들보다 우리 직원들이, 그리고 ‘비포 앤 애프터’의 스탭들이 더 긴장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까지 그 긴장감이 서서히 옮겨질 정도.

우리는 어느새 노트북과 태블릿, 핸드폰으로 모니터링을 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대기실 곳곳에 펼쳐진 진풍경.

태블릿을 손에 든 내 옆에는 별이가 자리했다.

“팬분들도 많이 기다리고 계시겠죠?”

언제 들어도 좋은 별이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고.

저들에게서 옮겨진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별이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ASMR을 찍으면 전세계 사람들의 불면증은 완치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여기 쇼케이스 오고 계시는 분들이랑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 그리고 전세계 곳곳에서 다 기다리고 계실 거야.”

별이는 내 말을 듣고는 작게 눈매를 휘었다.

그리고 그때, 정실장님이 카운트를 세는 소리가 대기실을 울렸다.

십, 구, 팔, 칠··· 삼, 이, 일!

우리의 손은 바빠졌다.

물론 지금 바로 팬들의 반응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음원 사이트에 우리의 앨범이 올라간 걸 보고, 채널에 뮤비가 올라온 걸 본 것만으로도 약간의 수고를 들일 의미가 있었다.

이것 봐라.

팽팽했던 대기실의 공기가 느슨해지고, 모두의 얼굴에 성취감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뮤비 봐요.”

“그럴까?”

이미 멤버들의 뮤비 리액션 영상까지 찍어 놓았다.

그래서 딱히 새로울 건 없었지만,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뮤비를 틀었다.

‘유형중 감독님이 진짜 최고라니까.’

김송송송의 뮤비를 제외하고, 우리 애들의 뮤비를 모조리 찍은 감독님.

그만큼 애들이 어떨 때 이쁜지, 어떨 때 매력적인지를 아주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러니까 이건 그렇게 축적된 경험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

즉, 명작이 되었다.

나한테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팬들도 그렇게 느끼겠지?

“뮤비 이번에 엄청 좋게 나온 것 같아요. 봐도 봐도 안 질리고 너무 좋아요.”

난 별이의 말에 짙은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역시 잘 통한다니까.

***

앨범은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국내 음원사이트의 1위부터 4위를 차지했다.

‘국민 그룹이라고 해도 되겠네.’

데뷔한 지 1시간 만에 국민 그룹.

이거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 아닐까?

물론 순위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국민 그룹을 떠올린 건 아니었다.

순위는 팬덤빨로 가능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대중들의 반응도 받쳐줬다.

직원들이 들려주는 소식마다 희소식.

걱정할 만한 소식이나 나쁜 소식은 단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애들의 얼굴에도 근심 한 점 없이, 모두 밝기만 했다.

난 정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답지 않게 헤헤, 웃음을 흘리며 대놓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 감정을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뭘 그렇게 봐? 얼굴 뚫리겠다.”

그래도 목소리엔 까칠함이 약간 남아있긴 하네.

“그냥. 기분 좋아 보여서.”

“당연히 기분 좋지. 오빠는 안 좋아?”

“말해 뭐 해. 날아갈 것 같지.”

“그럼 오빠도 나처럼 좀 환하게 웃어. 좋아해야 할 때 많이 좋아할 줄 알아야, 힘들 때 버틸 수도 있는 거잖아. 언제까지 잘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웃었다. 정아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겨서.

하지만 그녀의 말에 틀린 말은 없었다.

언젠간 우리도 힘든 날들이 오겠지. 인기가 떨어질 날도 올 테고.

하지만 나는 최대한 그날을 뒤로 미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그래, 보기 좋네.”

이제 쇼케이스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관객들은 이미 진작에 입장한 상태.

늦지 않게, 정각에 쇼케이스를 시작하려면 이제 움직여야 했다.

“이제 나가자.”

예능 제작진들도 있었으니, 우리는 우르르 이동했다.

무대 아래에서 스탭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듣는 멤버들.

스타일리스트들은 마지막으로 그런 멤버들을 손봐주고 있었다.

8시 정각이 되자마자, 장내의 조명이 모두 꺼지며 스크린에 ‘아일랜드’의 로고 영상이 나왔다.

멤버들은 모두 옅은 미소를 띠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고, 팬들의 환호성이 귀청을 두드렸다.

아직 애들은 무대 위에 올라오지도 않았거늘.

영상이 끝나갈 즈음, 스탭이 신호를 줬다.

그리고 멤버들이 차례대로 계단을 올랐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방금 전보다 더욱 커진 함성 속에서.

멤버들은 타이틀 곡의 무대를 시작했다.

가제, ‘우리가 걸그룹이라면’.

정식 제목, ‘About Us’.

멤버 한 명 한 명이 슈퍼스타인 ‘아일랜드’의 첫 번째 공식 무대였다.

***

그녀들의 무대를 처음 보는 건 아니다.

연말에만 해도 김별, 유정아, 이유진, 구서연이 함께 특별무대를 꾸몄으니까.

그렇다고 ‘아일랜드’의 오리지널 곡 무대를 처음 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비포 앤 애프터’의 메인 피디로서, 그녀들의 무대는 이미 많이 봤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

저기서 열광하고 있는 팬들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건 이 프로그램을 찍고 있는 피디로서 느끼는 감정일까, 아니면 그녀들의 팬이 된 ‘장동준’으로서 느끼는 감정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피디로서 그녀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녀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인지를 더 자세히 알게 됐으니까.

지금 저기서 후렴을 부르고 있는 김별은 말수가 다른 멤버들보다 적었지만, 배려와 예의가 몸에 배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예전에 레모네이드 관련하여 폭로했던 스타일리스트가 김별을 찬양했을까.

‘아! 순서가 반대였지, 참.’

김별을 찬양했던 스타일리스트가 이수진의 인성을 폭로했었다.

아무튼.

지금 저기서 경이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며 팬들을 감탄케 하는 이유진도.

맑고 깨끗한 톤으로 노래하는 구서연도.

이미 대스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노력이 뒤지지 않는 유정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팬심이 두터워질 수밖에 없었다.

간혹, 아니 자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돌들이 사랑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저기 무대 위에서 행복한 표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그녀들은 모두가 다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장동준 피디는 일을 함과 동시에, 한 명의 팬으로서 무대를 감상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야, 얼굴에 함박미소가 띠워져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다 그러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방송국 스탭들이고 WE엔터 스탭들이고 전부 다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자신이 봤던 그녀들의 모습을 저들도 봤을 테니까.

‘이젠 전국민이 보게 되겠네. 아니, 전세계 사람들이 보겠구나.’

첫 방송은 내일.

그녀들을 언제까지 찍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장동준 피디는 확신했다.

‘아일랜드’의 특집이 모두 끝나는 날.

그녀들의 인기는 지금 이곳보다도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을 거라고.

***

관객석에 앉아 있던 팬들 중 한 명, 웹소설 작가 김정민.

타이틀 곡의 무대가 끝난 순간, 그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 와아아아!”

2시간 전에 공개된 뮤직 비디오와 미니앨범.

시간이 부족하여 많이 보고 많이 듣지는 못했지만, 그는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집중하여 음미했었다.

사실 대중들의 기대감이 너무 높았던지라, 팬으로서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팬들도 한창 기대를 하며 걱정을 동시에 했다.

그러나 2시간 전에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내가 미쳤었지! 의심할 걸 의심해야지!’

그래서 오로지 기쁜 마음만으로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다들 비슷한 지, 장내는 열광과 황홀함, 환희로 물들어 있었다.

‘연말 무대보다 훨씬 좋아!’

그녀들의 재능과 연습량을 한눈에 알 수 있었던 무대.

곡을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안무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던 무대.

4명 중에 메인 보컬과 메인 댄서가 나뉘어진 그룹인 데다가.

솔로 가수들이 프로젝트 걸그룹으로 뭉쳤을진대.

그녀들은 따로따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인 것처럼, 그녀들은 넷이서 하나의 커다란 시너지를 만들어내었다.

‘세계관 컨셉이 이래서 그런 거였어!’

그녀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으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세계관의 컨셉이 완벽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일랜드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일랜드입니다.”

그녀들에게도 만족스러웠던 무대였나 보다.

인사를 하는 네 명의 얼굴은 이보다 밝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인사를 하며 걸그룹으로서의 데뷔 소감을 말했고.

스크린에는 컨셉 영상이 틀어졌다.

그 뒤로 4개의 곡을 모두 설명하며, 그녀들은 그 모든 곡들을 라이브 무대로 꾸몄다.

“댄스는 타이틀 무대에서만 하고, 수록곡 무대는 노래만 불렀는데도 힘드네요.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봐요. 하하.”

이유진이 웃는 얼굴로 엄살을 부렸다.

관객들은 멤버들의 멘트 하나하나마다 기꺼이 커다란 리액션을 보내주었다.

웃거나, 탄성을 터뜨리거나, 환호를 보내거나, 목소리 높여 대답하거나.

“다들 보셨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볼까요? 트레일러랑 뮤직 비디오입니다.”

스크린에 트레일러와 뮤직 비디오가 나올 동안 멤버들이 무대 뒤로 들어갔다.

포토 타임 전, 다시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을 받기 위함일 터.

김정민은 멤버들이 잠깐 사라진 이 시간마저 행복했다.

‘이런 데서 뮤비를 보는 게 또 별미지.’

뮤비와 트레일러가 끝나자 멤버들이 다시 무대 위에 돌아왔다.

데뷔를 준비하며 찍은 사진들을 스크린에 띄우며 멤버들이 설명하고.

포토 타임, 마지막 인사, 그리고 다시 타이틀 곡, ‘About Us’의 무대를 하고는 퇴장.

1시간 20여분의 시간은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쇼케이스가 완전히 끝이 난 것.

하지만, 그는 조금도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제 시작했는데 뭐가 아쉬워.’

김정민은 실실 웃으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WE엔터의 사장, 김유민은 뭘 좀 아는 사람이었으니 팬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터.

걸그룹으로서 보여줄 만한 것들은 아직 산더미처럼 많이 남아 있었다.

< 쇼케이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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