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몰입이 시작되는 순간 >
무대 뒤.
유정아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침착해. 나 정도면 이 정도 마인드 컨트롤은 해야지. 영화 촬영장이라고 생각하자. 영화 찍는다고 생각하면 돼.’
그간 쌓은 경험이 의미가 없진 않은지, 쿵쿵 정신없이 뛰던 심장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유정아는 안심한 얼굴로 앞에 선 이들을 눈에 담았다.
김별, 구서연, 이유진. 자신을 포함해 아직 솔로 무대를 보여주기 전이었다.
합동 무대가 먼저.
조금은 아쉽다.
솔로 무대부터 했으면 무대에 적응이 되어 좀 덜 떨렸을 텐데.
걸그룹이라는 단어가 주는 마력은 과연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이 솔로로서 댄스와 노래를 같이 한다곤 하나, 누군가는 ‘솔로가 무슨 아이돌’이냐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오래도록 아이돌을 꿈꿨던 자신으로선 할 말이 산더미만큼 많았으나, 설득할 수도 없고 설득해봤자 의미도 없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누가 보더라도 아이돌이다.
비록 커버곡으로 하는 단발성 무대지만, 지금 자신은 걸그룹의 한 멤버로서 무대를 앞두고 있었다.
떨리는 이유도 긴장 때문이 아니라, 흥분과 기대 때문.
‘나만 그런가?’
정아는 앞에 있는 그녀들을 슬쩍 떠보기로 했다.
“너희 어때? 무대 망치지 않고 잘할 자신 있지? 떨리면 말해. 말하면 조금은 나아지니까.”
“잘할 자신 있어요. 한 번 합동 무대 해보기도 했고.”
“저도 괜찮아요. 우리 연습 때 엄청 잘했잖아요.”
“음. 전 조금 떨리는데 언니는 괜찮아요?”
차례대로 김별, 구서연, 이유진이 말했다.
그런데 제일 잘하는 이유진이 떨린다고 말하니, 왠지 기만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살짝 언짢아졌다.
정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너네 다 실수하기만 해봐. 쯧. 이래서 솔로가 편하다니까.”
자신의 말에 다들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떤 말투로 말하든 얘네들한테 통하지 않는 듯했다.
속이 꿰뚫어 보이는 듯해, 정아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때, 옆에 가만히 서 있던 김유민이 말했다.
“너희 같이 자리 비운 거 보고 사람들이 합동무대라고 예상하고 있을 거야. 같이 일어나서 이쪽으로 올 때 사람들 함성 지르는 거 들었지?”
“뭐야, 잘하라고 부담 주려는 거야?”
“아니. 너희가 같이 무대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환호하기 바쁠 테니까, 부담 갖지 말라는 뜻이야. 이런 그림을 또 언제 보겠어? 팬들한테 귀한 순간이니까, 너희도 같이 즐겨. 그게 팬들이 보기에도 좋아. 실력 어필은 솔로 무대 때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별거 아닌 말이었으나, 정아는 저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놓이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기도 할 거야. 늘 말했잖아.”
“그래. 어련할까.”
이제 무대에 올라갈 시간.
넷은 같이 발을 뗐고, 조명이 모두를 비추었을 때.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귀청을 두드렸다.
그 열렬한 환호가 너무 짜릿하고 뿌듯해서, 실실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까 김별이 괜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자꾸 웃음이 의식된 탓도 있었다.
“크흠.”
웃지 말자. 웃지 말자.
시크하고 카리스마 있게.
정아는 몰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함성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입매가 살짝 꿈틀거리길 몇 차례.
음악이 흘러나왔고, 몸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드디어 실전.
첫 파트는 자신이었다.
센터로 확 치고 나가, 카메라를 노려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아─!”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함성이 배는 더 커진 듯했다.
유정아는 지금 이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무대에서의 몰입은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몰입과는 티끌 만큼도 관련이 없다는 것을.
소리는 진동이다.
팬들의 함성은 귀청을 두드리는 것도 모자라, 온몸을 두드리며 희열을 끌어올렸다.
이와 함께 입매도 끌어올려지려 했는데, 이건 어떻게든 틀어막았다.
하지만 눈꼬리가 휘어지는 것만큼은 막지 못했다.
‘망했어!’
또 하나 깨달았다. 망했다고 느끼는데 행복할 수도 있구나.
유정아는 기묘한 심정을 외면하며 무대를 이어나갔다.
살짝 웃음을 흘린 것 말고 실수한 것은 없었으니.
자신의 파트가 끝나서 뒤로 빠졌다.
이제 이유진의 파트.
그녀가 앞으로 나갔을 때, 팬들은 또 한 번 입을 맞춰 함성을 내질렀다.
‘설마 쟤도 웃진 않겠지?’
앞에 있어서 표정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는 구서연과 김별의 표정은 눈에 들어왔다.
‘···진짜 망했네.’
얘네는 웃음을 참으려는 건지 뭘 하려는 건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아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 뒤로, 구서연이 나가고 김별이 나갔다.
각자 센터를 차지할 동안, 관객들은 이번 무대에 목소리를 갈아버리겠다는 듯 아낌없이 소리를 내질렀고.
멤버들은 그럴 때마다 모두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팬들한테 귀한 순간이니까, 너희도 같이 즐겨. 그게 팬들이 보기에도 좋아. 실력 어필은 솔로 무대 때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김유민이 해줬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래···. 그냥 즐기자, 즐겨.’
유정아는 웃음을 참아야 한다는 압박을 약간 내려놓고, 무대에 집중했다.
그러니, 오히려 관객들의 열기가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다.
이 순간을 누구보다도 더 즐기고 있는 팬들.
그들은 펄쩍펄쩍 뛰며 열광하고 있었고.
얼굴엔 보기만 해도 흐뭇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의 팬일까?
자신의 팬일지도 모르고, 유진의 팬일지도 모르고, 다른 애들의 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본진은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그들은 자신들을 뜨겁게 반겨주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관객들이 그랬다.
‘되게 귀엽네. 다들.’
배우로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감.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하여 뜨거워졌고, 그들이 보내는 사랑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과연 같이 일했던 배우들이나 이하영이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진 모르겠지만, 여기 멤버들의 표정은 바로 볼 수 있었다.
‘에라이.’
아예 놔버리기로 했는지, 다들 싱글벙글한 미소를 대놓고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자신의 표정도 자각할 수 있었다.
‘나도··· 똑같네.’
다들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겠구나.
‘여고생도 아니고 이게 무슨 주책이야. 나도 아주 소녀 다 됐어···.’
무대가 끝났을 때.
미소를 짓고 있는 정아의 귀와 목,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달구어져 있었다.
***
김별의 팬이자, 그녀의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성덕이라고 불리고 있는 래퍼 김종수.
그는 ‘쇼앤프루브’에서 우승을 한 덕에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었지만.
KBC 가요대축제를 하고 있는 지금 시간에는 다행히 스케줄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TV에 김별과 구서연, 이유진, 유정아가 무대에 동시에 등장하는 순간.
“미쳤다!”
그는 이 순간을 생방송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스케줄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지, 이걸 나중에 봤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좋긴 했겠네.’
아무튼.
생각지도 못했던 초대박 레전드 순간이기에, 김종수는 눈을 부릅뜨며 볼륨을 키웠다.
그렇게 시작된 무대.
도입부는 유정아였다.
애써 도도한 표정을 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얼굴.
김종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가, 유정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순간.
“하하하! 귀여워!”
그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 소리가 터졌다.
세상에 유정아가 이렇게 가수로 데뷔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별, 구서연, 이유진과 걸그룹 커버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귀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종수의 흥분은 시작부터 최대치를 달렸다.
유정아에 이어서 이유진.
그녀의 댄스는 여전히 경악스러웠다.
허나.
“하하! 얘도 웃어!”
이유진은 표정 관리가 고역이라는 듯, 안면근육이 시시각각 꿈틀거리며 모양을 바꿨다.
그리고 구서연과 김별.
웃는 건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진짜 레전드!”
특히, 김별이 웃음을 참기 힘들어하며 입술을 깨물었다가 삐죽 내미는 순간.
김종수의 눈동자엔 화르륵- 횃불이 켜졌다.
그녀들을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서, 화면이 쓸데없이 관객들을 잡을 때면 입밖으로 욕이 튀어나왔지만.
관객들을 보니, 그녀들이 왜 이렇게 웃음을 참기 힘들어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저건 광란의 현장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띠우며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정말로 그녀들에게 미쳐 있는 것처럼.
‘저러니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저기 있는 관객들에게 칭찬을 쏟아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 덕분에 이런 귀한 장면들을 볼 수 있게 됐으니.
김종수는 무대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점점 표정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그게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즐기고 있는 게 한눈에 보이네.”
무진장 행복해 보인다.
마치, 막 데뷔하여 아직 환호에 적응하지 못한 신인이 예상치 못하게 커다란 환호성을 맞이한 것처럼.
‘아, 유정아는 가수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
그래도 환호를 한두 번 받아봤을까.
그녀에겐 이런 함성이 익숙할지도 모른다.
‘뭐, 그런 거야 아무렴 어때.’
이 무대가 미쳤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녀들이 무대를 행복하게 즐기고 있으니, 이를 보는 자신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
“넷이 합치라고 난리 치는 이유가 있었어.”
물론 그 난리 속엔 자신의 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끝내줄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기대했던 것의 몇 배는 되는 짜릿함.
팬으로서 전율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 엔딩 포즈를 잡을 때.
그녀들의 얼굴이 각각 클로즈업되며 한 번 더 느꼈다.
“이건··· 진짜 앨범 하나 내야 돼. 무조건.”
이전까지는 넷이 걸그룹을 하라고 했을 때 장난이 반쯤 섞여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김종수는 언제 웃었냐는 듯, 한없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우리 잘못이 아니야. 이런 걸 보여줘버리면 못 참는 게 당연하잖아?”
팬들의 과몰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가요 대축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차량 내부는 너무 바빴다.
서연은 고개를 돌려가며 한 명씩 살펴봤다.
유정아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는 핸드폰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음악을 들으며 반응을 살피고 있는 모양.
이유진은 쪽잠을 자고 있었다.
요즘 너무 바쁘긴 했다. 안무를 맞추느라 가장 고생하기도 했고.
‘피곤할 만도 하지.’
앞좌석에 앉은 매니저들은 통화하느라 바빴다.
남은 건 옆에 앉은 김별뿐.
그녀는 멍한 시선을 바깥에 보내며 여운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야.”
“응?”
“우리 대박이었지?”
김별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응. 대박인 것 같아.”
“생각보다 우리 넷이 되게 잘 맞는 것 같지 않아?”
“맞아. 반응도 엄청 뜨겁더라.”
무대 위에서 직접 피부로 느꼈다. 기대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선 반응.
그렇기 때문에, 구서연의 생각은 한 곳으로 뻗어 나갔다.
서연은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하며 말했다.
“야, 이거 네 라이브 방송 보고 우리가 걸그룹으로 활동하면 어떨지 생각하면서 만들어본 거거든? 한 번 들어볼래?”
어차피 넷이서 이 곡으로 정식으로 활동하지는 않겠지만, 상상 정도는 할 수 있다.
오늘의 반응을 보니, 이 곡으로 활동하면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아, 진짜? 그때 바로 만든 거야?”
“응. 그래서 러프 버전이긴 한데, 그래도 핵심적인 부분은 대부분 들어가긴 했어.”
김별은 눈을 반짝이며 이어폰을 건네받았고, 서연은 바로 음악을 틀었다.
오늘 같이 무대에 서봐서 이미지가 더욱 잘 그려질 거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김별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입술을 모으며 감탄하기도 했고, 눈을 크게 뜨며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나고.
김별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는 말했다.
“와! 엄청 좋다!”
“그럼! 누가 만든 건데.”
서연은 만족스럽게 씨익 웃었다.
“이거 파트는 어떻게 생각하고 만든 거야?”
둘은 이 음악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하지만 다들 바쁜 탓인지, 같은 차에 있으면서도 그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음악이 탄생했다는 건, 이 둘밖에 모르는 사실이 되었다.
우선 지금 당장은.
< 과몰입이 시작되는 순간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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