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가 좋아 >
벅스의 작업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이진국 감독은 조용히 그들을 지켜봤다.
작곡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서연과 벅스.
처음엔 콩트라는 컨셉을 살리기 위해 이것저것 재밌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없이 진지하기만 하다.
저들의 머릿속에 지금 콩트라는 단어가 아예 사라져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오히려 좋다. 비록 콩트지만 이 장면은 그대로 내보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둘이 만났는데 이런 장면이 없으면 오히려 섭하지.’
벅스는 서연에게 말했다.
“왜 자꾸 고민해? 힙합 비트 메이킹은 네가 하는 거에 비하면 정말 별거 없다니까? 처음 만든다고 겁 먹을 거 없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느낌 가는 대로 해봐.”
“너무 저한테만 다 맡기시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훅을 몇 번이나 할지, 어디에 배치할지, 벌스는 몇 마디로 할지 정도는 정해야 하잖아요. 저 둘이 랩도 쓰는데.”
“넌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 종수가 알아서 하고, 나도 일인 분은 할 테니까. 일단 네 센스를 보고 싶어서 그래. 넌 분명히 힙합도 엄청 잘 뽑을 것 같아서.”
“음. 알았어요. 그럼 진짜 고민 없이 갈게요?”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대사를 나누고 있다.
지금까지 김송송송으로 발매했던 곡들이 모두 대성공을 거뒀으니, 힙합 또한 멋지게 나올 터.
아무리 김별이 랩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이진국 감독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김별 곡인데.’
작업실 한 쪽에서는 김별과 김종수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김별은 종이 위에 펜을 든 손을 올리고선 미간을 좁히고 있었고, 김종수는 그런 김별에게 조언을 건네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하셨어요. 그리고 너무 라임 생각하지 마시고 내용에만 집중하셔도 돼요.”
“그래도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맞춰보는 게 좋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내용이 더 중요해요. 이것도 래퍼마다 다르겠지만 별 씨 같은 경우엔 랩 메이킹이 처음이기도 하니까 제가 말한 방법이 더 맞을 거예요. 팬분들도 이걸 더 좋아할 거고요. 별 씨한테 엄청 고퀄리티의 랩을 바라진 않을 테니까요. 오히려 내용에 더 집중할 겁니다.”
“네.”
“랩은 내용을 다 쓰고 그때 만들어보기로 해요.”
여기도 진지했다.
막힘 없이 술술 써내려가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내용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이 장면도 꼭 넣어야겠네.’
그래야 팬들이 그 내용에 더욱 집중하며 볼 거고, 혹시라도 나올 수 있는 김별의 랩 악플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거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작 30분 정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작업실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웅- 두웅- 묵직한 베이스가 소리를 늘어뜨리며 심장을 울려댄다.
그 위에 피아노. 한 손으로도 간단하게 칠 수 있을 만한 멜로디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모두가 하던 걸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까 벅스와 대화를 나눈 뒤로 헤드셋을 끼며 작업하더니, 뚝딱 이런 곡이 튀어나왔다.
역시 구서연.
벅스는 턱을 매만지며 씨익 웃었고, 김종수는 입을 벌리며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김별, 그녀는 이런 서연의 모습이 퍽 익숙한 지, 앞에 놓인 종이만을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비트에 대해 감탄하는 대신, 자신이 적은 것과 맞춰보는 듯한 모양새.
어느 순간 소리가 뚝 끊기고는, 서연이 물었다.
“괜찮아요? 이런 느낌?”
다들 고개를 끄덕였는데, 벅스는 감상을 말하지 않고 다른 말을 꺼냈다.
“이제 너도 랩 쓰자.”
“···!?”
“이제 다시 콩트로 돌아올 시간이에요, 구센세. 너 래퍼잖아. 래퍼면 랩을 써야지, 안 그래? 빨리 빨리 움직입니다!”
“···.”
이를 지켜보던 김종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번 것도 초대박 나겠네.’
원래 갖고 있던 확신이 더욱 견고하게 굳어졌다.
***
클레이의 대저택.
작업의 열기는 이곳 또한 만만치 않았다.
“와···.”
“역시··· 클라스가 확실하다.”
나와 유진이의 입에선 원색적인 탄성밖에 나오지 않았다.
초고퀄리티의 녹음실이 집 안에 있다는 점만 해도 놀라운데, 그녀는 더했다.
녹음 부스에 있는 클레이의 모습이, 그녀의 목소리가 이 저택보다 더 영화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3년간 투어도 안 하고 녹음도 안 한 사람이 저렇게 잘할 수가 있는 거지?
데뷔부터 빌보드 대박을 터뜨린 가수는 확실히 뭔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이러니까 성공하지. 이런 사람이니까 성공을 할 수밖에 없지.
클레이는 자신의 파트를 반 정도만 녹음한 뒤에 부스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녹음하는데 좋은 느낌이 들어요. 역시 유진 앞에서 녹음하길 잘한 것 같아요. 왠지 유진이 앞에 있으면 더 잘 나올 것 같았거든요. 유진한테 영감을 받은 곡이라서 그런가 봐요.”
“아뇨, 아뇨. 클레이는 자다가 깨워서 바로 불러도 잘할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좋았어요. 하하.”
유진의 말에 클레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별로 웃긴 포인트도 없었는데, 너무 재밌어 하고 있다.
“유진, 이제 유진 차례예요.”
“아직 클레이가 부를 부분 많이 남지 않았어요?”
“나머지 부분은 유진이 부르는 거 보고 나서 불러보려고요. 그때면 또 더 잘 나올 것 같아서요.”
“아··· 하하···. 네.”
유진은 나를 돌아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선배, 저 갑자기 책임감이 너무 막중해지는데요? 내 노래 듣고 오히려 실망해서 클레이 남은 부분 망치면 어떡해요?”
“그럼 잘 부르면 되지.”
“···진짜 대답에 성의가 요만큼도 없어.”
유진은 보란듯이 입술을 삐죽삐죽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부스 안에서 헤드셋을 쓰는데, 클레이가 입술을 핥으며 눈을 반짝였다.
아까 대문 앞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저런 모습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 콱, 하고 박힌다.
‘중독적이야. 계속 새롭고, 계속 짜릿해.’
내가 가수 하나는 정말 잘 키웠지.
가슴 속에 뿌듯함이 꽈악 부풀어오르는 듯한 느낌.
“틀어주세요.”
유진은 방금 전 녹음했던 클레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의 꼬리를 잡고, 유진이 입술을 열었다.
“와우!”
스피커로 들리는 소리도 좋고, 클레이의 탄성도 좋다.
참, 내가 가수 하나는 정말 정말 잘 키운다니까.
“그런 질문에 대답을 어떻게 성의 있게 하냐고. 어차피 이렇게 잘만 할 거면서. 말이 돼야 그럴듯한 대답을 하지.”
자신의 파트를 잘만 하고 나온 유진이.
이어서 클레이가 다시 나머지 부분을 녹음했고.
그렇게 녹음의 일정이 끝이 났다.
“선배.”
대저택을 나오는 길.
유진이가 나를 불렀다.
“응?”
클레이는 좀 더 놀고 가라며 절절한 손길을 보냈지만, 우리는 스케줄 때문에 그 손길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때문에 투정하려나? 아니면 다음에 언제쯤 시간이 여유로울지를 물어보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언제쯤이지? 일단 당분간은 계속 바쁠 텐데.
클레이의 곡이 나오면··· 더 바빠질 수도 있겠다.
‘아니, 아니지.’
그 화제까지 등에 업고, 우리는 우리대로 그룹 활동을 하면 더 좋을 거다.
화제에, 화제에, 화제가 등에 업혀 있는 가운데, 또다시 등 위로 커다란 화제가 쌓이려 한다.
데뷔하기 좋은 타이밍이 이때 말고 또 있을까?
‘없지. 절대 없지.’
물론 타이밍이 클레이의 앨범 발매 타이밍과 완벽하게 같을 순 없겠지만, 그 간격을 줄이는 게 내가 할 일이지.
좋다. 열심히 일해야지. 어째 이 일은 하면 할수록 뿌듯함만 늘어난다.
사장이 돼서 그런가, 아니면 애들이 너무 잘해서 그런가.
“역시 경험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나 봐요.”
“응? 뭐가?”
“저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는 거 있죠? 클레이가 저한테 영감을 받은 것처럼,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너 원래 아이디어 잘 나오지 않았어? 자랑하는 거지? 그래, 너 잘해. 알아, 나도. 나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엄청 많을걸?”
“그거랑은 좀 다르다니까요? 생각해봐요. 이런 대저택에서 클레이 같은 슈퍼스타랑 녹음도 하고, 저한테 엄청 잘해주잖아요. 이 정도면 영감이 떠오르는 조건은 다 갖춘 거 아니에요?”
“그러네? 네 말이 맞다.”
방금 전 내가 머릿속으로 짧게 세웠던 소소한 전략도 어쩌면 영감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예술하는 사람 아니라고 영감 못 받으리라는 법 있나.
나 또한 방금 전, 저 저택에서 너무나도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이 정도면 영감을 받아야지, 나도.
이제 보니 녹음실을 저 안에 차린 이유를 알겠다.
영감의 샘이네, 저기가.
“터가 좋아.”
“터요? 여기요? 당연하죠! 저게 얼마 짜린데.”
“얼만데?”
“모르죠. 그래도 엄청날 걸요?”
난 피식 웃었고, 유진이도 피식 웃었다.
***
아이돌 체육 대회가 시작됐다.
김별과 서연은 단 둘 뿐이었고, 단체전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팀으로 묶이진 않았다.
그룹이 대부분인 이곳.
5명, 6명, 일곱, 여덟, 그리고 열 명을 넘어가는 그룹들이 모여 앉아 있다.
그런 그들에 비하면 둘이라는 숫자는 매우 빈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둘은 초라해 보이긴커녕, 대부분의 시선과 관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별은 서연에게 담담하게 얘기를 꺼냈다.
“서연아, 나 착한 사람 된 것 같아. 이제 쟤네 봐도 정말 아무렇지가 않아. 아니··· 나쁜 건가? 내가 잘 돼서 이런 느낌을 받는 거니까.”
특정한 방향을 바라보며 얘기하지도 않았고, 누구라고 말하지도 않았지만.
서연은 이 말이 레모네이드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서연은 힐끔 그녀들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봤다.
몇 번의 사건으로 인해 레모네이드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팬들은 적지 않았다.
대형 기획사의 저력일 수도 있고.
하지만 팬들의 규모와 인기는 여기 모인 다른 그룹들도 만만치 않다.
전체로 놓고 보면 고만고만한 수준.
그런데 김별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주목은 레모네이드도 함께 가득 나눠 받고 있었다.
아티스트들도, 스탭들도, 경기장에 모인 팬들도, 김별과 레모네이드의 사건을 알고 있을 터.
서연이 힐끗 봤던 레모네이드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네가 착하고 나쁠 게 어딨냐? 당하기만 하고 네 할 것만 했는데. 난 쟤네 더 주눅 들었으면 좋겠어. 쟤네가 우리보다 훨씬 잘나갔어 봐. ‘아, 역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구나’, ‘정말 최고의 선택을 한 거구나’, 막 이러면서 비웃었을 거 아냐. 그게 진짜 나쁜 거지.”
“그러면 진짜 나쁜 건데, 그건 안 했잖아.”
“못 한 거지. 예전 일을 생각해봐. 잘나갔으면 정말 그렇게 안 했을까? 안 일어난 일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거긴 한데, 예전 일만 놓고 봐도 너는 쟤네 나쁘게 봐도 괜찮아. 안 나쁜 거야, 그건. 네가 딱히 뭘 한 것도 아니고.”
“그런가···.”
김별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을 때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
정장을 입은 유정아의 등장에 함성도 터지고, 곳곳에서 탄성도 흘렀었다.
‘화보를 찍으러 온 것 같다’, ‘역시 유정아는 다르다’, ‘우아하고 기품 있다’, 이런 소리들도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서는 우아한 분위기가 조금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
“정아 씨, 오늘 해설에 어떻게 임하실 생각이세요? 각오라도 한 말씀 시원시원하게 해주세요.”
“시원시원하게요? 독하게 하라고 부추기시는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유정아는 맑게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MC하겠다고 한 거거든요. 생각해보니까 제가 운동을 잘 못해서요. 선수는 좀 힘들겠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건 잘할 수 있어서. 그런데 그렇다고 억지로 컨셉 잡고 할 생각은 없어요. 유치하고 별로 같아요.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할 생각인데, 제가 평소에 그리 다정한 스타일도 아니고. 아니다. 사실 방송을 위해서 컨셉 잡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팬분들.”
“하하하! 미워하지 말란 말도 엄청 당당하게 하시네요?”
“사실 그냥 던진 말이라서 그래요. 미움 안 받는 사람이 어딨다고.”
탑스타 유정아의 출연에, 이곳에 온 집중을 쏟아붓고 있던 신준열 피디가 환하게 웃었다.
복 받았다. 온세상에서 유정아만이 가능한 이 색채, 색감, 냄새, 향기, 맛.
밉지 않고 멋있는데, 또 섹시하고, 고급스럽고, 매우면서 감미롭다.
‘이거지!’
아직 별 것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팍팍 오르고 있었다.
구서연과 김별의 출연, 그리고 MC석엔 유정아.
‘오히려 좋아.’
유정아가 MC를 한다고 했을 때, 신준열 피디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선수보다 분량이 많은 건 당연하고, 시청자들은 방송되는 내내 유정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번 시청률은 기대 무지하게 해도 되겠다.’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못할 테니까.
‘만약 독설이 쏟아지면, 독설 모음집으로 유튜브 영상도 올리라고 해야지.’
앞으로 몇 년간 효자 동영상이 될 수도 있다.
조회수가 천장을 뚫고 나갈 테니.
< 터가 좋아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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