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14화 (114/124)

< 난 정아 언니 안 무서워 >

멤버들, 그리고 김유민과 회사 직원들까지, 모두의 고민이었다.

그룹의 이름을 어떤 걸로 해야 할지.

하지만 이런 고민은 이유진이 내놓은 아이디어로 깔끔하게 해결됐다.

“전 처음에 이름 듣고 조금 그랬는데, 설명 들어보니까 괜찮게 느껴졌어요. 이래서 세계관을 짜고 컨셉을 잡나 봐요.”

연습이 끝난 뒤의 숙소.

멤버들은 각자 방에 가는 대신 모두 거실 소파에 모여 앉았다.

촬영 중이라서 분량을 뽑는다는 목적도 있긴 했지만, 숙소 생활을 처음 하는 거라 묘하게 설렌 까닭도 있었다.

“언니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했어요? 요정의 여왕이 만들어낸 기적의 섬. 언니 아이디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김별의 질문에 유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별 거 아니야. 매니저였을 때 대기 시간이 엄청 많아서 별 생각 다 하거든. 그룹 이름들 보면서 저건 무슨 뜻일까, 상상하기도 하고. 내가 짜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 생각하다 보니까 좀 잡지식도 쌓이고 하더라고.”

“아, 티타니아가 그런 잡지식인 거예요?”

“그렇지. 요정의 여왕 이름이래. 중세 유럽 전설이랑 민담에서도 나오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도 나오고.”

유정아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잘했어, 이유진. 나도 마음에 들어. 우리 타이틀 곡 컨셉이랑 맞기도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뭉치려면 뭐든 기적이 필요하잖아? 마법이든 요술이든 뭐든. 딱 좋아. 이름만 보면 단순해서 외우기도 쉽고.”

“하하. 네.”

“아일랜드는 겹치는 이름이 이것저것 많겠지만 뭔 상관이야. 그치? 우리가 어차피 제일 유명해질 텐데.”

요정의 여왕이 가진 능력을 발휘해, 기적을 만들어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여왕의 섬.

그래서 아일랜드였다.

아일랜드. 아일랜드.

멤버들은 몇 번이고 이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표정이 조금씩 부드럽게 풀려갔다.

오직 이름 때문이 아니라, 기분 좋은 소속감이 느껴져서.

“유민 오빠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김별이 말을 꺼냈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저희를 만난 것도 기적이고, 이렇게 잘되고 있는 것도 기적이고, 저희랑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자신한텐 기적이라고요. 그래서 이 이름이 더 마음에 든대요.”

“참나. 그러면 아예 미라클로 짓든가.”

정아는 괜히 딴지를 걸어봤는데, 눈매는 짙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

가제, ‘우리가 걸그룹이라면’은 ‘About Us’이라는 이름으로 결정이 지어졌고.

드디어 언론을 통해 기습 발표를 하는 날.

오늘 우리는 ‘아일랜드’라는 그룹명과, 미니앨범에 4개의 곡이 수록됐다는 것, 그리고 곡들의 제목과 발매 날짜까지, 모두 동시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지?”

티저들과 트레일러, 하이라이트 멜로디는 순차적으로 공개할 터.

이런 걸 푸는 것도 아니고 고작 정보를 푸는 것뿐인데, 내 입꼬리를 춤을 추듯 씰룩거렸다.

“저도 떨립니다. 팬분들이 엄청 격렬하게 반응할 테니까요.”

박실장님이 내 말을 받았다.

기사들이 풀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5분.

직원들이 가득한 사무실의 분위기는 기대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듯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애꿎은 책상을 두들기고, 다리를 달달 떨고, 마른 입술을 핥았다.

대중들의 반응이 기대가 돼서 그런가?

왠지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각 5시가 되었을 때.

직원들의 손과 눈이 분주해졌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나는 포털 사이트에 기사들이 주르륵 올라오는 걸 확인하고는 하나하나 클릭해 읽었다.

[WE엔터 걸그룹 드디어 베일을 벗다! 그룹명 <아일랜드>]

[김별, 유정아, 이유진, 구서연이 걸그룹으로 출격한다! 4곡의 미니 앨범 발매 D-7.]

[<아일랜드> 초대형 신인 걸그룹 데뷔 임박. 4곡으로 줄세우기 가능할까?]

[<아일랜드>의 행보는? 첫 시작은 예능으로! ‘비포 앤 애프터’에 멤버 전원 출연.]

우리 쪽에서 낸 기사들도 있고, VBC에서 낸 기사들도 있다.

그리고.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모든 인터넷 언론사들이 이 기사들을 약간씩만 변형해서 쏟아내기 시작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기사들이 쏟아짐에 따라, SNS와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이 바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너무 재밌어서.

-미니앨범이라고!?!?!? 그것도 4곡??? 왘ㅋㅋㅋㅋㅋㅋ 기다린 보람이 차고 넘치네ㅋㅋ

-와 드디어!! 미치겠다ㅋㅋㅋ 심장 뛰어.

-아일랜드? 흠. 이름이 살짝 거시기하긴 한데?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 그냥 이렇게 나와준 걸로 감사하지. 우린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ㅋㅋ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도 그렇고 원래 이렇게 기대하던 그룹 이름 딱 들으면 다 실망함. 현장 관객석 싸해지고ㅋㅋ 근데 또 금방 익숙해지더라.

-오오오오!! 대박대박대박대박! 단체로 숙소 생활 예능 찍는대ㅋㅋㅋㅋ 와 이걸 어떻게 안 보냐고ㅋㅋ 역대 최고 시청률 나오겠다ㅋㅋ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댓글과 게시글들.

모두 다 환호하며 열광하고 있었다.

내용도 그렇고, 글이 올라오는 속도도 그렇고, 팬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하하하!”

내 입에서 시원스러운 웃음이 터졌다.

사실 별로 웃긴 댓글은 없었다.

허나, 이렇게 웃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히죽히죽, 싱글벙글, 방긋.

우리 사무실의 직원들도 모두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웃음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달릴 일만 남았네.”

D-7.

발매일은 일주일 뒤였지만 달리는 건 지금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팬들 이제부터 기다리느라 목 빠지겠네.”

아마 지금까지 기다린 것보다 이번 일주일이 더 애가 탈 거다.

포토 티저, 뮤비 티저, 컨셉 트레일러, 하이라이트 멜로디, ‘비포 앤 애프터’의 예고편과 선공개 영상까지.

이 모든 것들이 다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 테니까.

***

지난 6일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처음 그녀들의 소식을 접하고선 기쁨의 비명을 질렀고, 유튜브로 그녀들의 영상을 몇 시간이고 다시 찾아봤으며,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같은 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그리고 그 뒤로 하루마다 공개되는 티저들.

기대감은 이미 첫날부터 천장을 뚫은 지 오래였고, 행복과 기다림의 고통, 기대와 설렘이 공존했다.

“그런데도 아직 하루가 남았네···.”

오늘은 뮤직 비디오 티저가 나오는 날.

앨범과 뮤비 공개는 바로 내일이었다.

“행복한 고통이 이런 건가.”

호시노 하즈키는 고통을 말하며 웃었다.

비단 구서연에게서 받은 은혜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팬심이었다.

호시노는 여전히 일본에서 국민 여동생 대우를 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쉴 틈 없이 바쁜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야. 원 없이 즐길 수 있겠어.’

습관처럼 인터넷을 또 다시 뒤적거리기 시작하는 호시노.

커뮤니티에서 시선을 끄는 댓글들을 발견했다.

-키────타!wwwww

-키타!!!!!

“뭐야! 뭐가 왔다는 건데! 뭐 있어? 티저 나왔나?”

부랴부랴 유튜브를 틀어서 확인을 해봤는데,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진 않았다.

그런데, 커뮤니티에서 말한 건 뮤비 티저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 또한 티저일 터.

<[선공개]내가 너 자라고 했어 안 했어! 오늘부터 아일랜드의 막내는 구서연. #비포앤애프터>

“어?”

그녀들이 출연한다고 했던 예능, ‘비포 앤 애프터’의 선공개 영상.

호시노는 생각할 틈조차 아깝다는 듯, 손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여 영상을 틀었다.

최고 화질, 그리고 전체 화면.

첫 화면은 어두웠다.

하지만 바로 화면이 밝아졌다.

거실의 불을 켠 유정아.

그리고 냉장고 앞에서 화들짝 놀란 얼굴로 얼음처럼 굳은 구서연.

-너 내가 자라고 했어 안 했어. 지금 이 시간에 목구멍에 뭐가 들어가? 데뷔가 코앞인데?

-그건···.

-변명하지 마. 진작 잤으면 배고플 일도 없잖아.

-그게 아니라 영감이 떠올랐단 말이에요! 그··· 뭔가 그 아크로바틱하고 엘레강스한··· 말로는 쉽게 표현이 안 될 그런 엄청난 영감이 팍! 떠올라서! 그래서···.

-무슨 영감? 너 거짓말이지? 솔직히 말해. 똑바로 말해.

-지, 지, 진짠데요!? 그 지금 바로 설명을 할 수가 없고···.

-그럼 작업을 하든가,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든가, 어디 적어놓든가 해야지, 왜 먹어, 먹길!

-아직 안 먹었어요! 그리고 이건··· 영감의 끝을 붙잡고 창작자들만 아는 그 환상의 영역을 깊게 탐구하기 위해서···.

-조용히 해. 오늘부터 네가 막내야. 김별! 네가 얘 언니야. 알겠어?

-헐! 그런 게 어딨어요!

스윽 방에서 나오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별.

마찬가지로 방에서 나오며, 그런 김별에게 축하를 전하는 이유진.

3분 길이의 영상이었지만, 호시노에겐 찰나처럼 짧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호시노는 온갖 비명을 지르고 커다란 웃음을 몇 번이고 터뜨렸다.

“야바이! 야바이!”

원래부터 무조건 이 예능을 챙겨볼 생각이었지만, 그 의지는 이 선공개 영상으로 인해 한층 더 확고해졌다.

호시노는 여러 번 영상을 돌려본 뒤에 커뮤니티에 들어가봤다.

역시, 그들이나 자신이나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티저가 공개됐을 때.

호시노는 선공개 영상과는 다른 결의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꺄아아아아-!”

구서연이 선공개 영상에서 했던 말이 딱 맞을 것 같았다.

아크로바틱하고 엘레강스한.

말로는 쉽게 표현이 안 될 그런 엄청난.

이 뮤비 티저가 딱 그랬다.

***

이층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김별이 눈을 떴다.

똘망똘망한 눈.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서연아, 자?”

작게 말했는데 밑의 침대에선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안 자.”

“너도 잠 안 와?”

“어떻게 자, 그걸 보고. 아마 정아 언니랑 유진 언니도 잠 안 올걸?”

‘비포 앤 애프터’의 선공개 영상과 뮤비 티저 영상이 공개된 뒤, 팬들의 반응을 봤다.

그래서 잠이 오질 않았다.

너무 기분이 좋고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런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비단 팬들의 반응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과 함께 그룹을 짰으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끼리 이렇게 숙소 생활하니까 진짜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 같아.”

서연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숙소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그래도 뭔가 느껴진단 말이야. 되게 재밌어. 매일 연습하고 이러는데도. 혼자 활동했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야.”

아직 앨범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프로젝트 걸그룹이라서.

그 끝이 정해져 있었다.

서연에게서 대답이 나오지 않자, 김별은 말을 이었다.

“우리 또 그룹 활동 할 수 있을까?”

“내가 좋은 곡 쓰면 되지. 또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 진짜 잘돼야 돼. 그래야 회사도 또 그룹 활동 시킬 거 아냐.”

서연의 대답에서, 그녀 또한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돌 그룹들 다 이런 느낌일까?”

“이런 느낌이 뭔데? 자야 하는데 안 자고 있어서 정아 언니가 뭐라고 할까 봐 긴장되는 느낌? 아니면 배고파서 뭐 먹고 싶은데 정아 언니한테 들킬까 봐 손에서 땀 나는 느낌? 그런데 나 있잖아. 원래 거짓말하는 거 그렇게 티 나? 난 분명 자연스럽게 연기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영상으로 보니까 내가 봐도 티 나더라. 그때만 그런 거지? 나 김송송송 찍을 때 연기 엄청 잘한다고 사람들이 그랬잖아.”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새었지만, 김별은 이런 대화마저 너무 좋았다.

친구와 함께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재밌게 얘기할 수 있어서.

김별은 앞으로도 이런 관계가 변치 않고 계속 지속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싸우지 말자. 싸워도 금방 화해하고.”

“응. 나도 그래서 언니들한테 져주는 거야. 난 정아 언니 안 무서워. 다 그룹을 위해서 그러는 거지. 넌 알지?”

“···.”

“알잖아. 나 진짜 안 무서워 하는 거.”

“···서연아, 나 졸려. 잠 와.”

“이 씨!”

앨범 공개까지 24시간도 남지 않은 시각.

방에 설치된 카메라는 이 모든 대화를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 난 정아 언니 안 무서워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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