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하늘 아래 >
연습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케줄을 줄인다고 들었는데, 연말이라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유진은 스케줄 일부와 연습을 끝내고는 집에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웠다.
몸이 무겁다. 지독한 연말 스케줄에 몸이 피로를 격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렇게 집에 돌아와 짧은 시간이나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
‘그래도 그나마 내가 낫지. 다른 가수들은 아예 침대에 눕지도 못하니까···.’
매니저를 하면서 많은 가수들을 보고 들었다.
신인일 때는 물론이고, 음원과 앨범을 낼 때, 그리고 연말.
그들은 이동, 스케줄, 이동, 스케줄을 반복하며 잠다운 잠을 자지도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이렇게 쉬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김유민이 대단해 보인다.
김별, 구서연, 유정아, 그리고 자신까지, 스케줄은 많았지만 그렇게 혹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다른 팀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널널한 스케줄을 하며, 잘도 여기까지 왔다 싶다.
예전부터 그를 존경했는데 지금은 그 존경이 한층 더 깊어졌다.
“진짜 대단한 선배야.”
유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매니저일 때 많은 연락처를 얻었어서 그런가, 부재중 전화와 문자, 톡이 한가득 쌓여 있다.
모두 영화의 천만 관객 돌파를 축하해주는 내용일 터.
유진은 씨익 미소 지으며, 인터넷에 들어갔다.
기사와 팬 카페, 커뮤니티, SNS.
막 데뷔했을 때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게 영 생경하고 어색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여전히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이긴 하지만.
“뭘 자꾸 내 덕이래.”
영화가 천만을 돌파하고 어쩌면 1500만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언론은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하는 이유를 자신과 유정아, 두 명 때문이라 했다.
가요계에서 날아다니며 온갖 화제를 쓸어담고 있는 덕분이라고.
유진의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이 지어졌다.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니 몸에 쌓인 피로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느낌이다.
유진은 잠을 자는 대신, 인터넷을 살피는 데 소중한 시간을 썼다.
너무 중독적이라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언론이 말하는 대로, 지금 자신들의 무대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으니까.
‘해외 팬들 반응도 엄청 많네.’
-Holy Shit!
“하하!”
무대를 보며 경악하는 영상을 보니, 육성으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미쳐버릴 듯 열광하는 그들의 반응이 짜릿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유진은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의 반응이 좋은 만큼, 다음 무대도 좋아야 한다.
기대감이 커지고 있으니, 절대 실망시켜드리면 안 된다.
유진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거울 보면서 귀여운 표정 짓기 특훈 들어가자. 아침에 일어났을 때, 씻을 때, 밥 먹기 전에, 밥 먹는 도중에, 자기 직전에, 그냥 하루 종일 틈 날 때마다 최대한 귀여운 척하는 거야. 이번 컨셉은 하이틴이야. 상큼하고 귀여워야 돼.’
“귀엽고 상큼해야 돼.”
유진은 입꼬리를 올리고 눈웃음도 지어봤다.
“눈웃음이 너무 어려운데.”
지금은 약간 어색한 것 같다.
좀 더 부드럽게 초승달처럼 휘었으면 좋으련만.
‘아예 윙크를 해버릴까?’
눈웃음이 어려우니 윙크로 대체해봐야겠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오른쪽.
이번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리고 빵끗.
좀 더 상큼하게, 좀 더 귀엽게.
그렇게 거울 앞에서 정신없이 특훈을 하고 있던 와중.
“풉.”
“···!”
아무도 없는 방에 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홱,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재빨리 돌렸다.
엄마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문을 스르르 닫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언제 문이 열렸던 걸까?
어디까지 본 걸까?
유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드디어 시상식이다.
대기실. 거울 앞에서 서연이가 특훈을 하고 있다.
요리조리 귀여운 표정을 지어대는데,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진짜 귀엽네. 특훈의 효과가 있다.
물론, 그녀가 원래 귀엽게 생긴 덕분이기도 하겠지.
“하아···.”
옆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유진이. 그녀가 눈으로는 서연이를 바라보며, 말은 내게 건넸다.
“서연이는 어떻게 저렇게 잘하죠? 진짜 천상 아이돌 같다. 저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저렇게 항상 당당해져야겠죠? 선배, 근데 전 저렇게 대놓고 귀엽게 하는 건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막 민망해서.”
그러니까 그 말은.
“대놓고 귀여운 척하는 건 잘 안 맞긴 한데, 어쨌든 귀엽긴 하다?”
유진이가 눈을 흘겼다.
난 헛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어디 가게요.”
“화장실.”
“안 피해도 되니까 앉아요. 뭐라고 안 해요.”
“아니, 진짜 가고 싶어서.”
“···.”
난 대기실을 나와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우연히 그녀들과 마주쳤다.
레모네이드.
저저번 가요대축제에서도, 저번 가요대전에서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오늘은 정면에서 딱 마주쳐버렸다.
그녀들과 정면에서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난 눈썹만 움찔하고 말았지만.
그녀들은 아예 발이 딱 굳어 멈췄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 어···. 안녕.”
내가 인사를 받아주자, 그녀들이 나를 지나치며 걸음을 옮겼다.
뭐지? 갑자기 왜 저러지? 어디 아픈가?
“···어쩌면 내가 너무 높아진 걸 수도?”
시상식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보자면, 그녀들은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을 터.
그리고 나는 비중이 큰 조연일 것이다.
주인공은 와인드업이나 우리 애들이겠지.
그러니 저건 단순히 입지 차이에서 오는 인사에 불과할 거다.
최근 들어, 우리는 연예계에서 최고의 입지를 구축 중이었다.
그러나 자기들은 바닥에서 허덕이고 있으니, 위치를 파악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거겠지.
원래 저렇게 상하를 따지고 태도를 바꾸는 애들이었으니.
“좋네.”
동정심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살짝 흐뭇한 마음도 든다. 거울 앞에서 귀여운 표정을 짓던 서연이를 봤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들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데.
“···!”
“···!”
날 어떻게든 볶아 먹으려던 이팀장이 딱 눈에 들어왔다.
하긴 레모네이드랑 한 팀이니 같이 마주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이번엔 또 무슨 지랄을 할까?’
타격은 받지 않겠지만 조금 기대되기도 했다.
그런데.
‘뭐지···?’
분명히 눈이 마주치고 서로 놀랐는데도, 못 본 척하며 입맛만 다시고 지나친다.
내가 제자리에서 멈춰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 진짜 컸구나?’
거물이 됐다는 걸 또 이렇게 체감한다.
세상에 이팀장도 저럴 줄이야.
바쁘게 일만 했을 뿐인데, 환경이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런데.
화장실 가는 길이 참으로 길지.
“형!”
“유민이 형!”
이번엔 얘네다. 와인드업.
그들이 내 앞에 다가와 멈춰섰다.
5월 시상식 때도 이런 식으로 마주쳤는데.
“천만 돌파 축하해요!”
막내 장영기가 실실 웃으며 축하를 건넸고.
“형, 걸그룹 만드실 거예요?”
리더 송윤황이 흥미로움이 담긴 얼굴로 물었다.
“형, 좀 살살 해주세요. 저희도 주목 좀 받아야죠.”
서도현은 매끈한 미소를 지으며 엄살을 떨었고.
“축하해요, 형.”
김호영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담담하게 축하를 건넸다.
레모네이드와 이팀장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는데, 얘네들은 어째 변하질 않는다.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며 차트에서 번번이 꺾이는 상황이 나오고 있는데도.
그들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한 점 달라지지 않았다.
뭐, 살짝 미묘하게 달라진 게 있긴 한데.
그건 내 입지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회사를 나오며 관계가 바뀌고, 이래저래 마주치고 엮이며 자연스레 변한 거지.
나는 씩, 웃으며 미리 축하를 건넸다.
“고맙다. 그리고 너희도 축하해. 오늘 대상은 너희가 탈 거야.”
나 또한 마찬가지.
그들의 입지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살짝 달리했다.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앞으로 불청객이 한 명 나타났다.
하여간, 화장실 가는 길이 참 길기도 하다.
“김사장.”
“대표님.”
박수한 대표.
그는 애써 태연한 태도를 가장했던 이 주일 전과 또 달라졌다.
숨겨봤자 전혀 소용이 없다고 느낀 걸까?
이젠 경계 어린 눈빛을 숨기려 들지도 않는다.
오늘 와인드업이 대상을 탈 게 뻔한데도, 불안한 심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요즘 칼 갈았던데.”
“항상 열심히 준비하는 거죠.”
“···오늘도 기대하지.”
“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저도, 애들도 열심히 했으니까요.”
그가 저리 경계심을 보일 만도 했다.
영화도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점차 우리 애들에 대한 반응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으니.
지금도 대중들은 와인드업이 받을 게 뻔한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늘 우리의 합동 무대가 또 한 번 나올지, 나온다면 어떤 무대가 나올지 궁금해하고 있을 뿐.
‘또 뿌듯해지네, 이거.’
나쁜 놈들이 내 입지가 하루가 다르게 커갈수록 태도를 달리하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난 길고 긴 길을 뚫고 나서야 화장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세면대의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문득 아까 대기실에서 봤던 유진이와 서연이가 떠올랐다.
‘귀여운 표정··· 그렇게 어렵나?’
씨익. 찡긋!
“커헉!”
고개를 홱 돌려보니, 권본부장이 충격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사장도 아이돌로 데뷔해보려고?”
“···.”
유진이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응원할게. 김사장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
그냥 집에 갈까?
시상식이고 뭐고.
***
“와아아아!”
“와아아아아!”
유진이의 솔로 무대.
관객들은 밝은 표정으로 아낌없이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이전에 주사를 맞은 덕인지, ‘합동 무대 안 하나?’ 하는 불안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좀 떨리네요, 사장님.”
정실장님이 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뭔가 얹힌 듯 불편해하고 있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 시상식이 다 그렇죠. 혹시 우리 애들이 상 못 받으면 어쩌나, 마음을 못 놓으니까요.”
“사장님은 전혀 안 떨리시는 것 같은데요?”
“저도 똑같아요. 유진이가 환호성 받고 있으니까 당장만 조금 나아진 거죠.”
“···유진이랑 정아가 신인상 받을 수 있겠죠?”
이 시상식, ‘AKM’에선 다른 상은 한 팀만 받을 수 있는데.
신인상과 본상은 다수 팀에게 상을 준다.
5월 중에 있던 ‘AMAM’ 시상식과 전혀 관련이 없는 오늘의 시상식.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이미 신인상을 받았던 별이도 신인상 후보에 들 수 있었다.
그러니, 별이와 서연이는 일단 신인상이 확정된 거나 다름없지만.
유진이와 정아는 집계된 기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정실장님도 이렇게 걱정을 하는 것.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난 예언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활동한 기간은 짧지만,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니.
“걱정보단 기대를 해도 좋을 겁니다, 실장님. 우리 애들 다 신인상이랑 본상에 노미네이트 됐으니까요. 어쩌면 신인상뿐만 아니라 본상도 다 수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오늘 시상식 ‘AKM’은 상이 여러 부문으로 많았는데, 메인이 되는 상은 다섯 부문이었다.
신인상, 본상, 최고 음원상, 최고 앨범상, 대상.
“그럼 각각 메인 상만 2관왕씩, 총 8관왕이네요? 와···. 그렇게만 되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황실장님이 물었다.
“그럼 나머지 상은요?”
“하하. 뭐 나머지 상은 그리 신경 쓸 만한 게-“
내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던 때였다.
-베스트 퍼포먼스 상 여자 부문! 축하드립니다! ‘I Am Addicted’의 이유진!
“이야아아아─!”
난 누구보다 빠르게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관객들도, 우리 스탭들도 모두 함성을 질렀다.
“이게 맞지! 베스트 퍼포먼스는 당연히 유진이가 타야지!”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오늘부터 베스트 퍼포먼스 상도 메인 상이다.
‘암! 그렇고 말고! 같은 하늘 아래 안 중요한 상이 어딨어?’
다 중요하지.
“황실장님! 애들 노미네이트 된 거 또 뭐 있죠?”
“서연이가 ‘최고 프로듀서상’ 후보에 있습니다.”
이건 무조건이지.
오늘부터 저것도 메인 상이다.
< 같은 하늘 아래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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