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02화 (102/124)

< 그냥 우리집 가자니까? >

일본의 국민 여동생이 되어, 데뷔 이래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호시노 하즈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시상식을 챙겨보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은인 구서연과 그녀들이 함께하는 무대를 꼭 생방송으로 챙겨보고 싶었으니까.

“엄청 잘한다.”

후반부의 상을 휩쓴 와인드업.

그들이 펼치는 스페셜 무대는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잘했다.

그런데 왜일까?

인기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이렇게나 괴물 같은 와인드업이 왠지 조금은 약해 보이기도 했다.

이는 아마도 그녀들의 지난 무대가 떠오르고, 앞으로의 무대가 기대되기 때문일 거다.

무대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천재 신인이 네 명이나 등장하는 바람에.

한 명 한 명이 강한 그녀들이 심지어 뭉치기까지 해서.

그래서 와인드업의 지금 무대가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직 대상을 시상하지 않은 지금.

와인드업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마침내 화면에 그녀들이 등장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얼굴들.

“키타!”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현장에서는 이 환호성이 얼마나 크게 들릴까?

호시노도 마음 속으론 그 환호성에 크게 보태고 있었다.

다만, 혹시 무대를 조금이라도 놓칠까 염려되어 애써 참을 뿐이었다.

‘너무 예뻐!’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잡고 있는 그녀들.

호시노는 그녀들 각각을 모두 솔로로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이 네 명의 멤버가 함께 있는 모습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한국에서의 팬들도 그렇겠지만, 구서연의 인기가 확연하게 높은 일본에서도 그녀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아마 지금도 인터넷에선 난리가 나고 있을 터.

무대가 끝나면 또 얼마간은 그녀들이 화제의 최상위를 달리며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합치는 걸로 봐야겠지?’

저번주도, 저저번주도 그랬듯이, 이 합동 무대는 5분도 되지 않을 거다.

하지만 호시노는 그 5분도 되지 않을 시간을 자그마치 일주일 내내 기다려왔다.

그래도 무대가 끝난 뒤엔 아쉬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을 터.

짧다고는 하나, 그녀들은 언제나 최고, 그 이상의 무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음악이 흐르고 무대가 시작됐다.

도입부는 유정아.

그녀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잡히고.

그녀는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거리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이며 노래를 불렀다.

-징징! 심장을 울려대요 징징!

“귀, 귀여워···!”

첫 파트부터 헛숨이 들이켜졌다.

과연 유정아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호시노는 직감했다.

이 무대의 파급력은 지금까지의 무대들 이상일 것이라고.

***

같은 시각, 영국에서도 그녀들의 팬들은 시상식을 보고 있었다.

김별의 팬이었던 올리버, 그리고 올리버의 추천에 따라, 펍에서 김별의 영상을 보고 입덕했던 친구 제임스.

둘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난 원래 이렇게 귀여운 거 안 좋아하는데···. 느낌이 이상해.”

“그게 바로 좋아한다는 뜻이야. 나도···. 그렇고.”

둘은 넋 나간 표정을 지으며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조합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비주얼, 댄스, 보컬, 분위기, 개성, 성격, 캐릭터.

그냥 다 좋았다. 그녀들을 보고 누가 안 좋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밝고 경쾌한 멜로디를 노래하는 그녀들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다.

곡의 컨셉마다 보컬의 컨셉까지도 바뀌는 모양.

하지만 그 무엇보다 컨셉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건, 바로 그녀들의 행동이었다.

서연은 윙크를 남발하며 입술에 번갈아 검지 손가락을 올렸고.

환하게 웃은 김별은 허리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Oh, my god!”

“미쳤잖아! 이건 미쳤다고!”

김별이 영국에서 활동하고 유럽으로 활동반경을 넓혔을 때까지, 둘은 몇 번이고 김별의 무대를 찾아 직접 두 눈으로 봤었다.

그때 현장에서 받았던 환희와 충격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항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팬들을 급격하게 늘렸고, 관객들은 그런 그녀에게 기꺼이 열광했다.

아마 그때 김별을 좋아하게 된 사람이라면, 이 무대를 봐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까?

평소에 이런 귀엽고 상큼한 K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이 무대만큼은 다르게 느껴질 거다.

올리버와 제임스, 자신들이 그렇듯이.

‘이런 건 이렇게 단발성으로 끝나면 안 돼.’

그녀들이 함께 더 많은 무대를 했으면 좋겠다.

또한 그녀들이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쌓았으면 좋겠다.

같이 뮤직 비디오를 찍고, 인터뷰도 하고, 다양한 쇼에도 출연하고, 더욱더 활발하게 많은 활동을 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팬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이것만은 눈곱만큼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이 레전드 무대를 계기로 전세계 팬들은 더욱더 열띤 반응을 보여줄 게 분명했으니까.

“그녀들은 무조건 그룹으로 데뷔해야 돼. 안 하면 그건 범죄라고!”

“지극히 옳은 말이야. 안 합치면 그건 세기의 멍청한 결정이 될 거야!”

영국과 유럽 팬들의 눈에 횃불이 켜졌다.

***

미국, LA의 호화스러운 대저택.

평소 클레이의 집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로 삭막하고 냉랭하며 어두운 공기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과 같은 이른 아침에도 그랬고, 해가 쨍쨍한 오후에도 그랬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조금 달라졌다.

때는, 이유진의 ‘K팝 콘서트’에서의 특별 무대가 미국에서 은은한 화제에 올랐을 때.

클레이의 집에 온기가 서서히 피어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한때는 공장장이라고 불릴 만큼 왕성한 활동을 했던 싱어송라이터 팝 싱어, 클레이.

전세계의 사랑을 받는 빌보드 슈퍼스타였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서서히 영감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슬럼프가 와서 활동을 멈추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의 곡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대중들이 사랑하는 그녀의 색깔을 온전히 살릴 수 있는 건 자신뿐.

다른 이들의 도움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그녀의 머릿속에 서서히 ‘포기’라는 단어가 지배하게 될 즈음.

이유진의 무대를 보게 된 것이다.

인터넷과 연결된 거실의 TV 앞.

클레이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뚫어져라 시상식을 시청했다.

‘제발. 제발. 이제 조금이면 돼.’

이유진의 무대를 처음 접하고 튀었던 머릿속 스파크.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꼈던 영감의 자극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클레이는 계속 이유진을 파고들었고, 또 괴로워했다.

영감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으며, 불씨는 붙을 듯 말 듯 붙지 않았으니까.

“딱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돼···.”

클레이는 빌고 또 빌었다.

유진이 만약 이번에 약간의 자극만 더 준다면, 지금껏 수도 없이 갈망했던 그 감각이 다시 되살아날 것 같았으니.

‘이제는 제발!’

TV 속 그녀들의 무대가 시작되고, 중반부를 지나려 할 때쯤.

유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고.

그녀는 수줍은 듯 살짝 망설이며 얼굴에 꽃받침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화르륵-

스파크가 불씨를 만들어냈다.

“···!”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애교’라고 부르는 것은 클레이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허나, 항상 유진의 댄스로만 자극받아왔던 클레이에게, 유진의 방금 전 모습은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되었다.

영감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형태를 갖추지 못하며 머릿속에서 무채색으로 출렁거리던 그 무언가의 성질을 바꾸는 임계점.

희한하다. 어째서 저 ‘애교’가 이런 마법을 부릴 수 있던 건지.

영감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 제멋대로이며, 종잡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화아악! 빛을 뿜어내듯 밝아지고 있는 머릿속.

영감이 폭발적으로 샘솟는다.

꺼져 있었던 불씨가 드디어 불을 퍼뜨리는데, 그 크기가 웬만한 산불보다도 크다.

클레이는 직감했다.

이 거대한 영감은 한동안 절대 꺼질 일이 없을 거라고.

클레이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 황홀한 감각을 만끽했다.

쩍쩍 갈라질 만큼 메말라 있던 땅에, 굵은 소나기가 세차게 퍼붓고 있다.

다시 뜬 그녀의 눈동자는 방금 전과 전혀 다른 눈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등을 켠 듯 번쩍번쩍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

클레이의 입가에 희열에 가득 찬 미소가 걸렸다.

***

12월에는 커다란 이벤트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와 크리스마스 이브.

내게 있어, 이브와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일하는 날’이었다.

어찌나 이벤트가 많은지.

연말이기도 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쉬면서 보낼 수가 없었다.

행사가 많았으며, 연말 무대에 대한 준비, 팬들과의 이벤트, 생방송, 녹화, 라이브 방송, 공연, 팬사인회, 팬미팅 등등.

일할 건 많았고, 그건 실장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장이 되니까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내 앞엔 MBS에서의 합동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그때와는 천지차이로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하아. 하아.”

“후우!”

크리스마스 이브에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하면서도, 구김 없이 미소를 짓는 애들.

얘네들은 이번이 가수로서 보내는 첫 번째 이브였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날에 연습하면서 미소를 짓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모두 같이 있어서 괜찮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브와 크리스마스에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나는 얘네와 함께 보내고 싶었을 테니.

“연습은 이쯤이면 됐어.”

내 말에 애들이 뒤를 돌아봤다.

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요?”

지금까지 3번의 합동 무대를 준비하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중간중간 다른 스케줄도 있었기에 오롯이 무대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쉴 땐 쉬어야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이브잖아. 우리도 조금은 즐겨야지.”

정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간만에 오빠가 맞는 말 했네. 그럼 와인이나 먹자. 오늘 같은 날은 기분 좀 내야지. 다 같이 우리 집으로 가자. 좋은 거 있어.”

“···술은 조금 참자. 대신 MBS 무대 끝나고 얼마든지 먹어.”

그래도 크게 아쉽지는 않은지, 정아는 혀만 살짝 차고 말았다.

서연이는 아무래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그럼 이제 뭐 해요?”

“···.”

“···.”

“···.”

다들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는 모양이다.

이러다간 할 게 없다는 이유로 연습을 이어갈지도 모르겠다.

‘그건 너무 절망적인데?’

난 없는 아이디어를 쥐어짜내어 말했다.

“케이크나 먹을까?”

“오!”

“케익!”

“좋은데?”

“좋아요!”

다들 눈을 반짝 빛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디서요? 설마 여기서?”

유진의 물음에 생각이 턱, 막혔다.

“그러게···. 어디서 먹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짧고 달콤한 휴식은 단지 이브라는 이유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시상식에서 대상은 모두의 예상대로 와인드업이 받았는데, 대중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았다.

모두 우리에게, 우리의 수상에, 우리의 행보에, 우리의 무대에 관심을 쏟아부을 뿐이었다.

대상, 최고 앨범상, 최고 음원상보다 더 주목받는 신인상과 본상, 그리고 최고 프로듀서 상, 베스트 퍼포먼스 상이라니.

그녀들이 상을 받은 것도 축하할 만한 일이고, 연말에 모든 화제를 독식한 것도 축하할 만한 일이었으며.

이토록 멋진 올해를 우리끼리 마무리하며 자축하는 일이었다.

또한, 호재는 또 하나 더 있었다.

‘기어이··· 20위에 올랐어.’

유진이의 데뷔곡, ‘I Am Addicted’.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20위에 이름을 올려버렸다.

미국에 진출하기 전에 빌보드 20위에 들다니, 이건 그냥 넘어가면 섭하지.

이렇듯, 우리에겐 축하할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늘 만큼은 연습실에서 궁상맞게 보낼 수는 없다.

정아가 말했다.

“오늘이 이븐데 지금 갈 데가 어딨어? 이미 어딜 가든 다 꽉꽉 찼을걸?”

하긴. 그 말이 맞다.

썩 괜찮은 곳 중에 자리가 비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터.

그것도 한창 화제를 휩쓸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냥 우리집 가자니까?”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최선 같았다.

‘어?’

그런데.

“정아야.”

“왜.”

“너 나 말고 다른 사람 초대한 적이 있었나?”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렇게까지 모두를 적극적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정아에게 쏠리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얼굴이 살짝 빨개지며 미간이 모아졌다.

“싫으면 말든가!”

그녀가 소리치자, 반대로 우리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쑥스럽고 민망해서 저러는 게 너무나 투명하게 엿보여서.

서연이가 정아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전 좋아요! 언니네 집 가서 먹어요!”

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가보고 싶어요. 저번에 예능에서 보니까 집 엄청 좋던데.”

유진이는 매니저였을 때 정아의 집에 가본 적이 있다.

다만 거기서 놀아본 적은 없었지.

“저도 거기서 놀아보고 싶었어요.”

나도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 이번에 한 번 그 넓은 집에서 북적북적하게 놀아보자.”

정아는 애써 미간을 구기고 있었는데,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이런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정아가 우리 모두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건 진작에 알았다.

수상소감에서도 그랬고, 그룹을 하자고 할 때 직접적으로 ‘얘네 마음에 들어’라고 말했으니까.

그 전부터 우리는 모두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기도 했고.

그런데 특별한 날이기 때문일까?

왠지 그녀의 초대가 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축하할 목록 중, 한 가지를 더 축하해야 할 것 같았다.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진정으로 하나의 그룹으로 거듭나는 날.

비록 우리가 일시적인 프로젝트 걸그룹을 계획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서로 살을 맞대며 생활하는 여느 그룹들보다, 마음으로 더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 그냥 우리집 가자니까?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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