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04화 (104/124)

< 또 하나의 새로운 물결 >

뉴욕의 방송국 스튜디오.

이 토크쇼는 저번의 라디오와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 하면, 시청자의 규모가 다르고, 현장이 다르고, 파급력이 다르다.

그것도 미국의 3대 토크쇼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제이슨 쇼’라면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도 유진이의 태도는 한결 같았다.

이제 곧 녹화가 시작되는데, 그녀는 꼰 다리를 까딱거리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여유로울 수가 있지?’

다른 나라들을 모두 정복하고, 미국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와인드업마저도 토크쇼 앞에선 긴장했던 기억이 선명한데.

나는 그녀에게 이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 질문 때문에 의식하면 어떡해.’

의식해서 긴장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의식하는 것 없이 그냥 이대로 편하게 방송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이에 대해 자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녀는 입을 열어 내게 물었다.

“선배, 저 이상하죠? 한국에서 뭘 해도 이것보단 더 떨렸을 것 같은데 지금은 하나도 안 떨려요. 미국 체질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사람들이 행동하는 게 자유롭잖아. 분위기가 이래서 여기에 적응한 걸 수도 있어. 또 네티즌들도 까칠하지 않고, 인터넷 반응 같은 게 그렇게 피부에 와닿지도 않잖아.”

한국에서야 인터넷에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나고, 이를 직접 읽으며 분위기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어떠한 반응이 나오건, 그걸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어디서 파악해야 하는지도 모를 거다.

기껏해야 구글링 정도가 끝이겠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녀가 매니저를 했더라도, 영어를 잘 못하는 로드 매니저에게 이런 것까지 시키지는 않았으니.

그렇기 때문에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거다.

국내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면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 하며 조심하겠지만.

여기에선 어떠한 행동에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게 된 것.

‘이런 걸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난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를 말했을 때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는 굳이 실험해보지 않아도 뻔했으니.

미국에 와서 유진이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고 있지만, 난 얘에 대해서 대체로 잘 알고 있거든.

지금은 얼핏 보면 정아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가수로서의 정아가 아닌, 배우로서의 정아.

그녀는 어느 곳에 가든, 어느 분위기에 던져놓든, 그녀의 색채를 유지하며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그게 정아의 인기 요인이기도 했는데.

지금의 유진이에게선 그런 정아와 비슷한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슈퍼스타, 또는 탑스타.

그 아우라가 유진이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제이슨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유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한국에서 온 가수, 이유진입니다.”

방청객 사이로 열띤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인지도는 전미를 떵떵 울릴 정도는 아니었으나,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제이슨, 자신을 포함해서.

“와우···. 유진, 당신은 모를 거예요. 제가 얼마나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는지.”

“하하. 정말요?”

“제가 방송에서 몇 번이고 말했는데 전 영화를 엄청 좋아해요! 제가 배우니까 당연한 거기도 한데, 이 말을 안 믿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몇 번이나 강조하죠. 전 영화를 사랑해요! 절 배우로 캐스팅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난 배우라고! 다들 날 코미디언으로 알고 있어서 매번 강조하는 거지만 난 배우라고!”

제이슨은 배우이지만 배우로서의 인기는 없었다.

하지만 웬만한 배우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다.

모두 이 ‘제이슨 쇼’ 덕분.

그는 자학 개그를 하며 방청객들을 웃게 만들었고.

유진도 통역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전 한국 영화도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스타는 다시 무대로’도 봤죠. 거기서 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봤어요. 와우. 와우! 와우! 어느 인터뷰에서 봤는데 그 장면이 촬영 준비 중에 몸 풀다가 만들어진 거라면서요?”

제이슨은 영화를 통해 유진의 팬이 됐고, 그 장면 때문에 유진의 뮤비와 무대를 찾아봤다.

그래서 오늘 한껏 기분이 들뜬 상태였다.

“맞아요. 촬영 준비 중에 숨어서 몸을 풀다가 보니까, 갑자기 현장이 엄청 조용해진 거예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나와보니까-“

유진은 영어 없이 한국어를 쓰는데도, 마치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말을 내뱉었다.

눈을 마주치고, 부드럽게 웃으며, 집중하게 만드는 제스쳐를 살짝살짝 취하고 있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 그 실루엣을 갑자기 실제로 보게 되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촬영 준비 중에 숨어서 몸을 풀었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혹시 누구한테 쫓기고 있었어요? 아니면 누가 총을 겨누면서 ‘이봐! 여기서 대놓고 몸 풀면 쏴버릴 거야!’ 이렇게 협박이라도 하던가요?”

“하하. 그건 아니고요. 영화를 보셨으면 정아 언니를 아실 거예요. 유정아요. 언니랑 같이 있다가-“

비하인드를 푸는 이유진.

제이슨은 그녀에게 눈과 귀가 빠져들어가고 있는 걸 느꼈고, 이는 방청객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제가 영화 때문에 유진 씨 팬이 됐거든요. 정말이요. 농담이 아니라, 뮤직 비디오랑 무대, 인터뷰 장면들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렇다고 스토커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물론 미국에서 활동했으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하하. 생각했던 모습이랑은 조금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뭐가요?”

“그냥 전체적으로요. 분위기가. 마치 스눕 독이랑 인터뷰하는 것 같아요. 혹시 녹화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시원하게 빨아들인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농담하면 프로그램 폐지돼요.”

“그래서 분위기가 왜 다르냐니까요?”

“글쎄요. 근데 저 가수로서는 인터뷰 안 해요? 저 소개할 때도 가수라고 했었는데. 그리고 지금 빌보드도 무려 20위예요.”

.

.

.

제이슨과 유진이 서로 별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방청객들이나 제이슨이나 유진이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어로만 말하는데 이럴 수가 있나?’

일방적으로 대답만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로 하여금 대화에 집중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저런 스킬을 쓴 적은 없으니,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닐 터.

나는 이 재미있고 희한한 현장을 눈에 담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주무기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네.’

아까 난 ‘혹시 미국 체질일까’ 묻는 그녀에게 얼떨결에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하긴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살벌하고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음악과 무대만으로 슈퍼스타가 되는 건 무척이나 힘들다.

플러스 알파의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한 것.

어쩌면, 미국 체질이라 부르는 그녀의 이 분위기가 그 알파가 될지도 모르겠다.

.

.

.

드디어 무대.

유진은 댄서들과 함께 눈을 마주치며 대형을 갖췄다.

‘이건 오랜만이네.’

미국에 진출한 뒤로 처음 보이는 무대인 데다가, 대중 노출도가 굉장히 큰 중요한 무대였다.

그래서 유진은 미국 대중들을 사로잡기 위해 최고의 무기를 준비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나 모두 반응이 좋았던 퍼포먼스.

이 무대 하나로 유진은 단번에 화제의 중심에 오를 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미국에서 열린 ‘K-Pop Concert’에서의 그 특별 무대 퍼포먼스였다.

유진은 방청객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컨디션이 좋다. 몸도 가볍고, 목 상태도 느낌이 좋다.

라이브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긴장이 전혀 되지 않는 가운데.

관객들까지 앞에 있으니, 더욱 몸이 근질거린다.

찌릿찌릿, 몸이 날뛰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일 초라도 빨리 빗장을 풀어달라 외치며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음악이 흘러나오며, 닫혀 있던 빗장이 활짝 열렸다.

***

밤 11시.

마이클 부부는 이번주도 어김없이 제이슨 쇼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영화 얘기로 포문을 여는 제이슨과 이유진.

부부는 말했다.

“저 영화가 유명한가?”

“유명한가 본데? 한국 영화 인기 많잖아. 이번에 또 재밌는 거 나왔나 보지.”

“으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갔다.

홍보를 하는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아서.

“그런데 쟤 엄청 인기 많은가 본데? 우리만 모르는 월드 스타 아니야?”

“그런 것 같아. 딱 봐도 월드스타 같잖아. 제이슨 반응이나 관객들 반응만 봐도 그렇고.”

“실루엣 씬은 대체 뭘 말하는 거야? 과장은 아니겠지?”

“저 여자가 말하는 걸 보면 과장은 아닌 것 같아. 담백하게 말하잖아. 부풀리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아.”

유진은 척 보기에도 월드 스타의 아우라를 풍겼다.

보통 한국인들은 겸손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제이슨 쇼에 출연하면서도 저리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대단한 스타인 걸까?

마이클 부부는 이유진이 출연하고 있는 쇼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오! 빌보드 20위 가수라고? 난 왜 몰랐지? 자기도 몰랐지?”

“몰랐지. 그래도 우리가 너무 트렌드에 뒤처진 건 아닐 거야. 미국에서 처음 활동하는 거라잖아.”

“처음 활동하고 있는데 벌써 20위에 오른 거면, 진짜 월드 스타 맞나 보네.”

추론의 과정이야 어찌 됐건, 결론적으로 보면 썩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많은 나라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월드 스타가 맞았다.

전미에서도 지금 제이슨 쇼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었고.

그리고 드디어 무대.

유진이 댄서들과 함께 대형을 갖추었다.

마이클 부부는 유진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어느새 마이클 부부는 대화 없이 방송에 한껏 집중해 있었다.

그녀에 대해 전혀 몰랐음에도, 방송을 보며 관심이 생기고, 기대감이 피어난 까닭이었다.

그렇게 음악이 시작됐을 때.

“···What?”

“Wow!”

마이클 부부의 머릿속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녀가 월드 스타인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영화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으며, 미국에서의 활동 없이 빌보드 20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이슨 쇼에 출연했으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이유도, 대형을 갖추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은 이유도.

모두 이 퍼포먼스 하나로 말끔하게 설명이 되고 있었다.

홀린 듯한 눈으로 입을 떡 벌리며 TV를 시청하는 마이클 부부.

등허리에서부터 올라온 소름이 온몸에 퍼졌다.

무대를 두 눈으로 보고 있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일 초, 일 초가 경악스러우며 신비롭다.

아무리 스치듯이 봤을지언정, 그동안 많은 K팝 가수들을 봐왔는데.

저렇게까지 수준 높은 무대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춤을 저렇게 추는데 이런 라이브가 가능한 거야?”

“말도 안 돼!”

부부의 뇌리에 몇몇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대중음악 역사상, 거대한 물결을 일으킨 위대한 아티스트들.

이미 K팝의 물결이 미국과 세계를 덮친 상태였지만, 그녀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물결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무대가 모두 끝난 뒤.

스튜디오엔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이유진을 오늘 처음 접한 마이클 부부의 반응은 방청객들과는 사뭇 달랐다.

기분 좋은 충격이 뒷통수를 강하게 때린 듯, 멍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 오랜만에 영화 보러 갈까?”

둘이 볼 영화는 정해져 있었다.

“좋아.”

아까 방송에서 언급됐던 실루엣 씬.

그 댄스가 꼭 보고 싶었다.

< 또 하나의 새로운 물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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