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리필 >
이전에 이유진도 출연했던 미국의 3대 토크쇼, ‘제이슨 쇼’.
여기에 클레이가 출연했다.
제이슨은 클레이에게 물었다.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어, 클레이. 유진이 피처링도 하고 뮤비에도 나온 이유가 유진한테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래. 유진은 나한테 매우 특별해. 이 곡이 어떻게 나오게 된 거냐면-“
클레이는 유진을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을 모두 풀었다.
이미 주변 사람들한텐 몇 번이나 한 얘기지만, 대중들은 모르고 있었다.
어쩌다 3년 동안이나 공백기를 가지게 됐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이 공백기가 어떠한 이유로 인해서 깨지게 됐는지.
때문에, 방청객들이나 제이슨이나 모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허나, 제이슨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그럴 만해. 유진은 매우 특별하지. 유진이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도 알지? 그때 진짜 끝내줬다고! 내 눈이 믿겨지지가 않았다니까?”
“당연히 봤지! 난 유진에 대한 건 모두 다 챙겨보고 있어. 난 정말로 그녀의 빅 팬이거든.”
제이슨은 말했다.
“릴스, 쇼츠, 틱톡에서 매일 안무 커버하는 영상 엄청 많이 올라오고 있는 거 알아?”
“하하! 알지. 그런데 거의 다 내 것만 했더라고.”
“유진을 어떻게 따라해! 조금 난이도 낮춰주지. 정말 너무하더라고.”
“하하하!”
공백기를 깬 것부터 하여, 유진의 얘기가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자제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유진은 이번 컴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니까.
이윽고, 클레이의 무대.
스탠드 마이크를 잡은 클레이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방청객들을 바라봤다.
다시는 이런 순간이 못 올 거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던 공허함이 메워지지 않을 거라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순간이 찾아왔고.
마음 속 공허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Carry On!’은 신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노래하는 곡.
지금의 클레이는 이 노래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였다.
“고마워, 유진.”
클레이는 짧은 감사 인사를 전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
누가 뭘 어쨌고, 누가 뭘 냈고.
빌보드 차트에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들만 주구장창 듣는 사람들이 있다.
50대의 미국인 에릭.
그는 클레이의 음악들을 매우 사랑했지만, 클레이가 앨범을 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일하고 먹고 살기에 너무 바빠서.
그런 그가 ‘제이슨 쇼’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딱히 이 쇼를 보기 위해 채널을 돌린 건 아니지만, TV에 오랜만에 클레이가 나오고 있어서.
그는 그렇게 제이슨 쇼를 보게 됐다.
“유진? 유진이 누구지?”
클레이가 하도 칭찬을 해서 궁금증이 계속 증폭됐다.
유진이 누구일까?
‘이따 찾아봐야겠네.’
우선 이 쇼부터 보고 찾기로 했다.
토크가 거의 다 끝나고 클레이의 무대.
에릭은 변함이 없는 그녀의 실력에 방긋 미소 지었다.
“이 곡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야겠어.”
곡이 너무 마음에 들고, 너무 오랜만에 클레이가 컴백해서, 에릭은 유진에 대한 건 잠시 미루고 클레이의 뮤직 비디오부터 찾아봤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설마 이 사람이 유진인가?
유진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방금 전의 그 토크 쇼에서 들은 내용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렇게 칭찬을 쏟아냈음에도, 그 칭찬이 한참을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뮤직 비디오는, 이 댄스는, 그 어떠한 표현으로도 설명이 되질 않는다.
에릭이 빌보드에 그리 큰 관심이 없고, 새로운 음악들을 찾아 듣지 않는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광적으로 좋아하지만, 에릭은 약간의 관심만을 기울일 정도만 음악을 사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광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 이러할까?
뮤직 비디오가 다 끝났는데도 에릭의 뇌리엔 여전히 그 충격적인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유진···.”
에릭뿐만 아니라 다들 같았다.
유진을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이 뮤비를 보고 나면, 자동으로 손이 가게 되어 있었다.
“한 번 더 봐야겠어.”
그 후로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봤을까.
에릭은 유튜브에 ‘Yujin’을 검색했다.
최상단에 올라온 건 그녀의 뮤직 비디오.
“What the···!”
뮤직 비디오를 몇 번, 그 다음 그녀의 스테이지를 몇 번, 또 그 다음엔 특별 무대를 몇 번.
시간은 훌쩍 흘러가 새벽이 되었지만, 에릭은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영화는 내일 볼까?”
이것까지 봐버리면 내일 일하는 데 지장을 줄까 봐서 겁이 났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커다란 자극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 젠장!”
결국 에릭은 영화까지 시청하며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졌고.
에릭은 이내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신 또한 클레이처럼 유진의 빅 팬이 되었노라고.
***
“이런 일도 있네···.”
새삼 클레이의 힘이 대단하다.
아니, 유진이의 힘이 대단한 건가?
‘둘 다 대단한 거지.’
이래서 홍보에는 끝이 없다고 하는 거다.
분명 유진이 활동할 때 미국에서 꽤나 큰 화제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더 크게 화제가 될 거리가 남아 있었다는 거니까.
[이유진 뮤직 비디오 조회수 1억 돌파! 미국에서 불어오는 2차 이유진 앓이.]
[매일매일 껑충 뛰는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인기. 유정아, 이유진, 클레이의 힘이 각각 작용했다.]
[네티즌, “유진 좀 더 미국에서 활동했었으면 빌보드 더 높은 순위에 올라갔을 것.” 아쉬움 토해.]
[이런 화제 속에서도 감감무소식의 이유진. 그룹 활동 준비 중일까?]
미국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고 있으니, 덩달아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려야 돼. 흔들리지 말고 더 열심히 준비해서 기대에 부응할 줄 알아야 한단 말이야.”
“갑자기 뭐예요?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선배, 환청 들리는구나? 이상하네. 선배 요즘 일도 없는데.”
“야, 내가 일이 없긴 왜 없어? 얼마나 바쁜지 네가 몰라서 그래. 하긴 사장 사정을 누가 알겠냐.”
유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도 대충은 알아요. 사장님이 이상한 소리 하시길래 저도 한 번 해봤죠.”
“나는 네가 혹시나 들떠서 집중 안 될까 봐 하는 소리였지.”
“제가 보기엔 선배가 그런 것 같은데요? 그리고 제 화제가 아무리 커봐야 클레이만 하겠어요?”
현재, 빌보드 1위의 자리를 당당히 꿰찬 클레이.
역시 클레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자리는 공고했고, 그 누구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선배, 이럴 때일수록 우리 일에나 집중하자고요. 이제 뮤비 촬영인데, 정신 바짝 차려야죠.”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거든?”
그리고 그때 마침.
내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공중파 방송국 VBC의 예능국장님.
난 씨익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예, 국장님. 김유민입니다.”
유진이가 내게 엄지를 척 날려주었다.
국장님이 직접 전화를 걸 만큼 클라스 있는 연예계의 거물.
그게 바로 나다.
***
정아의 데뷔를 찍었던 VBC의 리얼리티, ‘비포 앤 애프터’.
이때, VBC는 정아의 출연으로 인해, 케이블, 공중파, 유튜브 컨텐츠 등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제치고 화제를 독식할 수 있었다.
‘그때 국장님이 회식 자리에서 비밀 엄수에 아주 힘 좀 줬다지?’
듣기로는, 누구든 발설하는 순간 끝까지 찾아간다며 엄포를 두었다고 한다.
내가 다시 ‘비포 앤 애프터’를 찾은 이유에는 이러한 점 또한 있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여전히 좋고, 편집 또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국장님, 김유민입니다.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오랜만에 혓바닥에 기름칠 좀 했다.
옆에 CP인 윤부장님도 있고, 또 장동준 피디님과 메인 작가도 있으니.
‘우리 애들 특집으로 몇 회나 뺄지 모르는데 필요하면 얼마든지 해줘야지.’
국장님은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유민 사장님을 이제서야 만나뵙네요. 그동안 얼마나 만나뵙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허허!”
“하하하!”
“허허허!”
국장님도 혓바닥에 기름칠할 생각 만만인가 보다.
하긴 우리 입장이나 저쪽 입장이나 그게 그거지.
우리는 서로를 원하고 있었으니, 시작부터 분위기가 훈훈했다.
고급 횟집.
우리는 룸 안에서 참치와 소주를 먹으며 함께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했다.
“사장님 제안을 전해듣고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어휴, 무슨 말씀을요. 저번에 정아가 출연했을 때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데요. 그때 생각했죠. 아! 다음에 또 특별한 일이 생길 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프로그램이니 당연히 생각이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하하!”
우리가 이렇게 대놓고 하하호호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이런 우리와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메인 PD, 장동준.
번들거리는 눈에 들어간 힘은 풀릴 줄을 몰랐고.
간혹 “흐흐.” 웃음을 흘리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움직였다.
내 시선이 자꾸 자신을 흘끗거리는 걸 알았는지.
장동준 피디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사장님,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 같은 연출을 바라는 건 아니라고 하셨죠?”
“아, 예. 다른 아이돌들처럼 자체 리얼리티를 만들까 고민도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포 앤 애프터’가 최고인 것 같아서요. 차별성이 아주 뚜렷하잖습니까. 자체 리얼리티로는 발끝도 못 따라가죠.”
사실 말은 이렇게 했는데, 그냥 아이돌 리얼리티를 공중파 황금 시간대에서 하는 거랑 다를 게 없다.
연출이야 뭐, 귀염뽀짝한 일반적인 아이돌 리얼리티와 약간 다르겠지만, 그리 차이가 나지도 않고.
오히려 이게 훨씬 더 이득이지.
“아무튼 전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그게··· 유정아 씨랑 이유진 씨랑 김별 씨랑 구서연 씨를 찍는다는 거네요?”
저쪽의 입장도 나와 비슷했다.
그저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멤버 구성이 미쳤으니까.
그야말로 환상적인 Win-Win이다.
“사장님, 녹화는 언제부터 하실 수 있겠습니까?”
피디님이 물었고, 내가 답했다.
“뮤비를 찍은 다음, 데뷔하기 직전에 찍는 편이 아무래도 찍을 것도 많고 시기도 적당하지 않을까요?”
“그럼 그때부터···.”
말끝을 흐린다.
그때부터 언제까지 몇 회를 찍을지 논의하고 협상하는 순간.
다들 얼굴에 웃음기를 띠고 있는데, 눈빛은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난 헛기침을 하고는 마찬가지로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상황 보고 천천히 결정하시는 건···.”
“그 말씀은···.”
“나중에 적당하다 싶을 때···.”
“그럼 그렇게 할까요, 사장님?”
“예. 하하!”
“흐흐흐!”
몇 회를 방송할 지, 언제까지 찍을지, 서로 확답은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화제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지 않는다면, 좀 더 이어가면 그만이고.
적당히 뽑아먹을 대로 뽑아먹은 뒤, 이 프로그램보다 더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 그만 찍자고 하면 되니까.
저쪽의 입장도 나와 비슷할 터.
“김사장님! 저희 평생 가시지요!”
“영광입니다, 국장님!”
당연하게도, MC를 제외한 다른 출연진은 없이.
우리 걸그룹의 단독 특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공중파 주말 예능, 황금 시간대에서 무한 리필 리얼리티를 확정지었다.
< 무한리필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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