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11화 (111/124)

< 진짜, 진짜, 진짜로 천재 >

회사의 작업실.

서연이는 밥도 먹고 씻고 와서 그런지 뽀송뽀송했다.

태연하고도 덤덤한 표정과 눈빛.

나 혼자만 조급했다. 빨리 들어보고 싶어서.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입술을 연신 핥고, 눈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빨리 들어보자고.”

“아니 그 전에 설명부터 해야 한다니까요.”

“원래 백문이 불여일견이야. 들어보고 설명해도 늦지 않다니까?”

서연이는 눈을 흘기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엄청 기대되시나 보네.”

“당연하지!”

“알았어요, 알았어. 빨리 틀게요.”

그녀가 만든 곡은 세 개.

곧이어 첫 번째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고개가 살짝 기울여졌다.

눈은 점차 크기를 키웠다.

“···어?”

홱, 고개를 돌려 서연이를 바라봤는데.

그녀는 그거 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멜로디 라인이··· 없어?’

반주에 멜로디 라인이 없는데, 가이드로는 확실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마치 힙합에서 훅을 부르는 것처럼.

“···!”

설마 힙합인가? 힙합을 접목시킨 건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판단이 안 됐다.

‘일단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 좋은데.’

하지만 곡 전체가 완전히 힙합 비트인 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많아질 즈음.

멜로디 라인 하나가 슬그머니 끼어들었고, 그 한 줄기의 멜로디 라인이 음악의 색깔을 확 뒤바꾸었다.

“...와.”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 멜로디 라인에 맞춰서 후렴이 시작되고 있었다.

‘얘는 진짜, 진짜, 진짜로 천재구나.’

감탄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있는데 입에서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거친 비트 위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는 듯, 잔잔한 피아노가 흐른다.

간단한 선율. 그리고 비트. 계속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하나의 피아노가 또 튀어나와 메인 피아노의 밑을 받쳐주기 시작했다.

점차 복잡하고 화려하게 변해가는 피아노.

핵심 멜로디와 비트는 그대로인데, 곡의 분위기가 이리저리 뒤바뀐다.

너무 격하지 않게, 부드럽고도 자연스럽게.

‘이건 뭐···.’

이런 곡을 하루만에 썼다고? 그저 삘 받아서?

그런데도 곡이 두 개나 더 남았다고?

이거, 미니 앨범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몸값은 또 얼마나 뛸까? 콘서트도 세계 투어로 돌아야지. 광고도 많이 찍을 테고.

이거 돈을 갈퀴로 쓸어담을 수 있겠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나는 서연이를 지그시 바라봤다.

쩝, 입맛을 다시고 있는 서연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다.

이런 곡을 썼으면서 저런 표정이라니.

내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랑한다, 서연아.”

“···네!?”

“우리 돈 엄청 벌 거 같아.”

“···.”

서연이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

우리는 회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곡을 듣는 것부터.

서연이가 하루만에 만든 세 개의 곡은 모두 하나같이 충격적이었다.

각각 크든 작든 새로운 시도가 들어갔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냥 노래가 너무 좋았다.

유진이, 별이, 정아, 그리고 서연이 자신의 색깔까지 모두 담겨있기도 했다.

이에, 우리는 미니 앨범을 발매하기로 했다.

전에 만들었던 곡까지 해서 총 4곡.

하나하나가 모두 정규앨범의 타이틀감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서연이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그쵸?”

별이가 물었다.

“그치. 진짜 너무 대단하더라.”

“전 엄청 마음에 들어요. 빨리 냈으면 좋겠어요.”

나를 바라보며 말하던 별이가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에 따라, 길게 매달린 귀걸이가 흔들렸다.

우리가 있는 곳은 ‘킬링 보이스’ 촬영장.

가수의 곡을 하이라이트 부분만 20여분 정도 부르는 컨텐츠인데.

우리는 이전에 이 유튜브 채널과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땐 세로 라이브였는데, 오늘은 킬링 보이스네.”

나는 별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땐 곡이 세 개밖에 없어서 여기에는 못 나왔었잖아. 여기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

“무슨 생각이요?”

“’이렇게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킬링 보이스에도 출연할 수 있겠지? 곡이 많아질 때쯤 되면 저쪽에서 사정사정하면서 제발 출연해달라고 매달릴 수도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어.”

별이의 입꼬리가 진하게 휘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출연하게 됐네요.”

이제 이 컨텐츠는 우리에게 있어 별로 특별하다고 할 것도 없었지만.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우리 정말 열심히 달려왔나 보네.”

우리에게 모이는 시선.

이제 촬영을 시작할 때가 됐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곧 피디는 우리에게 말했고, 별이는 담담한 걸음걸이로 세트 위로 걸어갔다.

바로 시작된 촬영.

“안녕하세요, 김별입니다. 오늘 이렇게 ‘킬링 보이스’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열심히 할 테니까 좋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곡은 과분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힙합 곡, ‘어제’ 들려드릴게요.”

언제나 그렇듯이, 또한 그때 촬영에서도 그랬듯이.

그녀는 목소리만으로,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역시 노래 하면 별이지.’

든든하다, 우리 메인 보컬.

***

김송송송의 힙합, ‘어제’가 1위를 달리고, 별이의 ‘킬링 보이스’가 유튜브 인기 동영상 1위가 되며 조회수 대박을 터뜨리고.

언제나와 같다.

우리에게는 이런 하나하나의 대박이 일상과도 같아졌다.

하지만 팬들은 아직도 많이 목말라했다.

유진이도 곡을 낸 건 하나뿐이고, 정아도 마찬가지.

서연이도 ‘Escape’와 ‘우리’ 빼고는 가수로서 정식 발매한 곡이 없다.

그러니 팬들이 갈증을 느낄 수밖에.

다만, 우리 모두가 아무런 곡을 내지 않고 있으니, 오히려 팬들의 기대감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제 그룹 준비하느라 다들 곡 안 내나 보네. 빨리 나와주세요! 빨리요!

-유민이 형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애들 곡 좀 빨리 내줘ㅠㅠㅠㅠ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이야.

-ㅋㅋㅋ완전 기대중! 근데 설마 싱글 하나 달랑 내고 쫑은 아닐 거라 믿어요. 진지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팬들이 점차 갈증을 격렬하게 토해낼 즈음.

유진이의 팬들은 간만에 나온 결과물에 환호성을 내지를 수 있었다.

클레이의 싱글 앨범.

홍보를 통해 한창 관심을 높여가고 있던 그녀의 싱글 앨범이 드디어 오늘 발매가 되었다.

비록 오롯이 유진이의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팬들이 간만에 열광을 내뿜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Kley – Carry On! (Feat. Lee Yujin) ]

전세계에서 주목을 쏟아내고 있는 클레이의 3년만의 컴백 곡에 참여했으니까.

“별아, 다른 건 좋은데 방금 여기서 발을 좀 더 벌려야 돼. 접었다가 팍, 접었다가 팍.”

“아, 네!”

“다시 갈까?”

열기가 내뿜어지고 있는 연습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광경이다.

별이와 서연이, 유진이와 정아가 서로 호흡을 맞추며 데뷔 준비를 하는 모습.

역시 안무는 유진이가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젠 얼마 남지 않았어.’

곧 있으면 뮤비 촬영이다.

다행이지. 사실 클레이의 컴백과 우리의 데뷔 사이에 짧지 않은 간격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그 간격이 그리 길지 않았다.

난 그녀들의 연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일단 선공개로 먼저 컴백한 클레이에 대한 반응과, 유진이가 출연한 뮤직 비디오에 대한 반응, 그리고 유진이의 피처링에 대한 반응들이 눈을 즐겁게 어지럽히고 있었다.

“좋네.”

입가에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

4600만 팔로워를 가진 미국의 틱톡커, 올리비아.

그녀의 주요 컨텐츠는 음악에 맞춰 추는 댄스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클레이의 앨범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3년만에 컴백하는 클레이는 지금 가장 뜨거운 화제의 중심이었으니까.

“제발 댄스 음악.”

티저로 들었을 때, 분명 신나는 음악이긴 했는데 또 모른다.

곡의 하이라이트가 어떤 분위기일지.

다양한 분위기를 소화하는 클레이라서 예측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신나는 곡이어도 문제가 없진 않았다.

피처링의 이유진 때문에.

“클레이는 댄스를 안 추니까 내가 만들어야 하나? 그런데··· 유진이 춤추면 어떡하지?”

댄스 틱톡커인 그녀가 유진의 댄스를 안 춰봤을 리 만무.

허나, 유진의 댄스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춤을 꽤 잘 추는 올리비아도 제대로 따라할 엄두를 못 낼 정도.

결국 유진의 노래에는 그 안무를 따라 추지 못하고, 스스로 간단한 동작을 만들어 올렸었다.

“분명 유진은 댄스 할 텐데···. 아니, 피처링이니까 안 할 수도 있어. 뮤비에도 안 나올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춰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그렇게 기다리길 몇 분.

마침내 클레이의 뮤직 비디오가 올라왔고, 올리비아는 잽싸게 영상을 클릭했다.

신나는 음악. 인트로부터 귀를 사로잡았다.

이 정도면 홍보를 하지 않았어도 무조건 떴을 것 같은 퀄리티.

클레이는 이번에도 본인의 이름값을 증명해냈다.

음악과 노래, 뮤비, 모두 다 최근에 본 것들 중 가장 취향에 맞았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유진의 목소리.

하지만 유진의 얼굴은 뮤비에 등장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유진의 안무가 나왔다면 그걸 하느라 진땀 뺐을지도 몰랐으니, 유진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건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클라이막스 파트, 여기서 유진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의 파트에서는 클레이가 나오더니, 클레이만 부르고 있는 클라이막스에서는 유진만 나오고 있다.

“설마···.”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말이 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황량한 풍경, 그리고 그 위에 저 멀리까지 쭉 뻗은 도로.

유진은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그 도로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클라이막스답게, 신나는 음악답게, 곡은 빨랐으며, 튀어나오는 소리들이 많았다.

전형적인 악기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소리들.

유진은 이 많은 소리들을 모두 댄스의 재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건 사기야!”

올리비아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외쳤다.

크게 뜬 두 눈은 유진의 안무를 열심히 담아내고 있었지만, 차마 다 보지도 못했다.

디테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스킬이 왜 이렇게 뛰어난지.

“Holy Shit!”

이런 높은 수준과는 별개로, 안무가 음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있다.

그래서, 이걸 안 하고 다른 안무를 추며 찍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연습해보고 약간이라도 소화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올리비아의 마음 한 켠엔 걱정과 심란함이 자리했는데.

다른 한 켠에서는 경악과 존경, 그리고 흥분이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유진!”

환상적이다. 댄스 비디오를 보고 있는 건지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는 건지.

음악이 메인인지 댄스가 메인인지 모르겠다.

이 정도면 클레이가 유진의 댄스 비디오에 피처링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저렇게 출 수 있는 거야!? 사람 맞아?”

순간, 리액션 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보고 어떻게 커다란 리액션이 안 나올까.

이 순간은 그들이 참 부러웠다.

갑자기 튀어나와 핵폭탄 같은 위력의 임팩트를 터뜨리고 있는 유진.

상당히 정적인 카메라로 찍고 있는 그녀의 댄스는 이대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첫 번째 클라이막스가 끝났을 때, 유진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클레이가 다시 등장했다.

“···.”

노래는 여전히 좋다.

하지만 방금 전 임팩트가 너무 세서 그런지 머리에서 열이 식지 않는다.

‘그건 못 할 것 같은데···. 불가능해. 절대 안 돼. 무슨 수를 써서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올리비아는 그 안무를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멍한듯이 뮤비를 보다가 1분쯤이 더 지났을 때.

또 다시 후렴 파트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유진이 나오지 않았다.

클레이, 그녀가 댄스를 시작했다.

“···!”

아까 유진이 춘 안무에서 극히 일부분만 콕 집어서 딴 안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게 아주 간단했다.

그러나 난이도만 낮을 뿐이지, 이것 역시도 곡에 착 달라붙어 묘한 중독성을 주었다.

왠지 따라하고 싶어지는 안무.

“이거야! 그래! 믿고 있었어 유진!”

올리비아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 포인트 안무 또한 유진이 만들었을 터.

어쩌면 처음부터 이 포인트 안무를 상정하고, 이어서 다른 안무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쉬운데 멋지다.

이 간단한 포인트 안무에서도 왠지 날것 같은 야성의 느낌이 살아있는 듯 느껴졌다.

당연히 첫 번째 클라이막스에서 그 댄스를 봐서 그럴 것이다.

이 포인트 안무로도 유진의 댄스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니.

뮤비가 끝나고.

올리비아는 바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1초라도 빨리 올려야 돼!’

뮤비를 본 사람들이라면, 비단 틱톡커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따라추는 영상도 쏟아질 것이다.

도저히 안 따라할 수가 없는 안무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올리비아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진짜, 진짜, 진짜로 천재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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