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김송송송 양 >
공중파 중 마지막 연말 무대, MBS의 가요대제전의 연출을 맡았던 이현정 PD.
그녀는 설 특집의 ‘아이돌 체육 대회’의 연출도 맡고 있었다.
회의실.
출연자 회의에서 작가와 조연출은 우선적으로 그녀들의 이름부터 꺼냈다.
“WE엔터 걸그룹, 무조건 섭외해야 합니다.”
“대중들의 관심도가 엄청나요. 어쩌면 옛날처럼 역대급 시청률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유진은 미국 가서 안 되더라도 김별, 구서연, 그리고 유정아는 꼭 섭외해야 합니다. 세 명이 안 되면 두 명이라도, 두 명이 안 되면 한 명이라도요.”
이현정 피디는 그들이 눈빛을 빛내는 걸 보며,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누가 몰라? 그 사람들 출연하면 화제되는 건 지나가는 꼬맹이도 알아. 문제는 어떻게 섭외하느냐지. 그냥 대뜸 출연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래도 신인이니까 출연을-“
“그냥 신인이랑 같아!? 유정아가 이런 데 나올 것 같냐고! 우리 프로그램에 A급 나온 게 언제야? 연애의 장이다, 부상 입을 수도 있다, 관리 안 된다, 악마의 편집한다, 시간이 너무 길다, 갑질한다, 하면서 아무도 안 나오잖아.”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책임을 떠나, 이현정 피디가 말한 모든 것이 다 사실이었기에.
팬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이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나, 그걸 공식적으로 말하는 건 바보 같은 행위였다.
해외 VOD 수입도 짭짤할 뿐더러, 광고 수입도 좋고, 시청률도 나쁘지 않게 잘 나왔으니, 굳이 논란에 불을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제작진들끼리 고칠 수 있는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윗선의 입바람이 작용했으니.
아무튼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대형 기획사는 아예 이 ‘아이돌 체육 대회’에 보이콧을 하고, A급 이상 연예인의 출연도 거의 없어진 가운데.
현재 가장 뜨거운 화제 덩어리인 그녀들에게 대뜸 출연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안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뭐 좋은 아이디어 없어?”
“피디님께서 솔직한 의견을 원하시니,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김별이랑 구서연은 혹시 모르긴 한데 유정아는 좀 힘들 것 같긴 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아이디어 없냐고.”
이렇게 말하는 이현정 피디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봤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조연출은 말했다.
“정공법을 쓰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편집도 잘하고 분량도 많이 내주겠다 하면서요.”
“우리 후배가 ‘아이디어가 없다’는 말을 아주 멋드러지게 하는 재주가 있네?”
계속 회의가 이어졌지만 진척은 없었다.
남은 건 정공법 뿐.
어쩔 수 없었다.
“타방송사들이 이때다 싶어서 우리 시간대에 얘네 섭외하면··· 진짜 난리 나겠네.”
언제나 이 시간대에는 한 수 접어주며 피하던 타방송사들.
화제의 중심인 그녀들만 섭외할 수 있다면 시청률 역전은 무조건이었다.
그들도 분명 섭외에 혈안이 되어 있겠지.
“난 벌써부터 귀에 들리는 것 같은데···. 너희도 들리지? 부장님이 버럭버럭 소리치는 소리.”
회의실엔 한숨만이 푹푹 새어 나왔다.
***
간만에 집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정아.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황실장.
유정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가 안부 인사를 하러 전화할 리는 없으니, 분명 일을 시키는 것일 터.
정아는 쯧, 혀를 차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아야.
“네.”
존댓말을 하는 유정아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반말을 하는 황실장의 어조는 조심스러웠다.
-지금 통화 되지?
“네.”
-하하. 다행이네. 말할 게 있는데, 한 번 끝까지 들어봐.
“무슨 어려운 얘기를 하시려고 이렇게 겁을 주세요.”
전혀 겁을 먹은 것 같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황실장은 이를 지적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이돌 체육 대회라고 알지? 거기서 너희 세 명이 같이 팀으로 묶어서 나오면 어떻겠냐고 했거든. 근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거기 나가서 고생할 급은 아니잖아. 그래서 일단 거절했거든?
진짜 거절했을지 안 했을지는 모를 일이나, 어쨌든 저 프로에 나가라는 소리라는 것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거기서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가뜩이나 운동도 못하고, 이제 그룹으로 데뷔하기로 했는데.’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떼려 했는데, 그가 한 번 끝까지 들어보라고 말했으니 일단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거기서 우리는 종목 하나만 해도 되고, 다 해도 되고, 우리 마음대로 하래. 선수 말고 MC를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고.
“아, 그래요?”
-그래서 우린 육상이나 씨름처럼 부상 위험 있는 종목 대신, 양궁이랑 E스포츠, 그리고 투구만 하면 참 좋을 것 같더라고.
“그런데 나가는 목적이 뭐예요? 홍보는 아닐 거고.”
홍보일 리가 없다.
이미 홍보를 할 만큼 하기도 했고, 홍보를 할 거면 차라리 다른 프로를 나가는 게 낫다.
나와달라는 곳은 차고 넘쳤으니까.
-우린 걸그룹을 할 거니까. 이쯤 돼서 또 한 번 화제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너희가 팀으로 묶여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 설 특집이잖아. 이거 온가족들이 모여서 보는데, 너희가 같이 출연하면 누구 얘기만 하겠어. 다 너희 얘기밖에 안 하지.
그러니까 결국 홍보라는 거다.
원래 홍보라는 건 끝이 없는 법이라서 그 효율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듣고 보니까 효율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네.’
다른 아이돌이라면 효율이 지독하게도 안 나올 거다.
하지만 황실장의 말마따나, 자신들이 저기에 나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시청률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온전히 우리한테 집중하겠지.’
부상의 위험성도 거의 없다.
양궁, E-스포츠, 투구만 하기 때문에 부상이 일어날 확률도 매우 낮다.
“음···. 근데 애들은요? 애들한테는 말해봤어요?”
-응. 너 하면 하겠대.
사실 악명만 높았지, 그녀는 여기에 출연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름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아이돌에 대한 꿈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을 때, 저곳에 출연하는 상상을 몇 번이나 하기도 했고.
또한 널리 퍼진 악명의 요소들을 대부분 피해가는 입장이라는 걸 팬들도 얼추 유추할 수 있을 터.
그럼 팬들 또한 하나의 이벤트로서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알겠어요, 할게요.”
-진짜!?
“네. 더 하실 말씀 없죠?”
트레이닝 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는 황실장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근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정아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번 돌려봤는데.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에, 눈살이 팍 찌푸려졌다.
세 개의 종목 중 하나인 ‘투구’.
“이거 구브렐이 주인공이잖아.”
왠지 거기서 들러리만 서다가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투구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도 다 자신이 없었으니까.
정아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황실장에게 연락했다.
-어, 정아야.
“저 그냥 아무 종목도 안 하고 MC만 볼게요. 그래도 홍보에 도움 되는 거 맞죠?”
그녀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촌철살인.
다른 건 몰라도, 독설만큼은 거기에 출연할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으니까.
***
김별은 거울을 보며 머리에 쓴 벙거지 모자를 슬쩍 만져봤다.
시선은 살짝 내려가 목에 닿았다.
“금 목걸이···.”
그것도 체인이었다.
그 아래엔 두껍고 펑퍼짐한 후드 집업.
바지도 펑퍼짐했고, 손목엔 삐까번쩍한 메탈 시계와 골드 체인 팔찌가 걸려 있었다.
김별은 주위를 슬쩍 돌아보다가, 바로 옆에 아무도 없는 걸 보고는 슬쩍 입을 열었다.
“에이 요.”
크흠, 헛기침한 김별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간이 대기실 밖으로 나와, 촬영 현장을 바라봤다.
이전의 촬영들과는 비슷한 듯 조금은 다른 느낌.
전에는 길바닥에서 시작했다면, 지금은 어느 아파트 단지 내 배드민턴장이다.
헐겁게 묶여 늘어진 네트를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김송송송 씨, 힙합이 하고 싶으시다고요?”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카메라들이 자신을 찍고 있었고, 그 뒤에서 이진국 감독이 옅게 웃음 짓고 있었다.
김별, 아니 김송송송은 말했다
“예. 다섯 살 때부터 저는 피아노를 쳤어요. 영재였죠.”
“네?”
“트로트가 1악장, 헤비메탈이 2악장이었다면, 힙합은 3악장이에요. 이번엔 무조건 성공해 보일 거예요.”
“···예, 파이팅하시고.”
김별의 입가에 어린 아이 같이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졌다.
이것도 하다 보니, 성장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자, 오만이었다.
이진국 감독은 물었다.
“그럼 오늘 오디션 볼 랩도 준비하셨겠죠?”
“···오디션···이요?”
애초에 힙합을 한다는 것도 의상을 보고 눈치 챈 거였다.
“심사위원 분 나와주세요.”
김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익숙한 세 명의 얼굴이 보였다.
“자네가 그 유명한 MC김송송송 양인가?”
‘쇼 앤 프루브’에서 심사위원을 봤고, 김종수와 팀을 이뤘던 프로듀서이자 래퍼, 벅스.
“흠흠. 엊그제 낸 정규앨범 26집은 인상적이었어요.”
웃음을 꾹 참으며 어색하게 말하는 김종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 맨! 뭘 봐! 하앙?”
오늘은 깡패로 컨셉을 잡았나 보다.
김송송송은 물었다.
“서연아, 원래 역할은 뭐였어?”
“보면 몰라!? 맨! 에이! 요!”
잔뜩 화가 나 있는 구서연.
과연 무슨 역할을 전달받았을까?
어쩌면 프리 롤인지도 모르겠다.
맨날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김종수는 물었다.
“그럼 준비한 랩부터 들어볼까요?”
준비한 랩이 없으니, 프리스타일 랩을 시키고 있는 거다.
김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흑역사를 남기기에 그 무엇보다 효과가 좋다는 프리스타일 랩.
이건 보통 각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헤이이이! 빨리 해! 매애애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윽박지르는 서연을 뒤로하고, 김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번쩍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에이! 에이! 오늘은 나도 래퍼지! 그리고! 어! 또! 나는···! 나는 있잖아···!”
“···.”
“···.”
“···.”
“···나는··· 있잖···아.”
김별의 얼굴이 급격하게 붉어졌는데.
신기하게도, 주변 모두의 얼굴도 함께 붉어지고 있었다.
김종수, 벅스, 구서연 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탭들까지도.
***
할리우드 영화 속 세트장에 들어온 것 같다.
역시 천조국. 저택의 스케일이 남다르다.
“유진!”
그 대저택의 대문을 지나쳤을 때, 집에서 클레이가 튀어나왔다.
예의를 차리려는 건지 곱게 차려 입은 복장으로 달려온다.
클레이가 우리 앞에 서기 전에, 유진이는 웃는 얼굴을 하며 복화술로 말했다.
“선배, 선배, 저 어떡해요? 초면인데 엄청 반가워 하는데요?”
“복화술로 안 해도 돼. 어차피 한국말이라서 못 알아들어. 그리고 미국 체질이면서 왜 이제 와서 이래?”
“그건 스케줄 할 때나 그런 거고요.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 하이! 클레이! 나이스 투 밋 츄! 아임 유얼 빅 팬!”
우리 앞에 멈춘 클레이.
난 저 표정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동경하는 스타를 만난 순수한 팬의 얼굴이 딱 저랬지.
유진이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클레이의 두 손이 허공을 배회하며 떨리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안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유진, 들어와요. 기다렸어요.”
우리는 피처링을 녹음하기 위해 이 저택에 왔다.
클레이의 안내에 따라 우린 집 안으로 들어갔고, 클레이의 에이전트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클레이는 그때부터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진이를 보기 전에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유진이의 무대를 어떻게 보게 됐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뒤에 얼마나 파고들었으며, MBS에서의 특별 무대를 보고 또 얼마나 커다란 영감을 받았는지.
유진이와 나는 얘기를 듣는 내내,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클레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으니까.
‘유진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고 한 것은 우리의 막연한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있었다.
클레이는 모든 설명을 마치고는, 말미에 덧붙여 말했다.
“내 뮤직 비디오에 유진이 출연해서 댄스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안무는 당연히 유진이 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후렴 부분엔 저도 간단하게나마 따라할 수 있을 동작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무대에서 노래 부르면서 간단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포인트만 있으면 돼요. 유진, 가능할까요? 아니면 무리한 부탁일까요? 거절해도 돼요. 말했다시피 이미 너무 큰 선물을 받았거든요.”
만나자마자 극찬에 극찬을 들어서일까.
“선배, 저 이거 해도 되죠?”
내게 묻는 유진이의 눈동자는 이미 열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미국 진출을 미루고 국내 활동을 한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여기서 내가 대답할 말은 정해져 있다.
“당연하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에 아군이 생겨 있었다.
그것도, 한껏 웅크리고 있다가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는 거인으로.
‘정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네.’
< MC김송송송 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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